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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0. 2022

미국 대평원지역, '캔자스' 이야기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17화: 미 육군 지휘참모대 - 7)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이 위치한 ‘캔자스’ 주 ‘포트 레븐워쓰’는 미국 지도를 보면 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캔자스 시티'근교의 중서부 (Mid-west) 농촌 지역이다. ‘대평원 지역 (The Great Plains)’으로 불리는 광활한 지역은 주변 모두가 나지막한 언덕과 옥수수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얼마나 넓은지 레븐워쓰 시티 근교에는 홀로 우뚝 솟아있는 연방 형무소를 멀리서도 볼 수 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어 탈옥해도 갈 곳이 없다는 곳이다. 넓은 들판이라, 캔자스에서 다른 주로 갈 때, 자동차로 운전하면 졸음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겨울 시즌 '콜로라도' 록키산맥에 스키라도 가려면 쪽 바른 길을 12시간 정도 운전해야 했다. 지나치는 차도 한 시간에 한, 두대 정도로 무료한 상황이라, 맞은편 고속도로 (미국의 시골 지역 고속도로는 차단막이 없고, 도로보다  약간 낮은 야지가 중립지대 역할을 한다)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미국인과 함께 대화 중에, "캔자스에서 살았다"라고 하면 마치, "엉, 그곳에서...?"라는 것처럼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캔자스..?"라고 반문한다. 별 볼일 없는 시골에서 살았다고?라는 뜻일 거다. 하지만, 넓은 천지에 인구가 적으니 큰 대농장을 소유한 부자 농부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1800년대 초부터 개척자들이 서부로 이동하던 길목이었던 이곳에 정착한 이들은, 서부로 이주해가는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개척하느라 사용하였던 못(개척자들은 통나무 집을 지어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집에 불을 질러 못을 챙겨 가는데 정착되면 필요 없다) 등 각종 물품들을 물려주었던 그런 전통을 지닌 인심이 아주 후한 곳이다. 


캔자스 일대의 가장 큰 도시는 광역인구 약 210여 만 명의 '캔자스 시티'인데, 미주리 강과 캔자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미주리 강은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이라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로 하폭이 굉장히 넓은 흙탕물 강이다. 재미있는 것은 '캔자스 시티'라는 도시 이름 때문에 캔자스 주가 도시권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가 캔자스 주 '캔자스 시티'보다 훨씬 크다. 사실, 두 '캔자스 시티'는 처음부터 별도로 만들어졌고, 각각 서로 다른 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름만 같을 뿐인 일종의 쌍둥이 도시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캔자스 사람들은 미주리 강이나 지역을  굳이 '미조라'라고 약간 '꼬는 듯'이 부른다.  


1830년대에 지은 캔사스에서 가장 오래된 집. 포트 레븐워쓰 미 육군 관사로 사용. 필자가 살던 집 맞은 편에 있었다

필자가 살던 집은 방이 6개, 화장실이 4개였다.  1층은 거실과 식당, 주방이고 지하와 3층은 사용할 일이 없어, 우리 네 식구는 2층 방 4개를 썼다. 조그맣고 아담한 방이 필자의 서재였는데, 이 방은 특이하게도 2층의 다른 방 앞의 복도와 통로로, 그리고. 별도 계단으로 1층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주방일을 도우는 하녀가 살던 방이 아닌가 추측된다. 조그마한 창 너머로는 '포트 레븐워쓰'의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 내에 있는 미 육군 교도소가 보였고... 이 교도소 1층에는 이발소가 있어서 관사촌 장교나 가족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아무리, 모범수라지만 가위를 들고 있는데...?!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도 자주 찾았다. 


미국 TV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

이렇게 서재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어느 날 시청한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를 보다 나온 이야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고백적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으로 일약 유명세를 탄 흑백 혼혈 미국 방송인이다. 세계 유일의 억만장자 흑인 여성기도 하고... 스스로가 백인의 혈통이었다고 밝힌 그녀가 눈물을 머금으며 들려준 이야기는 150여 년 이전 미국의 흑인 노예제도와 관련이 있다. 통계적으로, 미국 흑인 인구 4,700여만 명 중 58%인 2,500여 만 명이상이 증조부모(혈통의 1/8) 중에 백인이었다는 사실도 나왔다.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젊은 흑인 여성을 노예시장에서 경매 등으로 구매하여 낮에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밤에는 성적 착취를 한 결과라니... 더구나, 백인의 피가 섞여도 흑인으로 태어나면 (흑인이 우성인자다)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라는 법이 있어, 아버지조차 자기 자식을 노예로 부려야 했던 너무나 비인간적인 현실에 경악했다. 더 큰 일은, 토크쇼 고백자 중에는 당시의 백인 엘리트 들... 미국 독립초기의 대통령 등 요인의 혈통도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여인들을 울린 이조시대 이래의 적서제도조차 무색할 지경이라 할 말이 없다. 이에 비하면, 비록, 무슬림들이 4명의 처를 둔다고 비난하지만 무슬림은 엄마가 달라도, 태어난 자식은 모두 똑같은 신분이다. 

'오프라'의 토크쇼를 보고 나니, 필자의 서재에서 2층 복도로 통하는 통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런데, 주변에 역사적 건물로 지정된 수 십 동의 관사촌 건물도 모두 같은 건축방식이었다. 


포트 레븐워쓰 관사촌 (역사적 건물로 내부는 리모델링)

포트 레븐워쓰에는 학교 내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역사적인 건물로 지정된 몇 곳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엮어 놓은 책이 있었다. 뜻밖에, 그 책에 필자가 살았던 집의 이야기가 있어서 마냥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 미국인들 특유의 유령이야기로 유령인 흑인 식모가 매일처럼 끓는 차를 서빙한다는 것으로 굉장히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써놓은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이 지역의 관사들이 오래되고 큰 집이어서 전기가 없었을 시절에는 매우 어둡고 무서워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캔자스는 넓은 곡창지대라 과거부터 농장에는 일 손이 많이 필요하였다. 노예제도의 수혜를 입은 곳인데.. '캔자스 시티'에서 미주리 쪽으로 가다 보면 조그마한 관광지 '담배 하우스'가 나온다. 잘 가꾸어진 2층 집 서재를 유로로 개방하였다. 관광의 포인트는 2층 목조 서재 방에 배인 향긋한(?) 담배향 냄새를 느끼는 거다. 설명인 즉, 시거 담배향을 좋아하던 백인 주인이 목조 건물을 완성하자 벽면의 나무들에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 향이 배이도록 흑인 노예가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게 했다는 거다. 여러 노예들이 수년 후에 폐암으로 죽었지만, 그 향기는 여전히 나무에 배어 있다며... 1865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가 해방되었지만, 상당수 백인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흑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1964년에야 미국 연방 인권법이 제정되어, 인종 차별이 금지되었으니 무려 99년간 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이어져 온 셈이다. 얼마 전, 네덜란드가 공식적으로 과거 노예제도를 운영했던 사실을 사과하였다. 하지만, 뒤늦은 일방적인 사과라는 비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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