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12화: 미 육군지휘참모대 -3)
능력과 의지의 조화로움
고위급 인사의 군사외교적 양면성
개인의 능력과 의지
미국 육군대학원 (US Army War college) 관련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술한 싱가포르 장교와 좀 다른 이야기여서 이다. 필자가 지휘참모대에 교환교관으로 부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잘 알고 지내던 선배 한분이 대령으로 진급한 뒤, 미국에서도 최고의 군사 과정인 미국 육군대학원에 한국군 위탁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입교 길에 잠시 들렀다. 미국 군조차 졸업생 대부분이 장성급으로 진출하는 미국 육군대학원이다. 이런 학교에 입학하여 자신감에 가득한 그로서는 "앞으로 1년 동안 죽어라 공부만 하겠다"며 열의가 대단하였다.
당시, 미군은 대령급 중에서 꽃이라 할 수 있는 여단장을 역임하거나, 장군 가능성이 농후한 이들을 학생으로 선발하는데 비해, 한국군은 대령으로 막 진급한 인원을 선발하여 보냈다. 당연히, 경륜 면에서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학교의 수업은 대부분의 미국 대학 고급과정이 그렇듯이, 교관이 뭘 설명하기보다는 많은 읽을거리(과목 당 1주간 80~120페이지 정도)를 주고 난 뒤, 학생들 상호 간에 자유 토의를 몇 시간 동안 시킨다. 강의실에서, 교관은 그저 학습을 유도(facilitor)하는 역할로서 토의가 막히는 부분만 짚어주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강의는 거의 없고 대부분 읽고 와서 토의하며 결론을 얻는 방식이다. 강의식인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한국군에서 능력이 있는 장교였으나, 미국 경험이 별로 없었다. 필자는 영어가 능숙지 않은 선배라 영문독해능력이 느린 듯하여 은근히 염려하였더니 정신력과 노력으로 극복하겠단다. 하지만, 입교 후, 채 몇 주가 안 되어 그는 골프에 전념하였고, 결국 '싱글 핸디'로 졸업하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물론, 한국 군은 졸업 자체에 만족하였을 거고… 이 분은 워낙 다른 능력도 출중한 분이라 후에 고위장성으로 진출하였다. 아마도 거기서 공부만 죽자고 하였더라면 '호연지기'가 부족하여 다른 길로 갔을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물론, 당시 싱가포르 군 소령이 나중에 미국 육군대학원에 갔는지? 또,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상생활 정도의 영어로는 보다 전문적인 공부든, 군사외교든 의지로만 수행하기 어려울 거다.
고위급 인사 방문의 군사외교적 양면성
필자의 재직 기간 중에 당시 합참의장 김 동진 대장의 지휘참모대학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헌정식이 있었다. 미 지휘참모대학은 그 학교를 졸업한 장교 중 누구든 어느 나라의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이 되면 이들을 초청하여 명예의 전당에 헌정식을 하는 것인데, 그해에는 한국에서 김 동진 대장이 선정되었다. 한국에서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참모총장 등을 역임한 대장급 인원으로 그때까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원은 7~8명이 있었다.
이는 미국이 동맹국의 군 고위 인사를 초청하여 지휘참모대 동문으로서 존중을 해주는 행사인데,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학교 나름으로는 한국 합참의장의 방문이 매우 중요한 행사여서, 필자도 그 준비 과정에서 협조가 필요한 업무를 학교 실무자들과 접촉하며, 함께 하였다. 그 과정에서,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현지 군사외교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하였다. 행사는 꽤 성공적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 합참의장님이 원고도 없이 즉석에서 30여분 정도 지참대 학생들 앞에서 양국 군협력 증진과 자신의 할 일에 대해 영어로 연설하였는데 이게 매우 큰 반응을 얻었다. 그는 얼마 후에 떠났지만, 향후 고위 인사교류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반면에, 얼마 뒤에 있은 어느 고위 장성의 방문은 매우 실망적이었다. 합참의장의 이러한 방문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탓일까? 당시 한국군 교육사 ㅇㅇㅇㅇ부장의 방문 요청이 들어오자 그 분야에 관심이 많고 지식이 해박한 사령관은 매우 흔쾌하게 허락하고, 그리고 그의 방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관련 분야에 대한 상호 의견 교환을 나누는 동안, 그는 당시 통역을 맡았던 필자가 당황할 정도로 전문성 없이 일반적인 말만 반복하는 통에 매우 난감하였던 기억이 있다.
한 주제에 대해 2분 넘게 의견 개진도 못하다니... 오히려 당황한 필자가 통역 간에 사령관의 질의에 응답하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필자가 미국에 교환교관으로 오기 전 근무하였던 분야가 바로 그 분야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때때로, 연례행사처럼 미국을 둘러보고자 찾아오는, 잘 준비되지 않은 한국군 고위급 장교의 관광성 방문은 굉장히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본인이야 임기 중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수없이 많은 방문 객을 맞이하는 학교 입장에서는 당연히, 비교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그런 류의 '놀러 온' 방문객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동 인사는 관광과 골프와 연계된 스케줄 탓에 일정(Iternary)을 수차례나 바꾸어 달라 하여 관계자들이 당황하고 불편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정적인 모습을 완화시키는 것 또한 중간에 있는 군사외교관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다른 측면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국에서 대대장 시절 연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 후에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에 출장을 가니까, 거기서 얼굴을 한번 보자"는 이야기였다. 캔자스 시티에서 산호세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거리인데, 마치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가니 한번 만나자는 식으로... 미국 출장으로 들뜬 마음으로 국제전화를 하셨을 터인데, 이런저런 말을 하면 섭섭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 일단은 별 말하지 않고 "알겠다"라고 답한 뒤, 서둘러 항공권을 예약하고 며칠 뒤 산호세로 가서 그분을 만났다. 그때서야 서울에서 홍콩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왔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매우 미안해하셨다. 그분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자랐으니, 거리에 대한 개념이 조금 부족하다. 미국은 큰 나라다. 우리가 미국이나 미국사람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않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