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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18. 2022

토의에 요구되는 많은 독서량

 (미국, 제15화: 미 캔자스 주립대 - 1)

장교를 교육하는 교관의 교육학 배경 요구

서로 다른 교육 방법 : 주입식 vs 토의식 교육

꼼꼼한 '보고식'(서술식)과 핵심만 '요약식'(개조식)



장교를 교육하는 교관의 교육학 배경 요구

필자가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에 파견될 때, 직명은' 한국 육군 교육사령부 파견 연락장교'였다. 그런데, 한국군에서는 각급 부대에 상호 파견한 '연락장교'라는 명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미국 군은 연락장교야 말로 두 부대를  잘 아는 가장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장교로써 양 부대 간 가교 역할을 기대한다. 이에 비해, 한국 군은 지휘관 관심의 사각지대라 현실적으로는 부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교나 문제가 있는 장교들을 '연락장교'라며 다른 부대로 파견 나가게 하는 방식이 일반화(?) 되었다. 한국 군은 미국이나 유럽 군이 생각하는 연락장교 개념과 달리 운용하였지만 오랫동안 굳어온 그런 이미지를 고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육군본부에 업무보고서를 작성하여 교환교관의 필요성을 보고하였다. 연락장교 임무를 수행하되, 오히려, 미국 장교들에게 대한 교육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은 보고서였다. 보고 내용에는, 교관 자격증 이수와 '한국학'과 '한국전쟁사' 두 과목을 강의를 예로 들면서, 교관 역할 병행에 따른 이점을 보고하였다. 마침, 침체된 육군 교육사령부의 역할과 기능 확대를 모색하던 당시 육군 참모총장에게  이것이 제대로 건의되어 미국에 파견된 모든 연락장교를 교환교관으로 직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교환 교관의 인원수를 미국 내 각 병과학교는 물론, 영국, 독일, 터키 등까지 대폭 늘리고 대우 또한, 파격적으로 높이며 인재를 영입하였다.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은 한국군 소령급이 이수하는 '육군대학'과 유사하지만, 교관 임용 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육군 대학은 누구든지 교관으로 보직되면 교관 연구강의를 잘 준비하여 강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수반되면 바로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미국 지휘참모대학은 우리와 달리, 강의식이 아니라 토의식 위주여서 교관은 학생과 상호 소통으로 학생에게 무엇이 효율적인 강의 방법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교관의 질적인 수준을 중시하기에, 교육학적 배경이 없는 사람에게는 교육현장을 제공하지 않았다. 교관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며, 학생이 교관의 지식보다 더 많이 알게 해야 한다는 개념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필자가 교환교관 과목을 배정하여 달라고 하자 지휘참모대학 본부는, “외국에서 파견된 교환교관이라도 미국 장교를 교육시키려면, 교관으로서 최소한 3주 간의 ‘교관 준비과정(Instructor Preparation Course)’을 이수하고, 미국 육군이 미국 '캔자스 주립대 (Kansas State University)'와 체결한 ‘성인 교육학’ 석사학위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정규과정을 맡을 수 있다”며, 교육 수락 여부를 물어왔다. 학비의 85%는 미 정부 부담이라고 덧붙이면서… 필자는, 이를 수락하고 흔쾌히 도전하기로 하였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 학교본부

그렇게 시작된 ‘교육학’이지만 뜻밖으로 필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가장 큰 도전은, “토의식” 수업 방식에 단련되어 온 장교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였는데, 학교가 그 답을 주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초, 중, 고등학교의 선생이나 대학 교수, 심지어, 군대의 교관까지 한결같이 자신이 준비해 온 학습내용을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학생은 그저 열심히 경청하고, 받아쓰고, 말 한마디 할 필요조차 없이 수업시간을 보내었다. 오래된 교수 강의록이 버젓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성인 교육학' 과정은 캔자스 주 정부도 주민에게 학비를 지원하여, 개인 사업을 하느라 공부를 미룬 분 중 늦게나마 공부 공부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던 이들도, 교관요원인 미 육군 소, 중령급 장교처럼 필자에게 교육학 이외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사실, 현지민과 함께하는 교육은 나중에 무관으로 복무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재외공관에 근무할 때,  대사관 직원이지만 동료 직원끼리나 교민 하고만 교류하며 3년을 보내고 돌아오는 외교관, 주재원이 많아 보였다. 아마, 현지민과 어울리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도 되지만 만나서 우의를 나누는 계기를 갖지 못한 탓이라고도 생각된다.


서로 다른 교육 방법 : 주입식 vs 토의식 교육


주입식 교육은 지식의 결핍을 단시간에 보충하려는 욕구에서 출발하였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명치유신 (明治維新)'으로, 농업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급격히 전이하며, 엄청난 지식이 요구되었다. 단시간에 서구 문명을 따라잡으려고 모든 지식을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축약’하여 머릿속에 넣고자 하였다. 먼저, 서구 학문의 번역을 위해, 19세기말 서구에 유학하였던 소수의 교육자가 엄청난 양의 번역물을 생산하였다. 그리고, 철학이나 세계 역사 등 사회과학은 그 지식의 요체만을 암기하여, 깊이는 없지만 일견, 유식함을 과시할 수 있었고, 수학은 공식 위주로 암기하고, 자연과학은 그 현상에 대한 결과 위주로 암기하였다. 지식이 갈급하던 시절이라, 이들 교육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단시간에 수학이나 이공학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런 방식이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다. 이를 교육학적 용어로 대별하면 ‘Pedagogy (교육학)’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부터 ‘천자문’을 소리 내어 암송한 우리 선조나 일본인에게 암기는 전문 특기였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우리 선조도 이런 방식으로 신식 학문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암기 방식을 교육학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고 답습에 답습을 이어왔다. 사고하고 토의하는 인간보다, 달달 외우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 익숙한 인간들이 사회를 이끌었다. 예전에 고등 고시, 사법 고시 등이 그랬으니... 정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주입식 교육은 학습량이 방대하고 응축되어, 공무원 시험이나 입시 준비에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비실용적 암기 위주이다. 이런 점을 우려하여, 일부 선생들은 토의시간을 만들어 토의를 유도해 보지만, 이런 교육에 길든 학생들은 아무도 의견을 내려하지 않으려 한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가는데, 뭣하러 굳이 나섰다가 괜히 창피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고,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하였으니, 토의를 하더라도 결론 자체가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리고, 어차피 성적은 시험으로 결정되니까...


***

그런데, 미국식 교육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독서를 먼저 하고 그 내용으로 토의하는 방식이다. 특히, 미국의 대학, 대학원 등 거의 모든 고급 과정들은 학생들에게 방대한 양의 독서를 부여한 뒤, 주어진 의제에 대해 토의를 시키며 '적절한 결론'을 찾는다. 자연스레, 각자의 생각을 제시하고, 상호 토의를 통하여 어떤 주장에 공감하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결론을 도출한다. 이런 방식은 교육학적으로 'Andragogy (성인교육)'인데, 주입식 교육인 'Pedagogy (교육학)'와는 대비된다.

‘주입식’ 교육인 ‘Pedagogy’는 '교관 (Instructor)'이 모든 교육자료를 준비해서 '이미 알려진 지식'을 일방적으로 단시간에 방대한 양의 지식을 전달하나 학생은 수동적이 된다. 하지만, ‘Andragogy’라는 토의식은, 학생이 주어진 의제에 대해 미리 지정된 내용을 읽고 와서 쟁점 사항, 질문으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지만 학습효과는 크다. 물리학의 천재인 아인슈타인도 “~ 교육에선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문제는 선생들에게 이런 학생을 이끌 지식과 학습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교수나 선생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 ('Instructor,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Facilitator ('같이 고민하고 지원하는 자')로,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학생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올바르게 결론을 도출하는지? 등 '도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학생의 토의를 이끌도록 그들의 흥미나 관심을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facilitator’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선생을 'Teacher'라고 부르지 않고, 'Collaborator (협력자)'라고 부른다.  이들의 주요 역할은 결론 도출보다, 토의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을 뚫어주어 학생이 답을 찾게 하는 것이다.  


꼼꼼한 '보고식'(서술식)과 핵심만 '요약식'(개조식)


군의 지휘관은 많은 부대를 운영하고 때때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 참모들은 지휘관에게 꼭 필요한 사항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핵심만 보고하는데 이를 요약식(개조식) 보고라고 한다. 이건, 보고자가 두툼한 상세 보고서를 첨부하고 보고서 요약지를 가지고 대면하여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서 하는 보고다. 어떤 개념을 설명하거나 일의 진도 등을 보고할 때, 피 보고자가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진 경우에 한해, 바쁠 때는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나, 많은 양의 지식과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처럼 다급한 상황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핵심만 전달할 수 있다.


붕괴된 성수대교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었다. 지휘 책임 선상에 있는 시장 등 주요 간부들은 교량 정기 점검결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담당관들이 보고를 하였다는데도... 진실 공방이전에 '요약식(개조식)' 보고가 가진 한계이다. 수 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한, 두장으로 요약한 걸여 구두로 보고 받으면, 그게 수년이 지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그럼에도, 수 백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최대한 짧게 잘 요약하는 참모가 유능하다고 인정받았으며, 지휘관도 그걸 원했다. 군사정권 때부터 즐겨 사용된 요약식은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에 기여하였으나, '대충대충'도 뒤따랐다.


이와 반대로, 비대면 보고는 피보고자는 이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서 이해해야 한다. 상세한 설명을 구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식으로 기술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보고서가 필요하지만, 지식이나 정보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시간여유가 있고 보다 확실하게 업무를 추진할 경우에 사용한다. 

미국 LSAT(로스쿨 수능시험)에는 짧은 시간에 긴 문장을 독해하여 정확한 추론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다. 마찬가지로, 미군 군사교육도 소령급은 물론, 대령급 과정이면 거의 독서량이 성적을 좌우한다. 고급과정으로 갈수록 읽을 량을 엄청나게 요구하여, 많은 것을 빨리 읽고 그 내용을 깊이 있게 토의하는 방식이다. 


미국 육군제병협동사 사령관도 서술식 보고를 강조했다. 이런 서술식 보고의 결과인지, 그의 독서량이 많아서인지,  군사 전문 지식이 상당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그의 보좌관 역할인데, 한국 군 장성급의 보좌관은 장군 일정관리 등에 치중하였지만, 미 사령관 보좌관은 항상 각 부처에서 올라온 수많은 보고서를 쌓아놓고 계속 독서 중이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사령관 보고 전에 보고 '내용을 점검'하는 것이란다.     


사령관은 보좌관이, 교육훈련, 전투발전, 교리연구 등 주요 분야마다 자신의 개념을  충분히 숙지하도록 보좌관에게 투사(projection) 하였고, 각종 회의에도 참석시켰다. 그 결과, 보좌관은 사령관의 개념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여 각 부서에서 올라오는 보고서가 사령관의 개념에 일치하는지 여부를 미리 훑어보고, 사령관에게 읽어보도록 하면, 사령관은 그것을 숙소까지 갖고 와서 읽어보는 식이었다. 그러니, 평일 일과 후에 술 먹거나 체력단련이라 해서 골프를 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단련된 보좌관은 계급에 걸맞지 않게 많은 지식을 습득하여, 향후, 요직에 중용되는 구조였다. 우리 군이나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탄넨베르히' 섬멸전으로 유명한 '힌덴부르크' 장군의 참모장인 '루덴돌프' 소장이 공무로, 작전참모 '호프만' 중령과 비록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똑 같이 러시아군을 '탄넨베르히'에서 포위, 섬멸시킬 계획을 같이 하고 있었다. 지휘관 공백 시에도 참모가 지휘관 개념대로 전투를 준비한 독일군 일반참모(General Staff)의 우수성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때, 한국군도 예하부대가 고립 시 상급 지휘관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길 바랄까?"에 중점을 두고 '독단' 활용을 강조한 적도 있다. 상급자 자신의 개념을 예하 지휘관에게 투사하는 것은 정보를 통한 숱한 교감과 교육 훈련으로 이루어지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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