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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17. 2022

봉사와 기부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14화: 미 육군 지휘참모대 - 6)

"삶이란 내가 뭘 더 갖느냐, 얻느냐의 문제보다, 오히려 주는 것과 존재의 문제이다." - Kevin Kruse. 

인간의 도리

재능 기부

자원봉사 - 스폰서(후원자) 제도  



인간이 할 도리

많은 사람들이 뭘 좀 더 벌어볼까, 얻어 볼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게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를 도울 수 있고, 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할 바’, 즉 도리를 가르쳤다. 같은 의미로, 서구에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할 바를 찾아 행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봉사의 진정한 의미는 기록이나 과시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조용히 육체적인 돌봄, 여러 가지 재능의 기부, 필요한 물자의 지원 등을 ‘잘 연결 (matching)’해 가는 일이다. 조그마한 예로, 미국에서는, 어디 장거리 여행을 하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고속도로 노견에 차를 대고 서 있으면,  지나치는 많은 차들이 한 번쯤은 다가와서 “뭘 도와줄까?”하고 물어본다. 그게 미국이다. 마음이 따뜻한 지는 모르겠으나, 곤경에 처한 남을, 나도 언젠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으니, 도우려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구의 합리적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적 관점은 아니다. 물론, 우리 조상들도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닥치면 상부상조하여 극복하였다. 다만,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 의 차이가 있긴 하였지만…, 도우겠다는 마음이야 같았을 터이다.    


재능 기부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은 군사학 학습 못지않게 다양한 국제행사를 개최하며 군인으로서의 안목을 키우는 군사학교였다. 1년 과정의 정규 과정 학생 1200여 명 중 미 해군, 공군 , 해병대 , 예비군, 주 방위군과 외국군 유학생 120여 명 등 400여 명을 제외하면 실제 미 육군 장교는 8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15명 단위로 한 조를 편성하여 학생 위주로 다양한 주제를 조별로 토의하고  각종 과목을 이수하는 동안, 학교는 고급 장성 등 유명인사의 초빙강연과  International Day, Nation's Parade 등 행사를 계획하고, 지원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미래의 군 지휘관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를 유도하였는데, 특별히, 봉사활동 기회를 많이 제공하였다. 


미국은 군인을 '군 봉사자(Military Serviceman)'라고 한다. 봉사 정신이 군인의 중요 덕목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군인 급여를 봉급(봉사로 받는 수입)이라 불렀다. 미군의 봉사는 군 생활 중 해외기지에서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그들이 말하는 소위 “Military Community(군대 공동체)”의 핵심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미국 학생장교들은 각종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여러 활동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능 기부였다. 


자원봉사자 구인 광고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은 매년 8월 중순이면 개강하는데, 이는 9월 초에 시작하는 아이들의 학교 신 학년 개학 시기에 맞추기 때문이다.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는 아이들의 학교는 학기 시작과 함께할 각종 수영, 육상 등 스포츠나 악기, 혹은 태권도나 구기 종목 등의 과외활동을 개설하고 강사를 모집한다. 강사는, 대부분이 학교의 교관이나 소령급 학생장교들로, 자기 자녀가 다닐 초, 중등학교에 재능을 기부하는 자원봉사자로 등록하고 학교 재학 기간 동안 재능기부로 봉사한다. 대부분 장교들은, 자기 자녀를 위한 수십 가지의  스포츠나 재능 기부 활동 중에 한, 두 가지는 꼭 참여하여 헌신하며, 상호 우의를 돈독히 하면서 봉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재능기부 경력은 나중에 활용하도록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지도 않지만, 기부자들은 ‘기부니까’ 그런 것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필자는 우리 아이들이 다닐 학교에, 스폰서인 ‘레너드’와 함께 ‘자원봉사자 등록 행사’에 갔었다. 그날 밤 ‘등록 (sign-up)’ 행사에 수백 명의 장교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은 것을 보며, ‘미국의 저력이 이런 건가?’ 정말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 엄청난 사교육 부담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시사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수영반에 들었고, 필자도 수영반 지원요원으로 등록하였다. 당시, 10살로 초교 4학년이던 큰 아이는, 그때 시작한 수영을 계속하여 초, 중, 고, 대학 등 다니던 각 학교의 대표 선수로 각종 수영대회에 참가하여, 수상도 많이 하였다. 특히, 대학에서도 관련 활동을 주도하였고, 서른이 넘은 지금껏 수영과 수구를 취미로 하고 있다. 낯 모르는 그분들의 헌신이 아이의 미래에 선한 영행을 주었으니 지금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부'하면, 재능기부보다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의 사회적, 금전적 기부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왜 많은 돈을 기부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하니..., 우리에게 그런 기부문화가 아직 익숙지 않은 탓일 것이다. 사실, 기부의 본마음은 “필요로 하는 자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는 자세다”. 과거, 우리 선조들도 여유가 있든, 없든 이웃과 남을 배려하는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양반과 상놈의 신분 제도에서 가진 자의 인색함이 문학작품 등을 통해 더 해학적, 비판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그런 선행들이 묻혀 버린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도 있다.


재능 기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의 경우는 초, 중, 고교의 경우, 대부분 방과 후에 육상, 테니스, 농구, 야구, 축구부 등 다양한 '부(部)'행사를 한다고 한다. 일본 문부성 통계에 따르면, 운동부나 악기부에 들어가 중학생의 비율은 남자가 75.1%, 여자가 56.4%였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이 운동부든 문화부든 부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친구도 사귀고 학창 시절의 추억도 생길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입시가 힘들어서일까? 운동부나 문화부는 그야말로 전문인을 클 친구들의 이야기다. 학원에가서 학습을 해야하니 학원에 안가면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운 지경이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느 덧 우리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 수준이 향상되는 만큼, 남을 더 배려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더 큰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 사회는 그런 모습을 기억하려 애쓴다. 그러니, 기부를 너무 크게 생각하거나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재능기부든 사회적 기부든 모두 헌신의 방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컴퓨터나 악기, 운동 등에서 재능이 뛰어난 분이 많다. 어떤 경우는, 자기 아이가 '배우려면 처음부터 내로라하는 전문가에게서 똑바로 잘 배워야지 괜히 어설픈 자원 봉사자에게 뭘 매웠다가 기초부터 틀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굳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울 수도 있지만, 재능이 있는 분이 기부의 마음으로 돌보아 준다면, 아이에게도 좋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재능기부는, 평생교육, 사회체육의 활성화를 통하여, ‘자신들이 가진 분야별 전문 능력’을 공유하자는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사회가 성숙한 만큼 시민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러한 재능 기부를 포함한 헌신과 희생으로 공동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고, 상호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보다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사교육에 멍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치려면 많은 이들의 자발적인 봉사와 희생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인재로 먹고사는 사회니까...


그리고, 재능 기부가 안되면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 가지 형태로 기부금을 모아서 각종 종교, 사회단체들에게 보낼 수도 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요즘은, 우리 사회의 연말 모금액 총금액이 상당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기부하고 있다.


기부의 작은 모양도 있다. 미국 사회는 비록 고위 공직자라 해도 한국 공우원이나 회사원처럼 ‘판공비’ – ‘일반 업무추진비’라는 게 없다. 필자가 근무했던 사무실에서는 추석이나 크리스마스 등 행사는 물론, 전출자 환송 파티나, 동료들의 경, 조사를 위해 기부금을 모은다. 예컨대, 전출 파티는, 누군가가 00을 위한 파티에 음식이나 돈을 기부해 달라하면, 동료 부인 등 가족들도 1-2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일종의 ‘파틸 락’ 파티로 모두가 “십시일반”하는 식이다. 돈을 모을 때도 대부분 특정 금액을 정하지 않으며 상한-하한 얼마 이내에서 자유롭게 내는 식이다. 건전한 사회는 기부와 봉사가 일상적이며, 무엇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하며 베푸는 마음가짐이 넘쳐야 한다.


자원봉사 - 스폰서(후원자) 제도  

재능 기부 이외에, 미국 학생들과 교직원은 물론, 지역 거주 주민들은 특별히, 외국 장교들에 대한 스폰서로 자원하여, 다양한 초대 활동 등으로 교류하며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외국 장교들은 미국 지휘참모대 생활을 가장 좋은 추억으로 마음속에 오래 간직한다고 한다. 필자의 캔자스의 생활은 세 번째 미국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낯선 곳이어서 여전히 스폰서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런 어려움을 알기나 하듯, 학교 교관이던 ‘레너드 (Lenard)’ 중령이 필자의 스폰서로 자원하였다. 그는 근무시간 이후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를 즐겨하는 장교여서 봉사활동을 많이 배웠다. 


그런데, 민간인 스폰서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Dona’와 ‘Jim’ 부부가 자청 (Volunteer)하여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정착 단계는 물론, 2년여 재임기간 내내 헌신적이고 열성적으로 도와주었다. 각종 행사나 지방 축제 때마다 함께 시간을 나누었고, 미국 생활을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예컨대, ‘할로윈 데이’에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큰 호박을 깎아 등잔을 만들기도 하였고, 추수감사절에는 큰 칠면조를 잡아 같이 요리하고 함께 나누었다. 지금도 그들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필자가 알게 된 다른 미국인 후원자 (스폰서) 이야기는 필자의 스폰서들 못지않게 정말 감동적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이 미국 지휘참모 대학 졸업생이라는 ‘이 00’이라는 분이, 학교가 있는 ‘레븐워쓰’라는 조그마한 마을의 ‘사진관 집 부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학교본부는 그 ‘사진관 집 부부’의 이름과 주소를 찾더니, 이미 70세의 나이라 얼마 전부터 스폰서를 그만두었다며 그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필자를 반갑게 맞이한 그분들에게 물어보니, 1950년부터 한국 장교 스폰서를 자청하며 봉사하였단다. 두툼한 사진 앨범에는, 1년에 3~5명 정도씩 만난 우리 한국 장교의 모습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의 이름과 얽힌 에피소드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무려 40여 동안 그곳에서 1년씩 머무르고 간 150여 명의 장교들을… 첫 만남은 한국전쟁 중 처음 이 학교에 입교한 한국 장교 서넛이 서투른 영어로 신분증용 사진을 찍어달라고 왔다는데, 그 모습이 너무 딱해서 그냥 돕고 싶었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 한다. 


필자의 주선으로 1년 뒤, 이 분들은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들과 만났던 많은 한국인 인사들과 재회했다. 그리고, 미국 지휘참모대를 졸업한 동문회로부터, 그분들의 말대로 “왕과 왕비의 대접을 받았다.”라고 할 만큼 환대를 받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매년 왔다가 다음 해에 떠나는’ 한국 학생장교를 위해, 전혀 사심 없이 그저, 처음 해 보는 김치를 담그고, 음식을 만들어 주며, 향수를 잊도록 뒷바라지해 준 은정은 개인과 군은 물론, 국가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레븐워쓰’는 캔자스 시티 근교의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이곳에는 각국에서 파견된 장교들을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스폰서 활동을 하신 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2년 뒤, 필자가 오스트리아 대사관에 부임하였을 때, 초, 중학생인 아이들 학교에 이 분들처럼 뭔가 헌신하고 봉사하려 하였다. 당시, 초교 4학년인 둘째 아이가 학교 '보이 스카우트' 단원에 가입하여서, 재능기부보다 '주말 행사 운전봉사' (아이들은 독일, 체코, 헝가리 등까지 가서 캠핑을 했다)나 행사 중 각종 '허드렛일 (고기를 굽는 등)' 등 뒷바라지 요원으로 참가하였다. 아내도 PTA (師親會: Parent-Teacher Association, 우리의 학부모회와 비슷하다.)의 ‘Fund Raiser (기금 조성 요원)’로서 학교 기금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그중 “국제 음식 박람회 (International Food Fair)”는, 재학생 각국 학생 부모들이 자국 전통 음식을 소개하고, 참석자들은 이를 사 먹는 행사로서, 한국 음식이 인기가 좋아 가장 큰 펀드를 조성하였다.


희생과 봉사는 귀찮지만, 남을 위한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지” 알게 해 준다. 이처럼 자발적 참여로 공동체 (Community)에 헌신하면 낯선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고, 행사 준비기간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자연스레 리더십도 함양한다. 때문에, ‘내가 외교관이니까’, ‘내 계급이 뭐니까’ 하는 겉치레적 체면보다, 항상 나름대로 헌신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도 부모의 봉사와 참여 그리고, 희생을 옆에서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경험한 다양한 봉사와 희생, 헌신의 과정은, 학업 성적과 더불어 대학 입학시험에 고스란히 반영되며, 미국 ‘아이비리그 (Ivy League) 대학’ 도 이를 중시한다.

최근, 사회가 자원봉사 등 ‘인성’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일부 국회의원이 ‘인성’ 강화 입법을 발의한다고 한다. 그걸 법제화한다는 게 교육적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의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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