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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03. 2023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과, 다른 잣대를 가진 유엔장교들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3화)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

서로 상이한 유엔 등 다국적군의 참모업무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

필자와 함께 부임한 신임 단장은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하여 영어에 능통하였지만, 약 20여 년의 군 생활 중, 대부분을 부대지휘와 무관한 학교기관에서만 근무하였다. 야전보다 학교에 근무한 허술한 경력으로, 초기에는 각종 의전행사, 의사결정이나 업무에서 서투른 점이 매우 많았다. 때문에, 여러 가지 모습의 이런저런 도전과 반발에 직면하였지만, 그의 리더십적인 선택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웬만한 사건이나 환경조차 일절 대응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참고 일한다’는 것이었다.


유엔군 본부지원 인디아 군(좌)과, 파키스탄 군(우)의 유엔군 동, 하계 본부 이전 시 환영 의전 행사

그런 태도에 대해 필자가 나중에 사석에서 물어보자, 그는 “진담 반, 농담 반” 이라며 답하기를, “…. 원래 불평과 의심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매우 언짢았지만, 사실,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유엔 급여(영봉 15만 불 정도+ 주거, 출장비)가 자국의 급여에 비하면 너무나 큰돈이라 굳이 권위를 내세워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불평하지 않고 그저 참고 또 참았다.”라고 실토하였다. 이러한 그의 참을성은, 그의 전임자 이태리 군 소장이 오랜 군 생활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다혈질적인 기질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주위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였던 것과 대비되어, 이태리 장군에게 식상한 많은 간부에게 신임 단장은 훌륭한 인격자로 미화되었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던 것 같다. 그의 업무에 대한 다소의 부족함은 실제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바로 유엔이 요망하는 리더십이다. 유엔은 권위주의나, 상명하복 식의 리더십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동등하게 상호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부여된 직책과 권한에 따라 팀워크를 이루며 업무 하는 리더십을 원한다. 어차피, 세계 각국의 기여로 지원받은 인원들이다. 각각의 수준이나 능력이 너무 상이한 사람들이 ‘유엔 헌장’ 정신 하나로 뭉쳐 일을 해나가는 조직이다. 당연히,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엔에서는 비록, 일이 늦게 추진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인격적으로 상호 존중하고 규정대로 하였다면, 설령 문제가 생겨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같은, 유엔의 신종 관료주의(?)는 미국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국제기구에서는 효율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요란을 떨거나 남을 닦달거리며 일을 몰아쳐서 하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에서 말하는 국제화의 기준도 ‘인간존중’의 정신이다. 일보다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엔의 업무 스타일이다. 2018년 8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별세했다. 아프리카 세네갈출신인 그는 유엔의 평직원으로 시작하여 35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고, 많은 분쟁지 당사자를 타협으로 이끌어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점은 모든 이에 대한 '공손함'과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다. 그의 사례에서 보듯, 유엔은 ‘업무 효율성’보다 ‘인간 존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좀 다른 사례를 들어본다.

단장의 유엔 본부 출장으로 단장 대리근무를 하는 동안, 인디아령 ‘카슈미르’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많은 비로 도로 곳곳이 붕괴되고, 멀리 떨어진 '스카르두' 감시 기지의 통신 장비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반도만 한 광범위한 지역을 감시하는 우리 임무단에게 도로와 통신은 매우 중요하였다.


카슈미르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도로와 물이 불어난 하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험준한 산길은, 비나 눈이 오면 막히기 일쑤다. 하지만, 통신과장 (유엔 정규직, P-3)은 거의 4주 동안이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복구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고산지대인 ‘카슈미르’ 지역의 기후나 도로 상태가 열악하므로, 임시직인 현지인 정비인력을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현장에 파견하는 데 대해 큰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집중 호우로 무너져 내린 돌덩이, 그 여파로 꽉 막힌 좁은 도로

전체회의 도중 작전참모로부터 상황보고와 함께 이 감시 기지에 대한 문제를 보고받자, 부단장인 필자는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속한 보수 인력 파견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주저하는 그에게 다시 지시를 하는 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 올라갔던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민간인 통신과장은 자신의 ‘업무 소홀’보다 필자의 ‘권위적인(?) 지시’에 대해 ‘불편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후 임무단으로부터 필자는 구두 ‘경고’를 받았다. 일을 잘하겠다는 의욕보다 직원 상호 간의 이해와 화합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필자는 다양한 환경하의 국제규범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였지만, 유엔군으로 근무할 때는 우리 한국군 생활을 통하여 익힌 ‘임무 우선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정전상태의 한국 군인들은 항상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도록 교육되었다. 임무가 최우선이며, ‘나’보다 ‘우리’가, '부대'가 중요하고,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인간관계도 수평적 관계보다는'일사불란'한 상명하복식 수직적 관계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길들여진 우리 방식만을 국제사회에서도 고집한다면, 그건 개인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다국적, 다문화적, 다인종적 근무환경하에서 뭔가 어색할 것이다. 바로 그런 점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서로 상이한 유엔 등 다국적군의 참모업무

유엔 평화유지군 장교들은 '지휘 및 참모 활동 절차'에 따라서 각자 자신의 역할대로 업무를 수행한다. 많은 나토 국가 장교들은 나토사령부에서 근무했거나, 이라크나 아프간 등에서 다국적군으로 같이 근무하여 각 조직의  연합/합동 교리에 따른 지휘 및 참모 활동 절차를  잘 숙지하고 있다. 우리 국군 장교도 오랫동안 미군들과  연합 작전을 하고 있으니, 대부분 유사한 교리나 공감할 수 있는 군사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한국군이 급조된 다국적군이나 혹은, 유엔 평화유지군에 많은 기여를 하는 국가들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칠레, 우루과이 및 기타 아프리카 국가들 -  이들 군인과 연합 작전을 하면 어떨까? 지휘 통제나 팀워크가 잘 될까?  결론적으로, 유엔 회원국 장교들에 대한 지휘 통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 '지휘 및 참모활동 절차'가 서로 상이하여 서다. 유엔 임무단은 이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야전 예규' (매뉴얼, 각종 보고 양식은 물론 세세한 경우의 수까지 예시해 준다)에 따라, 계급과 직책별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매뉴얼에 없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부 단장으로  부임하니, 덴마크군  G 대위가 벌써 몇 년째 임무단 작전참모를 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했고…이 친구는 덴마크 예비역 상사로 전역 후, 정부에 실직 수당 수령 신청하러 갔다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유엔 임무에 가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얼마 후, 대위로 임명되어 왔다고 한다. 덴마크로서는 기왕에 낼 유엔 분담금이니 취업률도 올리고, 유엔에 기여도 하고, 그로서도 아는 게 군대 일이라… 하지만, 유엔 임무단으로서는 부사관 출신인 그의 지휘 및 참모 활동 능력 때문에 많이 조마조마했다.


예컨대, 양쪽 군대의 도발행위를 감시하고 정전 지속여부를 감독하는 우리 임무단에 대한 도전은, '치고 빠지는' 식의 도발이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호스트(Host)' 국가와의 업무 협조가 필수적으로, 먼저, 가까운 기지에서 근무하는 감시장교가 '현장 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본부에 보고하고,  본부는 다시 이를 검토한 후, 단장의 이름으로 유엔 DPKO(평화유지국) 에 보고하는 게 절차이다. 그렇게 하려면, 현장에 나가 있는 장교들의 전술적 식견이나 판단력이 중요한데... 많은 경우, 판단은 제각각이었다. 때문에, 야전 임무단 단장의 판단이, DPKO 본부 참모장교들의 의문을 사기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또, DPKO에 보고해야 할 내용을 자의적으로 보고하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지휘 및 참모절차가 미흡하였거나 교리와 교육, 부대 지휘경험, 그리고 리더십 등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럴 때 지휘관이 잘 모르거나, 우유부단하면 모두가 고생한다. 힘들었던 것은 부단장(참모장)이 오류를 지적하면 작전참모인 덴마크 소령은 자기네 NATO 군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한다. 그러면, 듣고 있던 동구권 출신 크로아티아 단장은, 그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인지, 그저 “유럽식으로 하자”는 편이었다. 


G 대위 후임으로 이번에는 우루과이 군 P 중령이 작전참모가 되었다. 이 또한, 같은 문제를 유발하였다. 결국, 유엔 DPKO에서 보고 미흡으로 조사팀이 나왔다. 아프리카 모 국가 출신인 그 역시 형식적인 조사로 일관하였다. 유엔 평화 유지 임무는 병력 공여국의 수준과 주요 직책 지역안배 개념으로 업무의 질적인 향상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전임, 전임 칠레군 소장은 단장으로 부임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감시단이 헤매면 호스트 국가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유엔 평화유지군 최대 공여국 1, 2위를 다투는 인디아와 파키스탄은 이런 점을 잘 알고 현장 대응에서 교묘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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