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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09. 2023

이슬람 여성의 멍에 (1)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9화)

이슬람 여성을 옥죄는 '사리아' 율법

감추는 여성미



이슬람 여성을 옥죄는 '사리아' 율법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지수(GGI, 2021년)'에 따르면, 여성 인권의 최상위권은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웨덴 등 서구 국가들이고, 전 세계 최하위 5개국은 시리아, 파키스탄, 이라크 예맨,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이고, 이 중에서 아프간의 여성 인권은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슬람은 여성에 관한 한 변화를 거부한다. 무슬림의 여성에 대한 제한은 전 세계 어느 여성 사회보다도 매우 엄격하다. 여성을 옥죄이는 종교적인 '샤리아' 율법 탓이다. ‘샤리아’란 ‘큰길’을 의미하며 이것은 ‘진리’ 또는 ‘알라(신)께 다가가는 길’이란 뜻으로, 경전인 ‘꾸란’과 함께 모함마드의 판단과 언행을 부인 '아이샤'가 기록한 언행록인 ‘하디스’(시아파는 불인정)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치와 경제보다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율법을 강조한다. 이 율법이 바로 ‘샤리아 율법’이다.


‘샤리아 율법’은 성문법은 아니지만, 단순히 인간 상호관계를 형법적인 유, 무죄를 판정하는 서구의 성문법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좁은 의미에서 법 규정, 의례 규정, 정치적 규정 등을 동등하게 취급한다. '샤리아' 율법은 '알라(신)'의 호, 불호로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므로, 개념 자체가 '삶의 도덕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때문에, 무슬림은 서구의 법체계를 갖고 있지만, ‘꾸란’과 ‘샤리아’ 등 종교법에도 의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는 자신들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1,400여 년간 이어온 무슬림 율법과 전통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예컨대, ‘샤리아 율법’ 중에는모함마드의 생전에 그의 언행을 부인 ‘아이샤’가 기술한 언행록인 하디스(2,210개 절로 구성) 내용에 이슬람 여성의 행동을 규정한 율법이 나온다.


'꾸란'과 '하디스'에 의한 '샤리아'의 일부 내용을 보면여자는 남자와 동행 없이 외출을 할 수 없다거나이혼을 먼저 요구할 수 없고굽이 높은 신을 신어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며남편은 부인이 남편이 원치 않는 옷을 입었을 때나별다른 이유 없이 남편의 동침요구를 거부할 때, 그리고 기도를 위해 몸을 씻으라는데 이를 거절할 때는 부인을 '때릴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 꾸란은 아예 “남녀의 인권이 동등하지 않다”라고 계시한다. 꾸란에서, 무슬림 여자의 존재는 무슬림 남자의 대략 ‘절반’이다. 법정에서 남성 1명의 증언은 여성 2명의 증언에 해당하고, 유산 상속 시에도, 부인은 아들의 1/2, 자매는 형제의 1/2, 그리고 소녀는 소년의 1/2이다. 그런데, 이런 '꾸란'보다 ‘하디스’는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하며, 여성을 마치 2등 인간 취급한다.


아프간 탈레반 정부는 '샤리아' 율법으로 여성 인권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여성은 '부르카'를 착용해도 집 밖 출입을 금지하고, 외출 시는 꼭 남편이나 오빠 등 남자가 대동해야 한다. 사소한 율법조차 어기면 무자비한 구타나 살해당한다. 율법은, 국가와 부족, 지역 그리고 세대 간에도 차이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무슬림 시골 남성은, “왜, 요즘 들어 갑자기 여성이 자신과 동등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여성의 역할을 아기를 키우고, 농사일이나 가축을 돌보며, 먹을 것, 입을 것을 준비하는데 국한시켰다. 남성처럼 하루 5번 기도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여성도 그 이상의 역할을 생각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사우디 첫 여성 축구리그(2021년): 출처 연합뉴스

최근들어, '원리주의'인 이란에서 여성들이 월드컵 대회와 같은 스포츠 행사의 시청권조차 제한받는다고 호소하였고, 사우디에서도, 외국인 여성까지 예외없이 여성의 운전이 금지되었지만, 최근에야, 일부 허용이 되었을 정도로 율법의 집행은 엄격하다. 그러니, 아무리 면책 특권이 있는 외교관 부인이라도 여성인지라 현지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자칫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이에 비해, '세속주의'라는 이집트의 경우는,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니 조금 나은 편이지만, 만약, 젊은 무슬림 여자가 외국 남성이나 부부관계가 아닌 듯한 사람과 호텔에 들어가려 하면 반드시 주변에 있던 종교경찰이 달려와서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한다. 문제가 생기면 여성이 피해를 입는다. 이처럼, 성은 물론, 스포츠나 일상에서도 여성의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이럴 경우 남성 경찰이 여성을 조사하는 방식도 특이하다. 종교적으로, 여성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아도 ‘남성과는 사회적 책임이 다르다’라고 하기에 절대로 ‘무프티(종교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여성이 종교 경찰이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나 사우디 등의 ‘종교경찰(무타와)’은, 여성 문제에 관해 일반 경찰보다도 우위에서 ‘샤리아’ 율법을 감시, 감독한다. 여성 인권이 침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말레이시아 여성에게 태형을 가하는 종교경찰

그런데, 이슬람권에서는 외부인의 눈에 여성이 ‘구타’나 ‘기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절대로 관여하면 안 된다. 이슬람은 정치와 경제가 어떻든 사회생활에서 남녀관계의 엄격한 율법을 강조한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사생활 존중은 물론, 부인이 아닌 어떤 여성과도 접촉을 조심해야 한다. 현지 여성에 대한 대우는 그들의 영역이다. 서구적 관점에서 ‘여권 신장’이나, ‘여성 자유화’ 논의는 절대 금기사항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 한국 여성의 고달팠던 삶도 오버랩된다. 예컨대, 제주도에서는 결혼한 젊은 남성을 ‘왕바리’, 젊은 여성을 ‘냉바리’라고 부르는데, 남자는 왕 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해서, 여자는 결혼하면, 시집은 물론 본가에서조차 냉대를 받는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니... 이런 용어까지 만들어진걸 보면,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무지로 인해 숱한 여성들이 한 서린 삶을 살았다. 여성들이 당한 고통의 한 단면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슬람 율법이나 관습은 공개적으로 남녀를 차별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 문화의 기본이다. 때문에, 이슬람 관습이 몸에 젖은 무슬림 여성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가장 보호받고 있다'라고 여기며, '남편을 존중하며 율법에 따라 자식을 키우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부분 만족한다'라고 ‘이슬람 인권 보고서’는 말한다. 우리 눈에 여성이 물리적 차별과 정신적 학대를 받나 싶지만 정작 그들에겐 전혀 아니다.


그런 사례는 많다. 예컨대, '카이로'의 지하철에서는 남성이 앉아있다가 나이가 많든 젊든 여성이 들어오면 자리를 양보한다. 우리 같으면 지하철 안에서 40대의 남성이 20대의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배정한 지하철 분홍색 '임산부' 우대석에 앉아서 누가오든  꿈쩍도 안 하는 중년 남성도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의 여성관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감추는 여성미

어릴 적, ‘아라비안나이트(千一夜話)’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이 책에서어느 왕이 사랑하던 왕비의 불륜을 목격하고는 그 남녀를 다 죽임은 물론여성에 대한 불신에서 매일 새로운 신부와 결혼한 뒤다음 날 아침 새벽에 그 신부를 다시 죽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가상적이지만중동 지방에서는 의처증까지는 아니더라도여성의 존재와 정조의 개념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여성의 정조 개념은 엄격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여서남편 이외는 누구에게도 신체 일부라도 내보일 수 없다는 일념으로얼굴은 물론 신체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여성은 신체 일부(특히머리카락)조차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므로얼굴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려주는 망토형의 검은 옷(사우디의 아바야’, 이란의 차도르’)이나, ‘니캅이라는 눈은 보이지만 몸 전체를 가리는 옷을 입거나눈마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아프간)라는 푸른색이나 검은색 옷으로 자신의 온몸을 감추어야 한다. 그러니, 얼굴과 손만 보이도록 허용된 베일인 ‘히잡’은 무슬림 여인들에게는 노출을 그야말로 최대화하는 스카프인 셈이다. ‘히잡’은 ‘신과 만난다’는 경건한 종교적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히잡과 니캅 그리고, 부르카

‘히잡’에 대해, 이집트 등 많은 국가에서는 이를 ‘착용하라’, ‘착용하지 말라’는 명문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법적인 규제는 없지만 여성이 자의적으로 ‘히잡’이나 ‘니캅’을 착용한다. 조금 개방적인 곳은 히잡을, 보수적인 곳은 아바야, 니캅, 부르카를 착용하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런 복장이 종교적 규율과 주변 눈치보기라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우리가 한복을 입듯이 전통 복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즐겨 입는 듯하다. 과거에, 이들 못지않게 정조관념이 철저하였던 우리 조상님 양반댁 규수는 외출 시에 반드시 이런 얼굴 가리개를 사용하였다. 


사실, 무슬림 여성처럼 성전에서 머리와 얼굴을 가리는 것은 초대 기독교에서 등장한다(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1:6). 이처럼, 성경에서 머리카락을 가리도록 언급하고 있어서, 천주교 성당에서는 성인 여성들은 ‘미사포’를 쓰고 머리를 가린다. 일부 사학자는 ‘메소포타미아’ 시대에도 ‘히잡’과 유사한 베일이 있었다 한다. 귀족 여성과 일반 여성을 구별하고,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도록 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햇살이 강한 사막 지역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피부를 가릴 베일이 필수적이지만, ‘히잡’ 같은 베일은 모든 무슬림 여성에겐 이젠 일상이 되었다. 이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얼굴 가리개를 벗지 않으며 (입 가리개를 들고 먹는다), 테니스를 쳐도 절대로 옷을 간편하게 하지 않으며,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더라도 온몸을 덮은 검은 옷을 결코 벗거나 갈아입지 않는다.


이슬람 여인을 묘사한 터무니없는 작가의 상상력

몇 년 전, 중앙일보(24면, 2017년 7월 25일) 문화란에 ‘코란에 발을 올리고, 비키니에 히잡… 무슬림이 뿔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상파 공영방송인 모 방송국의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가 이슬람 문화 희화화 논란에 휘말렸다. 이 드라마에서 히잡을 쓴 여인이 비키니’ 복장 차림으로 수영장에 누워있고, 무슬림인듯한 인물이 와인을 마시며, 메인 포스터에서 주인공이 꾸란’ 바로 옆에 발을 갖다 댄 자세를 취하는 등,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장면들이 가감없이 방영되었다. 이를 보면, ‘히잡을 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기획한 모 방송사 PD의 상상력이 놀랍다. 이슬람은 남녀 간의 은밀한 접촉은 물론, 남성이 여성을 바라만 봐도 음심이 생긴다며 서로 보지 못하게 하는데, '히잡'을 쓰고 비키니 수영복을 착용한 무슬림 여성이 수영장에서 당당하게 활보하는 영상이라니...


유엔 정전감시단 요원은, 통제선 지역 정찰은 물론, 주변 지역 산간 마을에 들르기도 한다. 정찰 활동에 주민의 동향 파악도 포함되어 있어서다. 필자가 유엔 정전감시단 본부에서 가까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 예하 감시 기지 방문을 위해 이동 중, 들린 현지인 마을에서 여성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별 것도 아닌 이런 상황이, 어떤 곳에서는 때로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되기도 한다. 


근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현지 마을 여성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머리에서 발목까지는 물론, 눈까지 망사로 덮은 ‘부르카’를 착용했음에도, 우리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조우하자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곧바로 몸을 돌려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린 채 현지어 '우르드'어로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수줍어서'는 아닐 테고, 어쩌면 산간 마을이다 보니 낯선 외지인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나?라고 생각하였지만... 동행한 파키스탄 군인 말로는, “알라(신)에게 평화와 안전을 구하고, 외지인을 본 것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단다. 한 명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종교적 교리가 있나 보다. 아무튼, 경건한 삶을 살겠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들의 남녀유별 사상은 정말 유별났다.


이처럼, 무슬림은 남자와 여자와의 접촉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다. 남성이 여성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을 가지므로, 모르는 여자와 악수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탓으로, 상당수 아랍권 외교관은 공식적인 각국 외교단 행사에서, 리시빙 라인에 선 주최 측 여성(주로 대사나 무관부인 등)과의 악수를 피하고 옆의 남성에게 가거나, 악수를 하더라도 얼굴과 눈을 여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외면하고) 손만 내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문화에 익숙하지만 이슬람에 생소한 사람은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


서양식 관습은 악수 시, 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만, 이들은 이성의 ‘눈’을 바로 바라보는 것은 성적인 호기심이라고 믿는다. 우리와 달리, 이들에게 눈은 '미'의 기준이다. 우리 사회에서 미인 광고 모델이 선전하는 제품에 소비자들이 마음을 빼앗기는 것처럼, 많은 이슬람 남성은 ‘니캅’으로 '눈'만 내어놓은 여성들이 광고하는 사진을 보면서,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2020년-22년 동안, 한동안 COVID-19 바이러스로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자, 우리는 친한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했는데..., 대단한 통찰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요즘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엉뚱한 일이 생겼다. 일종의 멋 내기로 여러 가지 색깔의 눈 모습을 보이는 '미용용 컨텍트 렌즈' 때문인데... 얼굴을 가리는 무슬림 여성에게 지금껏, '색조 화장품'이 맥을 못 추었지만, 이 제품은 과히, '성형 수술'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눈'으로만 '여성미의 기준'을 판단하는 무슬림 남성에게 일대 혼란을 줄 것 같다.


세계화로 서구 문화에 헷갈리는 남성들처럼, 무슬림 여인들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비이슬람권 여성들이 집 밖에서 왜 그렇게 노출을 많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성적 매력을 과시하려고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자태를 뽐내는 서구식 미인 대회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각종 광고 및 문화 콘텐츠에 선정적이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면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여성을 ‘성 상품화’ 한다고, 죄악시하면서, 가장의 보호 아래 자녀를 키우며 안정된 가정을 가진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 무슬림 근로자가 많이 유입되어, 수영장에 수영하러 온 무슬림 남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에 온 어떤 무슬림 남성은 처음 수영장에서 여성들이 반라의 수영복을 입은 것을 보고,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쩔쩔매었다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한국 남성이 지하철 등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거나, 심지어 이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남녀가 지하철 역사 으슥한 곳에서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 등은, 여성 보호(?) 문화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의 안전을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잘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슬림 사고방식에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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