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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08. 2022

분쟁지를 관광지로

사고의 전환 

분쟁지를 관광지로 



분쟁지를 관광지로 

파키스탄의 '라호르'는 '라발핀디'나 '카라치'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우리 유엔 평화유지군도 파키스탄 군의 군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휴가 중에 '라호르'의 군 호텔에 머물며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인디아- 파키스탄 영토의 정식 국경선 지역이다. 원래 같은 나라였던 인도가 분리되어, 1947년 8월 영국으로부터 각각 독립할 때 국경선이 확정된 곳이니, 필자가 근무하던 카슈미르 지역의 ‘통제선 (정전선)’으로 미확정된 국경선과 다르다. 때문에, ‘라호르’ 가까이에는 양국 간의 정식 국경 검문소가 있다. 인도가 독립할 때 인디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었지만, 카슈미르’ 영토분쟁으로 서로 간에 3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이곳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곳은주민들에게는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는 특별한 곳이어서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인디아-파키스탄 '라호르’ 국경초소에서 벌이는 공동 하기식 행사를 참관하는 관중들

이곳이 웃음을 주는 이유는, 양국 초병들이 하루를 마감하며 게양하였던 국기 강하식(‘하기식’) 행사에서 서로가 ‘팬터마임’처럼 말없이 행동으로 상대를 약 올리고 비난하는 각종 코믹한 동작과 태도 때문이다. 이 국경 초소의 하기식 행사가 다가오면, 양국 사람들이 양국의 초소 지역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미리 마련된 관람석에서, 17:00-17:30까지 30분간 화려한 전통 군복을 착용한 초병들이 각각 자국의 국기를 내리는 하기식 행사를 참관할 수 있다. 하지만, 행사가 진행하는 동안, 서로 지지 않기 위해 발동작 등 현란한 동작과 무언극으로 상대에게 도발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면, 다른 한쪽도 이에 질세라 무언으로 여러 가지 행동으로 대응하며 서로 싸우는 행사가 시작된다. 

인디아(좌)-파키스탄(우) 양국 군의 코믹한 하기식 의식

이런 모습들이 익살스럽게 진행되는 통에, 참관하는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쇼가 아닌 쇼”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유명해지고 전통이 되어버린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관중들이 모여들자, 양국의 군 수뇌부도 상대방에 지지 않기 위해 점점 더 재미있는 캐릭터의 병사들을 수배하여 배치하여 이 행사를 더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돈 안 내고 코미디를 보는 셈이다. 느긋한 문화의 차이인가? 낙천적인 인성의 차이인가? 총을 가진 군인들이, 이웃 동네잔치를 구경하듯 몰려든 구경꾼들 앞에서, 서로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 코믹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런 류의 유쾌한(?) 싸움, 관중들의 호기심과 박수를 받는 싸움으로, 양국 간의 긴장관계에 무관하게,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의 전환과 분쟁의 종식 

사람의 본성은 이념으로 처참하게 서로를 죽이려 하기보다, 종교든 뭐든 다 같이 웃으며 '파안대소하는 삶'을 원하나 보다. 종교가 이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역사적 진리일까? ‘종교는 아편’이라며, 유신론자를 적으로 몰아붙였던 공산주의자는 1990년 소련의 붕괴로 불과 100여 년의 짧은 기간 홍역처럼 세상을 휩쓸다가 사라져 버렸다. (북한 등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하지만, 종교의 영향력은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전쟁을 보면 이념보다 우월한 듯하다. 아랍은 비록, 다민족이지만 단지, 언어와 문화, 종교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형제’를 자처하며 통일을 추구하였다. 이스라엘을 보면, 종교에 민족을 더하면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5천 년 역사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단일 민족인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독립과 함께 따라온 외세는 우리를 남, 북으로 갈랐다. 그리고 이들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은 서로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짙은 분노를 초래하며, 동, 서 양대 이념의 대리자로서 '죽기 살기로' 싸웠다. 과거, 이념 분쟁이 우리를 압도하던 시절, 모두는 한 방향으로 보조를 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대결 속에 우리는 서로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안에 떨었고, 같은 편이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구식 이념에 따라 동족상잔이라는 극한으로 치달았던 우리를 되돌아보면, ‘같은 민족’의 의미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분단의 상징 판문점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유독 명분 논리에 집착했다. 과거 이념 분쟁이 우리를 압도하던 시절, 모두가 한 방향으로 보조를 맞추어야 했다. 그리고, 대결의 구도 속에 각자는 안정을 찾았다. “생각의 차이, 이념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미워하고 죽도록 싸워야 했는지?” 동족상잔으로 빚어진 그런 장면 하나하나는 우리 모두에게 비분강개함의 역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70여 년간 남과 북은 여전히 각자의 방식만 주장하였다. 결과는, 열심히 '공'을 굴러서 올라가도 매번 도로 굴러 떨어지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없는 분노와 갈등의 재생산이었다. 허망하기 짝이 없다. 어느 한쪽만의 '생각을 통일한다'해서, 개개인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한국 측 경비요원 뒷면은 북한군 (우) : 사진-파주시청

열전을 경험한 우리 판문점은 검은 화이바와 군복,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굳은 표정의 우리 헌병과 딱딱한 적대감을 지닌 북측 요원의 날카로운 상호감시로 스산한 분위기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말로써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냉전 시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판문점이,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경제협력으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비무장 지대가 되면,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관광 명승지가 되지 않을까?라는 꿈과 희망은 잃지 말자. 모두가 절실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사고의 전환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무엇이 중한데?"를 생각해 보면,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몇, 몇 사람의 '내 생각이 옳다'라는 아집과 '내가 너보다 낫다'라는 오만이 민족 전체에게 비극과 고통을 안겼다. 뭘 몰랐던 시절,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누굴 따라서 증오와 분쟁의 길로 갔지만이제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머리가 커졌다. 과거 분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모든 이의 사고를 '사람답게 살자'라고 전환하면 화합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다. 북이든 남이든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집단화되고 세뇌될 필요는 없다.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는 집단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그들만 좋은 일을 시키기보다, 개개인의 행복을 생각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같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종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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