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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04. 2023

낯선 문화에 항상 긴장하였던 유엔파견 한국군 장교들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4화)

낯선 근무체제 - 한국군 장교의 충성심?

낯선 동료애 - 한국 장교의 농담과 스웨덴 장교의 고발정신

낯선 문화 - 다양성 이해의 계기 


낯선 근무체제 - 한국군 장교의 충성심?

크로아티아 단장이 부임 후 처음으로, 새로 전입 온 한국군 장교 (소령) 3명과 전입 면담을 하였다. (분기마다 한국 장교 3명씩 인원 교체) 면담이 끝나자, 단장은 필자에게, “한국 장교들이 자기에게 '최고의 장교(The Best Officer)'가 되겠다고 맹세하는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유엔 평화유지 임무는 회원국의 자발적인 참여로 모인 군인들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라기보다,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면 그만인데, 왜? 그런 다짐을 하며, 충성심을 표시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필자는 새로 부임한 장교들에게, 우리 군과 유엔군과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향후 단장에게, 지나치게 계급을 의식하여 한국군에서 소령이 소장에게 대하듯 하기보다, 마치 사관학교 생도시절, 자치근무를 하는 동기생간에 하듯, 상대의 직책과 권한은 존중하되 각자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서구인들에게 계급과 직책은 잠시 맡아서 ‘하는 일을 처리하는’ 권한과 책임일 뿐이다.


임무단 행사의 한 장면 (모두의 군복이 다르다. 민간인은 유엔 직원) 

정전 상태에 길든 한국군은 긴장감이 충만하다. 늘 전쟁 등 '고강도' 분쟁에 대비해 왔다. '우리'는, 뭐든 잘 준비해야 하고, 내가 밤늦게 일을 하면 남도 같이 해 줘야 하고, '내일까지 무엇을 끝내라'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우리'는 '전우'이고 '동료'이니까... 하지만, 군인이기에 복종과 충성을 기본으로, 남아서 밤을 새우는 동료를 위해서 '함께해야 한다'라는 동료의식은 유엔에서는 나만의 감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남에게도 이를 강요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남이가?”로 길들여진 우리 만의 방식을 국제사회에서도 고집한다면, 다국적, 다문화, 다인종적 근무환경 하에서 뭔가 어색할 것이다. 


유사한 사례가, 한/미 연합 부서에서도 있었다. 어느 날, 부하 장교의 실수로 인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자 차상급자인 한국 장교가 미군 장교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 지도한 탓이다.”라고 사과하고 자신도 책임을 공유하려 하였다. 이게 우리의 정서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 장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니, 잘못은 쟤가 했는데 왜, 당신이 나에게 사과를 하느냐?” 반응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구분을 하는 것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이다. 만약에, 한국에서 '우리'끼리 근무할 때 “너는 너, 나는 나”라면 곤란할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끼리 근무할 때와, 외국인들과 같이 근무하는 환경에 맞추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더구나, 유엔 평화유지군은 말 그대로 평화를 유지하는 '저강도' 분쟁에 대한 대비이다. 한국군이 훈련하고 대비해 온 것과 달리, 명확한 '적의 개념'이 없는 제3자의 역할이다. 서로 목표나 기준이 다른 유엔의 가치와 우리의 올곧은 하명하복의 모습이 개인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엔의 환경에서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점들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게 필요하다. 유엔에서 한국군 장교가 다국적 군과 같이 근무하는 동안에도 한동안 그런 태도를 바꾸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가 지나면 한 단계 훌쩍 성장한다.


낯선 동료애 - 한국 장교의 농담과 스웨덴 장교의 고발정신

필자가 근무했던 정전감시단에서의 일화이다. 카슈미르 지역 어느 감시 기지에서 한국군 장교가 스웨덴 여군 장교와 같이 근무하였는데, 마침 교대할 후임자가 한국 장교여서 함께 합동 근무를 하였다. 거의 분기 단위로 교대 시마다 합동 근무가 시작되면, 전임자는 후임자를 데리고 지역 부대장을 방문하여 부임을 알리는 것이 통례였다. 이들 3명이 지역 내 파키스탄 군부대를 같이 방문할 때, C소령은 ‘얼룩무늬 위장복’을, 그리고 K소령은 ‘사막 위장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한때, 한국군 파병자에게는 사막복이 지급되었다)  


그때, 그들을 안내하였던 파키스탄 군 장교가 친근하게, “한국에서 왔나?”라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에 "그런데, 왜 군복이 다르냐?"라고 물었다. 장난기가 많은 C소령이 “한국은 한국인데, 나는 한국에서 왔고, 저 친구는 북한에서 왔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파키스탄 군 장교는 잠시 후 나타난 자신의 여단장에게 들은 그대로 소개하자, 깜짝 놀란 여단장은 "너희 둘이 함께 다니면서도 임무 수행이 가능하냐?”라고 되물었다. 사태가 커지자 C소령이 얼른 “농담이었다”라고 용서를 구하면서 사태는 거기서 일단 종결되었다.


유엔의 깃발아래 근무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  

하지만, 기지로 돌아온 스웨덴 여군 장교가 "한국군 장교들이 유엔 임무 수행 간 타국의 국적을 사칭하여 주재국 군부 인사들을 놀렸다.”며 C소령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보고서를 작성, 작전참모인 우루과이군 중령에게 제출하였고 그것이 필자에게 보고되었다. 단장이 부재중이라 부단장인 필자가 사건을 처리해야 하였는데, 이 사실을 접한 본부의 모든 참모들은 한국군 부단장이 한국군과 관련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가 관련 규정과 절차대로 C 소령에게 경고 및 근신 조치하였지만, 작전참모는 단장이 복귀하자, “거짓말은 장교의 명예심 문제로 국적을 사칭한 장교를 즉각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며, 다시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단장은, 필자의 조치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는지, “이미 부단장이 조치한 사안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라고 종결하였다.


이 문제를 통해서 C소령 자신은 물론, 많은 한국군 장교들로서는 사소한(?) 농담으로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로 생각하였던 문제로 인해 커다란 곤욕을 치렀다.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사람 좋은 스웨덴 여군 장교가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하게 고발하는 투철한 고발정신에도 놀랐지만, 우리가 후진국쯤으로 치부하는 우루과이 장교의 엄청난(?) 명예심,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사소한 거짓말쯤은 별생각 없이 농담으로 내뱉는 우리 한국군들에 대해서도 놀랐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良藥苦口)’는 말처럼, 필자도 새삼, 유엔은 다국적, 다문화 집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고, 호된 경험을 한 그 장교도 더욱 성숙해져,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서는 어떤 경우든 거짓이나 헛소리를 해놓고는 '농담이었다'라고 둘러대는 말로는 그 누구로부터 보호받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낯선 문화 - 문화적 '다양성' 이해의 계기 

각국에서 파견된 유엔 감시단 여성 장교에게 이슬람 문명은 도전적이다. 필자가 근무할 당시 한국군 여군은 없었으나, 후일 귀국한 어느 여군 장교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이슬람이라는 낯선 문화에 대한 황당함의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었다. 예컨대, 인디아령 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에 있는 유엔군 본부에는 1년에 한 번씩 무슬림 주민들이 몰려와서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내는 탄원서를 전달한다. 탄원서 내용은 인디아 정부가 무슬림들의 종교적 권리를 억압한다며 조치를 취해 달라는 내용으로 매년 똑같다. 


탄원서를 읽고 있는 시위장면을 촬영하는 유엔군

아무리 매년 반복되는 정치적 이벤트라지만, 유엔으로서는 이를 거절할 수 없다. 때문에, 유엔 감시단 본부 참모 장교 2명이 인디아 군의 경계하에 문밖으로 나가서 이들의 시위 광경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들로부터 탄원서를 접수받는다. 그날따라 한국군 여군장교가 탄원서 접수 행사에 참석하였는데, 알다시피 무슬림은 여성들과 악수를 하기는커녕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들은 접수하려 손을 내미는 여성 장교를 외면하고 심지어는 비켜서서 탄원서를 다른 감시장교에게 전달하였다. 저들의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성 무시(?)라며 심한 불쾌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여성과의 관계를 설정한' 무슬림의 종교적 율법일 뿐이다.


반대로, 유엔군을 대하는 대하는 현지 여인들의 자세도 난감하다. 필자가 유엔 정전감시단 본부에서 가까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예하 초소 순찰 중, 중도에 들린 현지인 마을에서 여성들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카슈미르 산악지대의 무슬림들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이 마을의 여성은 노소를 불문하고 머리에서 발목까지는 물론, 눈까지 망사로 덮은 ‘부르카’를 착용했음에도,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곧바로 몸을 돌려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린 채 현지어 '우르드'어로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동행한 파키스탄 군인 말로는, 알라()에게 평화와 안전을 구하고외지인을 본 것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단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걸 보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종교적 율법이 있나 보다. 아무튼, 경건한 삶을 살겠다는 이들의 남녀유별 사상은 정말 유별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낯선 곳에서는 낯선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면 된다. 이런 일을 당하면 경험적으로 '열린 마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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