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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08. 2022

문화차이 이해와 고마운 배려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 1화)

연합 근무체제와 상호 문화 차이 이해

연합훈련 간 협조 근무 자세 (팀스피리트 훈련)

서로 다른 배려와 존중

첫 근무 미군 부대 식당의 기억 



한/미 연합 근무체제와 상호 문화 차이 이해

필자가 미군을 처음 만난 것은 육군 대위 때의 일이다. 전방에서 중대장 근무 후, '켐프 레드클라우드'라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한/미 연합 야전군 사령부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당시로서는, 한국군과 미군이 직책별로 상하 관계로 머리를 맞대고 근무하는 세계 유일의 연합군 사령부였다. 필자에게 부여된 직책은 사령부 작전처 작전상황 장교였다. 


의정부 미군 캠프 레드 클라우드 지휘부

영어로 근무하는 한/미연합 야전군 사령부의 정보/작전 상황실 근무체제는 상황장교(한국군 대위)와 상황부사관(미군 중, 상사 등 NCO)이 합동으로 주간, 야간근무(12시간씩 교대 근무)를 번갈아 하였다. 우리 사령부는 연합작전 업무에 주안을 두어서, 타 부대와 달리 예외적으로 근무 시간 중에도 영어공부를 하도록 적극 장려하였다. 주야간 근무 시에 한/미 근무자 상호 간 대화를 장려하고, 브리핑 준비 이외에도 TOEFL 책 등을 펴놓고 마음껏 영어를 공부하게 하였다. 대신에, 미군과 근무하는 동안 야간 근무자는 졸기만 해도 미군이 바로 '비위 보고서'를 써도록 하여, 밤새도록 눈 한번 붙이기는커녕 공부를 하든 대화를 하든 열심히 뭔가를 해야 했다.


야간 근무의 주요 업무는, 경기도 지역에 위치한 전방 한/미 군 부대의 상황을 종합, 정리하여 매일 아침에, 작전과장(중령), 작전 참모(준장)에게 영어로 브리핑을 해야 했다. 만약에, 아침 보고 시에 뭔가가 잘못되면, 작전참모가 떠난 뒤에 성격이 까탈스러운 한국군 작전과장이 이것저것 영어로 지적을 해대면서, 영어가 완전치 못한 상황장교를 쩔쩔매게 만들었다. 당연히, 상황보고에 참석한 미군은 이런 식의 경직된 한국군의 군대 문화에 많이 놀라워하였다. 사실, 그들은 계급 차이로 인하여 웟 사람이 행세하고 아랫사람이 쩔쩔매는 일은 없다. 그런데, 상황보고에서 이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미군 상황부사관은 자신의 업무가 대충 정리되면, 새벽녘부터 상황장교의 영어 브리핑 준비를 많이 도와주었다. 연습하는 우리의 영문 표현을 고치고, 발음도 수정해 주면서... 우리로서는 의도하지 않게 원어민 영어 과외를 지독(?)하게 받은 셈이었다.


이처럼, 업무가 쉽지 않은 미군과의 첫 근무였는데, 한동안 -미 간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여러 가지 오해를 많이 하였다. 예컨대, 미군들은 근무 중에도 스낵 차가 오면 뛰어나가 먹거리를 사 오는데... 주의를 개의치 않고, 혼자서 먹는다. "아니, 저 친구 나하고 친한 줄 알았는데... 나한테는 권하지도 않고 혼자 먹네?"라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걸 얻어먹고 싶어서라기 보다 그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식사든 간식이든 뭘 먹을 때, 옆에 누군가 사람이 있으면 "같이 들자"며 권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식 예의를 알길 없는 미군으로서는 그것이 자신의 식사이니 굳이 나누어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국제화에 익숙한 지금의 우리 MZ세대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겠지만, 나이 든 세대는 많이 오해(?)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하 벙커라는 환기도 잘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다 보면, 우리는 상대의 치즈 냄새가 싫었고, 상대는 마늘 냄새가 나는 김치를 먹고 온 우리가 싫었을 수도 있다. 더우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혼자서 낄낄대거나 과도하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던가 하는 등등 개인별 성향에 따른 모습을, 처음 보는 우리로서는 별의별 상황을 다 경험하는 셈인데... 어쨌든, 이런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차츰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서, 어느덧 국제 규범이나 국제 감각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한/미 연합훈련 간 협조 근무 자세 (팀스피리트 훈련)

이듬해, 필자가 근무하는 한/미 연합 야전사가 한-미 양국 군 최대의 훈련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을 통제하게 되었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북한군이 긴장할 정도 한국군의 많은 부대와 미국 본토에게 신속 전개한 미군이 함께하는, 실제 병력이 기동 하는 매우 큰 한-미 연합 동계훈련이었다. 우리는 의정부를 떠나 원주에 있는 춥고 좁은 군사령부의 야전 지하 방커에서,  지휘, 통제, 통신 근무지를 편성하였다. 작전상황교는 그 임무상, 훈련기간 2 주일 동안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각종 작전 상황들을 수집, 처리, 전파해야 했다. 언어가 다르고, 이질적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실시간적으로 작전을 협조하고 후속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군대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들에게 우리의 군대문화를 이해시키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런 상황하에서도 미군은 더 철저하게 파트너의 근무태도를 평가하였다. 한국군 수 개 군단을 운용하는 우리로서는 수많은 전화기와 통신 장비로 모든 부대의 상황을 확인한 뒤, 그들과 다시 영어로 정보를 나누는 과정이 매우 힘들고 귀찮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인내와 자제, 성실을 요구하며 좋은 인성을 단련하고자 했다. 그런데, 훈련이 종료된 후, 작전처 파트너인 ‘트레셔’ 소령이 필자의 근무 자세에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표창을 상신하였다. 그는 훈련 내내 필자를 매우 힘들게 하여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판단하여서일까? 그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아서 뜻밖이었는데,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업무적 협조를 우선시하는 그들의 직업 군인적인 마음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좀 더 감성적이랄까? 그 당시, 좁고 습기 찬 지하 벙커 내에서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어느 순간,  ‘욱’하는 기분으로 미군과의 관계를 해치는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어려울수록 성숙된 자세를 갖도록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서로 다른 배려와 존중

한미 연합 야전군 사령부에서 근무하였던 필자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또 미국 유학 석사과정에 선발되었다. 주변의 축하를 받았는데,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 생겼다. 진급 발표가 있은 얼마 후, 미군 사령관 ‘미네트리’ 중장은 필자를 포함하여 한국 군의 소령 진급 예정자와, 같은 시기에 진급한 미국군 장교, 하사관 진급자 모두를 부부 동반으로 초청하여, 사령부의 전 근무자로부터 축하를 받을 수 있도록 사령부 식당에 리셉션 장을 만들고 파티를 베풀어 주었다. 사령관 내외도 리시빙 라인에서 우리 진급자와 함께 서서 사령부 근무자 모두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외국인이지만 우리를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는 그 모습을 보고, 그런 문화에 익숙지 못했던 필자에게는 매우 인상 깊었고 고마웠다. 그리고, 그때 느낀 고마움은 대대장, 연대장 시절에는 물론이고, 후에 기술할 유엔 임무단에서의 근무할 때도 늘 상기하였다.


사실, 권위주의 군사문화에 길들여져 있던 필자에게 계급이 한참(?) 높은 ‘3성 장군’인 미군 사령관의 세심한 배려는 다소 얼떨떨한 일이었다. 그런데, 미군은 상호 배려와 존중이 일상적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우리와 다소 달랐다.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의 군사 문화를 ‘배려와 인간 존중’이라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이는 글로벌 시대 국제 감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장교는 국제신사'라고 하지 않은가? 아랫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국군 장교들이 반드시 배워서 체질화해야 한다. 국군 각급 부대에서 장교든, 병사든 모두가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생각한다면, 배려와 존중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나, 연대장으로 근무하였다. 부대에서 진급자가 나오면, 그 당시 모습을 떠올리며, 연대 내에 소령, 대위, 원사, 상사로 진급하는 간부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하여 진급식을 주관하였다. 진급 신고야 대동소이하겠지만, 우리 연대는 조금 색다르게 하였다. 마치 외교단 리셉션처럼, 연대 및 대대의 깃발과 기수들을 뒤에 세우고 ‘리시빙 라인’을 만들어 지휘관과 진급자 부부가 함께 서서 모두의 축하를 받는 행사였는데…. 그럴 때마다, 익숙지 않은 행사를 어색해하면서도 고마워하던 많은 장교와 선임 부사관 부부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리셉션이 끝나면 행사 참가자와 같이 연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비록, 매일같이 그 간부들과 함께 사용하던 연대 간부식당이고, 별다른 반찬이 추가로 없었지만, 허름한 식탁에서 그저 그렇게 함께 하는 식사에도 그들이 감사하여, 오히려 필자의 마음이 찡하였다. 조그마한 일에 감사하는 그들이 누군가? 우리의 전우’이자’ 동료가 아닌가? 또, 그 가족들이 아닌가? 계급에 무관하게 그들은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냥, 일상에 젖은 우리가 너무나도 그들의 권리를 의식하지 않고, 존중을 하지 않았거나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배려하는 방식이, 미국식이면 어떤가? 부하를 존중해 주는 일이 아닌가? 계급에 무관하게 그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이 속한 부대에 보다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비록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는 지휘관이지만, 해줄 수 있을 때, 부하들에게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 미군은 부사관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다. 주임원사를 부대 지휘관 다음 서열(2nd-in-Charge)로 배려한다. 여단급이라면 부여단장 정도이다. 언젠가, 한/미연합을 훈련을 수행한 어느 한국군 사단장이 훈련에 함께 참가한 미군 여단의 지휘부를 만찬에 초청하였다. 그런데, 미 측이 제출한 참석자 명단에 주임원사가 포함되어 있자 한 측은 당황하였다. 한 측은 모두 대령 이상 고급장교였는데... 다급하게, 사단 주임원사를 포함시켰다.   


진정한 군대 문화, 군대 공동체 의식은 계급이나 지위 고하를 떠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를 존중해 주는 배려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미군 사령부나 각 기지에서는 사병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국군에 입대한 뒤, 육군으로부터 미국 군 부대에 파견 와서 근무하는 KATUSA (카투사) 병사를 보면, 미군이 하급자에 대해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군 고위 장교들은 카투사 병사들의 전입, 표창, 전역신고를 직접 받고, 생일 전치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한국의 명절 등의 각종 행사에는 부서 전원이 참석하여 함께 축하해 주고, 선물도 주면서 격려해 준다. 사병들에게만 아니다. 다른, 미군 장교들도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사무실 복도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도 함께 행사를 같이하자고 권하고 선물을 나눈다.


카투사 사병용 한인식당에 가보면, 가끔씩 미군 장군이나 대령도 와서 음식을 자유롭게 시켜 먹는다. 공적 업무가 아닌 한, 고급장교라도 개인적으로 식사하는 것은 사생활로 존중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군에서는 어느 정도 계급이 되면, 그런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공, 사 간에 남을 의식하며,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는 권위주의나 관료주의에 젖는 경향이 있다. 식사할 때 앉는 자리와, 같이 밥 먹을 상대를 격에 맞추려 한다. 낮아지고 배려할 때 서로 간에 인간미가 더 진해지고, 상, 하간에 벽을 허물고 더 단단해질 터인데… 그런 게,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얼마 전에 우리 부서에서는 주한 미군과 한국 장교들 간에 ‘팀 빌딩 (Team Building)’행사를 갖게 되었다. 미군은 한국군 장교에게 "카투사 사병들도 함께 데려 가자"라고 제의하였다. 그런데, 정작 카투사 병사들은 한국군 장교하고 가는 거라면 ‘아무도 않가겠다’는 듯 모두들 표정을 구긴다. 한국군 장교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고...  '갑질'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팀 빌딩’은 어렵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할 수 있으니까…


계급이 무엇이고, 직책이 무엇인가? 계급은, 내가 ‘쟁취한 특권’이 아니라, ‘헌신해 온 노력의 결과’이고 ‘쌓아 온 능력에 대한 인정’ 일뿐이다. 당연히, 영원할 수 없고 한시적이다. 마냥 계속 이어질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직책은 그에 맡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적재적소에서 부여된 일을 하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임무나 하는 일의 범위가 다를 수 있지만, 계급이 낮으면 낮은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부여받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 계급이 높으면 더 많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더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계급이 높다 하여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군림하려 들거나, 남보다 높으니 ‘남다른 대우를 받겠다’는 생각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계급에권위에 짓눌려서도 안 되고, 직위나 직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해서도 안 되고차이를 두어도 안 된다사람은 누구든 고귀한 존재로써 서로 존중해야 한다. 계급이 높을수록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자연스럽다. 계급은 차라리 책임의 무게일 뿐이다. 갖고 있을 때, 가진 자가 더 많이 베풀 수 있으니까. 진정한 프로라면, ‘내’가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평등’과 상호 ‘존중’의 정신이 중요하다.


첫 근무 미군 부대 식당의 기억 

미군 부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첫 기억은 식당이었다. 중대장 임기가 끝나갈 즈음, 의정부에 있는 '캠프 레드크라우드'에 위치한 한미 연합 야전군사령부 (이하 한/미 야전사)에서 면접 통보가 와서 방문하였다. 그때, 동료와 함께 사령부의 장교 식당(지휘관 식당, CG's Mess)에서 난생처음 정식으로 준비된 양식을 맛보았다. 그리고, 미군 식당이 우리 한국군 식당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고급스럽고 풍성하여 내심 매우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정부가 한/미 야전사에 근무하는 한국군 장교들에게 미군 장교와 자유롭게 식사를 같이 하도록, 모든 간부가 받는 급식비 이외에 연합부대 근무자에게 일정 금액을 더한 특별 지원을 해 주었다.


한국군 장교는, 그 식당에서 동료 미군와 자연스레 업무외적인 대화 기회도 많이 가졌다식당이 때로는 훌륭한 사교장이되기도 한다. 그런데, 식당에서 오래 근무한 여자 서빙 요원(웨이트리스)들은 가끔씩 영어로만 작성된 양식 메뉴를 잘 모르고 주문하는 한국 장교들에게는 꼭 핀잔을 주었다.(무례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한국군 부사령관이 한국 장교를 공부시킬 목적으로 요구하였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잔뜩 긴장한 필자도 식당의 예법, 메뉴 등에 대해서 덩달아 많이 익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나중에 외국의 웬만한 호텔 식당에서도 자연스레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같이 식사하는 그 식당이지만, Thanksgiving Day 등 미국의 주요 명절마다 그 식당에서 주관하는 기타 여러 가지 행사에는 부부로 참석하였는데, 모든 음식과 과일이 항상 다양하고 풍족하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바나나조차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에 전역하여, 다시 12여 년간 주한 미군사령부에서 미측 군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그 사이 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필자도 젊은이에서 늙은이로 변하였고... 하지만, 미군 부대는 시스템적으로 별로 변한 게 없어서 어떤 장면을 보면 옛날, 그 시절의 장면 하나, 하나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 온 듯 기억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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