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Mar 04. 2023

평생에 한번은 가야 하는 의무, '하지'(순례)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5화)

이슬람의 성수(聖水) - '메카'의 '잠잠수'

하지'(순례)의 종착역 - '메카'의 '검은 돌'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순례와 '십자군' 전쟁

고행을 통한 마음의 평화



이슬람의 성수(聖水) - '메카'의 '잠잠수'

'하지'(순례)는 이슬람력 12월 8일을 전후로 6일 정도 전 세계에서 몰려온 무슬림들이 참여한다. 이집트 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근무할 때, 이슬람력 12월 '하지' 시즌이 시작될 즈음, 사우디의 왕족인 사우디 국방무관이 아랍어 서신과 함께 물 두 박스를 보내왔다. 서신을 읽어주던 비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가져온 성수(聖水-잠잠수)’라고 하면서 마실 것을 권했다. 하지만, 중동에서 외국인들은 아무 물이나 마시면 배탈 등이 나므로, 비서에게, “그냥, 네가 가져라라고 했더니,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제게 주시다니… 알라()의 축복이 있기를!” 하면서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하는 바람에, 영문을 모르는 필자가 되레 어리둥절하였다. 이 물이 그녀에게 귀하였던 것은, ‘꾸란’에 등장하는 물이여서다. 


구약성경에는 기원전 1,400년경,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정 부인인 ‘사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삭’을 낳았고, 애굽사람으로 그녀의 하녀였지만 그녀에 의해 아브라함의 첩이 된 ‘하갈’은 ‘이스마엘’을 ‘이삭’보다 먼저 낳았다(창세기 16:11). 늙은 나이의 ‘사라’가 ‘이삭’을 낳자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치도록 요구하여, 「…’아브라함’은 첩인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쳤다. ‘하갈’이 광야에서 갈증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러 기도하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갈’에게 샘물을 주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 약속하였다.」 (창세기 21:14-21 요약)


'잠잠수'의 위치와 샘물 구조. 좌측상단부가 검은 돌이 놓여있는 '카바'(출처: 인터넷)

'꾸란'에도 같은 내용이 등장하는데, 아브라함으로부터 추방된 ‘하갈’(아랍어 '하자르')과 ‘이스마엘’이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갈 때, 하갈이 엄청난 땡볕 아래에서 음식이나 물을 구하기 위해, 어린 '이스마엘'을 놔두고 좌, 우측 2개의 언덕 위로 7번을 뛰어다니다가 허탕치고 다시 이스마엘에게 돌아와서 소리 내어 통곡하자, 하나님의 천사(가브리엘)가 나타나서 ‘이스마엘’에게 '모래바닥을 문지르도록(일설에 의하면, 발로 구르도록) 하여' 그곳에 물을 주셨다고 한다. 그때 바로 그 샘물이 솟아난 땅이 ‘메카’에 있는 ‘잠잠’ 지역이다. 앞에서 기술한 대로, 그 샘물을 ‘잠잠수’라 부르는데, 사막 한가운데지만 좌우 1~3m 크기인 이 우물에서는 지금도 지하 31m 아래에 찬물이 솟아난다. 이곳은, 예로부터 '메카'를 지나는 대상(隊商)들의 휴식처였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장례식 후 성경 속에서 사라지지만, 수천 년 뒤에 창시된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서는 ‘아브라함’ 이후의 자손들이 계속 등장한다. 꾸란은,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및 여러 종족에 주어진 모세, 예수 및 선지자를 믿는다. 우리는 이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꾸란 3:84)고 적시하고, ‘아브라함은 유대교도 기독교도 아닌 성실한 무슬림으로, 또한 우상숭배를 한 분도 아니었노라.’(꾸란 3:67)고 한다.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하지'(순례)의 종착역 - '메카'의 '검은 돌' 

메카의 '알 하람' 모스크. 타원형 광장 중앙에 놓인 '카바'와 그 주위를 도는 수많은 순례객 (출처: 나무위키)

꾸란에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물이 솟은 장소를 기념하여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함께(?) ‘카바’ 신전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카바'(정육면체라는 뜻)는 화강암 건물로 그 자체로 '카바' 신전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성스러운 '검은 돌'이 보관되어 있다. 성스러운 곳을 표시하고자 건물 외벽에는 '키스와'라는 검은색 비단천을 드리우며 금실로 꾸란 구절을 새겨 놓았다. 후세 무슬림들은 '하갈'이 물을 얻기 위해 뛰어다닌 '사파'와 '마르'라는 2개의 언덕을 포함하는 '메카'지역에, '검은 돌'이 놓인 '카바'를 둘러싸는 모스크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알 하람' 모스크를 건설하여 이슬람의 제일 중요한 성지로 만들었다. 


잠잠수를 마시려는 순례객들

그리고, 원래, '잠잠' 우물은 '검은 돌'인 놓인 '카바'에서 불과 20여 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하지'때, '검은 돌'을 도는 순레자에게 어려움을 주자, 1960년대 사우디 정부가 수많은 순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잠잠 우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물을 생산하고, 이물을 순례객들에게 대량 제공하고 있다. 


순례자가 ‘하지’ 기간에 ‘메카’에 도착하면, 먼저 검은 휘장에 가려진 직사각형의 검은 돌을 모신 '알 하람' 모스크(연면적 약 18만 평방미터로 50만 수용가능 입구만 64개)의 광장 중앙에 놓인, ‘카바’ 신전으로 간다. ‘카바’ 신전은 모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한 후, 알라(신)를 모셨다. 거기서 검은 휘장에 가려져 있는 '카바' 신전에 놓인 성스러운 '검은 돌'(하자르 알 아스와드)에 입을 맞춘 후, '카바'를 반시계 방향으로 빠르게 4번, 천천히 3번, 총 7번을 돌아야 한다. 만약, 횟수를 빼먹거나 제대로 못하면 순례 자체가 무효가 된다. 그 다음, ‘잠잠’이란 샘물을 마셔야 한다. 이어서, 모함마드가 메카를 점령한 뒤, 모함마드가 속한 ‘꾸라이쉬’ 부족이 하던 관습대로 ‘카바’ 신전의 온갖 잡신을 제거하고, 악마에게 돌을 던지며, 양, 염소 등의 제물을 바친다. 이게 모함마드가 참배하고 돌아본 코스로서 이런 행위가 순례의 의식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메디나’에 있는 모함마드의 묘를 방문한다. 따라서, ‘메카’는 무슬림 순례자가 꾸란에 따라 행하는 종교적 의무의 최종 목적지이다.  


5행의 하나인 '하지'(순례)와 무슬림의 유대감

무슬림은, '6신(6信)' 중의 하나인 '천사에 대한 믿음'으로 '가브리엘(Gabriel)'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 ‘계시’를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내쳐진 목마른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샘물을 주었으니, 이는 ‘하지'(순례)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라마단’ '단식'은 모함마드에게 '꾸란'을 가르친 ‘가브리엘’ 천사의 '신성한 달'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니, ‘라마단’과 ‘하지’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다. 원래, ‘성지 순례’는 '예루살렘'을 찾는 유대교에서 나왔지만, 이슬람도 '하지'(순례)를 실천사항으로 강조하고 신체 건강한 남녀 성인 무슬림은 반드시 일생에 한 번은 선지자 '모함마드'가 태어난 성지 '메카'를 찾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하지’로 '메카'에 순례를 할 때에는, 국적 불문 무슬림 남성이면 누구나 회색의 ‘이흐람’을, 여성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옷이 날개’ 이듯이, 옷은 빈부나 신분의 표시하는데 모두가 같은 색깔로 같은 종류의 옷을 입는 것은, 세상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신 앞에서 모두가 동일하다'는 평등사상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회색 옷이 쉽게 때를 타서, 조금 못 사는 나라는 진한 회색 등 때를 덜 타는 색깔을 선호하여 빈부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원래는 호화롭고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 이처럼, ‘하지’ 기간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백만 무슬림이 똑같은 의상을 입고 '알라(신)'의 계시를 되뇌며 불평 한마디 없이 함께 어울려 행사를 치른다. 대규모 군중이 똑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서로 간에 어떤 일체감과 유대감 없이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모든 무슬림은 ‘하지’ 기간 중에 성지 '메카'를 찾으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연중 수용 가능 인원을 고려하여, 연간 250여만 명을 각국의 무슬림 인원수에 비례하여 ‘하지 참석용 비자’를 발급한다.  예컨대, 무슬림이 2억 명인 인도네시아는 약 22만여 장, 파키스탄, 인디아가 각각 17만여 장이다. 이 정도면 대략 계산해도, 매년 250만 명이 60년 동안 찾는다면, 전세계 16억 무슬림이 60세 평생에 한 번은 '하지'를 할 수 있다.


'하지' 기간 중에, 사우디 종교경찰이 '메카' 출입을 감독하여 불신자는 입장이 불가하고, 여러가지 안전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 순례 행사에 워낙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밟혀 죽는 사고가 매년 빠지지 않고 TV에서 속보로 나온다. 사고의 원인은 주로 이 '검은 돌'에 입을 맞추는 일 때문이다. 하지 순례 기간에는 너무 사람이 몰려들다 보니, 이슬람 위원회에서 "반드시 '검은 돌'에 입 맞출 필요가 없이 손만 그쪽으로 뻗어도 순례로 인정된다"라고 강조하지만,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성지에 와서 검은 돌에 입을 맞췄던 전례 때문에 모든 이슬람 신도들은 이 돌에 입을 맞추고 싶어 한다. 수백 만 명이 들어찬 신전에서 서로 '입을 맞추겠다'라고 '검은 돌'로 달려들면 금방 대오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은 따닥따닥 붙어서 움직여야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순례객들이, 줄지어 '카바'를 도는 동안 누군가가 힘이 부치거나 잘못하여 쓰러지기라도 하면, 미처 경고할 틈도 없이, 마치 도미노처럼 연달아 서로 넘어지면서 계속 밀려오는 인원에 의해 수백 명이 밟혀 죽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하지(Hajj) 순례기간에 '메카'의 '카바'신전에서 무려 2,400여 명이 깔려 죽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고, 지난 1990년에도 순례자들이 서로 얽히다 넘어져 2,000명 가까이 사망했었다. 우리나라도 2022년 이테원에서 이런 류의 참사를 경험한 바 있다. 


순례와 '십자군' 전쟁

전쟁을 선교의 영역으로 알고 정복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던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의 충돌 지점은 ‘십자군 전쟁의 중심이 된  예루살렘이었다. 로마 제국이후, 기독교인은 기독교 발상지인 ‘예루살렘’에 대한 '성지 순례'를 종교적인 의무로서 순례하였다. 하지만, 이슬람은 모함마드의 창시이후 계속 확산되다가 제2대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을 차지하자, 자신의 성지라며 예루살렘에 대한 기독교 순례자의 진입을 통제하였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2대 칼리프 '우마르'(출처: 인터넷)

사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과 '예수' 등 여러 선지자의 활동 무대였으며, 예언자 모함마드도 이곳에서 천상에 다녀왔다고 전해지는 등 3 종교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예루살렘'의 바위의 황금 돔 '알 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의 가장 큰 성지인 '카바' 신전이 있는 메카의 '알 하람' 모스크와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모함마드의 무덤)'와 더불어, 이슬람 3대 성지이기도 하다. 


순례자의 길이 막히자, 기독교의 교황은 서구의 각 영주에게 ‘이슬람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탈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11C 말- 13C 말까지 약 200여 년간 8차례에 걸쳐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서구와 아랍의 전쟁이었다. 당시 교황은, ‘카놋사의 굴욕(AD 1077)’사건에서 보듯이, 종교적 권위(신권-교황)가 세속적인 권위(왕권)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중 자행된 무차별한 학살 등과 ‘십자군 전쟁’에서의 패배로 민심은 신권을 떠났고, 결국 왕이 교황을 유배하는 ‘아비뇽의 유수(1309-1377)’로 이어져 신권은 쇠락을 길을 걷게된다. 순례로 인한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유럽의 역사가 바뀐 셈이다.


고행을 통한 마음의 평화

옛날, 말과 낙타밖에 탈 것이 없던 무슬림에게 ‘하지’는 종교적인 의무로 '신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지만,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부터 멀고 먼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무슬림은 ‘순례’를 가장 중요한 실천 의무로 간주하고 최상의 영광과 보람으로 여겼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순례를 떠난 이들은 '고행'을 겪으며 자연스레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지리적인 멀리 떨어진 이슬람 각국은 순례를 통하여 이슬람 문화가 교류되어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에서는 실제, 순례를 수행하고 온 사람의 이름 앞에는 반드시, ‘순례를 수행한 사람’이라는 뜻의 경칭인 ‘하지’를 붙인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는, 이 경칭은 오늘날에도 대통령 직함 앞에 놓을 수 있는 최고의 직함이며, 순례자가 돌아오면 온 마을이 대축제를 벌이며 그를 환영한다.


이슬람의 이런 사회적 예우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순례는 영광의 쟁취라기 보다 ‘나 자신을 오롯이 다시 생각하는’ 고행길이다. 기독교 순례자의 성지 순례는 ‘그간 지은 죄를 속죄받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처음, '고행길'로 순례를 시작한 이들은 수도자와 성직자였다. 그들은 주로 예루살렘에 갔으나, 십자군 전쟁 패배 이후 긴 세월 발길을 돌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 스페인 '콤포스텔라' 대성당

요즈음, 기독교(구교)의 유명한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매년 50여만 이상의 순례자가 각지에서 모여든다. 긴 시간 혼자서 험한 길을 걷는다는 게 쉽지 않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중 상당수는 딱히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길을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길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내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길을 걷는 모든 고행의 시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순례를 잘 요약한 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독교 고전서적인 '존 번연(1628~1688)'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으로,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불후의 명작이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와 많은 이들이 관람하였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순례자 '크리스천'이 여행간 마주한 여러 사람과 상황들은 '종교를 넘어서 살아가며' 접하게 될 상황이지만, 순례의 최종 종착지로 그가 찾아가는 '천성(하느님)'은 자기의 이상향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슬람 세력 확산에 기여한, 관용과 구휼의 '자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