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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28. 2022

혼탕 사우나와 에티켓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12화)

때 밀어내는 목욕 문화

낯선 혼탕 경험

혼탕 사우나와 욕탕 에티켓



때를 미는 목욕 문화

필자가 어릴 적 도덕’ 교과서 어디엔가에, ‘1주 일에 한 번은 목욕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사실목욕탕의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근 뒤목욕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기분도 좋아져 나름 위생적이라고 자부하였다


오래전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 '평화 봉사단 (Peace Corps)' 요원이 ‘몸을 깨끗이 씻는 목욕’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 중 누군가가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목욕탕(Hot Spa)에 몇 번 가세요?”라고. “전혀 안 간다”는” 답변에 “아니, 몸을 안 씻어요?”라고?” 되물으니 “샤워를 한다”라고 하였다. 이해가 되지 않은 우리는 “어떻게, 탕에 몸을 푹 담근 후에 불은 때를 목욕수건으로 빡빡 벗겨내지 않아요?”며, 선생님을 놀렸다. (양자 간의 대화가 그리 순탄하지 않았지만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수십 년 전까지 한국 군대에는 목욕탕이 귀했다. 개인위생이 불결했고, 치질 등 쓸데없는 병들이 많아서 당시, 전방 지휘관들은 수백 명의 병사들 복지대책으로 어떻게 하면 자주 씻길까?”가 주요 관심 사항이었다. 지금이야, 부대마다 샤워장이 충분하여 매일 샤워를 하니 온천탕 갈 일도 별로 없고, 어쩌다 외출해도 주변에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흔하다. 그럼에도 별로 붐비지 않는다. 우리 목욕문화가 진작부터 서구식 샤워로 바뀌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궁금해하는 건,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 혹은 세신사(때 밀어주는 분)라는 직업이 왜 필요한지이다. 때를 밀지 않아도 샤워할 때, '바디 스크럽'제를 사용하면 충분히 자연 각질이 제거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에 타인이 접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서구인들은 우리가 남에게 몸을 태연하게 맡기는 걸, 그리고 피부를 목욕수건으로 빡빡 밀어내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혹자는, 우리가 '이태리 타월'이라는 말에 익숙하니 이태리 사람들이 때를 빡빡 문지를 때 사용하는 때밀이 수건으로 착각하는데, 이는 그저 우리가 좋아할 까칠한 천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비스코스'라는 원단을 이태리에서 수입하였기에 '이태리'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뿐이다. 


다음은 “세면장 바닥에 배수구가 있네...?”라는 것이다. 사실, 배수구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위생적인 조치이지만, 저들의 세면장 바닥에는 배수구가 없다. 대신, 저들은 욕조마다 샤워 물이 튀거나 넘치지 않도록 커튼을 치는데, 우리들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저들 나라에 여행 가서 우리 식으로 샤워하면, 욕조 밖으로 물이 튀어 바닥에 물이 고이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그냥 저들 선조가 건축기술이나 자재 절약으로 만든 방편을 별생각 없이 따르는 탓으로 보인다. 이처럼, 때를 밀거나, 배수구를 고려하지 않는 등 전통을 답습하는 현상은 꽤나 일반적이다. 게르만족이 익숙한 혼탕도 그중의 하나이다.


낯선 혼탕 경험

필자가 살았던 '비엔나' 빌라에는 8 가구가 살았는데, 지하에 사우나, 야외에 수영장이 있었다. 사우나는 각 가구별로 키를 갖고 있어서 미리 예약 서명을 해놓으면 몇 시간 동안 우리 가족끼리만 사우나를 할 수 있다. 원래, 오스트리아 인은 사우나를 가족단위로 하고, '걸치는 옷 없이' (Textile Free)로 3대가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약 없이 ‘공용 사우나’로 이웃과 함께 사우나하는 경우 남녀가 수영복 차림으로 같이 하기도 한다. 그런데, 독일 남부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공중탕으로 남녀혼탕도 있고, 남녀 공용 사우나도 많이 있는데, 여러 방마다 온도도, 크기도, 모습도 다르다. 다만,  비엔나의 '남녀 혼탕용 공중탕'의 경우는 아무 때나 오픈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대(오후 5시 정도)에 맞춰 가면 통상, 15분 전에 미리 안내 방송으로, “혼욕을 할 사람들은 별도로 준비하고, 나머지는 시간에 맞추어 떠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렇지만골프장에 딸려 있는 남녀 공용 사우나는 이런 공용 시설보다 자유롭다어느 날골프장 사우나에 갔는데여성 ‘FKK(Frei Kleidung Klub, 혹은 Freikoerperkultur 나체주의자)’들이 에어로빅 체조를 마치고떼를 지어 들어오는 바람에 무척 당황(?) 한 적이 있었다이들 젊은이들은 주로 함께 몰려다닌다그런데당황한 우리 일행이 고개를 숙이며 그런 상황을 다소 어색해하자이들은 오히려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듯하였다. 대부분 서구 여성들은 성적 결정권에 대해서 자아가 강하다. 그들로서는 마음에 두지 않는 남자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우리로서는 느낌이 좀 낯설겠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원래는 남을 보지 않고 자신만 즐기는 게 그들의 문화이니까... 사실, 인류의 조상이라는 아담과 이브처럼 맨 몸 그대로 자연을 즐기는 것만큼 이상적인 삶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절차를 알면 나신의 여성이 뛰어들어 온다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혼탕 사우나와 욕탕 에티켓

더구나, 사우나 사용법을 잘 알면 더욱 당황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통상, 사우나실의 사용법은 먼저,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가면, 누군가가 나와서 화덕 옆에 놓인 향수 물을 국자에 떠서 달구은 화덕에 부어준다. 증기가 솟아오르면, 또 다른 누군가(주로 남녀 교대로) 나와서 모두를 향해, 향내가 피어오르는 더운 바람을 자신의 커다란 수건으로 ‘팍팍’ 훌쳐주는 게 일반적인 절차이다. 그리고, 이 더운 바람이 ‘훅훅’ 불어오면 계단식 침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땀이 ‘쭉쭉’ 빠진다. 


필자는 먼저 나와서 화덕에 물을 붓는 일을 선호하였다. 팍팍 훌쳐대는 부담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으니까... 어쨌든, 남녀가 교대로 맨 몸으로 수건을 '팍팍 훌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남녀가 유별한 우리에게는 너무 민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애써 그런 모습을 안 보려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고민한다. 그러나, 앞에 나서서 향수물을 붓는 사람이 남, 녀 누구든, 또, 수건을 훌쳐주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맨몸이라 해서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라… 모두의 목적은 ''사우나를 하는 것'이니까.

 

여기에서 명심할 것은, 우리 한국인은 사우나에 가면 대부분 수건으로 허벅지 상단 부위를 먼저 가리지만, 현지에서는 “반드시 수건을 깔고 앉아, 내 몸에서 흘러내린 땀이나 물기가 내가 앉은 부분에 떨어지지 않도록 깨끗하게 배려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그 때문에, 만약에 드러누우려면 큰 타월을 꼭 챙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중사우나 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예컨대, 대한 민국 최대의 수영장이라는 올림픽 수영장의 남성 사우나 실은 모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 몸에서 흘러 내리는 땀과 물기가 고스란히 사우나 내 의자나 바닥에 깔린 목재에 스며든다. 이게, 오랜 시간 쌓이면... 과연, 위생적일까? 심지어, 타월을 갖고 들어오기는커녕 수영복이라도 입은 사람에게 텃세랄까? 누군가가 "사우나실에서 수영복 입지말라!"라고 경고한다. 오랜시간 자신은 입은 적이 없으니, 남들에게도 그저, 맨몸으로 동참해 달라는 뜻인데... 


하지만 사우나와 달리, 혼탕에서는 모두가 격식을 버리자는 것이 격식이다. 그러니, 혼탕에서 보는 오스트리아인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그게,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이니까. 이들이 '자기 과시'를 버리고 '아담과 이브'가 되는 일은, 모든 겉치레를 훌훌 벗어던지고, 사우나의 증기와 욕탕의 따뜻함과, 맑은 하늘아래 침상에서 상쾌한 바람을 즐기자는 것이다. 하지만, 혼탕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여자들 앞에서 눈 둘 곳을 못 찾을 정도로 어색하고 불편하였다. 우리에게 옷이라는 방어체계가 없는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었다. 그걸, 전혀 모르는 타인과 공유하다니...?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혼탕이라는 환경이 어색하여 수영복이라도 걸치고 있으면 주워 분들이 웃으며 '벗으라'라고 권한다. 옷을 입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만족'을 찾으라는 충고일 것이다. 욕탕의 용도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비엔나 도나우강

그런데, 혼탕이나 사우나 외에도 곳곳에서 벌거벗은 사람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비엔나의 중심을 관통하는 다뉴브 강 양쪽 중앙에는 긴 섬이 있다. 가끔씩 작은 유람선도 다니는데 그 섬 해변에는 야외 '선 베드' (Sun Bed)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여기에도 구역에 따라 태양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려는 가족 단위 나체주의자들도 있고... 모든 간섭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배를 타고 가다 손을 흔들어 주면, 그들도 손을 흔들며 답례한다. 


'몰카' 촬영이라는 저열한 심성으로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살아온 방식과 수준이 다르니까.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차이와 다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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