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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un 08. 2023

‘노무현’ 대통령이 쏘아 올린 ‘자주권 회복’

      

주한 미군의 수도 서울 주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일본 방위와 한국 안보를 위해 참전한 미군과 유엔 참전국들과, 이에 대항하여, 공산주의 체제와 영토에 대한 외세 침략의 트라우마를 지운다며 개입한 중공 등 강대국이 남의 나라에 와서 몇 년 동안 전면전을 지속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드물다. 더구나 이들이 전 국토에 걸쳐 전쟁터를 옮겨 다니는 바람에 한반도 산야는 엉망이 되었고, 한민족은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이런, 참혹한 전쟁을 겪었음에도, 휴전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껏 주변 외세는 여전하고, 남북의 반목과 대립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계속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등 또 다른 전쟁의 공포는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 민족 특유의 ‘인내와 끈기’ 탓일까?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빠르게 경제와 안보를 잡으며,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였고, 주한 미군 등 외세와 함께 지내는 데도 매우 익숙하여졌다.


필자의 고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AFKN(주한 미군 방송국)’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팝송을 듣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당시에도, 나이 어린 학생들은 팝송이나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88 하계 올림픽’ 행사 전까지 꽤나 오랫동안, 서울 시내에서 자랑스레(?) 자기네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미군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은 한 번도 미군이 한국 땅에 와서 자기네 군복을 입고 다니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부터 군복 입은 미군을 많이 보아 왔으니까. 더불어, ‘TV 채널 2’ 미군 AFKN 방송도 아무런 제약 없이 지상파 방송 3사와 함께 송출되었지만 별다른 감정도, 거부감도 없었다. 그저 고마운 ‘혈맹’으로 여겼고, 우방으로 대하였으니까.


그런데, 오래전 필자가 미국 군사학교에서 유학할 때, 북한에 갔다 온 적이 있다는 파키스탄 장교(소령)가 던진 질문은 당황스러운 충격이었다. 그는 “너희 나라는 왜수도에미군 등 외국군이 주둔하느냐? 지구상 어디에도 너희같이 국방을 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노골적으로 한국을 얕잡아 보는 말로 도발했다. 그의 도전이 언짢아 미국과 한국은 혈맹이다라고 어설프게 맞섰지만,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까?


당시, 수많은 미국인은 한국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Korea’ 하면 그저, 'North? or South?'라고 물었고, 조금 안다는 이들조차 ‘MASH(이동외과병원)’라는 전쟁 드라마 등 ‘전쟁’, ‘고아’만을 떠올렸는데…. 그럼에도, 이런 미국을 ‘혈맹’이라고 하였으니 필자의 ‘친미 의식화’는 과히 수준급(?)이었던 것 같다.


주한 미군사령부가 1945년부터 2018년 초까지, 오랫동안 용산 지역에 주둔한 것은, 군 주둔에 필요한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산 지역은 임오군란 때 청국 군이 주둔했고, 1904년 일제가 러일 전쟁을 기점으로 ‘조선 주차군’ 사령부 주둔지로 사용한 이래 대규모 병영을 건설하여 1945년까지 주둔하였다. 해방 이후, 일본군 무장 해제를 위한 미군이나, 정부 수립 이후 창설된 국군도 용산의 이들 구 일본군 시설들을 활용하였다. 한국 육군본부는 1989년 전쟁기념관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계룡대로 이전하였지만, 주한 미군사령부나 미 8군은 2018년까지 그곳에 주둔하였다. 그런데, 미 8군이 사용했던 많은 붉은 벽돌 건물 지붕에는 일본 육군을 상징하는 별 문양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조선 주차군사령부 막사로 미 8군 사무실로 개조 사용하던 구 일본군 막사

미군의 서울 주둔은 북한의 침략 위협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수도 서울에 주둔하는 미군으로 인해, 정치적 입장이나 위상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심각한 ‘대국민 불상사(不祥事)’도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때때로, 미군의 심각한 범죄행위로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어도, 양국 정부는 ‘한‧미행정협정(SOFA)’를 근거로 개인의 문제를 ‘혈맹’을 내세우며 상호안보협력으로 덮었다.


미국도 그런 부분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재임 간 서울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용산 미군기지 방문 시에, 미군이 서울에 주둔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개인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미군을 서울 밖으로 이전하려면, 이를 제기하는 쪽이 이전비용을 부담한다’는 한‧미 정부 간 합의가 있었다. 용산기지 건물들이 낡았고, 한국 정치정세 변화로 기지 이전이 필요한 미국도 이전비용 문제로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한국의 미 용산기지 이전제의 와 미 8군의 임무 전환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자주권 확보를 내세우며, ‘미군의 서울 이남 이전’을 제기하였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역대 정부가 북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안보상 이유’로 지난 60여 년 동안 온갖 수모 속에서 지켜온 한강 이북에서 ‘인계 철선’ 역할(전쟁 발발 시 자동개입)을 하던 미군을,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운 노 정부는 평택에 기지를 짓고 이전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미군의 한강 이북 주둔을 풀어 준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후세의 몫이나, 경제적으로 한국은 가만히 있으면 내지 않아도 될 약 12조 원(당시 예상 3~4조 원) 정도의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더불어 ‘미군 재배치 및 용산기지 이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 사업은 보수 정권하에서 2차례 연기되다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용산과 전방에 있던 미 2사단 등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였다. 이어, 서울시는 용산 지역에 2027년까지 민족 대공원을 조성한다”라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100여 년 이상 외세에 의한 굴욕의 역사는 매듭지어졌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 주한 미군사령부 신청사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혈맹’을 자처하던 미국의 대응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과 ‘미군기지 이전’ 제의를 마치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 제의를 받자마자 ‘한반도 방위에 전념’하였던 미 8군의 임무를, ‘인도 태평양 연안국 방위(한국 외 인디아, 호주,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로 바꾸었다. 이른바, 미8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였다. 미 8군은, 70여 년 전 6‧25 전쟁에서 자유공산 진영의 대리전에서 자유진영의 주역으로 싸웠던 부대다. 하지만 이제, 미 8군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 육군기지인 평택 험프리스’ 기지를 제공받고도한반도 방위는 그들 임무 중 극히 일부가 되었다.


‘전시작전권 전환’ 이슈와 함께,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만에, 주한 미군은 한국 안보에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되었다. 미군이 변수라면 당연히 한국은 ‘능력이냐? 의지냐?’ 문제로 몸살을 앓을 것이고, 이제부터 감당할 진정한 자주국방 실현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상수가 아닌 변수로 바뀌어서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며, ‘북한의 비핵화 협의’와 더불어, 평택의 ‘주한 미군 철수’마저 저울질하였다. ‘혈맹’이라는 동맹 중의 ‘동맹’조차 경제적 이익으로 재단하여, 국가이익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각인시켰다. 타국의 세력은 그저 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일까…? 미국은, 우리만 믿었던 ‘혈맹’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뀐 이후, 최근에는 바이든 정권과 한국 정부는 핵에 기반한 더욱 강화된 '한미동맹'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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