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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08. 2023

이슬람 경전 '꾸란'과 성경, 그리고 '샤리아' 율법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8화) 

경전 '꾸란'

'꾸란'과 성경

양대 신성(神性)의 대립 - 정복과 선교

'샤리아' 율법



경전 '꾸란'

우리가 어릴 적 이슬람 경전을 '코란'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는 이란 식 발음이다. 아랍어로는 '꾸란'이다. 

'꾸란'은 무함마드에 의해 옮겨진 유일 신인 ‘알라(신)의 말씀’ (계시)를 집대성한 것인데,「’알라(신)’이 편의상 무함마드라는 '예언자'의 입을 통해 신이 말하는 형식이거나, 혹은, 무함마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자들에게 저주나 조소, 질책 등 감정을 표시하였다는데, 풍자도 있고 유머도 있다고 한다. 절대로 1인칭으로 말하지 않고, 무함마드를 2인칭으로 항상 칭하였다.」 


이처럼, 꾸란은 ‘무함마드’가 무아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구술했다는 데서 유래된다. 무함마드 계시 당시의 말씀은 거의 20여 년이나 조금씩 간격을 두고 지속되었는데, 이 말씀들이 그대로 획 하나, 점 하나 틀리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오므로, 무슬림들은 이를 진정한 신의 말씀으로 알고, 절대적으로 순종한다. 여기에는 종파 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꾸란에는 ‘알라(신)께서 무함마드에게 책을 내려 주셨다’라는 구절이 등장 (꾸란 3:7, 18:1) 하지만, 정작 무함마드가 죽었을 때까지 ‘꾸란’이라는 책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함마드 생존시기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꾸란 사본이 2015년 7월, 영국 ‘버밍엄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어떤 이들은 ‘무함마드는 글을 쓸 줄 몰라’ 그가 계시를 받으면, 아내 ‘카디자’가 그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는데, 그게 꾸란’이라는 설도 있다. 


이슬람 경전 '꾸란', 신약성격만 하다.

또 다른 설은, 「제1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가 무함마드의 제자들이 나뭇잎이나 돌 등에 새겨놓고 암기하였던 언행록을 모두 수집하여 책으로 묶으려 했지만, 이들은 ‘알라(신)이 좋아할지’ 여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AD 653~4년 경이되어서야, 비로소 제3대 칼리프인 ‘우스만’이 무함마드의 생전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 ‘말씀을 기록한 책 (‘꾸란’의 의미가 ‘낭독’한다는 뜻)’이라는 뜻인 원본을 만들었다. 그 후, 원본 꾸란은 차츰 보완을 거쳐 9세기경에야 비로소 발간되었다」는데, 꾸란의 크기는 신약성경 크기만 하다.


후세 사람들이 꾸란을 편집할 때, 역사적 흐름에 따라 기술하지 않고, 장 (章, 수라)의 길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배열하였다. 즉, 제1장을 제외하고 제2장부터는 제일 긴 장을 먼저 기술하고 제일 짧은 장을 맨 나중에 하다 보니, 장의 순서에 따라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각의 장의 절이 계시된 절대적인 연대와 전후관계 및 배경파악이 중요하다. 


꾸란은, ‘7세기 아랍어’를 고집하면서 번역을 금하였고, 문맹률이 높아 많은 무슬림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꾸란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원래 원본만을 고집하던 이슬람은, 최근 번역을 허용하여 각 나라, 지역의 맞춤형으로 번역되고 있다. 하지만, 아랍어외 다른 언어로 번역된 책들은 원래 계시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미화하여 번역하여 번역본의 해설서로는 본래의 의미를 모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사실, 한글판 번역본도 ‘김용선 역', ‘최영길 역’, ‘파하드국왕 꾸란 출판청 한글역본’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같은 장의 같은 절이더라도 번역자에 따라 번역내용이 다소간에 상이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슬람은 아무나 꾸란의 내용을 읽고 각자의 생각대로 해석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반드시 ‘이맘’이나 이슬람 학자들의 입을 통하여 해석된 것만을 믿도록 하고 있다. 즉, 누군가가 꾸란을 읽다가 불신도 등에게 잔인한 행위를 가하는 등의 구절을 읽고 의심이 든다면, 그런 생각을 버리고 ‘이맘’이 해석해 주는 구절을 바로 따르는 게 바른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중세 서구에서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사제들만이 읽고 이를 일반 신자들에게 해석해 준 것과 매우 유사하다.


꾸란과 성경

기독교의 '구약 성경'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선지자의 관점에서 여호와와 관련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즉, 율법적인 부분과 야곱의 자손인 12지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신약 성경'은 그런 율법이나 혈통보다는 오히려, 예수의 공생애와 제자들의 전도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꾸란의 내용은 이와 달리, 매우 엄격하고 그 계시를 벗어나면 처벌이 따를 만큼 '율법적'이다.


무함마드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고 (AD 7세기의 무함마드 사후 800년이 지난, AD15세기에 처음으로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 설령 수기로 쓰인 성경책이 있었더라도 유대어(히브리어)로 쓰였지, 아랍어로 된 성경은 없었고(?) 무함마드 자신은 아무런 글을 몰랐으니, 직접 성경책을 읽어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성경적 지식은 당시 ‘메디나’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과 접촉하며 주워들어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구약 성경적인 기술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은 그런 부분조차도 알라(신)의 계시를 받아 무함마드가 구술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슬람은 그들 스스로 기독교와 그 뿌리가 같다고 말하지만, 꾸란과 구약 성경을 비교해 보면, 어떤 주제는 같으나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 그 기술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경위가, 구약성경은 형제가 팔아넘기는 것이지만, 꾸란은 우물 속에 던져버려 진 뒤, 지나가던 대상이 우연히 발견하고 (꾸란 12: 19) 또, 눈을 먼 ‘야곱’이 눈을 다시 뜨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꾸란 12: 93-96). 번제의 경우, 꾸란은, 당시 열 살이던 ‘이스마엘’을 메카 근처에서 번제로 드리려 했다고 하지만, 구약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독생자인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기술한다. 또한, 꾸란은 ‘예수’의 존재에 대해, 신비로운 출생 (꾸란 3:45)과 친척관계, ‘마리아’의 수태고지, ‘예수’가 행한 이적과 십자가 사건 (꾸란 4:157) 그리고 승천 (꾸란 3:55) 등을 여러 개의 장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선지자 중의 한 명으로 보고 있다 (꾸란 5: 75). 


특히,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론 등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적 사실을 강조하지만, 꾸란은 하나님을 다른 어떤 존재와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꾸란 5: 72-73)며, 이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 알라(신)께서 ‘아들을 두셨다’니…? 이 얼마나 불경한 말인가? 알라(신)께서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이다…’, ‘… 알라(신)께 거짓을 날조하면 번성하지 못하리라…’ (꾸란 10: 68-69) 등등으로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것을 아주 질이 나쁜 죄악’이라고 수많은 구절에서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성경 원문이 변조되었기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무함마드를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이슬람 못지않게, 기독교도 강한 어조로 무슬림과 그 조상부터 전혀 다르고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알라는 여호와 하나님과는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알라(신)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꾸란 5:73),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꾸란 5:75),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인하고 (꾸란 4:157), 유대교와 기독교를 적으로 간주하며 (꾸란 5:51),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며 (꾸란 4:3), … 비무슬림들이 무슬림이 잔인하다는 것을 알도록 싸우라 (꾸란 9:123)고 말하기 때문이다.」


양대 신성(神性)의 대립 - 정복과 선교

서구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원이래 역사의 주축은 기독교였다. 하지만, 기독교도 처음에는 그냥 종교일 뿐이었다. 그런데, 예수 탄생 이후 약 300여 년이 지난 후에, 로마제국에 의해 종교로 ‘공인’(밀라노 칙령, AD 313) 되었고, 이어 로마의 ‘국교로 선포’(AD 392)되면서 종교가 국가권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미 갖추어진 국가 틀에 종교가 뒤늦게 들어왔다.


이제,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기독교는 로마제국처럼 제국 안에서 또 하나의 제국이 되었다. 로마의 황제처럼 교회에도 교황이 생기고, 로마의 귀족처럼 교회에도 대주교, 주교 등의 계급도 생겼다. 또한, 로마의 법전처럼 수많은 교회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모습은 국교가 되면서 종교는 ‘선교의 명분’으로 군인과 더불어 ‘정복의 역사’에 나서게 되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로마라는 ‘제국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섬김과 나눔’의 종교라기보다 ‘승리의 십자가’를 추구하는 종교가 된 셈이다. 


한편, AD 620년경 창시된 이슬람은, ‘제국의 틀’을 갖춘 '로마 기독교'를 많이 닮았다. 이슬람은 창시와 동시에 종교 자체가 바로 군사력을 갖춘 국가권력이었고, 종교 확장을 위한 선교 활동으로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으로 이어졌으며, 불과 100여 년 만에 곧 거대한 제국의 건설로 이어졌다. 그리고, 제국은 초기부터 '정교일치'로 종교와 정치 간에는 구분조차 없이 종교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였다. 


이슬람은 먼저 발전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으로 그 종교적인 신앙방식이 유대교나 기독교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이슬람은 종교가 사회생활 전반을 망라한 삶의 생존 양식을 가르치므로, ‘내세와 현세를 동일하게 여기면서도, 현세의 삶을 중시’하고, ‘신앙과 실천의 세계’를 주요 관심사로 보았다. 이는, 세속과 종교의 영역을 구분하고 내세관이 뚜렷한 서구 기독교의 가치관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문명의 성격도 대립적이다.


기독교나 이슬람은 둘 다 '하나의 신'을 섬긴다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이들 유일신교는 자신이 믿는 신 이외의 모든 존재를 부정하게 되므로, 모든 사고를 ‘우리’와 ‘그들’이라는 양방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종교만이 진실하고 유일한 신앙이니 모든 인간이 추종해야 하므로, 이교도를 자신의 참다운 종교로 개종시켜야 할 의무라며, 두 종교는 정복과 선교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구약)과 꾸란은, 정복과 선교의 수단인 ‘전쟁’을 주요 이슈로 보면서도, 모두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을 강조한다. 이는, 자신의 신앙을 강조하는 보편주의적 측면이다. 바로 이 부분이 꾸란과 성경 이해에 꼭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기독교가 말하는 보편적 소망은 자기 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자유, 평등, 생명을 전하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자유는 억압으로부터 해방이고, 평등은 차별로부터 해방이며, 생명은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모든 민족이 염원하는 가치의 대상을 하나님 안에서 이루는 것이라는 게 기독교인이 주장하는 보편성이다. 


반면, 이슬람적 보편성은 알라’()을 같이 믿는 무슬림 형제에게는 한없는 관용을 베풀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교도는 개종시키거나,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필요에 띠라, 이교도를 포용하기도 한다. 교리의 이중성도 인정한다) 이처럼, 이슬람은 ‘무슬림의 세계’를 꿈꾸는 편협성을 보이는데, 이는 모함마드가 초기 ‘메디나’에서 머물 무렵, 유대교인과 잦은 접촉을 하는 동안, 이방인을 배척하는 유대교도의 ‘선민의식’을 모방하여, 선민의 대상을 이슬람교도로 바꾼 것이 아닌가?”라는 데서 출발한다. 


수백 년간 기독교와 이슬람이 맞붙은 십자군 전쟁 

이처럼, 꾸란이나 성경의 내용이 서로 다르고,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두 종교 간 상호 불신의 계곡은 매우 깊어, 자연스레, 공존보다 분쟁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에서 보듯이,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는 로마의 힘을 빌려 정복 전쟁에 나섰고, 이슬람도 창시 초기부터 정복을 통하여 교세를 넓혔다. 때문에, 전쟁이 선교의 영역이며 교세 확대를 위한 주요한 수단이 되었으니, 이슬람이 발흥한 이후 기존 세력으로 존재하던 기독교와의 충돌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이 기독교를 공격하고, 기독교가 이슬람을 이단으로 단정하여 전쟁하는 일들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샤리아' 율법

이슬람에서는, 경전인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 (개개의 사항에 대한 무함마드의 판단, 언행을 부인 ‘아이샤’ 등이 기록한 ‘언행록’. 시아파는 이를 불인정)를 기준으로 하여 정치와 경제보다 사회생활에서는 엄격한 율법을 강조한다. 이 율법이 바로 ‘샤리아 율법’이다. 샤리아 율법은 꾸란과 하디스가 기준이다, 거기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꾸란’과 ‘하디스’를 종합하여 일치점을 본 법적 판단인 ‘이즈마’에 따르며, 만약, 이것으로도 안 되면, 꾸란, 하디스, 이즈마를 참고한 ‘키야스’를 다.‘샤리아’란 ‘큰길’을 의미하며 이것은 ‘진리’ 또는 ‘알라(신)께 다가가는 길’이란 뜻이다.


‘샤리아’는 성문법은 아니지만, 서구의 성문법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좁은 의미에서 법 규정, 의례 규정, 정치적 규정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한다. 즉, 여러 학파의 다양한 해석도 병존한다. 종교학자 열이면 열, 모두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적용할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서구 법 체계가 단순히 인간 상호관계를 형법적인 유, 무죄를 판정하지만, 이슬람 법 체계는 알라(신)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삶의 도덕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그렇지만, 무슨 율법이든 율법은 속박을 의미한다. 따라서, 율법대로 하고 있는지 감독하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는 것이다. 즉, 원래의 계시를 놓고, 이를 따지고, 감시하는 기능이 강화되면, 어느덧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 지키고 따르는 것이 지나치면 율법은 종교적 위선이 된다.


샤리아 율법은 무슬림의 의무인 5행을 비롯하여 목욕이나 참회 같은 ‘의례적 규범(‘이바다트’)’은 물론, ‘법적 규범 (‘무아마라트’)’과 도덕적인 문제까지 다루는 법으로, 인간의 각종 행위를, 알라(신)께서 어떻게 보는가?를 기준으로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신에 대한 필수 의무 (‘와집’), 신이 권장하는 일 (‘만둡’), 신이 무관심한 일 (‘무바흐’), 신이 싫어하는 일 (‘마크루’), 신이 금지한 일 (‘할렘’) 등으로 이 다섯 가지 행위의 분류는 이슬람 법 체계의 기본이다. 이처럼, ‘샤리아 율법’은 기본적으로 알라(신)께서 보시기에, ‘옳은 행동’은 반드시 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금하도록 제정한 법으로 현행법이다. 


예컨대, 결혼, 이혼, 무슬림의 권리와 의무, 상속, 매매, 증언, 소송, 범죄와 형벌, 나아가 전쟁, 국제문제 등도 이런 기준으로 관여한다. 특히, 사우디, 이집트 등은 국내법에서도 '샤리아' 율법을 많이 차용하여 종교경찰이 별도로 통제하며 강제 집행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샤리아' 율법은, 종교전문가의 상담과 조언으로 주로, 이혼이나 위자료, 가정폭력 등 가정과 관련한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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