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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06. 2023

'핀란드' 사우나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정전감시단, 제6화)

핀란드 사우나

중과부적의 좌절을 극복한 핀란드


핀란드 사우나

유엔 평화유지임무(PKO)가 있는 지역은 거의 분쟁지로써 인프라가 열악하다. 이 때문에 평화유지 임무에 파병한 각국 정부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자국 군인을 위한 여러 가지 복지대책을 제공한다. 우리 한국군은 아직까지 그런 부분에 관심이 적지만, 여러 서구 국가의 사례 중에서도 핀란드의 지원 대책은 특이하다. 


유엔평화유지군 인-파 정전감시단 본부 

유엔 평화유지군 인디아-파키스탄 임무단 사령부 내 한편에는 근처에서 보기 드문 유럽식 목조건물이 하나 있었다. 핀란드 국방부가, 유엔 평화유지 임무(PKO)에 1명이라도 파견되면, 기술자와 자재를 보내어 지어준 '핀란드 장교 전용 사우나'였다. 임무단에 핀란드군 장교 3명이 있어, 핀란드는 이들이 ‘사우나’를 즐기도록 인디아령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있는 감시 기지에 각각 1개소씩 지어 주었다.  우리 군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 


사우나 내부

2021년, 아라비아 해상의 '청해' 부대원 수백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도록 내버려 둔 우리 국방부와 달리, 핀란드 국방부의 배려는 대단하였다. 6.25 전쟁 전사자의 유해를 끝까지 발굴해 가겠다는 미국 못지않다. 미국은 전쟁으로 성장한 나라다. 하지만, 유엔의 깃발아래, 함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유엔 평화유지군에서 일부 국가의 장교가 마치, 금수저 행세(?)를 하는 것은 타국 장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지휘에 고려해야 했다. 


얼마 후, 인도-파키스탄 통제선의 감시 기지에서 근무하던 핀란드 장교 한 명이 본부 참모로 들어오자, 그는 새로 부임한 필자를 그 사우나에 초청하였다. 핀란드에서 직접 가져온 목조건물로 내부 시설도 깔끔하고 운치도 있어, 무덥고 열악한 근무지에서 ‘짧지만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우나하는 동안 내심으로는 근무여건 개선과 ‘향수병(Home Sick)’등 우울증 예방, 효율적 근무, 자긍심 고취, 국가 이미지 개선 등 비용 대비 큰 효과를 거두는 정책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몇 년 전 인디아 쪽 '바라뮬라' 감시 기지에 있던 핀란드 사우나가, 전기누전과 과열로 소실되었다. 핀란드 정부가 즉각 '비용을 내고 복구하겠다'라고 했지만, 인디아는 같은 지역 내 자국군 사기를 고려하여 유엔의 부주의를 비난하며, 재건을 불허하였다. 유엔도 ‘특정 국가에 특혜’라는 인식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였다. 사실, 어느 한 국가의 군인만을 위한 시설을 유엔 기지 내에 만드는 것은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중과부적의 좌절을 극복한 핀란드

그런데, 핀란드 국방부의 사우나 제공 등, 핀란드군의 사우나에 대한 유별난 사랑은... 국민이 군부에 제공하는 승전 감사의 몫이다. 참고로, 핀란드는 인구 550여만 명에 사우나가 230여만 개나 있다 하니 사우나의 발상지답고, 사우나에 대한 핀란드인의 사랑이 유별난 국가이다. 


1939년 11월, 러시아는 40여만 명의 군대와 수 천대의 전차, 항공기로 핀란드를 침공하였다. 당시, 총인구가 300만 인 핀란드는 총동원령에도 불구하고 30여만 명이었지만, 전투병 숫자로는 1/3 정도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하지만, 핀란드는 좌절 대신, ‘궁즉통(窮卽通)’으로 맞섰다. 나라를 구하려는 의지와 지혜로 온갖 아이디어와 기술이 ‘세계 최초’라는 단어를 양산하였고, 결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패배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군의 희생과 봉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핀란드-러시아 전쟁시 핀란드 스키부대

이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활용된다. 눈 덮인 전장 환경에 맞게 ‘설상 위장’ 개념을 최초 적용하여, 설상으로 장비를 위장하고, 백색 군복을 입은 스키부대까지 등장하였다. 스키부대는 적의 지휘자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저격수를 적극 활용하였고, 많은 병력을 상대할 때는, 자신들이 평소 사용하던 스키로 적에게 몰래 접근하여 순간적으로 연발 사격을 가하고 사라지는 신보병 전술을 사용하였다. 스키라면 구 소련도 지지않는 나라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는 평원을 달리는 고속 스키부대이고, 핀란드는 비탈진 나무사이를 곡예하듯 내달리면서 저격하는 고난도의 기술로 상대에게 저격을 당하지도 않는다. 동계 올림픽의 '스키 크로스' 종목이다. 핀란군은 2인1조로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달렸다. 


핀란드가 개발한 원형 탄창을 적용한 러시아 군 따발총

당시, 이들이 사용했던 기습용 소총은 사거리는 짧지만 휴대가 쉽고, 속사가 가능한 기관단총이었다. 하지만, 연발 사격으로 많은 탄약이 필요하다는 야전의 요구가 이어지자, 이들은 기존의 탄창 대신 71발까지 장탄이 가능한 ‘원통형 드럼 탄창’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후에, 소련이 이 기술을 차용하여 원통형 탄창을 장착한 소총을 개발하였는데, 이게 ‘따발총’이라고 부르는 ‘페페샤’ 기관단총의 원형이다. 한국전쟁 간 중공군, 북한군도 소련이 제공한 이 장비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징으로 작전적 병력 운용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하였다. 혹독한 추위에서 전투를 수행한 핀란드군은 교대로 사우나하며 혹한에도 피로를 풀었지만, 참호 속에서 교대로 근무하던 러시아군은 혹한으로 얼어 죽은 자가 6만여 명이었다. 이걸 보면, 더운 나라에서 비싸게 운용되는 사우나가 군 복무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답이 될 듯하다. 사우나는, 이들에게는 생활관습 이상의 의미가 있는 시설이다.


우리 국군 병사도 굳이 핀란드 류의 ‘사우나’가 아니더라도, 아늑하고, 가정적인 병영 시설 - ‘어떤 형태의 편의시설’에서, 잠시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 성숙된 ‘스트레스’ 해소로, ‘왕따’ 등 후임병에 대한 비뚤어진 행위를 근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창의적인 사람으로 변모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경제력 수준에 맞지 않은 ‘사치'나 '방만한 경영’이라거나, “고생하러 군대에 갔는데 웬 개인 공간이냐?” 혹은, ‘군은 극한 상황에 도전하는 곳’이라며, 말도 못 꺼내게 하지는 말자. 저들을 위한 정책은 국가가 미래 주인인 우리 젊은이에게 해줘야 할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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