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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09. 2023

'카이로'의 첫인상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1화)

'비엔나'와 '카이로

'카이로'의 첫인상

이슬람과 아랍

이슬람이라는 종교 속의 생활



'비엔나'와 '카이로'

필자가 각각 3년씩 살았던 유럽 대륙 중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아프리카 대륙 북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그야말로 다양한 ‘차이와 다름’이 있었다. 생활 속 ‘차이와 다름’의 원인은 자연환경과, 각 그룹이 오랫동안 살아온 문화적 다양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우선, 두 도시의 환경을 비교해 보면, 공통적으로 ‘나일’과 ‘도나우’라는 세계적인 큰 강을 끼고 발달하였지만, 두 지역의 발달은 수천 년의 시차가 있고 그 기간 중에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적 변화가 있었다. 그로 인해, 유럽과 중동이라는 지역적 특성만큼 차이가 벌어졌다.


수천 년 전부터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의 하나로 알려진 나일강 지역은 매년 홍수나 범람을 겪었지만,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고대 역사학자 ‘타키투스’의 말처럼, 나일강은 그야말로 이집트의 젖줄이었다. 범람 후에 쌓인 퇴적물은 고대 이집트인에게 큰 풍요를 안겼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신전이 생긴 배경이다. 더불어, 건축이나 세금징수를 위해 발달한 고대 이집트의 수학이나 측량학은 지금의 인류도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였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상류에 ‘아스완’ 댐이 생겨 홍수나 범람은 통제되었지만, ‘카이로’를 지나는 ‘나일’ 강은 연간 강수량 부족으로 흐르는 물량이 적고 유속마저 정체되어 오염이 되어있다. 


이집트 등 중동지역에서 사막화가 진행되는 동안, 중국 만주지방 정도의 북위 47도 지역에 위치한 '비엔나'는, 알프스 끝자락에 위치하지만 온대성 기후로 수목이 무성하며, 도시의 중심에 흐르는 ‘도나우’ 강변의 넓디넓은 언덕은 강물에 반사된 일조량으로 최적의 포도밭 재배를 선사하였다. ‘도나우’ 강은 잘 관리된 국제하천으로서 중세 기독교 문화의 중심으로 하천을 공유하는 여러 나라의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비엔나에서 국방무관으로 재직하며 유럽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경험을 하였다. 


'카이로'의 첫인상

오스트리아에서 돌아와 전방에서 연대장 근무하는 동안 중동의 정세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우리 정부가 석유의 공급원인 중동 정세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국방부도 관심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하자, 무관 등 해외경험이 있는 필자가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이집트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는 않았다. 우선은, 아랍어가 자신이 없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등 분쟁지역에 대한 이해와, 이슬람 종교나 문화에 이해가 충분치 않아서였다. 부담 백배였다. 과연, 미지의 나라에 가서 국방무관으로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는지…?


카이로 시내 전경, 나일강이 보인다.

북위 30도에 위치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첫인상은, 열악한 인프라, 넘치는 사람들, 사막형 기후로 찌는 듯한 더위, 다소 어수선하고 낡고 지저분한 이미지여서, 그렇게 산뜻하고 명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들이 경험하였던, 한국이나 미국, 유럽 같은 나라와 전혀 달라서 낯설었다. 선진국은 후진국의 칙칙하고 낡고 지저분한 이미지와는 달리, 산뜻하고 명쾌한 분위기이니까. 그런데, 이런 첫인상 외에 현지에서 지내며 느낀 더 큰 문제는, 기후조건이나 거리의 인프라 열악함보다, 사회생활 관습, 그중에서도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요구하는 각종 율법의 무게 속에 무슬림과 소통하는 생활이 매우 버거웠다는 거다. 참고로, 무슬림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다.

차선이 없는 카이로 시내도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3년 동안 내내, 이런 문제는 계속 진행형이었다. 현지에서 느낀, 이슬람이라는 종교 속의 생활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무관생활이지만, 다행인 것은 대사관 직원도 인원이 적어 화기애애하였고, 현지인 고용원도 일반 이집트인과 다르게 행동하여 그런대로 일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필자가 '카이로'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무슬림 중에서도 '아랍' 무슬림이다. 찬란한 고대 문화를 일군 고대 이집트 민족과 달리, '아랍인'은 7세기 경 아랍의 팽창기에 이집트에 흘러들어온 유목민이다. ‘아랍인’이란, ‘아라비아 민족’을 지칭하며 모함마드가 '이슬람'을 창건한 이래 ‘우마이야’ 왕조로부터 ‘압바스’ 왕조까지의 AD 7-12세기간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였던 사람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같은 아랍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이슬람 종교를 국교로 하여, '아랍 형제'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 이슬람과 분리된 아랍은 없다. 카이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랍 연맹'만 해도 중동의 22개국이 가입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은 세력을 과시한다. 


아랍 민족,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종교 속 생활

전술한 바와 같이, 이집트는 일부 콥틱교(원시 기독교)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국민이 무슬림으로 이슬람이 국교이다. 참고로, 전 세계적으로 56개 국가가 이슬람을 국교로 하고 있다. 이슬람이 국교인 경우,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의식주와, 개인의 신념, 사고체계, 관습이나 행동 등 삶의 방식, 예술, 정치 체제 등 모든 삶의 관점을 에워싸는 총체적인 개념이며 사회, 문화의 상위개념으로서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게 되어있다. 이슬람을 모르고서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외교관이라 해도 이슬람 종교와 아랍의 관습, 그리고, 무슬림이 따르는 각종 율법을 피할 수 없어, 그곳에 사는 동안 이들의 ‘샤리아 율법’이나, ‘라마단’ 등 실천적 관습을 경험하며, 이슬람을 알아 가게 되어있다.  

일반적인 이집트 여인들의 복장

덕분에, 우리 가족은 카이로에 도착한 직후 때마침 '라마단' 기간을 맞이하여 난생처음으로 '라마단'이라는 종교행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슬람 교리의 5행 중의 하나인 '라마단'(금식)은 낮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다. 이슬람 달력에 따라 한 달 정도 계속되는 이 종교적 관습으로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았다.  그 기간에 느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에 가족들이 더욱 힘들게 느꼈을 것이다. 


종교적 교리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율법이 많다. 예컨대, 모든 것이 '알라의 뜻이다'라는 '인샤알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 한마디로, 전임자가 미리 잡아 놓은 비공식 방문은 물론, 공식 방문조차 약속시간이나 절차 등에서 깔끔하지 못하였고, 현지인의 후진적, 관료적 모습도 얼버무려진다. 이 말은 '알라의 뜻'이라는데... 뭐라고 한들 어떻게 항의할 수 있겠는가? 개인의 인성에 의지하는 서구식 Integrity (진실성)이 무색해지는 이유다. 이처럼, 기존에 길들여진 것과 다른 방식, 이런 낯선 시스템이 필자를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나 배웠던 지식, 가치 기준, 신념이 그들과 다른 것이지, 어느 사회 체제, 문화, 종교 등이 우열하다는 것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차량과 인파가 얽키는 카이로 시내

신의 뜻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가려는 무슬림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 따라 누리는 각종 속된 것을 경멸한다. 이처럼,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저들이기에, 우리의 잣대로는 현지인의 겉모습이 어렵고 힘들게 보였지만, 외형적으로 보이는 가난한 모습만으로 저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신을 향한 경건한 마음에 가난이 죄가 될까? 


그렇다면, 평화로워야 할 중동인데... 테러로, 전쟁으로 늘 시끄럽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이념적, 또 문화적, 종교적인 ‘편 가르기’가 배경이다. 6.25 전쟁을 치른 우리는 정치적, 이념적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에는 익숙하나, 문화나, 종교적 ‘편 가르기’는 생소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나, 종교적 ‘편 가르기’가 주가 되다 보니,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가 유별나게 ‘테러’와, 전쟁이나 분쟁, 끔찍한 '인종청소'와 ‘난민’ 등과 관련되어, 항상 무거운 주제가 함께 따라다닌다. 


이는, 서구와 무슬림의 오랜 역사 속 문화적, 종교적 대립에서 유래된 것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분노하는 이들에게, 분노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더 중요해 보이는 이유다. 때문에, 중동에 근무하는 동안 필자는 정치적, 이념적 갈등보다, 문화적, 종교적 대립을 눈여겨보았다. 다만,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짧게 살아온 작은 경험만으로 커다란 문화나 복잡한 종교를 이야기하다 보니, 무지하거나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있을까 봐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논란이 불거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 (Respect for Cultural Diversity)과 이해에 대해 다음 편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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