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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03. 2023

이슬람 세력 확산에 기여한, 관용과 구휼의 '자카트'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4화) 

5행의 하나인 의무적인 자선 - 종교세(‘자카트’) 

새로운 방식의 부의 재분배와 사회보장제도 출현

개종과 세금 감면이 가져온 부메랑



5행의 하나인 의무적인 자선 - 종교세(‘자카트’) 

전 세계의 많은 문화와 종교는 자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의무화하지 않아, 자선은 그냥 적극적인 의지일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부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를 의무화하고 국가가 무력을 사용하여라도 자선을 추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모함마드는 '자카트'를 부자에게서 가져와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이슬람은 '자카트'를 제공하는 것이 부자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꾸란은 기도와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서도 '자선'의 중요성을 수차례 언급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의 원칙 중의 하나는 재화를 포함한 모든 것은 ‘알라(신)’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소유물은 일시적으로 맡겨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2015년 타게 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 왕의 무덤: (출처 조선일보)

몇 해 전에 사우디의 국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2경 8천조 원의 재산을 가진 엄청난 거부였지만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덤과 달리, 그도 역시 평민처럼 평소 다니던 사원에 있는 조그마한 무덤에 평범하게 묻혔다. 전 세계에서 엄청난 조문객이 운집하였지만, 장례식 자체는 모스크에서 간단한 추모의식을 가진 뒤 공동묘지에 안장되는 1일장으로 간략하게 치뤼 졌다. 수니파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동양과 다르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은 예언자 '모함마드'가 죽음을 예견한 뒤, 재산을 정리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메디나'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 돈을 주고 사후를 부탁하였던 모함마드의 모습을 따르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모든 것이 ‘신의 소유’라는 개념이 강하게 깔려있다.


그러니, 부자들도 소유한 것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마음의 정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식물이나 나무를 가지치기하여 성장을 촉진하는 개념이랄까? 부자를 더 키워주므로, '자카트'의 의미는 정화, 성장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빌 게이츠' 등 억만장자가 사회가 요구하는 곳이나 공익을 위하여 기부하여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정화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수령자들도 기부자의 따듯한 마음을 느끼고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증오 등 빈부 격차의 불편한 마음도 정화시켜 줄 수 있다.  


의무적인 자선행위 '자카트'(출처: 인터넷)

그런 의미로, ‘종교세’(자카트: 자선행위)는 신앙고백, 기도, 라마단, 하지(순례)와 함께 '신을 기뻐시게하는' 무슬림 5대 실천사항 중 하나로 '독실한' 신앙의 표현이다. 이슬람은 재화의 최종 소유는 ‘알라(신)’이라며, 기본적인 주거비와 직업에 필요한 비용 등을 뺀 1년 치 소득의 1/40(2.5%)을, 조세처럼 ‘알라(신)’이 원하는 일에 쓰도록, 1년에 한 번 자발적으로 ‘자카트’를 사원 등 종교기관에 맡겼다. 


참고로, '자카트'를 양 떼의 소유로 알아보면; 양이 40~120마리 사이이면 양 1 마리, 120에서 200 사이라면 양 2 마리, 200에서 300 사이라면 양 3 마리, 그리고, 300마리가 넘는 양에 대해 추가 100마리당 1마리를 '자카트'로 지불해야 한다. 다만, 40마리 미만은 '자카트'가 필요하지 않으나, 기부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요즘은 '자카트'를 종교담당 정부기관이 수납, 관리한다. 다만, ‘구빈세’라고도 하는 이 종교세는 절대로 모스크 건설 등 성전 건설에 쓰지 않고 자선금처럼 가난한 순례자나 결식자, 불쌍한 자나 빈민 구제자, 채무환급 불능자, 여행자 등 빈민구제에 써야 한다.(꾸란 9:60). 무슬림은 이러한 구제가 이슬람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각 개인별로 구제액수를 산정한다. 


새로운 방식의 부의 재분배와 사회보장제도 출현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족의 부족장이었던 ‘압둘 아지즈’가 건국하였다. 그는 1932년 근대 국가의 왕이 되었고, ‘와하비즘’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오늘날 사우디를 가장 엄격한 종교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국왕이 된 후, 석유 발견으로 돈방석에 앉게 되자,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위상을 강화하는 한편, ‘가문의 부족장’이라는 권위와 책임을 잃지 않았으며, ‘부족의 수장으로서 부족민을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는 사우디 부족의 오랜 전통에 따라, 전 국민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였다. 이 역시 '자카트'의 일종이다.


이슬람을 사회공동체(움마)의 지주로 삼고, 부족장이 모든 부족민의 대학 교육, 의료, 주택은 물론, 전기, 가스, 수도까지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이는 비단 사우디뿐만 아니라, 인근 왕정국가들도 부족장으로서 부족민들에게 무상 복지를 시행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비이슬람권 기독교와 자본주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처럼, '자카트'는 '알라(신)'의 명령으로 '모든 무슬림이 한 형제'라는 강력한 연대감을 심어주었다. 여기에는 물질적 구휼뿐 아니라, '측은지심이랄까?'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에게 위안을 주는 정신적 구호 행위도 포함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거나 불편한 장애인을 돕거나 공동체에 유익한 봉사를 하는 것도, 수입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정신적인 희사로서 '자카트'를 내지 못하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슬람 초기 제국의 확산 (출처: 네이버 포스트) 

AD 7세기 초반 이슬람 창설 당시의 세계 각 왕조국가들의 왕과 귀족은, 서민들을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모함마드에 의해 주창된 일반 대중에 대한 '관용과 규휼'의 '자카트' 방식은 자연스러운 '부의 재분배'는 물론,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회보장 제도'로 자리 잡은 셈이었다. 


또한, 전쟁에 대한 의식변화로, 이슬람은 정복지 서민에 대한 약탈은 금지하는 대신, 이슬람 군인들에 대한 보상은 정복한 왕국 재물의 4/5를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1/5만 메디나로 보내었다. 구태의연한 기존의 왕국이 이슬람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은 개종하여 이슬람을 받아들인 각 부족에게는 그들의 규율과 자치를 인정하여 주었고, 관용을 베풀었다. 그 결과, 모함마드 사후에도 그를 추종하였던 '칼리프'들에 의해 이슬람 세력은 계속 확산하였고 왕국은 급속도로 팽창되었다. (지도 참조)

   

살라딘에게 십자군 왕이 항복하는 모습 (출처: 인터넷)

참고로, 이슬람이 베푼 관용의 예를 들면, 1187년, 십자군 전쟁 동안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하던 술탄 ‘살라딘’의 이슬람 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십자군의 왕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동안 약탈과 살인을 수없이 자행했던 십자군에게 조차, '살라딘'은 패배자들이 '떠날지? 남을지?'를 선택하게 해 주었다. 서구는 그의 관용성에 놀랐다. 성경에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구절이 있었지만, 실행된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정작, 이슬람에게는 정복한 지역 주민을 학살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서 아픔을 겪은 아랍인의 가슴속에는 이들에게 깊은 증오심으로 남아있어, 지금도 ‘기독교와 십자군’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많다. ‘살라딘’ 사후에 이어진 서구 십자군 공격은 모두 실패하였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아랍 무슬림은, ‘살라딘’을 알라 신의 은총으로 서구를 이긴 이슬람 세계의 해방자이며, 구원자로 추앙하며, 서구세력이 이슬람권에 개입할 때마다 ‘살라딘’의 이름으로 처단하겠다고 외친다. 참고로, 살라딘은 무슬림 형제들이 독립국 건설을 거부하여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 출신이었다.


이와같이, 이슬람의 발흥이래 급격한 세력 확장과 정복을 이어 온 이슬람은, 개종을 통하여 무슬림으로 하여금 한 '형제'라는 강력한 연대감을 심어 주게 하였다. 심지어, 무슬림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이교도가 개종을 거부해도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는 ‘관용성’을 보였다. 다만, 개종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들의 종교를 갖게 하되, 그 대가로 ‘지즈야(인두세: 꾸란 ‘제9장 ‘회개’의 장에서 단 한 번 언급)’라는 가혹한 세금 부과 정책을 썼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꾸란은 ‘종교는 강제로 할지 말지니라(꾸란 2:256)'고 하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이교도를 처단하라(꾸란 5:33, 9:5)'는 상반되는 계시를 갖고 행하기도 하다.

 

개종과 세금 감면이 가져온 부메랑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는 1989년 소련군 철수로, 내전을 거쳐 신앙, 민족에 따라, 6개국으로 분리, 독립되었다. 1992년, ‘그리스정교’의 ‘세르비아’계와, ‘기독교’의 ‘크로아티아’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코소보’ 등에서 '무슬림의 씨를 말린다'며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과 남성 살해 등 인종청소를 감행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1995년에 발생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다. 비극의 배경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세금도 감면받고 정치적 배경까지 얻어, 인종적 주인 행세를 한 무슬림 개종자에 대한 증오심 탓이다. 이슬람 확장에 기여하였던 낮은 세금 '자카트'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던 것일까?


참고로, 독일 내 종교인은 천주교 2,100만, 기독교 2,500여만 명이고 신앙이 존중받는 국가였는데, 최근, 수년간 종교인으로 등록한 숫자가 1% 이상 줄었다 한다. 독일의 종교세가 급여의 9% 수준이라니, 이슬람의 2.5%에 비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독일에서 이슬람교도가 늘어나고 기독교 신도 수가 줄어든 게 종교세 때문이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천박한 자본주의의 '물질'이 종교라는 '신앙'세계를 압도하는 아픔이다. 천주교는 약간 다르지만, 기독교는 '십일조' 개념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불교의 ‘보시(普施)’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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