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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y 14. 2023

언어 구사력과 문화 이해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해와 어울림, 제14화)

국정철학 공유냐? 외교관 능력이냐?

외교관의 능력과 언어 구사력의 상관관계?

업무 능력보다 중요한(?) 조건



국정철학 공유냐? 외교관 능력이냐?

서로가 같은 나라 사람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면 “척하면 척”이고, 무슨 말만 하면 눈치로 알아서 다 처리되지만, 상대가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의 잣대나 기준으로는 상대편의 입장을 예측하여 대응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이를 보면,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외국과의 문제 발생 시, 그 해결을 위해서는 상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 종교적 상황을 복합적으로 잘 알고,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 즉, 상대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의 도구인 상대 언어의 구사가 가능해야 한다. 현지 언어가 가능할 때만 비로소 현지인 생활의 속 살을 드려다 볼 수 있다.   


이를 인식한 각국 정부도 이런 인재들을 선발하여 오랫동안 정교하게 훈련시켜 외교 전선에서 활용하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외교부에는 최고급 베테랑으로 장관급 대사 직위가 여럿이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 대사 등이 그들이다. 외무고시로 외교부에 입부한 뒤 엘리트 외교관으로서 30여 년 이상 근무한 자 가운데서, 대통령의 낙점을 받아야 갈 수 있는 자리로, 지금껏 주로 외무고시 출신 관료들이 맡아왔다. 


그런데, 어떤 정부의 대통령은 정통 외교관보다, 장관부터 대사급까지 모두가 정부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우선이라며 이런 사람들로 주요 직위에 임명했다. 지도자의 '의도' 전달에 방점을 두었던 거다. 대통령이 대사 임면권자이니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나, 외교에서는 의사전달력과 정치철학이 다 함께 중요한 듯하다.


물론, 정치철학 전달에 방점을 두었던 사례도 있다. 예컨대, 1949년 신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뚱'은 외교관 임명시, 국민당을 추종하다 귀순한 유능한 외교관들은 철저히 주요 직위에서 배제하였다. 가난한 농민출신으로서 공산군이나 당원으로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 외교를 모르고 무식하더라도, 혁명사상으로 무장이 확고한 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하였다. 계급투쟁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 다운 조치였다. 여기에는 우리와 달리, 중국어가 유엔 공용어라 영어에 대한 아쉬움이 덜하였기에, 언어능력보다 외교가 갖는 ‘전달성’에 더 주안을 두었던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장기 독재에서만 지속 가능한 일이다. 신 중국 개국 시기의 일이었다. 


외교관의 능력과 언어 구사력의 상관관계?

외교관에게 언어 구사력은 매우 중요하다. 2019년 중앙일보는, “일본 근무 25년 '청융화'(주일 중국대사, 65세) 키운 중국, 재팬스쿨 흔들리는 한국”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2019년 4월, 주일 중국대사가 일본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나라 대사가 그 임지를 떠나는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데, 그 기사의 내용에 울림이 있었다. 이 중국 대사는 외교관으로  42년 간 근무하였는데, 일본에서만 대학 4년을 포함하여 무려 25년 간이나 일본 전문 외교관 (그중, 9년 1개월은 대사)으로서 근무하다 본국으로 귀임한다는 내용이다. 장인 정신이랄까? 한 우물을 판 그 경력의 대단함에 마음이 쏠린다. 중국의 ‘만만디’를 강하게 실감할 수 있는 사례로, 시류(時流)에 따라 선호가 갈리는 우리 한국인들과 너무 다른 것 같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2척이 중국 시위대가 탄 배를 에워싸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그런 경력 탓일까? 이 중국 대사는 '아베' 일본총리가 일본어에 능통한 각국 대사들을 총리관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는 '오찬 모임'의 단골 멤버였다고 한다. 몇 년 전 ‘센카쿠 (다오위다오)’ 등 영토분쟁으로 중국 내 반 일본 운동 등 중국과 일본이 대립할 때, 그를 통하여 중-일 간에 당연히 많은 의사소통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 후, 이 문제는 중-일 양국이 상호 보복보다 조용히 마무리하며 해결되었다. 


언어 숙달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 신문은, 그와 대조적으로 당시 부임한 주일 한국대사가 정부의 국정철학은 잘 알겠지만, 뒤늦게 시작한 일본어 공부에 애를 먹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가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마당이니 외교부가 지도자의 ‘의중’을 아무리 잘 전달해 본들 "아무런 해결 방안이 없는 답답함이, 왜 그런지?"와 상관이 있을까? 


사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 우리말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리고, 언어 그 자체에 못지않게 '말 맛'(뉘앙스)이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우리말도 초등학생이 사용하는 말과 대학원 졸업생이 사용하는 말이 다르지 않은가? 그 때문에, 얼마나 고급스러운 언어를 구사하고 문화적 배경에 기반을 둔 대화를 이어 가느냐? 가 현지인과의 관계 향상에 필수적이다. 말은 현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환담을 나눌 때, 현지인이 빠르게 뭐라고 농담해도 같이 웃고 맞받을 수 있으려면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예술로부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일본 수상이 주관하는 오찬 모임에서 수상과 맞짱 뜨는 대사쯤 되려면 수 십 년에 걸친 공부가 필요할 거다. 


대사관 국경일 행사시 기념사 장면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 출처: 인터넷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나 그 본질은 똑같다. 현지어를 말하고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현지인에 대한 존중에 다름 아니다. 국가를 대표한다면서, 누군가가 써 준 현지어 문장을 그냥 떠듬떠듬 읽는 수준으로는 상대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과거에, 어떤 경우는 기념사를 현지어가 아닌 영어로 낭독하였는데 이마저도 듣기 빈망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을’의 신세이니, 정성어린 현지 생활 체험이 중요하다. 


그런데, 비영어권 국가 중 서구 선진국은 양국 간 외교 업무에는 영어보다 자국어를 요구하였다. 대부분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외교관이라도 주재국어를 약간 하면 생활에는 불편은 없고, 주재국 사람들도 대부분 영어를 잘하니 업무도 영어로 하면 되지만, 그래가지고는 거기까지다.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친구한테는 더는 깊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때문에, 외교관이든 주재관이든 누구든 현지어를 못하면 정말 힘들다고 말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한국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말 몇 마디 해주면 깔깔대고 웃으며 박수를 쳐주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필자가 아는 어떤 외교관은 현지어가 무서워 성격마저 소극적이 되어 두문 불출하였다. 아무리 통역이 있다한들 현지어가 필요할 때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면 황당할 것이다. 외교에는 나의 철학을 저들에게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들과의 공감과 소통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스개 소리가 있다. 미국인에게, 언어 2개 하는 사람이 뭐냐? 물었더니, “Bilingual” 이란다. 그럼, 언어 하나밖에 못하는 사람은? “Monolingual?...” 아니다, “American”이다. 공감한다. 강국이라며 영어만 사용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빗댄 말이지만, 비영어권 국가에는 영어마저 안 되는 외교관도 많다. 그런데, 중국 외교관의 현지어 능력은 대단하다.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중국무관 (소장)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15여 년을 근무하였고, 이집트에서 만난 중국무관 (대좌)은 시리아, 이집트 등 아랍권에서만 거의 10여 년을 보냈다. 그만큼, 현지어도 잘 구사하였지만 영어도 웬만큼 하였다. 같은 시기에 만나 일본 외교관의 현지어 구사능력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았다. 일본 외교관도 영어는 기본이고, 현지어까지 하도록 교육한다는 것이다. 


업무 능력보다 중요한(?) 조건

우리는 좀 다른 듯하다. 오스트리아 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한 정무참사관은 S 대 독어독문과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했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 생활을 독일어권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라며, 동료들 앞에서는 독일어 사용을 꺼려하였다. 외무고시 합격자들은 정통 외교관의 주축으로 3년마다 본부와, 해외의 순환 근무를 한다. 이들의 꿈은 미국 대사관을 거쳐 후에 어느 나라 건 대사로 임명되는 거다. 그렇지만, 외무고시 말고 특채로 입부한 현지어 능숙자들은 현지 대사가 되기 어렵다. 외교는 '말보다 외교적 기량'이 앞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필자는 전역 후, 주한 미군사령부에서 12년 간 한미연합 훈련업무를 지원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미군의 파트너로 함께 근무하는 대부분의 한국 장교들은 미군을 만나려면 통역을 데리고 왔다. (일부지만, 영어를 잘하는 한국군 장교들도 있다) 그런데, 일대 일로 만나서 업무를 논의한다면 순차통역으로 하나하나 처리하지만, 가끔, 통역 없이 협조회의나 브리핑을 하거나 질의응답을 할 경우, '소곤소곤' 통역이라며 한국군 장교에게 조용히 옆에서 통역해 주는 통역이 있는데, 가끔 이들의 말 때문에 전반적인 회의 분위기를 깨기도 한다. 


예전에, 한/미 연합부대의 근무자는, 최소한의 어학시험 기준을 충족하고 각종 어학과정을 연수한 이후에 보직되어 평균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영어 좀 하는 장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거나, 누군가의 지시로 영어를 하든 못하든 보직관리와 서울이나 후방지역 순환 근무 방침으로 그런 현상이 생겼다는 것 같다. 장교는 많지만 영어 하는 이를 찾기 어려워 그런다는 건데... 참,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국정철학'을 모르는 외교관을 외교업무에 내세우기도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안 되는 외교관으로 '국정철학'을 홍보할 수는 없을 테고... 그리고, 군 업무 수행에 무슨 '공평한 기회'에 대한 고려가 들어가는지?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 한 개인을 40여 년 전부터 한 국가의 외교관에 필요한 준비를 착착하여 진행해 온 중국과, 대사 개인의 꾸준한 '만만디' 안목이 새삼 놀랍다. 이제, 우리도 오래전부터 전 세계 각지에서 비즈니스를 키우는 주재원, 교포들 자녀의 대입 특례 입학을 허용한다. 어린 시절을 현지에서 성장하는 동안 자연스레 현지 문화를 익히고, 한국에서 한국말과 생각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미래를 대비한다. 현지 말과 문화가 기본으로 되어 있으니, 인성을 가다듬고, 다양한 경험과 철학을 공유하면 국가든 군에서 큰 인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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