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Dec 17. 2022

'프로'를 프로답게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13화: 미 육군 지휘참모대 - 4)

프로의 전문성과 자부심


공과 사의 구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부분 사람은 가족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가정에 충실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을 일구어 나가려 한다. 그렇지만, 요즘은 ‘가족’ 문제로 몸살을 앓는 저명인사들이 많은 것 같다. 옛 말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며  국가를 다스리고 세상을 경영하려면 나’ 자신을 수련하고, 가정의 문제도 잘 정리한(?) 뒤에야 큰 일을 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데… 남아 대장부로서 큰 뜻을 펼치려면 반드시 새겨야 할 말이었다.


미군들은 부부 동반 공식 모임을 자주 한다. 그런데, 제병 협동 사령부 장성급 인사의 부인이 여군 대위로 같은 사령부에 근무하였다. 계급이 대위여서 모두들 업무 시간에는 “Captain A. (A대위)”로 불렸지만, 업무시간 이후, 리셉션 등 공식 행사장에서는 “Mrs. General A”로 대접하였다. 이 여군은 밤과 낮의 업무, 대화 내용이나 행동 가짐에서도 정말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사례는 매우 일반적이다. 자신이 처한 입장과 분수를 안다고나 할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도 많은 국가의 외교사절이 있어, 거의 매일 외교단 리셉션이 있다시피 하였는데 행사 주인으로 의외로 여성 대사가 많았다. 이 경우, 대사의 남편도 당연히 의전에 따라 배우자 자격으로 리시빙 라인에 서기도 하는데….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면 전업 주부 남편의 역할이 다소 모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과 사는 엄격하다. 배우자의 권위에 불필요한 참여를 안 한다. 

 

한 때, ‘공관병 갑질 사건’이라는 이슈로 P 육군 대장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장군 자신의 공관병에 대한 인식도 문제(대법원 판결은 무죄취지로 나왔다) 였지만, 이 과정에서 장군 부인의 공관병 핍박 행태가 도를 지나쳐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도마에 올랐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장군 부인이라 해서 공관에 파견 나와 있는 병사를 함부로 대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이, 설령 장군 자신의 공관에서 갖는 행사라 해도 공식적인 행사 라야 장군 부인의 자격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평소 일상에서처럼 그저 한 명의 군인이거나 한 남자의 부인일 뿐이다. 설렬, 공관에서 갖는 예하 지휘관 부부동반 격려 만찬 등의 공식 행사라 하더라도, 행사를 위한 준비 과정에서도 ‘주부의 역할’ 일뿐이다. 행사를 준비하는 장군 부인이라 해서 병사에게 갑질을 할 수도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 공관에 파견 나온 당번병이 이런 일을 도와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이 사건으로 장군 관사 공관병이 대거 축소되어 대부분 전투병으로 야전에 복귀하였고, 이제 고급 군인 간부의 부인은 더 큰 짐을 지게 되었다. 우린 국민의 군대다. 각 가정의 귀한 아들들을 생각하며 ‘별 볼일 없는(?) 별’들을 위한 격려행사가 줄어들까?


프로를 프로답게

 

일 년 내내 자발적으로 성조기를 내건 미군 관사촌

나름 역사가 있는 미국 군의 큰 특색 중의 하나는 대를 이은 군인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제병협동사나 지휘참모대학에 근무하면서 만난 영관급 장교들 중 상당수가 대를 이은 군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부모, 조부모를 영웅 시 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관사 앞에는 성조기와 자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부대 깃발을 걸어 놓는다. 지휘참모대학의 관사촌에는 이런 집이 한, 둘이 아니다. 매일같이, 국가와 군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 어떤 이유일까? 어릴 적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 싶었던 걸까? 국민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워낙 전쟁을 통하여 성장한 국가이기에 전쟁 영웅이 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급여만을 바라보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나마 군 생활이 할만하다 해서 시작한 것일까? 


2018년 7월, 어느 조간신문에 게재된 ‘총 대신 펜으로 싸우는 우리 군대’라는 칼럼[1]을 읽었다.


내용인즉, 모 사령부 간부가 해외파병 부대가 민간 항공사 전세 비행기를 타고 파병지로 갈 때, 전세기의 ‘비즈니스’, '프레스티지’ 등 고급 좌석에 전세기를 빌린 ‘국군 수송사령부’ 간부들을 배정하고, ‘이코노미’ 석에는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전사령부 간부들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예산 집행 권한을 가진 ‘행정 군인’이 자신들의 식구부터 먼저 챙긴 것이다. 치졸한 발상이었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군 지휘부의 질책을 받고서야, 개선을 한다고 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군이 국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모두가 ‘군인다워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군인 다움의 요소 중에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려시대 무인 최영 장군의 관점도 포함된다. 돈을 벌기 위해 군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얄팍한 권한으로 잇속을 챙기는 소인배 무리에게 군인 다움을 논하기 어렵다. 그런데... 경리, 수송 병과 등 소위 ‘전투근무 지원병과’ 군인들이 조그마한 권한을 휘둘러 내 밥그릇을 먼저 챙겼다. 그러면, 보병, 포병 등 ‘지원을 받으며’ 전방에서 싸우는 ‘전투병과’ 장병은 설 땅이 없어진다. 만약에, 파병 간 국제적인 근무환경하에서도 이런 식으로 업무 한다면 어물전을 망신시키는 꼴뚜기’ 신세가 된다. ‘전투’라는 팀워크에서는, 항상 최일선에 있는 전투병이 최우선이다. 후방 지원 군인은  '등 따습고 배부럴' 입장이 아니다. 이런 간부의 이기적인 판단은 군의 기강과 단결을 훼손하는 행위로써 엄벌해야 한다.


기고자는 2가지 내용을 더 언급하였다.

하나는, 쾌적한 환경에서 서류만 다루는 군인들이 더 좋은 보직에 오른다며,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군이 ‘싸우는 방법’을 잊어 먹었다고 질책하는 내용인데, …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아무리, 전투병과 장교라고 하더라도, 전투 준비와 야전성을 잃어버리면, 행정 군인’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 배치되는 미군 장병들은, 전쟁이 “당장 오늘 밤에도 싸운다(Fight Tonight!)”라는 긴장감으로 각자의 사무실에 군장을 갖다 놓는 등 싸울 준비를 하고 근무한다. 그런데, 정작, 그래야 할 우리 장교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미군의 오지랖이 심한 걸까? 필자는, 직업 군인이라면 휴전상태임을 주지하고 끊임없이 전투적으로 사고하며,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군인은 생과 사를 오가는 전장환경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단련하며, 항상 ‘싸울 줄’ 아는 지식과 방법을 배워고 익혀야 한다.


그렇지만, 군인이라고 모두 총 들고 야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의 큰 그림을 준비하는 정책형 직위도 있고, 그늘에서 고생하는 이들도 많다. 고급 장교로 올라갈수록 이 같은 야전형 군인과 정책형 군인 간의 조화가 딜레마로 등장한다. 필자는 정책 부서와 야전 직위를 교대로 경험했지만, 야전 부대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하다 고급 사령부의 정책부서에 보임되자 정책적인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반대로, 정책부서에 있다가 야전부대 지휘관이나 참모로 근무할 때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교대로 하다 보니, 마이크로 적 관점과 매크로 적인 관점으로 보다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대관 소찰(大觀小察, 크게 보고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가짐은 국방부, 합참 등 고급 사령부에서 서류를 다루기도 하고, 대대, 연대 등 말단 부대에서 병사와 함께하는 순환 근무를 통하여 키워진다. 


또 하나, 기고자가 지적한 사항은 일반 국민들이 군인들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2013년 아프간 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미 해병대원에게 항공사가 일등석 ‘무상 업그레이드’를 해주니 다른 1등석 승객조차 추가로 좌석을 양보해 주었다는 것과, 이 건과 관련하여 2015년 어느 미국 신문에 소개된 이야기로, 이라크 참전 후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어느 부사관이 승무원에게 자신의 군복 보관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만석이라 승무원이 이코노미석 캐빈이 꽉 차 보관할 곳이 없다며, 기내방송으로 협조를 구하자, 그 이야기를 들은 일등석 승객이 군복을 자신의 옷장을 사용토록 하였다. 


미국은 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국가이다. 그 덕분에 참전용사와 전몰자 가족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과 군복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선열이 국토방위의 소임으로 쓰러져 갔지만, 군부가 장기 집권을 하였다. 오랫동안 군림하던 군사정권이 몰락하자마자, 일부 언론과 정치인은 군복과 군화를 우스갯 감으로 희화화하고 매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되어, 한때 단기복무 장교는 전역과 동시에 쓸모가 없어진 정복을 쓰레기 통에 마구 버리기도 했었다. (지금은 국방부에서 군복을 회수하여 폐기한다). 당시에, 야전 부대에 근무하던 많은 부시관들은 정복조차 없었는데.... 어떤 이유든, 자국 군의 군복을 비하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할 정도의 군과 국민이라면 그 존재가치가 있을는지...?


어깨에 태극기를 부착한 국군 장병들(출처: 중앙일보)

국방부는 국군 장병에게 군복에 자부심을 가지라며 모든 장병의 어깨에 ‘태극기 휘장’을 부착해 준다. 과거에는, 대외적으로 한국군임을 알리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 임무 등 해외 파병자에게만 달아 주던 것인데… 우리는 별로 못 느끼지만, 한국 군도 이제는 교육훈련, 무기체계 등의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군대로 평가받는다. 차제에,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도, 또 비행기 일등석 탑승객도 우리 장병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상징적인 마음가짐을 한 조각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노트북을 열며,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중앙일보 2018.7.11일 자 30면)




작가의 이전글 의지와 능력 그리고, 성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