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Jan 14. 2023

'사하라' 사막과 '엘 알라메인' 전투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8화)

알렉산드리아와 지중해 연안 휴양지

사하라- 백사막, 흑사막

엘 알라메인 전적지


알렉산드리아와 지중해 연안 휴양지

이듬해 무관단 여행은 시나이 반도와 반대로 리비아 국경 근처의 사막지역을 여행하는 코스였다. 먼저, 카이로에서 서북쪽 고속도로로 200Km를 더 달리면, 이집트 제2 도시로 지중해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아랍어 이스칸다리아)에 도착한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처음 세운 이래 알렉산더를 계승한 '프톨레마이노스' 왕조의 헬레니즘 이집트의 수도로 이집트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왕국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미모를 이용하여 정치적 세력을 품었다. 그녀는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씨저)' 그리고, ‘안토니우스’ 등 로마제국 최고의 장군들과의 연이은 사랑이 얽힌 2천 년 전 ‘러브 스토리’를 나누었지만, 왕국은 멸망하고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전경

이곳은 장대한 자연의 풍광을 자랑하며 일 년 내내 외국 관광객이 붐비는 매우 서구적인 도시이다. 필자가 있을 때, 영국의 관함식에 참석하러 가던 우리 해군 순항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에 이곳에 3~4일 기항하여 최신예 우리 해군 함정을 이집트 해군에 공개하고 우리 교포들과 만나던 곳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리비아 국경을 향하여 달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붉은 해안, 흰 해안, 황금 해안 등 이름이 붙은 아름다운 해변들에 지어진 수많은 리조트를 볼 수 있다. 물론, 내국인 용이 아니라, 유럽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시나이 반도의 휴양도시 '샤름 엘 세이크'와 달리, 주변 인프라가 열악하여 불황에 허덕이는 모습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사하라- 백사막, 흑사막

백사막 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리비아 국경인 서쪽으로 계속 가면 ‘마르사 마투르’를 지나 청정지역 ‘사하라’ 사막에 도달한다. 특히,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백사막’과 ‘흑사막’은 많은 서구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중, ‘백사막’은 수 만년 전, 바닷속 산호초가 굳어 화석화된 뒤 지각변동으로 융기되고 다시 풍화작용을 겪어면서 만들어진 2-5미터 높이의 흰색 바위기둥이 수 천 개나 솟아있어, 이들 수천 개의 돌기둥 암석을 보는 것이 압권이다. 그리고, 이 돌의 조각으로 온통 흰색 천지라 하여 '백사막'이라 부른다. 


흑사막 전경

거기에서, 얼마를 더 달리면  ‘흑 사막’- 마치, 까만 조약돌 등으로 뿌려놓은 듯한 장대한 크기의 까만색 사막-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는  모래가 아니라 무슨 우주 공간의 물체가 타면서 그 잔해 조각을 온 천지에 뿌린 듯하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까만 돌의 모양이 마치 배관용 파이프 같은 것이 불탄 잔해 같은 느낌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사막의 밤하늘

더 들어가면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했다는 '시와' 오아시스 연못, 그리고 사막의 온천수 (규모가 꽤 크다)와 오아시스 등을 둘러보면, 그때 만나는 모래는 상상하는 일반적인 사막모래와 같은 모습이다. 여기서는 모래 언덕 위에서 시동을 끈 자동차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도 경험할 수 있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에 거주하는 베두윈 족의 안내로 밤이 되면, 현지인 베드윈들이 구워주는 양고기를 먹고, 사막에서 텐트 치고 숙영 하는데 이 또한, 캠핑 치고는 매우 특이한 느낌이다. 특별히, 밤에 모닥불 옆에 앉아서 가족들과 함께 올려다보는 사막의 별빛은 어찌 그리 가깝게 느껴지든지… 마치, '밤하늘 별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별들을 가깝게 볼 수 있고, 이른 아침 새벽녘에는 먹이를 찾아 텐트 주위를 맴도는 ‘사막의 여우’도 볼 수 있었다. 




엘 알라메인 전적지

이집트 국방무관은 매년 11월 4일에 엘 알라메인에서 거행하는 제2차 세계대전 전몰 연합군과 추축군의 위령탑에서 거행하는 위령제 행사에 초청을 받는다. 지중해 연안 휴양지에서 다시 약 200킬로미터를 더 달리면 리비아 국경 가까이에 있는 '엘 알라메인'에 도착하게 되는 데 이쯤에서 고속도로 길가에 몇 개의 안내판이 나오고 위령탑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알린다.

'엘 알라메인' 전투 위령탑

위령탑 입구에는 이집트 군 경비병이 지키고 있는데 안내소를 지나 좁다란 직선 길을 따라 한참을 가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수 만 명의 전사자를 낸 연합군과 추축국의 전사자들을 추념하기 위한 위령탑이 각각 멀리 떨어진 채 마주 서 있어 파도와 바람 소리를 벗 삼으려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위령제 행사는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가 매년 번갈아 통합으로 주관하는 데, 이제는 모두가 EU라는 틀 안에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므로, 각국의 주요 외교사절과 많은 전몰자의 친척들이 참석하여 각각 헌화식과 더불어 추념제를 엄숙하면서도 성대하게 지낸다.


이집트와 리비아 사이에 있는 사하라 사막은 세계적인 사막이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바다”라는 뜻도 있다.) 자동차로 사막 도로를 달려보면 사하라라는 의미를 새삼 알게 된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달려도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평선만 보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막의 하늘도 모래 땅과 맞붙어 있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지표면 인지도 착가 할 만큼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무한한 광경이다. 이 사막의 지중해 연안 끝 부분에서 욕심에 가득한 제국주의자들의 전투가 벌어졌다.


1942년 8월 31일, 독일군의 야간공격으로 시작하여 9월 7일 종료된 엘 알라메인 전투는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과 몽고메리의 연합군이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전투에서 롬멜은 해안선으로부터 50킬로미터 정도 아래에 펼쳐진 '카타라' 분지에 막혀 자신의 장기인 전차 기동전을 제대로 펼 수 없었고 전차 연료도 떨어져 퇴각하게 된다. 롬멜은 10월 23일부터 11월 4일까지 또다시 일제 공세를 감행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패주 하여 1943년 1월 23일에는 영국군이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까지 장악하게 되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 패전의 계기가 되었다.


롬멜의 전차군단이 패배한 첫 번째 이유는 엄청난 무더위 속에서 식용수는 물론, 전차에 사용하는 연료 부족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롬멜의 장기인 전차 기동전을 엘 알라메인의 사막에서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경도를 지닌 굵은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 있는가 하면 전차의 궤도를 못 움직이게 만드는 입자가 고운 모래로 된 사막 등 여러 가지 지질로 이루어진 탓이다. 중과부적의 적을 맞이한 롬멜은 기동력을 발휘할 만한 지리적 이점마저도 박탈당한 터라 매우 난감했을 것이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막의 여우

‘엘 알라메인’ 근교에 있는 ‘롬멜’ 기념관에는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롬멜’의 지휘훈이 걸려 있다. 사막은 행정가에게는 지옥이고 전술가에게는 천국이다.” 하지만, 기갑 전술의 대가였던 ‘롬멜’조차도 물과 연료 없이 아무런 전술도 발휘할 수 없었다. 에어컨이 없는 전차는 사막에서 불한증막이다. 독일군 전차는 연료가, 군인은 물과 신선한 야채가 필요했다. 하지만, 독일군의 주요 보급선은 지중해를 건너는 동안 연합군 공군에게 수장되었다. 반면에, ‘사막의 여우’ '롬멜'과 싸우는 '사막의 생쥐' 영연방 제8군 사령관 '몽고메리'의 항전은 완강했다.

생쥐문양과 영국 '몽고메리' 장군

'여우'와 '생쥐'(독일과 영국)는, 먹잇감을 앞에 두고 싸우는 공룡들처럼…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피 흘리며 싸웠다. '지배당할 자'는 정해져 있는데, '지배할 자'를 정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전투가 끝나자 '여우'와 '생쥐'는, 지배도 못해 보고 조국으로 되돌아갔지만, 엉뚱하게도 지배당할 처지에 있던 이집트가 ‘엘 알라메인’ 전투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롬멜’과 ‘몽고메리’가 싸우느라, 매설해 둔 지뢰로 매년 수십 명의 인원이 지뢰폭발 피해자로 사상을 당하고 있어서다. 경제력이 약한 이집트는 지뢰제거 활동을 펼칠 형편이 못되어, 영국, 독일 등에 지뢰제거 비용 분담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묵묵부답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매년 1904년 ‘러-일전쟁’에 침몰한 ‘러시아 함정 위령제’를 갖는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러시아와 일본이 ‘지배할 자’를 정하기 위해 싸웠다. 그때의 우리 역사도 이집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일 쿠르즈'로 고대 유적지 탐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