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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30. 2022

민망스러운 화장실 이야기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14화)

도심지 유로화장실

휴지보다 물로 씻는 청결



대도시 도심 유로 화장실

모두가 매일 사용하지만, 민망스러워하는 ‘화장실’ 이야기를 해본다. 서구인의 기록에 따르면, 1841년 세계 최초의 공중화장실이 등장한 후에야 낯선 사람 앞의 배설 행위가 점차 수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840년대 초까지도 유럽인들은 대중 앞에서도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이 건 '하이힐' 신발의 유래가 '베르사유' 왕궁이 여기저기 버려진 오물로 너무 지저분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라는 이야기와 향수의 유래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유럽안보협의체(OSCE) 회의 장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중심부인 대통령 궁 주변과 '호프부르크' 궁 등 주요 관광지에는 전 세계 관광인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대도시에서 화장실 볼일이 급하면 제일 큰 건물로 가라는 여행객의 격언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자기네 국기가 게양되어 있어서일까? 가끔 웃지 못할 해프닝은, 이 호프부르크 궁 부속 건물에는 필자가 옵서버로 회의에 자주 참석하는 유럽 안보협의체(OSCE)가 있는데, 여기에 엉뚱하게도 여성 관광객이 화장실을 찾는다며 불쑥 들어온다


이들 관광지 주변에는 유로 화장실이 있지만 여자에게만 일정한 요금을 받고남자에게는 받지 않는다. "유럽의 선진국에서 그것도 대도시 도심 한 복판에서 웬 남녀차별이냐?"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 방문객도 "왜 요금이 차이가 나는지?" 그 이유를 꼭 물어본다겸연쩍은 필자는, "남자에게 요금을 받다가는 환경오염 문제가 있을까 봐 그런가 보다" 하고 웃고 넘어가지만합리성을 추구하는 오스트리아인이 그렇게 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잘 모르겠다


어느 기사를 보니, 지금도 세계 약 20억 명의 인구가 최소한의 배변 공간마저 없어서 철로 주변이나 숲 속에서 대충 해결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여성들에게 매우 위협적일 것이다우리 한국 사회에도 두어 세대 전까지 '요강'이라는 실내용 소변도구가 집집마다 있었다화장실이 실외에서도 가장 후진 곳 '둿간'이라, 추운 날이나 캄캄한 야밤에 나가기 쉽지 않거나, 범죄나 험한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워 방 안에서 '요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선 말기에는 여염집 처녀조차 새벽녘 배변 도중 유생의 악습인 '처녀 보쌈'이라는 횡포로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니...   


휴지보다 물로 씻는 위생


지금이야, 각급 학교나 군부대는 물론공중화장실까지 비데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예전 화장실은 지극히 비위생적이었고화장지용 휴지는커녕신문지 조각조차 귀하였다우리 옛말 중에, ‘급하다힘들다라는 속된 표현으로 소위, 똥줄 탄다는 말이 있다여기서, ‘똥줄실제로 우리 조상들이 용변 이후 뒤처리 과정에서 볏짚나뭇잎 혹은 타고 남은 재 등으로 1차 처리한 후, 2차 마무리용으로 사용되던 가늘게 곱게’ 꼬아진 새끼줄이었다는데, 집집마다, 시아버지, 며느리 등 식구별로 각자 그 줄을 사용하도록 화장실 한편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이런 줄을 타면 속살이 스칠 때의 아픔이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다급한 상황’에 비유하여 그런 표현이 나온 듯하다. 어쨌든 …, 그만큼 비위생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둿처리를 잘못한 탓인지 한국인에게 유독 ‘치질’이라는 질병이 많았다. 또, 물로 깨끗이 세척하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면 ‘치질’로 고생한다.


조선의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일까? 일본은 조선 강점 이후, 조선인을 '지저분하다'며 사회 여러 분야에서 미개인처럼 여기고 함부로 홀대하였다. 얼마나 조선인을 '마구' 다루었는지는 구전되어 오는 말에서도 나온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은 아이가 울면, “울지 마라, 울면 호랑이가 온다”라고” 을러대다가, 그래도 계속 울면, “자꾸 울면, 순사(巡査)가 잡아간다”라고 윽박질렀다. 오죽하면, 호랑이보다 ‘순사’를 더 무서워했을까? 순사는 구 일본 경찰로 일반 범죄자도 잡아갔지만, 일반인의 생활에도 간섭했다.


6.25 전쟁으로 참전한 미군은 혹독한 무더위와 매서운 추위로 고생했지만, 정작, 한국의 후진적 환경에 경악했다. 특히, 농촌에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인분 냄새’는 큰 고통이었다. 미 8군 사령관직을 불과 넉 달 정도 하는 동안  중공군의 공세 흐름을 바꾸었던 ‘리지웨이’ 대장도, 그 냄새를 얼마나 역겨워하였는지 공개 석상에서도 그 냄새에 불평하였다. 주재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얼마 후, ‘리지웨이’는 맥아더 후임 유엔군 사령관으로 급히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전쟁을 잘 이끈 군인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인상은 별로였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농촌이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였던 것은 수확량 증가의 고육지책이었다. 소설가 '박완서'의 자서전 격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2002년판)에서도, "... 농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늘 인분이 달렸다. 둿간에 재를 갖다 버리는 것도 인분을 안보이게 하려는 목적과 함께 인분의 거름으로서 효용가치와 분한을 늘리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송도까지 나가서 인분을 사오는 수도 있었다..." 라고 인분의 유용성을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어쨌든, '리지웨이'의 영향일까? 오랫동안, 주한 미군은 '물과 각종 야채'를 일본에서 공수해다 먹었다. 한국은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여 야채를 재배하니, 인분 냄새가 진동하는 농촌에서 생산된 야채에 기생충이 많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이를 두고 “우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냐?”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1950~80년대에는 우리가 일본의 청결과 위생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큰 '회충' 실물은 미국 모 대학에서 알코올 병에 담아서 보관 중인데... 어느 소녀의 몸에서 나온 '한국산'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후진국쯤으로 아는 이집트나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를 여행하다가 어쩌다 현지인 화장실에 가보면 쪼그려 앉는 변기에 휴지는 전혀 없고, '물 깡통하나만 덜렁 놓여있어 매우 당황스럽다. 이집트 인이 '갈라비야'라는 내리닫이 전통복을 즐겨 입는 것도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슬림은 알라께 하루 5 차례 기도할 때는 몸의 청결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나라는 물이 귀한데도 반드시 물을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물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아예 휴대용 비데를 가지고 다닌다. 덕분에, 이들에게 치질은 없다용변 후 휴지 사용보다 물로 씻는 것이 훨씬 더 청결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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