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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02. 2023

처음 경험한 무슬림 금식기간 '라마단'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3화)

육안으로 식별하여 시작하지만, 엄격한 '라마단'

5행의 하나인 ‘라마단(금식)’, 그리고 '박시시(용돈, 일종의 팁)'

한 달 금식과 3일 축제

라마단 '카림'(은혜로운 라마단)!



육안으로 식별하여 시작하지만, 엄격한 '라마단' 

이슬람 5행 중의 하나인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을 '신성한 달(神聖月)‘로 규정하고, ‘기도’와 ‘자선’을 동시에 곁들인다. 해 뜨는 아침부터 해 지는 저녁까지 어떤 음식도, 물도, 배우자와의 성관계도 금지하는 등 강력한 금식 기도가 이 기간에 행해진다. 이때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식욕, 성욕과 같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제하므로, 화려한 옷도 삼간다. 그리고, 말과 행동 그리고 악에 대해서도 내적 절제를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슬림은 낮시간 단식을 위해 해가 뜨기 직전 `수후르'라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해가 지면 밤늦게까지 이웃이나 친척을 초대해 `이프타르'라는 긴 저녁을 먹는다. 금식으로 육체적인 고통은 있지만, 오히려 기도와 자선의 시기인 것이다. 

 

신성한 달에 초승달이 뜨기 시작하면 라마단이 개시되고, 그때부터 사회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라마단' 개시 시간은 일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문제는 초승달이 뜨는 시간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초승달 관측으로 '라마단' 개시 시간을 정한다.(출처: 인터넷)

이집트에서는 초승달이 뜨기 전 날부터 이슬람 종교학교인 '알-아자르' 대학과, 종교부대표, 각국의 무슬림 대표들이 모여서 카이로에서 가장 높은 '모카탐' 산기슭에 있는 모스크의 첨탑에 올라 달 관측에 들어간다. 사우디 아라비아 역시, '메카'에서 초승달이 뜨는 시간을 기준으로 '라마단' 개시시간을 선포하지만, 전통적으로 몇, 몇 인사의 육안 관측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의 거의 1/4에 걸쳐있는 57개 이슬람 국가들은 상호 간 지리적 이격도가 워낙 커서, 라마단의 시작은 해당 국가의 권위 있는 종교 기관이 초승달을 관측한 뒤 시작을 선포하도록 되어있다. 예컨대,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사우디보다 하루 전에 시작하고 파키스탄은 하루 늦게 라마단에 들어가므로 동, 서 끝점 사이에는 이틀 정도차이가 난다.


5행의 하나인 ‘라마단(금식)’, 그리고 '박시시(용돈)'

필자가 이집트에 부임하였을 때 마침 5행 중에서도 ‘신을 기쁘시게’하는데 가장 ‘실천’적인 ‘라마단’ 금식 기간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 냉동고 등 몇 가지 전자제품이 필요하여 정부 면세점에서 이를 구입할 때부터 종교적, 문화적 충격이 시작되었다. 정부 관리인 면세점 매니저는, 느릿한 동작으로 돈을 받은 후 저녁 8시까지 배달하겠다며 약속하였지만 정작, 밤 12시 넘어서야 물건이 배달되었다. 너무 늦게 와서 은근히 화가 나 있었는데, 배달 직원들은 '웃는 얼굴'로 다른 주문보다 빨리 처리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박시시’(일종의 팁)를 요구하였다. 그들의 천진한(?) 태도에 정말 화가 났지만, 얼마 지나서 그 문화를 이해하고, 항상 매사에 급했던 우리 문화를 오히려 되돌아보게 되었다.


며칠 후, 집의 하수구 배관에 문제가 생겨서, 낮잠 (라마단 기간에 대부분 밤늦게까지 보내다가 아침에 잠을 잔다)을 잔다는 집주인을 깨워서 닦달거렸더니 수리공 2명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들은 하수구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어 시간 동안을 계속해서 꾸란 경전만 낭송하고 있었다. 경전 낭송을 방해하는 게 실례라 싶어, 꾹 참았는데 한참 후에야 슬금슬금 배관을 수리하고는, 또 ‘박시시’를 요구하였다. 언짢은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왜 자꾸 내게 추가적인 돈을 달랐는지?” 물어보았더니, “라마단’ 중에는 부자는 빈자에게 한없는 자선을 베풀어야 하고또 빈자들은 부담 없이 부자에게 자선을 요청하는 것이 관례라고 말해 주었다. 


‘부자는 빈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구절에 따라, 빈자가 부자에게 구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미 이슬람 국가들은 미국의 원조를 당연시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이 가르친 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 가르침인 경전을 읽는 것으로만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라마단이 끝날 무렵, 현지인 여비서 ‘마이’가 오늘은 잔돈을 많이 바꾸어서 퇴근하시라”라고 권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지나가는 빈자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라”라고 한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는 것처럼, 무슬림도 ‘라마단’ 기간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사람’을 대접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길에 군데군데에 많은 차들이 서 있고, 차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카이로'의 도로는 차선이 없어 차가 멈추면 사람과 엉킨다) 그리고, 돈을 받으면서 돈을 주는 사람에게 '알라(신)의 은총이 있기를' 축복해 주는 장면을 보았다. 필자의 차에도 누군가가 다가왔다.  


누추한 모습의 어린이와 할머니가 차 창문을 ‘툭툭’ 친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화를 내기는커녕 얼른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집어 그들에게 주었다. 구휼을 베풀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돈 받은 그들이 뭐라 중얼거리기에 뭐라고 그러냐?” 물으니, 알라()의 은총을 우리에게 빌어 주었다”라고 한다. 필자는 동전을 주니 영 마음이 불편하여, 작은 돈이지만 지폐를 주려 하니, 기사는 “그러지 마시고몇이나 더 올지 모르니 자기의 잔돈으로 주겠다며”, 그래서 약간의 돈을 주며 '잔돈으로 바꾸어 쓰라'라고 주었더니, ‘그래야 한다’는 듯 당연히 받았다.


약 4주간의 라마단 기간 마지막 10일간은 최고로 헌신하는 시간으로 무슬림은 그 기간 내내 사원 안에서 머무른다. 필자의 운전수와 비서는 라마단의 3주가 지나고 4주 째도 여전히 단식하며 출근을 하였다. 비서는 얼굴이 핼쑥하여 기력이 없었고, 운전수는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무슬림으로, 거의 빈사 상태여서 운전을 맡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유엔군 임무단에서, 출퇴근 시간마다 필자를 데리러 오던 파키스탄 군 운전요원도 꼭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들에게 휴가를 줄걸?!” 하고 후회가 된다.


한 달의 금식과 3일 간 축제 

꾸란에서는, '..알라를 믿는 너희에게도 단식은 의무라, 자제를 통하여 의로워질 것이라...'(꾸란 2:183-185) 

고난의 4주간을 지내고 라마단의 27번째 되는 날을, 예언자 모함마드가 꾸란의 첫 번째 경구를 받은 날로 여겨 '권능의 밤'이라고 하여 밤새워 기도한다. 그리고, 라마단이 끝나면, 바로 이슬람 경축일인 ‘이드 알 피트르 (Eid-al-Fitr)’라는 축제로 3일 동안은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서로 나눈다. 오랜 고행 끝에 얻은 기쁨이라 평상시 누린 모든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미덕을 배우는 것이다.


라마단 금식이 끝나면 축제의 음식으로 이들이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 따뜻한 차와 말린 '대추야자'이다. 이 둘은 매우 달콤하여 몸에서 에너지로 빨리 전환되기에, 금식을 지켜온 사람들의 빈 속을 달래주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 섭취 방식 탓(?)인지 중동이나 아랍에 가면 비만해 보이는 무슬림이 많다.  


축제가 시작되면, 빈자나 부자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양을 잡고 가족, 이웃끼리, 나누며 잔치를 즐긴다. 본격적인 식사는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양고기이다. 축제가 시작되자마자 동네마다 양들을 나무에 걸고 도축하는 걸 볼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중동 지역에서 이 축제일에 약 9천만 마리의 양이 희생된다고 하니, 한 사람이 양 1마리를 잡거나, 7명이 소 1마리, 혹은 낙타 1마리를 먹는 셈이다. 정부는 라마단 중에 빵(에이쉬 빵 6장: 미화 $1)과 양(한 마리: 미화 $100-120 정도) 값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정치가 어찌 되든 상관치 않던 국민들도 이들 값이 불안하면 소요사태로 돌변한다. 빵은 미국의 경제원조로 밀가루가 들어오면 해결되지만, 양고기는 기후조건에 따라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정부는 양 값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이집트 시장의 '파누스' 등불

또한, 이집트인 이슬람교도들은 기도와 신을 향한 길을 밝히기 위한 과정에서 라마단의 '성스러운 달' 전통의 일부로 '파누스'로 알려진 등불을 사용한다. 이는 작은 금속 조각을 힘들게 용접하여 만든 전통적인 랜턴이다. 이 등불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라마단 기간에는 발코니에 걸고 가족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할 때 저녁 식사 테이블의 중심에 둔다. 


이집트 '파누스'의 역사는 10세기부터 카이로에서 이슬람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던 파티미드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랜 전통 장식품이었으나, 최근에는 값싼 중국제의 침투로 기존 시장이 파괴되고 전통적인 장인들이 사라지며 예술적인 미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흥미로운 것은, '자제함을 통하여 의로워질 것이라'는 꾸란의 말씀(2:184)에도 불구하고, 라마단 동안 많은 무슬림은 낮시간 거의 온종일 집에 있으니 TV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고, 부유층들이 베풀어야 하는 자선용 쇼핑도 늘어난다. 특히,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일에는 새 옷을 입고 사원에서 예배를 올린 후, 부모와 가족, 친척을 방문하여 밤늦도록 축제를 즐기고, 서로 선물을 교환하기 때문에 의류, 완규류의 매출이 급증하고, 가전제품과 생활소비재 판매가 연매출 30% 이상 증가한다. 


'라마단 카림'(은혜로운 라마단)!

아무것도 모르고 난생처음 맞이하였던 그해 '라마단'은 필자에게 무슬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부터는 매년 돌아오는 '라마단'기간에는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 이웃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듯이, “라마단 무바라크(행복한 라마단)!” 혹은 라마단 카림(은혜로운 라마단)!”이라고 인사하길 권한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카히르 무바라크(당신에게도..)!" 라거나, "알라후 알크람(신은 더욱 은혜롭다)!"라고 응대할 것이다. 혹은, 반대로 그들이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걸어올 수도 있을 거다... 우리가 비록 비무슬림이지만, 그들 나라에서 산다면 이런 인사말로 라마단 기간 금식하고 수행하는 무슬림을 더욱 존중하고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과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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