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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2. 2022

군사 외교관의 꽃, 국방무관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4화)

주재국 오스트리아와 양자외교 관계

군 인사 교류와 군사협력

IAEA 등 국제기구와 다자외교 관계



양자(兩者) 관계 - 오스트리아의 군사훈련과 훈련장이 주는 시사점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이다. 영세 중립국인데다 주변이 모두 같은 EU 국가이니 외부의 침략 우려도 거의 없다. 다만, 국민 개병제(징집제)로 군인은 상징적인 수준으로 10여 만 명을 유지하며 병은 8개월간 징집의무로 복무한다. 하지만, 예전 백만이 넘는 군을 보유했던 제국 시대의 향수가 남아있는지 여전히 국방부 재산으로 잡혀있어서 그런지 병력 규모에 비해 커다란 병영을 유지하고 있다. 내륙국가여서 해군은 아예 없고, 공군도 낡은 ‘드라켄’이라는 전투기 몇 대로, 육군이나 형편이 비슷하였다. 직업 군인도 군의 규모에 비해 인원이 많고, 계급구조도 장성급이 실무자급 업무를 할 정도로 상위 계급이 넘친다. 아마도, 대우가 약하니 계급을 높여주어서라도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 배려 때문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국방부, 외관이 화려하다 

게다가, 훈련장도 거의 없어, 대대급 이상 기동은 매우 제한되었고, 대부대 종합적인 훈련은 거의 불가능하여 보였다.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러 가면, 그저, 민간인 소유 목장 주위나 도시 외곽 혹은 일부 산악지역의 야산 그대로를 활용하면서 소부대 단위의 기동 훈련에만 치중하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국민들의 군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군 간부들의 자부심은 역사와 전통을 들먹이기에 충분하였다. 


공군의 '드라켄' 전투기는 거의 폐기 수준으로 소음이 엄청났지만, 공군 조종사들은 자신의 조종술에 자부심이 강했다. 안면이 있는 공군 조종사에게, “훈련을 어디서, 어떻게 하냐?”물었더니, "국민들이 전투기 소음과 폭격훈련을 혐오하여, 1956년 4대 전승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스웨덴에 가서 공중폭격 등 모든 훈련을 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훈련장 사용료가 엄청 비싸서, 늘 쪼들리는 국방비에 큰 부담을 주다 보니, 효율적으로 열심히 안 할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것 같다"라고 한다. 폭격훈련장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남의 나라에 가서 돈을 내고 훈련을 한다는 게 조금은 낯설었다.  


6.25 전쟁을 거치며, 휴전선 일대에 광범위한 훈련장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 군은 훈련장의 가치에 대해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 어디에도 각 병종의 군인들이 마음껏 훈련할 있는 훈련장을 가지고 나라는 거의 없다. 광대한 면적을 가진 미국조차도 훈련장이라고는 NTC(국립훈련장), JRTC(합동 군사 훈련장) 등 몇 군데로 제한되어 연중 훈련장 사용계획이 꽉 차있다. 이처럼, 정규군조차 충분히 사용할 수 없으므로, 미군은 어떻게든 우리 군 훈련장을 열심히 사용하려고 한다. 특히, 주방위군 등 임시 소집된 병력들은 본토로부터 달려와서. 한국에서 매년 실시하는 각종 훈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 와중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서, 우리도 미군이 "훈련장을 빌려달라"라고 하면 비용 부분을 청구하는 게 옳을 것이다. 


정전사태가 길어진 탓일까? 우리 군 훈련장에도 낙탄 사고나 사격 간 화재 발생 등으로 인근 주민들의 항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매향리 공군 폭격 훈련장 사례나 오스트리아의 사례를 보더라도, 전쟁의 위협이 점점 감소해 감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장 주변의 주민들은 소음이나 오염 등은 물론, 훈련용 차량의 이동으로 인한 교통혼잡 발생 등을 이유로 각종 민원을 제기하고 반발이 예상되어 향후 군사훈련을 크게 제한받을 것에 대비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군은 특히 스포츠 활동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오스트리아에는 국제군인 체육회 (CISM) 사무국이 있으며, 한국 등 전 세계 가맹국으로부터 수시로 대표단이 방문하여 군 스포츠 기량 향상을 위해 많은 회의와 대회를 개최한다. 사무국의 주요 간부의 한 사람이 유도광이어서, 필자와 일본 무관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각종 군 스포츠 활동 현장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오스트리아 국방성은 자체 체육시설이 별로 없어 대부분 교육부나 체육부로부터 빌려 쓰면서 비용절감에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 군이 국방예산을 어떻게 절약해야 할지... 등 등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았다.


기타 양자(兩者) 관계 - 주요 인사 방문 협조 및 한국 방문 지원

재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본국 인사의 주재국 방문을 지원하게 된다. 대부분은 소관부서에서 처리하지만, 가끔씩 타 부서 업무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어느 날 뜬금없이 과학관으로부터, 나중에 국회의장을 지낸 당시 과기부 장관의 영접 및 지원업무를 부탁받았다. 아마도, 그분의 과거 군 경력 때문인 듯한데, 매우 소탈하고 친화력이 뛰어난 분으로 기억된다. 그 이외에도, 국회부의장, 국회 정보위 의원들 등 정치권 인사, 법무부 등 정부 인사 방문 시 공관 차원에서 지원하였다. 국방부 인사는, L 국방 정보본부장, D 참모총장, C 교육사령관 등등 수많은 군 인사에게 오스트리아 인사와의 만남, 회의 등을 주선하였다. 참고로, 고위급 인사들에게, 무관이 가진 주재국의 문화나 종교, 그리고 군에 대한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며, 향후 정책에 반영할 사항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한편, 오스트리아의 고위 인사 방한 업무 또한 중요한 데, 이것은 무관의 평소 주재국인사와의 관계 등을 통하여 국익에 도움이 될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을 식별하여 본국에 추천하여야 한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의 군사 교육교류를 위해 국방대학원장 (중장, ASEM회의 참석 겸) 등을 ‘지상군 페스티벌’이나 ‘에어쇼’등 단체 행사를 포함해서 다양한 초청기관과의 협의를 통하여 무관의 지원으로 방한시켰다. 또한, CISM(국제군인 체육대회)와 관련된 군 체육 부대 인사 등을 국군 체육부대와 상호 교류를 주선하였다. 무관은 주재국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주재국 고위 인사들을 한국에 보내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한 가지 에피소드는, 당시 '그라츠' 대학 교수가 음료수에 마그네슘 성분을 첨가하면 자살예방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저하시킬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매년 700여 명 이상의 군내 자살자 발생으로 고심하던, 한국 육본과 ‘군내 자살예방’을 방지하기 위한 시험을 공동으로 진행하려 하였다. 이는, 최종적으로 육본의 인식 부족과 고위층의 무관심으로 불발이 되었지만, 필자는 수개월에 걸쳐 그라츠 대학 연구진의 구체적인 연구방법과 성과 확인과, 실험장 (번지점프를 하기 직전의 혈중 스트레스 수준 측정장) 등을 방문하였다. 필자도 마그네슘 첨가 드링크를 마신 뒤 번지 점프의 스트레스를 느껴보기도 했는데, 공동 시험 무산은 많이 아쉬웠다. 


다자(多者) 관계

오스트리아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한 중앙에 위치한 중립국으로, 비엔나에는 제네바에 이어, 유엔 제3본부라고 할 정도로 국제기구가 많이 있다. 국제기구가 밀집한 이유는 교통, 통신 등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데다가,

과거 동서냉전의 경계 선상에 있던 중심도시로서 국제기구를 유치하여 전쟁위협을 방지하고, 국방비 부담을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만약에, 우리나라 서울에 유엔 관련 커다란 국제기구가 있으면, 북한이 장거리 포를 쏘거나 핵 위협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스트리아는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시절 부터 인근 슬라브족과 발칸 반도 지역을 다스리며 대독일 주의를 유지하였다. 덕분에, 다양한 문화와 인종적 배경을 가져, 냉전 시대에는 그 접점으로서 다수의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라비아, 헝가리 등 동구권 인사들이 자유진영으로 망명한 루트였기도 하다. 


비엔나 소재 국제기구들이 있는 유엔시티

비엔나에는 유엔의 비엔나 사무소(UNO)외에, 우리에게 익숙한 IAEA (국제 원자력기구), CTBTO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바세나르 협약 (이중목적 수출 금지협약) 등 약 20여 개의 유엔 기구가 있고, 특별히 외교관의 각종 활동과 특권 등을 명시한 '비엔나 협약'이 맺어진 곳이다. 또한, 유엔 이외도 유럽 안보협의체 (OSCE), 석유수출기구 (OPEC)등 많은 비 유엔기구들이 활동하는 곳으로써 세계 외교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어서 이곳 소재 한국 대사관도 한국 10대 대사관의 하나이다.


이런 공관의 상황에 맞추어, 무관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기구에는 대사의 군사 보좌관으로써 수시 및 분기 1회 정기회의에 참석하였다. 반 대사님은 회의가 끝나면 꼭 회의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짚어 주어, 1995년 북핵 사건 이후, 정부의 대표가 분기별 회의에 꾸준히 참석하여 핵사찰 관련 결의안을 주도하는 등 노력을 경주하는 이유와, IAEA사찰활동에 대한 정부의 평가 등에 관하여 알 수 있는 유익한 기회였다. 그리고 당시, 북한 핵사찰관으로 북한을 자주 방문하였던 S 씨도 이때 여기에서 만났다. 


필자는 또한, 군사적 이중목적 물품 수출 금지 등을 협의하는 '바세나르' 협약의 수시 회의와 '소형무기 수출금지' 협약에는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서 참석하였고, '유럽안보협의체 (OSCE)'에는 옵서버 대표단장으로서 참석하였다. 


이중 OSCE는, 거의 60여 개 회원국이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며 활동하고 각국 군사대표단이  상주하고 있어, 많은 모임이 있어서, 비록 일본과 함께 옵서버였지만, 이들 모임에 피 초청되어 주 1회 이상 정기적인 교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산하기관인 CPC(Conflict Pevention Center)등에 방문하여 CFA(재래식 무기감축조약)에 따른 전차 등 잉여장비 폐기 행사에 참관하기도 하였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기구에 한국이 매년 수 백만 달러씩 일정 금액을 공여하면서도 북한 핵 이슈와 관련있는국제원자력기구 (IAEA) 등에 비해, 외교부나 국방부의 관심이 없는 사각지대여서, 수집된 각종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부서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유럽 안보협의체의 군축 경험은 장차 남북한 군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줄 수 있으나, 모두가 너무 무관심한 듯하였다. 최근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노라면, OSCE는 과거 구 쏘련 붕괴이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 서명과정에서의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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