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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07. 2023

이슬람 공동체 '움마', 그리고 가문의 명예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7화) 

'움마'의 한축 '부족'과 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족장 

움마’(이슬람 공동체)의 또 다른 한축 '이슬람' - 이슬람 ‘원리주의’ 사우디 왕실의 ‘와하비즘’ 

부족주의와 가문의 명예 

좋은 가문 출신의 협조원과 방위 산업 장비 수출 활동



'움마'의 한축 '부족'과 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족장 

부족의 '움마'에서 국가로 건국한 아랍연맹 22개국은 거의 모두 왕정이나 독재국가다. 이들 중, 쿠웨이트, 콰타르, 오만, UAE, 사우디, 바레인 등의 왕정국가는, 기존 ‘부족’과 이슬람이 결합한 ‘이슬람공동체 (‘움마’)’로 형성된 전형적인 ‘가문 중심’의 권력체제이며,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대표적인 부족국가이다. 


‘사우드’ 족의 부족장으로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였던 ‘압둘 아지즈’ 왕은 ‘와하비즘’이라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오늘날 사우디를 가장 엄격한 종교국가로 만들었고, 석유 발견으로 돈방석에 앉게 되었을 때도, ‘가문의 부족장’으로서 '부족민들을 먹여 살리는’ 사우디 부족의 오랜 전통에 따라, 전 국민에게 대학 교육과 의료, 주택은 물론, 전기, 가스, 수도까지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이처럼, 사우디와 걸프만 아랍국(GCC) 국가의 왕들이 부족장으로서 부족민들에게 보편적 무상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은 비이슬람권 기독교와 자본주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족주의가 갖는 문제 또한 적지 않다. 다음은, 사우디의 ‘압둘 아지즈’ 관련 기사이다.

「…. 1953년에 사망한 그는 왕실의 안정을 위해 ‘부자상속’이 아니라 ‘형제상속’이라는 유지를 남겨, 사우디 왕실에서, 형제세대의 왕위계승이 끝나기 전에 손자세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덕분에 ‘압둘 아지즈’의 36명의 아들 중 6명의 형제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지만, 세월이 지나 왕위 계승이 가능한 이들 형제들도 이제는 모두 늙어 노인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압둘 아지즈’의 장자였던 2대 ‘사우드’ 국왕이래 지켜오던 형제상속은, 2017년 왕위계승 위원회가 현 ‘살만’ 국왕의 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왕세자로 임명하며 끝났다. 그 사이 왕자와 공주는 15,000여 명이 태어났다….」 (조선일보, ‘신중동 천일야화’, 인남식 (2016. 3. 16) 요약)


남은 문제는 왕족들의 생계 문제다. 사우디 왕정은 수 천명에 달하는 왕손들의 생계를 위해 국방 등 국가사업에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우디 군은 미국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백화점식’으로 보유하며, 어떤 장비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창고 속에 보관되어 있다. 사우디 군의 무기체계는 그 필요성보다 왕손들 로비의 결과물이었다. 왕손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군 규모에 비해 장비가 많이 도입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왕실은 여전히 고루하다. 미국의 안보 우산과 고유가에 부른 배를 두드리던 시대는 지났지만, 부족주의는 이들의 근간이다.  


움마’ (이슬람 공동체)의 또 다른 한축 '이슬람' - 이슬람 ‘원리주의’ 사우디 왕실의 ‘와하비즘’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부족에 ‘와하비즘’을 도입하여 형성된 ‘이슬람 공동체(움마)’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와하비즘’은, 이슬람 테러조직에 자극을 준 ‘이슬람 극단주의’의 사우디 버전으로, 한동안 국제사회에 테러 공포를 몰고 왔던 시대착오적인 ‘수니파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 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슬람국가(IS)가 중동지역 정세 불안과 서구 무슬림 테러의 정점에 섰을 때,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왕실의 일부 수니파 원리주의자 왕족들이, 역시 사우디인으로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는 물론, IS에도 자금 지원과 후원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이들 왕실은 즉각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그들이 같은 이념을 공유한 테러집단을 지원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와하비즘'을 따르는 테러리스트 '이슬람 국가'(IS)

기득권층인 이슬람 왕족들이 '알카에다'나 'IS' 같은 테러 조직을 후원하였다는 게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진정한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사우디, 카타르 등의 아랍 왕국의 사상적 배경은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즘’인데, 그 원조는 13세기 경 발전된 '수니파 원리주의'로 이슬람 세계를 ‘칼리프’가 통치하는 이슬람 제국 건설을 목표로 하며,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로 율법과 종교 복고주의적 성향이 강한 살라피즘이었다. 


이 때문에, 왕족 중 일부는 자신이 속한 왕국이 ‘이교도 (서방)와 거래하며’, 알라(신)의 율법이 아니라 ‘사람이 통치하는 가짜 이슬람 국가’이기에, 이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들 이외의 사우디 등 아랍 왕가들의 일부세력은 IS가 성장하기 전부터, 그 모체 세력을 지원하였다. 그 이유는, 이라크,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IS세력이 더 커지는 데 대한 염려보다는, 그들과 결이 다른 시리아와 이라크 내 '시아파' 정권의 몰락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 절정기이던 IS격퇴를 논의하였을 때에, 사우디 왕실은 IS퇴치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IS가 몰락해 가자, 그 직전에서야 트럼프의 미국과 1,100억 달러 상당의 무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미국은 서구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핵 협정을 파기하였다. 이들은 IS를 버리고도 이란 등의 시아파 견제에 성공한 듯하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아프간이나 중동에 대한 무신론적 공산주의 소련의 사상적인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이이제이 (以夷制夷)’ 전략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인 ‘와하비즘’을 전폭 지원하였다. 하지만, 당시 인물들 모두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로서 반미활동을 하고 있으니, 미국이 이들의 세력을 키워 준 셈이다. 한 때,  IS는 무자비한 테러와 잔혹한 수법으로, 국제적 관심을 끌었으나 이제는 이슬람 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부족주의와 가문의 명예 

우리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중요하지만,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오랜 전통인 부족주의적 ‘가문의 결속력’을 중시하였다. 이는 비단, 사우디 같은 왕정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집트 같은 공화국도 오랜 군부독재로 국민 주권주의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여, 권력자 집안 간의 인맥 형성은 여느 왕국에 못지않다. 이처럼, 무슬림에게는 부족별로 대표되는 가문과의 관계가 중요하며, 부족이나 가문에 대한 명예심도 그러한 전통의 한 예이다. 


가문에  대한 명예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들의 이름을 보면 이해가 된다. 자식이 부모의 성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름까지 공유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아랍인들의 이름에는 성 (姓, Last name) 보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조상들의 이름을 포함한다. 예컨대,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는 현재의 사우디 국왕이다. ‘살만’은 그의 이름이고 ‘빈 압둘 아지즈’는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며, ‘압둘 아지즈’는 사우디 왕국의 건국자이다. ‘알 사우드’는 사우디 가문이라는 뜻이다.  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는 사우디 가문의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라는 뜻이다.


맨 앞이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First name)이고, 그다음은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가문의 이름이다. 가끔은, 할아버지의 이름 그다음 조상 이름 등등으로 이어져서 이름이 20개가 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경우이름이 너무 길어 이름 적는 칸이 모자라 여권이나 행정서류에 다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름의 발음대로 스펠링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아 서구권에서는 테러범 등을 식별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이들은 개인보다, 부족의 ‘명예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므로,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집안 구성원 개개인의 잘못에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자신들끼리는 부족, 집안 간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놓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혈통주의’는 같은(?) 뿌리를 둔 유대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구약성경을 보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선지자의 관점에서 ‘여호와’와 관련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다분히 율법적인 부분과 ‘야곱’의 자손인 12지파의 역할 등 혈통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만 성막 안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양을 키우거나 농사를 짓지 않고도 제물을 받는 제사장으로서 특권층이었다. 


이슬람의 수니파나 시아파도 무함마드의 혈통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자손이 아니어도 그의 ‘꾸라이쉬’ 부족 출신이면 무조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무나 ‘이맘’이 될 수 없고, ‘칼리프’가 될 수 없었다. 항간의 ‘금수저’ 논란처럼 출신 부족이나 가문이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가문이나 혈연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내 가족, 내 집안 등을 자신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두 나의 소유와 연결시킨다. 즉, 부족의 일원으로 가문의 명예를 곧 자신의 명예로 알고, 가문의 이익에 사활을 건다. 최근,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이복형을 세계 최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사장으로 앉혔다. 그리고, 정부 각 분야의 고위직을 그의 측근들이 독점하였다. 이제, 사우디 왕국은 국가라기보다 그와 그 가문의 사유 재산에 가깝다. 모두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이처럼, 아랍국가에서는 부족 중의 누군가가 고위직에 오르면, 그 부족 사람들이 함께하며, 그들만의 인간관계는 장관급 인사까지 움직인다. 가문은 비즈니스의 매개체가 된다. 조폭이나 패거리 정치처럼, 부족과 부족이 얽히면 때로는, 거짓과 부정, 그리고 부패까지도 용납될 정도로 집안이나 가문에 대한 결속력은 유별나다. 이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과 의무에도 나타난다. 부모를 봉양하는 불문율이 그 예이다.


무슬림들은 결혼을 양 가문의 결합으로 간주하여, 연애보다 중매로 결혼하며, 결혼에 부모의 허락은 절대적이다. 부모와 같이 살아야 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가족 문화는 철저하게 집안 중심적이다. 이들은, 여동생이나 누나가 가문의 명예를 떨어뜨리면, 집안의 이름으로 아버지나 오빠가 대외에 알리는 방법으로 가혹하게 처리한다. 전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일종의 꼬리 자르기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에 벌어지는 ‘명예살인’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약간은 알 것 같다. 한 때, 파키스탄의 일부 법원에서는 이런 행위를 정당하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이제는 용납하지 않는다)  


필자도 어릴 적에 무슨, 무슨 김 씨의 무슨 무슨 파에 속하는 ‘집성촌’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사촌이었고 육촌 형제들이었다. 모두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 소사를 공유하였다. 집안 어른들은 항상 “우리가 남이가?”라며, 족보와 전통, 그리고 가문의 이름을 들먹거렸다. 구성원 중 누구 하나가 잘 되면 집안의 자랑이었고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되길 기대하였다. 반대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집안 어른들은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거나, “남사스럽다”라고 바깥출입을 한동안 자제하는 등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이나 가문의 명예가 때로는 목숨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하였다.


좋은 가문 출신의 협조원과 방위 산업 장비 수출 활동

필자가 이집트에 근무할 때, 이집트 공군에게 야간 '헬리패드', '활주로 청소차' 등 특장차와 일부 탄약을 수출하였으나, 무기체계 분야는 제한되었다. 그런데, 아랍 국가들은 엄밀히 말하면 큰 부족이 국가권력을 잡고 있는 가문 중심의 권력체제라고 보면 된다. 사우디의 사우드 가는 말할 것도 없지만, 비록 이집트의 파루크 왕가는 몰락하였지만, 군부출신인 나세르, 사다트, 무바라크 등의 대통령과 연결된 가문이 있으며, 가문의 주요 인원을 협조자로 활용하면 그들의 좌, 우, 상, 하 관계 인맥이 장관급 인사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된다. 


한국이 개발한 장사정 자주포 K9

필자에게 다행히 주재국 방산부 장관의 가까운 친척이 협조원 노릇을 해주어, 우리는 친 삼성 성향의 방산부 장관과 다양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갔다. 필자의 협조원은 장관에게 우리의 K-9 자주포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였다. 운이 좋게도 장관은 삼성제품에 대해 무한 신뢰를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구매의사는 앞섰으나 늘 빠듯한 예산이 문제였다. 어쨌든, 이런 과정이라면 무관은, 정부 대표자로서 우리 측 인원을 상대국 관리와 만나게 해주는 역할만 해주고 더 이상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당시, 이집트 방산부 장관의 고민은 스웨덴의 '바마스' 회사로부터 수천만 달러를 주고 수입한 사거리 40Km급 장사정 견인포(차량이 끌고가는 대포)를 어떻게 자주포(전차처럼 자체 주행)화할 것인가였다. 자주포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T-55 전차 차체를 사용하여 포신만 올리려 하였으나, 시험 사격 도중 포신의 반동으로 전차 차체가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그 바람에 기술국장 등 몇 명이 징계를 받을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이들은, 결국 필자가 제시한 K-9 자주포 홍보용 자료를 보고 K-9 차체를 활용해 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얼마 후, 지금은 '한화 디펜스' 소속이지만, 당시에는 '삼성 테크윈' 소속의 K-9 기술자들이 이집트에 와서 그 해법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차체와 포탑 간 기술적 간섭으로 인하여 추가적인 비용 발생 문제가 생겼다. 그러자, 삼성은 내친김에 40Km인 K-9 완제품을 수입하면, '탄약과 더불어 그런 저런 비용을 모두 감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였으나, 이집트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제시한 이집트의 대응은 자신들의 '천연가스를 물자로 주겠다'라는 것이었고, 삼성은 이마저도 수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양국 간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해가자, 방산부 장관은 필자와 우리 기술자들에게 '200 군수공장' (주재국은 구 소련식으로 무기 계열별로 군수공장 명칭을 부여하며, 200은 기갑장비 공장임)을 보여 주었다. 이는, 이스라엘을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조치였고 장관의 방산협력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 공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낡고 후져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사업이 진행되어가자, 방산부는 더 욕심을 내어, 미국의 군사원조로 제공받은 미국제  155미리 자주포(M109A2)의 성능향상 사업까지 의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동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미국이 제공하는 군원 자금 등이 엉퀴면서, 성사직전까지 갔던 K-9 자주포 수출도 덩달아 무산되었다. 이를 보면, "방산 수출은 한 건, 한 건 차분하게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이다. 이후, 긴 시간이 흘렀다. 이집트 군에 대한 K-9 자주포 수출은 2022년에야 이루어졌다. 그것도 한국이 많은 자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참고로, 중동 지역에는 어느 가문 사람으로 누구, 누구를 잘 안다며 협조원 노릇을 자청하고 나서는 수많은 예비역 장교와, 상사원들이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협조원으로 대우를 해 주면 아무 데서나 무관 이름을 팔고 다니는 껍데기들도 수 없이 많으니, 항상 고위직을 만나게 해 주던지, 아니면 실적을 올릴 수 있는지 여부로 신중하게 선별한 뒤, 방산 관련 자료를 제공하면서 적절히 운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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