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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Mar 10. 2023

이슬람 여성의 멍에 (2)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10화)

무슬림 여인의 혼인과 정조

저소득층을 울리는 지참금 제도

무슬림의 일부다처제

젊은 무슬림 여성들의 갈등



무슬림 여인의 혼인과 정조

서구에서 결혼은 그야말로 '남자 대 여자'의 관계이다. 성인이 되면 독립하여 스스로의 길을 가고 결혼할 배우자도 부모에게 소개와 통보 정도이지 허락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부모도 아이 결혼식에 최소한의 관심만 보이면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경제적 부담을 질 이유도 없고 자식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부모들이 없는 돈에 전세자금이라도 아들에게 주려는데... 이는, ‘나’ 중심적인 합리적 개인주의에서는 넌센스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도 대가족주의의 유산으로 불과 두, 세 세대 전까지 부모가 정하여준 배필과 숙명으로 알고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정도(正道)였다. 지금이야 비합리적이라며 거부하겠지만, 당시로서는 대대로 ‘그렇게 했다’는 사회적 전통에 개인은 설 곳이 없었다. 본인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마른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여우가 시집간다’고 했을까?”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여우의 슬픔이 소나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평생을 맡겨야 하는 여인의 아픔이 서려 있다. 우리만 그랬을까? ‘네팔’이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의 어떤 부족은 배우자를 정할 때, ‘신발을 던져 뒤집어지는 형태로 결정’한다고 한다. “배우자를…그럴리가?”할지 모르겠으나, 모두가 전통이라며 '그렇게 한다'면 개인이 선택할 여지는 없다.


어쨌든, 결혼은 지금도, 양가의 승인을 받고 가족, 친지, 친구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가끔, 둘이 깊이 연애에 빠졌다가도 ‘조건’의 문제가 등장하여, 양가 부모의 승인을 받지 못해 좌절되는 안타까운 사연도 심심찮게 들리기도 하지만..., 양가 부모의 승인은 곧바로 양가 부모의 책임과 희생을 동반하기에 중요하다. 양가는 결혼이 결정되면 그 소식을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아이들이 거주할 공간이나 각종 혼인 준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비용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는 부모가 많다. 결혼은 우리 가족 전체의 '대사(큰일)'였다.


무슬림의 결혼도 양 가문의 결합이다결혼이 가문의 일이다 보니연애라는 개념보다 중매의 개념’으로 남녀가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결혼식 전에 반드시 '결혼계약서 (지참금 문제 등)'를 작성한다. 주로 밤에 하는 결혼식 행사는 꽤 성대하게 축하하지만, 혼례 예식은 혼인할 남녀가 '이맘'과 두 명의 증인 앞에서 '증언사'를 한번 따라 외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성혼이 선언된다. 이후에, 음식을 나누고 흥겹게 보내며, 새벽 무렵에는 행사 참여자 차량 수십 대가 경적을 울리며 도심을 가로지르며 결혼을 알린다. 


그런데, 결혼식 다음 날 아침, 이슬람 관습에 의해 신부는 '첫날 밤의 혈흔'으로 신랑 측에 반드시 ‘처녀성’을 증명해야 한다. 정조 확인은 필수적인 행사로 만약 '처녀성'을 입증치 못할 경우, 파혼은 물론 명예살인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중동에서는 처녀막 재생수술이 많다고 한다. 여성의 정절과 복종을 남성의 명예와 동일시하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한 남자만 사랑하려는 무슬림 여인의 정조관념에 비해, 서양 여인의 정조관념은 좀 특이하다. 결혼할 당시의 사랑이 중요하지, 그런 사랑의 흔적에 구애받지 않는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자신의 처신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받는다.


무슬림 여성은 정조확인과 더불어결혼식을 하기 전에 신체의 은밀한 부위 주변에 난 '치모'를 성관계 전에 반드시 면도해야 하는데주로 신부 어머니가 이를 도와준다고 한다. 이는 남성에게도 같다. 아마도전례로 내려온 성병 예방 조치일 것이다또한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에게도 할례를 강요하여수많은 여성이 이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하지만정작 꾸란이나 하디스에 여성 할례에 관한 이야기는 없으며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된 일부다처제의 유산이라고도 한다.


나일 크루즈 선상에서 '밸리댄스'를 추는 이집트 무희

중동지역을 관광하면, 무희가 추는 ‘배꼽춤 - 밸리댄스(Bally Dance)’를 가끔 볼 수 있다. 여성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무슬림 권에서 '뜻밖의 춤(?)인데, 원래 이 춤은 시집갈 처녀가 첫날밤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는 춤이라니그 춤이 지닌 예술적 가치를 떠나 부부금슬을 좋게 하려는 준비로남편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춤이다. 


서구의 춤이 이성과 더불어 체험적으로 춘다면, 배꼽춤은 여성이 혼자 추는 춤이다. 아랍 남성은 직접 춤추지 않고 ‘여성이 춤추는 것’을 보고 즐긴다니, “남녀차별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적극적, 체험적이냐? 소극적, 피동적이냐? 와는 별개로 저들의 전통일 뿐이다. 최근, 한국에도 일부 직업여성들이 ‘배꼽춤’을 "취미나 상업적 용도로 배워왔다"라고 들었지만, 배움의 목적이 무엇이든 원래의 취지를 알아주면 좋지않을까...


저소득층을 울리는 지참금 제도

인디아 북부 ‘카슈미르’ 일대는 양모 생산지로 매우 유명하고, 카펫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중동이나, ‘카슈미르’ 등 많은 이슬람권 지역의 값진 카펫은 여성이 결혼을 준비하는 일종의 혼수품이었다. 무슬림 여자아이는 어릴 적부터 결혼을 준비하는데, 혼수품용으로 카펫을 십수 년간 수공으로 짜기 시작한다. 하나하나가 한 여인의 엄청난 꿈과 노력이 묻어 있는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카펫을 자세히 보면 카펫을 짜는 여인의 교육 수준에 비해, 여인의 내면적 상상력이 잘 표현되어 있어,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도 볼 수 있다.


'카슈미르'의 어린 소녀들과 진열 중인 '카펫'

앞서, 언급한대로, 이슬람 여성은 결혼을 앞두고, 남녀의 합의로 ‘결혼계약서’를 작성한다. 여기에는 결혼지참금, 이혼청구권, 위자료, 양육권 등이 포함되고, 여성의 여권 신장으로 2번째 부인을 거부하는 조항 등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축복받을 결혼에서, 가끔 마음 아픈 이야기의 하나는 소위 ‘지참금’ 문제이다. 인도에서 여성이 지참금을 준비하는 것과 달리, 이슬람권은 남성이 신랑이 되기 위해 지참금을 준비해야 한다. 부부간의 연을 맺는 양가 가문에게 감사와 축복으로, 여성의 사회적 위상에 맞는 만큼 처가에 지참금을 지불하여,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했을 경우 아내가 홀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저 생계비로서 여성보호의 의미였다. 친정에서 지참금을 관리하지만, 친정 부모가 이를 임의로 유용하는 것은 ‘샤리아’ 율법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 남자는 짓다 만 집이라도 있어야 '결혼지참금'이 충족되어 여자에게 구애할 수 있다. 그러니, 집을 소유하는 것은 결혼의 첫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카이로' 교민과 주재원은 골프를 많이 치는데, 평일 낮 한국인 부인들은 골프장에 가서 캐디를 구한다. 그런데, 어떤 캐디가 어느 부인에게 ‘자기에게 집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노골적으로 구애하였다.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부인에게 현지의 젊은이가 그랬다니, 당혹스러웠겠지만, 그 '캐디'가 진지했던 이유는 얼굴을 가린 여인의 눈을 보고 미를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교포 부인들은 골프를 칠 때, 강한 햇살과 자외선에 얼굴이 탈까 봐 얼굴을 꽁꽁 싸매어 아랍 여성처럼 거의 눈만 보일 정도였으니까... 


상황이 이러니, 경제력이 고만고만한 대부분 가정은 결혼을 위해, 선금으로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남편이 아내에게 빚을 지는 모양새로 유지된다. 그런데, 이 선금마저 지불할 형편이 못되면, '지참금'은 어느새 경제적인 부담이 되어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난으로 결혼 적기를 놓치거나, 아예 결혼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니 참 안타깝다. 간혹 보면, 사촌 간인데 부부간인 경우가 있다. 근친결혼 관습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가난해서 지참금을 줄 여유가 없으니, 처지가 비슷한 잘 아는 친척 간에 결혼시키기 때문이란다. 물론, 우리나라 일부 젊은이도 집이 없어 ‘3포 세대’라며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 것 같지만....


무슬림의 일부다처제

일부다처제의 기원은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가부장들은 많은 처첩을 거느렸고, 근친상간이 많았음을 구약성경은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그 기원이 다르다. 혹자는 모함마드가 '우흐드' 전투에서 고전한 후에, 종교전쟁, 즉 성전을 치를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전사자의 남겨진 처자식을 돌보기 위해 일부다처를 합법화하였다고 한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당시 아랍은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라, 어린아이를 가진 여성이 남편을 잃고 홀로 남겨진다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슬람을 위해 싸우다 숨진 전사들의 가족을 돌보는 방법으로서 일부다체제를 채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개념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이슬람은 교리적으로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지만그들을 동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경우(꾸란 4:3)’라는 선행 조건이 있다먼저,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첫 번째 정 부인의 승낙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두 번째 부인이 생기면, 남편은, 두 부인에게 잠자리는 물론, 거주 주택의 크기, 숙식의 수준, 자녀 대우(적자와 서자의 구분 없음) 등을 모두 동등하게 하여야 한다. 세 번째 부인을 맞이하게 되면 역시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의 동의와 함께, 앞서 조건들도 동등해야 한다.


실제, 이집트에서 꽤 큰 부자가 골프장 주변에 여러 채의 빌라를 구입하여 여러 부인과 함께 기거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꾸란에서는 ‘동등한 사랑’을 명시하지만, 현실적으로 남자에게 경제권, 이혼권 및 합법적으로 구타할 권리까지 있으니, 부인들은 남편의 ‘또 다른 부인 맞이하기’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그런데, 5명 이상의 처를 두는 것은 마지막 예언자인 모함마드에게만 허락된 '알라(신)'의 계시였다. 하지만, 강력한 권한과 부족주의 탓일까? 일부 부족 지도자 계층은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예컨대, 어느 사우디 국왕은 22명의 부인을 두었고,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조차 5명의 부인을 두었다.


최근,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에서는 실업자가 급증하고 경제 환경이 매우 열악한 듯하다. 언론에 따르면, 10살이 않된 여자아이가 한국 돈 250여만 원 정도에 나이 많은 노인에게 신부로 팔려가는 매매혼이 빈번하다고 한다. 한 여아의 인생이 돈 몇 푼에 송두리째 짓밟히는 일이다. 아무리, 사회관습이고 아버지가 돈받고 허락했다고 하지만, 그걸 용납하는 종교나 사회가 정당할까?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한다. 


쿠웨이트, 콰타르 등 걸프만 지역의 부자들이 여름 방학철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 여대생과 보내는 일탈이 일상화(?)되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있었다무슬림의 일탈 행위는 비이슬람권 국가로 나가면 더욱 심해진다미국에서이집트사우디군 장교와 교육받을 때족이라는 사우디 장교는, 자기네 나라에서는 경건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으나너무 튀는 행동으로 보기에 민망스러웠고기혼자인 이집트군 소령은 한국 여군 중위를 따라다니며 청혼하여놀란 여군 중위가 당시 한국군 선임장교인 필자에게 그의 접근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개방화, 국제화로 일부다처제가 줄어들고,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및 사회 참여 기회도 점차 증가하는 등, 여성의 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다. 사실, 대부분 무슬림은 일부일처로, 율법에 따라 부모 봉양과 자식 양육으로 경건하게 살아간다.


젊은 무슬림 여성들의 갈등

여성에 관한 한 변화를 거부하던 이슬람권에서도 여성들에 의한 변화의 조짐이 곳곳에 보인다. 이집트 카이로의 여자 대학생들은 여느 국가의 대학생들처럼 자유분방하다. ‘히잡’으로 머리에 스카프만 둘러 머리카락만 안보이게 할 뿐이던 게 벌써 수 십여년 전 일이다. ‘…. 이제는 아예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어럽지 않게 볼 수 있다. 금주 (禁酒) 국가이지만 카페와 클럽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라마단 기간에도 금식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히잡, 이슬람 변화의 상징이 될까? (KBS 1 TV, 2017.6.29))


히잡을 착용한 이집트 카이로대학 여대생

복장이 자유로와지니 행동도 대담해진다. 길거리에서 남녀간에 시비라도 벌어지면 이집트 여대생들은 남자에게 지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사우디 여성이 배꼽 티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유적지의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동영상이 SNS에 올라 논란이 되었다. 이란에서도 여성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히잡을 써야하나, ‘운전자가 차 안에서 히잡을 벗어도 되는가?’가 논란이었다. ‘차 안이 사적 공간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보수적인 이란의 성직자들은 ‘차 안은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여 않된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여성 인권요구가 높아져 여성 복장규제 문제가 논란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집트는 이미 1970년대에 스커트를 입었고, 이란도 ‘팔레비’국왕시절 여성들의 복장이 서구의 유행을 따른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는 오히려 고전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경향도 많다. 그리고, 문맹률이 높았던 부모세대에 비해 여성의 사회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분야별 전문가도 많아, 이제는 결혼을 하더라도 경제권을 가진 여성들도 많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한 각종 정보 공유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변화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였던 이집트, 요르단, 튀니지아, 파키스탄, 인디아의 무슬림 남녀 젊은이들은 국제화로 세련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아랍의 봄'이라는 시민 혁명도 경험하였다. 그리고, 갈수록 인터넷, 스마트폰 등 서구 문명에 점점 노출되고 있으니, 1,4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종교에 대한 이들의 관점도 점점 변화될 것이다. 더불어,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것도 여성 인권에 매우 긍정적이다.   


무슬림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가 ‘샤하다 (증언사)’를 들려 주는데서 출발하므로,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변화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가치관과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된 엄마들에 의한 자녀 양육이 중요하다. 비록, 이들이 알라(신)을 숭배하며 경건한 삶을 이어가는 자체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고립적, 폐쇄적, 맹목적인 신성에서 벗어난다면, 이교도에 대한 적대적 시각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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