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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04. 2023

수상한 물 - 물 속의 미생물과 석회질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5화)

수상한 미생물이 있는 물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물



수상한 미생물이 있는 물

'비엔나'에서는, 정수기 없이 수돗물을 마실 수 있다. 150여 년 전부터 돌로 만든 수로로 주변 산지의 눈 녹은 물을 시내로 끌어들여 정화처리를 한 뒤 공급하는 물로 정말 맑고 시원하다. 일본에도 호텔은 물론, 마을 곳곳에 '음용수'라고 써놓은 음용수 대가 있다. 우리도 '아리수'라는 물이 있어 한국인들은 질 좋은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그러니, 평상시 물의 고마움을 잘 못 느낀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딜 가든 맑은 물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심지어는 물속에 손을 넣지 말라는 곳도 있다.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에 나일강 물을 만지려는 사람에게 관광 안내요원은 “물을 절대 만지지 말라”라고 꼭 당부한다. 물론, 일반 물도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된다. 이상스럽게도, 무슬림이 다수인 이들 지역 물은 우리에게 맞지 않은 것 같다. 전문가 말로는 이집트 등 중동 여러 나라와, 파키스탄과 인디아 등 서남아시아 지역의 물속에는 무슨 풍토병처럼 특이한 ‘아메바’ 균이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을 여행하는 외국인은, 면역성이 강한 현지인과 달리, 마시는 물은 반드시 시판용 생수를 사다 먹어야 하고, 심지어 4성급 호텔 뷔페에서 나오는 싱싱한 야채샐러드조차 오염되었을지 모른다”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 야채는 웬만하면 안 먹는 게 상책이지만, 섭취할 때는 꼭 레몬이나 소금, 식초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 이런 조심 덕분에 카이로에서 3년 동안 지내는 동안 배앓이를 경험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집트의 물 문제 못지않게, 필자가 근무했던 다른 지역인, 유엔 평화유지군 인디아-파키스탄 정전감시단에의 물 문제는 심각하였다. 이런 낯선 ‘아메바’ 균 문제로 유엔임무단 장교 중에서 유독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막, 한국 장교들이 프랑스나 이태리, 크로아티아, 남미 우루과이 등 다른 나라 장교보다 배탈 사고를 더 많이 겪었다. 유엔임무단 군의관 말로는, 역설적으로 배탈 환자가 많은 나라의 수질이 '세계적으로 최고로 깨끗해서...'라고 하니 오히려, 한국인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태어난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필자도 파키스탄에서 물을 잘못 마시고, 이 무서운 '배앓이'에 걸려 계속되는 설사와, 배를 쥐어짜듯이 아픈 고통을 며칠 동안 겪었던 적이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근교에는 골프장이 있어, 임무단 행정부장과 함께 주말에 골프를 쳤다. 더운 지역이라 9번 홀을 돌고 나니, 목이 말랐는데 탄산음료를 싫어하는 것을 눈치챈(?) '캐디'가 수돗물(일반 물) 한잔을 권하였다. '물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별생각 없이 받아 마신 그 물로 인해 며칠 동안 거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무더위 때문에 '아차' 방심하였다.


그리고, 북유럽처럼 우리 한국의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은 오히려 면역체계를 무디게 만드는지... 최근 들어, 해외를 여행했던 한국인 10명 중 7명꼴로 배앓이를 경험하였고, 한국 어린이의 16% 이상이 ‘아토피’ 성 피부염을 앓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런 병은 이름조차 없었는데... 어느 전문가는,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부모들이, '아이들을 깔끔하게 키우다 보니 오히려 아이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라고 한다. 자연식보다 가공된 음식을 먹고, 금수강산 질 좋은 물을 마시니, 외부 환경에 더 취약해진 것일까? 


그런데, 이런 물 문제로 필자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현지 군부대나 마을을 방문할 때이다. 우리의 임무는 지역 민심을 살피는 것이고, 그러려면 주민 속으로 다가가야 한다. 대부분 주민들은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인정이 많고 찾아오는 손님을 항상 따뜻하게 대접하는 것이 이들의 전통인지라, 방문할 때마다 친절하게 음식을 내놓고 권한다. 하지만, 물에 자신이 없어 아무 음식을 먹기도 겁나고... 그렇다고, 유엔의 이름으로 지역 군부대나 주민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환대로 내어놓은 음식에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도 못하고… 


특히, 현지 음식은 향이 좀 강하여 물이 필요하고, 겉들여 먹는 야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냥 물로 씻어 만든 샐러드이니 자신도 모르게 잔뜩 긴장된다. 때문에, 어떻게든 음식을 내놓지 않게 하려고 뜨거운 차 한잔만...”이라고 간청하지만, 때론 피치 못할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경우, 어영부영 편식하거나, 먹는 척해도 그들의 친절을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진퇴양난에 빠지기 일쑤였다.


‘카슈미르’ 산악지역 순찰 시 방문한 어느 여단에서 여단장과 오찬을 함께 하였다. 식사 후, 사과가 후식으로 나와 반가운 마음에 사과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약간 물기도 남아 있고, 세척 과정도 의심스러워서, 무디고 무딘 식탁용 나이프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사과를 깎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여 눈을 들어보니 20여 명의 군 간부 모두가 필자가 사과 깎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쓱한 표정을 지으니, 모두가 얼른 눈을 돌린다. 여단장이 웃으며 한국인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사과를 깎아 먹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라고 말해 싸한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무딘 칼로 끙끙거리며(?) 과일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이들은 과일을 통상 껍질 채 먹는다. 하지만, 필자가 굳이 깎아서라도 물에 씻은 과일을 피하려 했던 것은, 앞서 경험에서 보듯 ‘끓이지 않은 것’이나, ‘날 것’을 먹으면 예외 없이 배탈이 나니, 약간의 물기조차 무서워서다. 만약, 위생적이라면, 영양학적으로나, 환경문제로, 과일을 껍질 채 먹는 것이 국제감각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면역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은 마시기 전에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물

이처럼, 공포를 자아내는 이 지역 물속에는 '미생물' 못지않게 또 '석회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파키스탄이 장악한 '카슈미르' 지역은 주로, ‘히말라야’, ‘카라코람’, ‘힌두쿠시’ 등 3개의 산맥이 교차하는 산악 지역과 ‘시아첸’ 고원일대, 4~5,000m의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이런 고산지대에서 깊은 계곡 따라 콸콸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은 에메랄드 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석회석으로 물 색갈이 희뿌였다. 그런데, 이 물이 '카슈미르' 실지회복을 외치며 ‘카슈미르’ 통제선 가까이 건설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주민의 급수원이다.


카슈미르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에메랄드' 빛 계곡 물 

'이슬라마바드'는 인구 100여 만의 계획도시로 잘 정리된 구획에 커다란 저택이 많다. 때문에, 인근, '라왈핀디'에 본부를 둔 유엔임무단 근무자들은 이런 집을 통째로 월세로 얻어 산다. 그런데, 욕실은 현대식이지만, 샤워장의 샤워 꼭지가 물속의 석회질 때문에 허옇고 주변 물자국도 모두 허옇다. 


이 물로 샤워하면 머리카락이 뻣뻣하다. 어떤 이는 농담조로 매일 ‘머드팩’을 한다지만, 이 물을 마시고도 잘 살아가는 현지인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외지인은, 물속 미생물로 배탈이 나서 며칠간 죽도록 고생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물을 마시고, 요리한 음식을 장기간 복용하면, 석회질이 몸속에 누적되어 문제 된다. 아무리, 집이 좋으면 뭣하나? 기본적으로 물이 문제인데… 


필자가 임무단 재직 시, 이런 물 탓으로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긴장하였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 인디아령 '카슈미르' 지역 UN 감시 기지에서 근무하던 "크로아티아 군 장교가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구르며 엄청난 고통을 호소한다"라고 그의 동료들이 긴급하게 보고하여 왔다. 자체 통신망인 원격 무선통신으로 환자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하던 의무참모가 ‘요로결석’이라며, "물속에 있던 석회 성분이 몸속에서 침적되어 요로관을 막은 것 같다"라며, "상황이 긴급하다!"라고 보고하였다.  


카슈미르의 산간 지역의 도로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카슈미르'는 고산 산악지대다. 당시 유엔 임무단에는 의무용 구급 헬기가 없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이라면 파키스탄 군의 긴급 의무 헬기를 띄울 수 있으나, 하필이면 유엔 지원에 소극적인 인디아 쪽이어서 이게 가용치가 않았다. 게다가, 양국 간 항공 회랑 통과 문제도 걸림돌이고... 어쨌든, 양국 국경인 통제선 주변지역에는 변변한 병원이 없어서 '이슬라마바드' 본부로 후송을 해야 하는데, 도로가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로 매우 열악하다. 운전으로 거의 하루 종일 달려야 오는 거리인데, 마침, 발병시점이 주말 오후 시간이었다. 


유엔군 임무단은 눈 덮인 산악을 달리기도 하고, 흔들거리는 현수교를 지나가기도 한다.


시간적으로 인디아-파키스탄 간 양국 국경을 통과할 시간이 한밤중이 되어서, 양국 국경 출입을 통제하는 현지 부대장들과의 긴급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긴급 상황을 인지한 인디아 군, 파키스탄 군고 유엔군 간에 협조가 잘 되어, 우여곡절 끝에 거의 초주검이 되어 다음 날 도착한 그 장교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큰 병원에 입원시켰다. 후송에서 입원까지 그야말로 전시 작전 같은 분위기였다. 얼마나 긴장하였던지… 덕분에,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절감하였다.


원인은 물이었다. 그 크로아티아 장교가 무슨 영문인지 부임이래 생수 대신 현지 물을 그대로 마셨고, '석회질'에 주의를 소홀히 했던 게 원인이라고 의무참모가 보고하였다. "하다못해, 맥주라도 마셔야 했는데..."라고 하면서. 지나친 절약은 목숨까지 담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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