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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08. 2022

어려운 OR/SA 전공과
미국식 수학교육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3화 - 미국 해군대학원 1)

엄격한 학사관리

어려운 전공과목

미국식 수학교육



필자는 유학 갈 때, 국비유학이라는 게 제한된 몇몇에게만 허용된 엄청난 특혜여서, 유학만 다녀오면 뭔가 한 가닥 하는 줄 알았다.  당시는 달러 절약이라는 정부 목표로 해외 출국 자체가 매우 제한되었고, 출국 전에는 “예지원”이라는 곳에서 세계인들의 기준에 맞는 예법 과정을 하루 종일 수료한 증명서를 첨부해야만 항공권이 발급이 되었다.  출국일 날, 친가와 처가의 어른들을 포함해서 무려 32명의 친, 인척 송영객들이 공항에 나와서 출국을 축하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캘리포니아 몬트레이로 옮긴 뒤에야 가족과 합류하였다. 몬트레이는 캘리포니아 중에서도,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한 '페블 비치' 골프장과 ‘17마일 드라이브’ 해안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기후가 좋아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구나!" 싶은 곳이다. 이처럼, 미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휴양도시에 부자들이 많이 살다 보니, 집세와 물가가 비싸서 학비는 자동 입금되고 생활비를 전액 국비로 지원받았지만, 가난한 국비 유학생으로서 늘 빠듯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몬트레이는 너무 잘 정리되고 아름다운 도시로 기후까지 좋아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학교가 미 해군은 물론 공군과 육군의 문제까지 해결해 나가려는 학군제휴의 요람이다보니, 나머지 생활은 미국군 장교들(육, 해, 공, 해병, 해안경비대)과 함께 공부하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2년 6개월간의 혹독한 대학원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격한 학사관리

한국에서는 때로는 군인들조차 '군'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교육기관이든, 뭐든 약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미국 해군대학원(US Naval Postgraduate School, 이하 '미 해대원')을 그 수준에 비해 저평가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다녀보니, 미 해대원의 대부분 석사과정이 미국 내 대학 상위권 20위 이내에 순위가 드는 대학원으로써 미국 육사, 해사, 공사 출신들도 경쟁을 치러 입학하기 때문에 웬만한 미국 장교도 모두가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학점관리가 매우 엄격해서 약 1년쯤 지나면 과정 당 10% 정도가 중도 탈락하였다.  


특히, 교수와의 대화 기회가 많고, 1980년대 중반인 당시로서도 미국 국방부의 연구개발 업무를 처리하는 '슈퍼' 컴퓨터에, 학생 교육용으로도 고속 LAN으로 연결된 단말기가 교실, 자습실, 복도 등 교내 곳곳에 있어, 교번만 입력하면 PC처럼 사용(당시는 PC가 없을 때였슴) 가능하였다. 이처럼, 모든 프로젝트, 리포트, 논문 등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등 수 십년 전임에도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좋은 곳이지만, 국립치고는 학비가 매우 비싼 학교였다. 필자는 민간대 산업공학 분야 유학을 준비하다가 육군의 방침으로 과정 전환이 되었지만, 유학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기에, 해대원이 그냥 그런 보통 학교인 줄 알고 입교했다가 평생에 못해 볼 공부를 다 했을 정도로 호된 시간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아내와 공항까지 나와주신 후원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묵묵히 성적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전공과목

필자가 전공한,  OR/SA (운영분석)는 산업공학의 한 갈래이지만 군에서 전쟁 목적으로 발전된 학문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영국 해군이  제 2차 세계대전 시 독일 잠수함을 잡기 위해서 수학, 통계학, 확률 등으로 최적의 해법을 찾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분석적 학문으로, 고도의 수학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OR/SA가 수학적 게임 모델로써 개발되자, 영국 해군은 실전에서 많은 효과를 보았다. 


종전 후, 미국은 여기에 더하여 군사분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워게임, 게임이론 등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였고, 국방예산 절감을 위해 분야별로 '비용대 효과 분석' 기법도 개발하였다. 이는, 나중에 경영과학으로 불리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주로 의사결정을 위한 최적화 모델 개발로 다양한 사례를 해결하였다. 물론, 이런 모델 개발은 주로 시뮬레이션 기법으로만 가능하기에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요즘도 코딩이 강조되고 있지만, 당시로는 FORTRAN 이란 프로그램 언어로, 논리적 작업을 해야 했다. 

 

미국 해군대학원 학교본부

필자도 후일 군의 참모나 지휘관으로 근무할 때, 이런 분석적 접근 방법을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였지만, 뜻밖에도 군사외교관이 되었을 때에도 미 해대원 OR/SA출신이라는 사실로 가끔 특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사실, 미 육군의 고급장교로 진출한 자들 중에는 의외로 미 해대원 출신이 많다. 


간혹, 미군 장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미국 해대원에서 OR/SA를 전공했다"고 하면, 놀램과 더불어 가끔씩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접을 받는다. (특히, 군사학교의 경우,  동문일 경우 더 큰 친밀감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군사외교관이라면 어느 특정 학교를 졸업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보다는 어떤 topic 이든 누구와도 다양한 지식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풍부한 지식과 교양이 더 중요한데, 다행이랄까? 미 해대원은 분기 과정으로 분기당 4학점짜리 3-4과목, 그리고 10개 분기를 하였으니, 130 학점이 넘는다. 참, 엄청 많은 것을 배워준 학교였다.


미국식 수학교육

필자가 함께 공부하였던 우리 과 학생 15명은,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나 ‘해군사관학교(아나폴리스)’를 졸업한 미국 육군, 해군의 대위-소령급 장교와, 필자 등 2~3명의 외국인 장교들이었다. [1]

그래서, 이 대학원에 입교하기 전부터 사실 많이 긴장하였다. 그런데, 첫 학기 수학 수업을 같이 해 보니, ‘뭐, 이 정도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학기 수학은 고3이나 대학 교양과정 정도의 미, 적분학이라 필자에게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미국 학생들은 끙끙대고 있었다. 다음 학기는, 선형 대수학 등이 포함되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하였다. 물론, 미국 학생들은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었고… 


그런데, 3번째 학기가 되니 이제는 미분방정식과 그 응용으로, 그때부터 필자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미국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뜻밖에 대부분 그런대로 잘 버티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필자는 두 번째 과정까지 한국에서 이미 한번 해 본 과목이라 문제 패턴이나 공식도 익숙하고 해서 성적도 잘 받고 대충대충 지나갔는데, 3학기는 달랐다. 하지만, 그들은 3개 학기 동안 계속해서 기본 논리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체계적으로 다시 배우면서 그 원리를 알고 문제를 풀어 온 것이었다. 정답을 찾기에만 급급했던 필자와는 달리, 문제를 푸는 방법이나 접근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필자는 선행학습처럼 미리 교육을 받았기에 오히려 정체하였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 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이었다. 우리 식의 교육방식에 무슨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교육 등으로 다양한 수학문제를 패턴별로 구분하여 수없이 많은 ‘유형별 문제를 풀이 위주’ (일종의 암기식)로 연습하였다. 그러니, 웬만한 수학 문제를 보면 “아! 이게 답이다”라고 답을 얼른얼른 찍고 넘어갈 수 있어서 심지어 시험시간까지 남아돈다. 우리와 달리, 미국 학생들은 속셈이 느린 데다가, 문제의 원리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배운 대로 풀어나간다. 문제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풀어가고 있는 그들을 보노라면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래 가지고는 시험장에서는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이처럼, 척 보면 답이 보여 '팍팍' 찍어대며 ‘빨리빨리’ 풀어가는 한국 아이에게 수학은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실제로, 대학원 수능 시험인 GRE나 GMAT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은 전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높은 성적을 받은 우리 한국 학생들이 정말로 수학을 잘하는 걸까?


서울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한 학생은, “수시 일반전형 구술면접 수학 문제 같은 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런 문제는 사고력을 키우는 게 아니지만, 학원에서만 그런 문제에 답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사고력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유형별 문제풀이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게 맞는 것일까? 수학 교육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대학원 이상의 높은 수학 실력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은커녕 우리가 과학 강국의 선두 대열에 끼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전원이 지름 길만 찾다 보면 꼼수나 불공정이 난무할 수도 있다. 우직하게 둘러가더라도 성실한 발걸음이 위기 시에 빛을 발한다. 

   

[1] 미국 해군대학원과 미국 공군대학원은 일반학 석사과정이나, 다만 미국 육군대학원(Army War College)은 대령급의 전쟁 연구 군사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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