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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7. 2022

스키 천국과 오스트리아 최고봉 등반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11화)

스키 천국 오스트리아

스키로 맺어진 인연 - '드림팀'

오스트리아 최고봉 등반



스키 천국 오스트리아

어느 나라든 국기(國技)인 대표적 스포츠가 있는데, 오스트리아는 ‘스키’가 겨울철 스포츠의 국기로 여긴다. '스키'는 엄청난 폭설이라는 자연환경 속에 생존을 위한 고산 지역 주민들의 필요가 빚어낸 산물이다. 눈이 많은 알프스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서 오스트리아의 '동 티롤' 지방은 2-3000m 이상의 고지 군에 형성된 약 30여 개의 스키장이 상호 근접해 있어, 서부의 '인스브루크' 못지않게 스키장의 슬로프와 설질, 스파 및 아름다운 경치, 다양한 코스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더 좋은 것은 리프트를 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우리와 달리 여유롭다. 과히 스키 천국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티롤'은 오스트리아 영토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이태리가 패전국 오스트리아로 부터 '남 티롤' 지역을 할양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사람들은 이태리인으로 독일어도 구사한다. 지도를 보면,  오스트리아 서쪽 부분 하단부가 마치 뜯겨 나간 듯하다. 북부 이태리의 알프스인 '남 티롤' 지방에는 '신의 조각'이라 불릴 정도로 장대하고 환상적인 산악 풍광으로 유명한 '돌로마티'(Dolomati, 영어로는 Dolomites) 산악지가 있다. '돌로마티'의 하이라이트는 절벽 높이만 1,000m에 달하는 거대한 암석 봉인 '트레치메'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다. 여름철 트래킹 코스가 유명하다는데, 필자는 나중에 가서 그냥 드라이브로만 둘러보았다. (귀중한 기회를 놓쳤다!)


오스트리아 국방부 소유 호텔 (동 티롤 지역)

오스트리아 국방부는 '동 티롤' 지역의 중심도시인 '리엔츠' 근교에 군 호텔을 보유하고 있어, 매년 국방성 초청으로 ‘무관단과 그 가족을 위한 스키 주간’에 무관단에게 제공하였다. 아울러, 오스트리아 보병학교는 교관과 조교를 지원하여 주었다. 교관과 조교는 스키 주간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들을 알파인, 노르딕, 스노 보드 그룹으로 나눈 뒤, 그 수준에 따라 초, 중, 상급과정으로 편성(1개 조 약 10여 명)하여 일주일 내내 함께 하며 지도하고 안전요원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징병제로 모든 청년들은 약 8개월간 병으로 의무 복무한다. 이 중 스키, 산악 등반, 패러글라이딩 등 갖가지 스포츠에 능한 인재들은 보병학교에서 조교 요원으로 복무하였다. 거의 대부분 세계 정상급 스포츠 인재들이 조교로 복무하다 보니, 당시 조교 요원 중에 월드컵 대회 입상자 및 참가자가 다수 있어 무관 부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스키로 맺어진 '드림팀'


Dream Team (좌에서 두 번째 필자)

스키주간 내내, 매일 아침 일찍 조식을 하고 중식으로 젬멜빵에 햄과 야채를 넣은 샐러드와 음료수를 지참한 뒤, 버스 2대에 분승하여 알파인, 노르딕, 스노 보드로 나눈 조에 따라 각 코스로 이동하였다. 필자는 당시 알파인 스키경력이 약 6년 정도여서 상급 조로 편성된 조원 7명과 함께 세계 정상급 조교의 지도를 1주 내내 받는 행운(?)을 누렸다. 스키장은 대부분 2,000m 정도까지는 리프트 카로 올라간 뒤, 그다음 산 정상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난도가 높은 코스에 도달하였다. 눈을 다진 코스가 아닌 자연 코스라서 약간의 주의가 요망되지만, 여기에는 별로 사람들이 없어 스스로를 "Dream 팀"이라 불렀던 우리 팀은, 앞서가는 조교를 따라 수 Km에 달하는 슬로프를 마음껏 달릴 수가 있었다. 필자는 이런 인연으로 향후 Dream 팀 멤버들과 교류를 계속하였다. 


가면무도회(약식) 참석자들과

오스트리아 국방부는 낮에 종일 스키를 타서 저녁이면 곯아떨어질 정도로 인솔하였지만, 저녁에는 지역 주민대표 초청만찬, 합참차장 만찬, 지역 전통음악 문화 체험, 야간 썰매 체험 (‘노들런’ 썰매로 크리스마스 카드에 산타가 타고 가는 썰매처럼 앞부분이 동그랗게 휘었다), 참가자 가면무도회, 온천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좋은 의미로 우리들이 편히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렇게 7박 8일 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숙식을 같이하며, 국방성 인사 및 무관단과 스키나 지역 문화 행사를 계속하였으니, 행사가 끝내고 나면 서로가 가까운 친척처럼 느껴져 헤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처음, 비엔나에서 '리엔츠'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별로 말들이 없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재임 3년 간에 걸친 3번의 ‘겨울 스키 주간’ 덕분에,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우리 아이들도 알파인 스키와 보드, 노르딕에서 수준급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최고봉 등반


그런데, 2년 차 스키 주간저녁에 만찬을 같이하던 '찌게'라는 교관 중의 선임자가, "스키도 좋지만 가을에는 오스트리아 최고봉인 ‘그로스 그로커너’ 산 (3,798m. ‘큰 종’이라는 뜻)을 등반하자"라고 제의하였다. 이 산은 알프스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끽할 수 있으며, 이 산을 감싸고도는 '알파인 로드'는 해발 3,000m 넘는 봉우리 30여 개를 거쳐가며 청정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제의에 참석자 모두의 관심이 높았다.   


국방부의 승인으로 6개월 후, '그로스 그로커너' 등반에 대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겨울에는 폭설로 출입이 제한되어 5월부터 10월 까지만 가능한데, 우리 등반은 9월 달이었다. 오스트리아 28개 무관단 40여 명 중, 막상 등반일이 다가오자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고, 최종 8명 만이 지원하였다. 우리 드림팀 멤버 중 5명에 일본 무관까지... 보병학교에서는 조교 1명에 무관 2명씩 조를 짜도록 산악등반과정 조교를 지원하였다. 그런데, 높은 산 등반 경험도 없고 체력에도 별반 자신이 없어 "해야 되나?"라고 고민하던 필자에게 정말 다행스러웠던 것은, 필자가 지원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탓이어서 인지 가장 나이 어린 일본무관과 한조가 되었다.


좌측로부터 필자, 일본 무관, 오스트리아 조교(우리 때문에 지쳐서인지 입술이 허옇게 되었다) 

우리는 3,800m 중 2,100m까지의 산장까지는 차량으로 올라가고, 산장에서 1박 한 후 아침 일찍 조교가 가지고 온 등반 장비를 착용하고 등반을 시작하였다. 초입부터 펼쳐지는 주변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얼마를 올라가니, 눈 덮인 설원과 크레바스들이 나타나자 조교가 우리 둘을 자기와 로프로 연결하였다. 그때까지는 날씨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중간 베이스에서 가져온 점심으로 식사를 한 뒤, 점점 올라갈수록 눈보라가 치면서 시야가 제한되었다. 그리고, 경사마저 점점 가팔라져서 그때부터는 암벽 등반을 해야 하는데 이미 다리가 풀려 버렸다. 그야말로, 기진맥진하여 죽을 지경이 되었지만 간신히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쉬엄쉬엄 올라갔다. 하지만, 마지막 암벽 등반은 필자의 힘으로 올라갔다기보다, 거의 산악 등반 전문 조교가 끌어올리다시피 하였는데 그의 기술과 힘, 그리고 능력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대단하였다.


젊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일본 무관이 젊고, 희생심이 강한 데다가 항상 필자를 챙겨주어 조교 못지않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을 만 46세의 나이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자꾸 "쉬자"라며 힘들어하는 바람에 우리 조는 '그로스 그로커너'까지 못 가고 바로 옆의 '클라이너 그로커너'(‘작은 종’이라는 뜻)에 올라갔다. 이미 하산할 시간이 되었고 지친 데다 기상마저 점점 나빠져 얼른 기념사진 촬영만 하고 서둘러 하산을 해야 하였다. 내려가는 길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서 계획대로 하산하니 먼저 내려온 동료들이 '캠프 파이어'를 하면서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었다. 얼마동안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 일본무관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나 때문에 최고봉을 정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니, 그는 개의치 않고 "괜찮다"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의 인품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등반이 끝나고 다음 날, '타우에른'이라는 인근 도시의 스파에서 노천탕을 즐기는 행사가 있었다. 이 노천탕 풀은 전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다. 노천 풀장에서 바라보이는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파노라마는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끝난, 2박 3일 산악 등반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 공부를 새롭게 한 듯한 상쾌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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