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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19. 2022

동질성과 다양성 그리고, 융통성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16화: 미 캔자스 주립대 -2)

동질성과 다양성


필자의 캔자스 주립대 교육학 지도 교수는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던 터라, 한국 교육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한국 교육이 우수한 원인’을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에서 찾고자 한다며, 자신의 연구에 필자를 참여시켰다. 그의 연구 가설은, 아이디어가 풍부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유년기에 ‘자유롭게 노는 교육’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고자 한국과 미국 어린이의 행동을 비교하기로 하고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진행하였다. 필자는 필자 아이가 재학 중인 미국 '아이젠하워'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지도 교수는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의 초등학교 2곳과 협조하여, 각각 3-4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과와 자동차라는 특정 사물을 그리게 하였다. 그런데, 이 설문의 결과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사과를 그려보라.'라는 선생의 지시에, 한국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동그란 원형의 빨간 사과'를 그리고 그 위에 꼭지를 더한 모양을 그렸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색갈이 약간 다른 정도… 그게 선생이 요구하는 답이었으니까. 그런데, 미국 아이들은 놀랍게도, '삼각형 사과', '보라색 사과', '벌레가 파먹다 남은 사과', '반쯤 베어 먹은 사과' 등등 학생 전원이 제 각각 다르게 그렸다. 같은 경우가 하나 없이...


유사한 질문으로, ‘자동차를 그려보라.’고 했더니, 한국 아이들은 이번에도 대부분이 세단형 자동차를 그렸고, 몇몇 아이만 트럭을 그릴뿐, 색깔이나 모양이 천편일률적으로 매우 유사한 모양이었다. 역시 그게 답이니까. 이에 비해, 미국 아이들은 하늘을 나르거나 물 속이나, 땅 속을 운행하는 자동차, 불자동차, 날개 달린 자동차, 바퀴가 하나인 자동차, 원형 자동차 등등을 그렸던 것이다.


설문이 보여주는 현상은,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모두가 똑같이 획일화되고 집단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주입식 교육이 낳은 무서운 단점일 것이다. 반면, 미국 아이들은 보다 자유롭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였다. 결국, 두 어린이 집단 간의 비교에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한국 교육이 지나치게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과 그 원인이 대학 입학시험에 주안을 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교수는 크게 실망하였다. 동질성과 다양성의 차이였다. 


***

세계 각지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객지에 와서 자기만을 주장하는 것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일이었다. 자유, 평등, 정의의 가치 아래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다르다고 남을 배척하기보다 자기 스스로 먼저, 남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좋은 것을 수용하는 개방된 자세가 정착되었다. 이런 교실에서, 학생들이 사과나 자동차를 그릴 때, 모두가 동일한 색깔이나 모양으로 그린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는 이질적인 요소를 배척하기보다 포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각자의 다양성은 새로운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래서 미국 문화를 ‘멀팅 팟 (Multing Pot)’이라고 하는 가 보다. 사실, 미국을 보면,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과거 로마나 중국 등 거대한 대제국은 지리적, 환경적 요인으로, 선형적, 획일적 동질성이 효율성 측면에서 우월하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자 비선형적이고 다소 개성이 강한 저항적인 다양성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였다.


캔자스 시티 근교 미주리 강

필자가 미 해군대학원 유학시절 살았던 캘리포니아 주 '몬트레이'는 바닷가 해안 도시지만,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이 있는 포트 레븐워쓰는 '캔자스 시티' 근교의 '미주리' 강을 끼고 있는 하안 도시였다. '미주리' 강은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이라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이지만 하폭이 굉장히 넓다. 사람들의 속 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바닷가 도시와 강가 도시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온 거주환경으로부터 삶의 의식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예컨대, '미주리' 출신으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 (미주리) 강에서 흑인 친구와 함께 뗏목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등 인종과 문화의 차이와 강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많다. 비슷한 경우로, 미국의 국민작가로서 땅, 노동 문제를 다룬 '분노의 포도' 작가로 알려진 '존 스타인벡'은 '몬트레이 카운티' 출신이다. 그는 몬트레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캐너리 로우'(통조림 공장 골목)라는 작품을 썼는 데, 주 소재가 그가 자랐던 바닷가 풍경이다. 어릴 적 자란 곳이 작품 소재가 되었다. 이에 비해, '무기여 잘 있거라' 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으로 유명한 '어네스트 헤밍웨이'에게는 전쟁 참여와 종군 기자 등의 체험적 경험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환경적 다양성에 비해 체험적 다양성이 돋보인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정서는 서로 약간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다양성이 보인 힘의 결과였다. 


비슷한 예로써,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왜, 강한가?’를 들 수 있다. 오랜 유랑 생활로 전 세계를 떠돌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졌다. 그리고, 적대적인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다양한 각종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좋은 여건이다. 앞서 언급한 ‘‘후츠파(Chutzpah)’ 정신도 원래는 ‘뻔뻔하고 당돌하다’는 뜻이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도우려고 노력하는 정신인데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 한국은 동질성, 획일성이 강조되는 사회였고, 기득층의 사회적 규범은 매우 엄격하여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구조였다. 또한, 인재 양성교육도 모두가 암기식이라 ‘답은 하나밖에 없으니’ 모두가 획일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었고,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모두가 ‘같아야만 생존’하는 사회로 자리 잡았다. 다름에 대한 반대와 다양성을 거부하는 사회였기에, 당연하게도 모두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쏠림현상’이 우리의 독특한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시장에서도 ‘뭐가 잘된다’ 싶으면 모두가 그리로 몰린다. ‘쏠림’이다. 그리고, 다 같이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인가, 한 때 주한 미군 사령관이었던 W 대장도 “한국인은 마치 들쥐와 같다”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그의 관점은 ‘선두의 쥐가 뛰는 대로 모든 들쥐가 같은 방향으로 따라 달린다’는 뜻이었다는데….


한국 아이들의 설문 결과를 보니, 지도 교수가 “왜, 그런 실망을 하였는지?” 그의 관점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남이가…?’라는 자문이 왜 그리 크게 느껴지는지? 주말에 야외에 나가 보면, 우리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나온 사람들의 복장을 한번 둘러보라. 모두가 거의 같은 패턴이다. 최근, 일부 ‘튀어야 산다’는 사명감으로 남다른 행동을 해서 눈길을 끄는 사례도 종종 있지만, 여전히 복장만이 아니라, 언행, 태도, 대화 내용, 차의 색깔조차도 동일한 유형이다. 


또,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라. 질문의 패턴은, 왜 그리 한결같은지…? 나이, 고향, 학교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로 간의 위상을 정하고... 또, 혹시 시비라도 붙어 보라. 모두가 나잇살을 들이밀다가 말꼬리를 잡고, 급기야는 반말에, 고함부터 지르고, 삿대질하고,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모두가 같은 방식이다. 유치원이나, 초, 중, 고교의 선생님들이라고 그런 모습과 많이 다를까?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와 행동을 강요당하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유유상종 (類類相從)'이란 옛말처럼 “같은 무리들” 속에 함께 있어야 편안한데, 만약에, “남들과 다르면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과 염려가 상존하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자

그런데, 세상은 바뀌고 요구하는 인재상도 바꿔었다. 비록 어릴 때는 앞서 설문 조사처럼 '모두 같게' 답하였던 세대의 젊은이들이지만, 이제, 우리 반도체 기술을 세계 선두로 이끌고, BTS 등 K-POP은 세계적인 팬덤이 되었다. 왜 그럴까? 필자는, 암기로 다양한 지식을 많이 습득한 이들이 같은 분야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한 우물을 판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전술하였던 한국식 수학처럼, 모두가 선행학습으로 암기를 했던, 어쨌든 대학원 수능시험인 GRE나 GMAT 수학과목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보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많은 이들이 상당한 지식을 폭넓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가, 뭐라고 이야기하면, 뭐라고 알아들으니 척하면 척이다. 외국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는데... 


한국인은 하이 텍스트에서는 강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나 디테일에서는 약하지만, 이런 동질성 강조가 고도의 기술력과 정교함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빛을 보았다. 거기에다, 선천적으로 눈치도 빠르고 부지런하며, 머리 회전이 빨라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융통성 있게 잘 대처한다는 이야기이다. 기술력이 그냥 생길까? 피눈물 나는 노력과 고심의 반복이었을 것이다. 마치, BTS 등 한류 그룹들이 하루에도 열몇 시간 씩의 연습으로 한 분야만 파고든 것처럼... 다양성을 존중할 부분도 있지만, 동질성이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세계 정상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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