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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26. 2023

쓰레기 속에 사는 사람들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17화) 

카이로 '모카탐 쓰레기 마을' 

악취 속이지만 아름다운 동굴교회 

쓰레기를 줍는 마음 - 아름다운 인성

문명이 제도의 옷을 입은들...

 


카이로 '모카탐 쓰레기 마을'     

이집트는 이슬람이 국교지만, 약 8,000만 인구 중 85% 정도는 무슬림이고 나머지 15% 정도인 약 1,000만여 명이 기독교인이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집트에서 기독교인 많은 이유는, 주로 1~2세기경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와 이집트에 자리잡은 콥틱 기독교 정교회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콥틱교 교리는 로만 카톨릭과 유사하며, 교황이 있다. 이들은 7세기경 쏟아져 들어온 아랍 무슬림으로 부터 기독교 말살 정책에 따른 박해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1,300년 이상 그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이집트 카이로 남동부, ‘모카탐’이란 지역은 12세기경에 지어진 ‘시타델’이라는 ‘아유브’ 왕조 시대의 성곽요새가 있고,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는 ‘쓰레기 분리수거’로 유명한 ‘모카탐 쓰레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유명한 것은 매일같이 2,000만 카이로 시민이 내다 버리는 쓰레기의 1/3 정도를 트럭이나, 각종 짐차, 당나귀나 말이 끄는 수레들이 줄지어 이곳으로 실어 나르면, 4만여 명의 이곳 주민들이 이를 해체, 분리,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하기에 ‘쓰레기마을’은 언제나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쓰레기들로 넘쳐나 서다. 


카이로 시내 쓰레기마을 (쓰레기 분리수거마을)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쓰레기 냄새로 잠시 있기도 힘든 비위생적인 쓰레기마을에서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듯, 여자들은 분리하고, 남자들은 묶은 쓰레기 더미를 나른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데, 이들 대부분은 ‘콥틱’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정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이다. 그들은,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허용되지만 기독교로의 개종은 허용되지 않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난의 대물림은 물론, 교육의 기회까지 소외당하는 등 신앙의 대가는 가혹하다. 


사회주의 체제인 이집트는 명목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콥틱교도가 설령 대학교육을 받았더라도 현실적으로 무슬림으로부터 종교적인 차별을 당하고 관공서나 일반 직장에 취직하기 어려워 사회 진출에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들은 자영업을 하거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가난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들 일부가 이집트 경제계의 한 축으로 성장하면서 간혹 저명인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 중의 한 명이 이집트가 배출한 '부르토스 부르토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는 콥틱 교도였다.   


'모카탐' 언덕 위의 '성 시몬' 동굴교회 

가난한 집들과 쓰레기더미와 악취 가득한 마을을 지나 꼬불꼬불한 길로 모카탐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거대한 돌산을 깎아놓은 동굴 교회가 보인다. 알렉산드리아 콥틱교회와 함께 중동 최대의 교회로 유명한 '성 시몬' 동굴 교회다. 쓰레기마을 주민들이 거대한 사암 절벽을 깎아 동굴에 400여 명이 기도할 곳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입소문을 타는 바람에 관광수익을 기대하는 이집트 정부가 2만여 명 수용가능한 규모로 교회 확장을 허용했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교회의 확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 시몬' 동굴 교회 내부 돌로 만든 예배석

쓰레기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모카탐 언덕 위에 세운 이 동굴 교회는 크고 하얀 돌산의 파인 곳에 원형으로 넓게 펼쳐진 돌로 만들어진 좌석들로 예배 장소를 만들고, 동굴 교회 위 암벽에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 부활과 재림의 거대한 성화와 성구들이 새겨 그 웅장함을 더 한다. 동굴 교회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12사도의 모습이 담겨있는 성화가 있고 좌우로 기도하는 곳이 있다. 그리고, 기도하는 곳 위에는 큰 물병을 짊어진 허름한 옷차림의 성인 '시몬'이 그려져 있다. 동굴 교회에 그려진 이 성인의 이야기는 이슬람 박해 속에서 콥틱 교회가 1300년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기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쓰레기를 줍는 마음 - 아름다운 인성

무카탐 '쓰레기마을' 사람들만 쓰레기 속에서 살까? 필자가 한때 근무하였던 이집트나 파키스탄, 인디아 같은 나라는, 미국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와 달리 무슨 영문인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함부로 버려서 온 동네 골목길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쓰레기더미 속에 사는 셈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저들도 공공교육이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도 학교에서 공중도덕 교육을 받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정에서도 그 부모들이 청결이 뭔지 몰랐을까?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저들만 그럴까?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

 

언젠가, 서울의 유명 사립대인 S대학의 입학처장이 수시 모집 입학사정 설명회 도중, 대학이 추구하는 인간상의 하나로, “… 복도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인성…”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여 가십거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사회의 '목표 수준'이 겨우 그 정도인가? 그런 건 초등학교 교육용이지, 대학이 기대할 것은 아닌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토요일 새벽 일찍, '여의도 한강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그가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여의도 한강변 넓은 공원은 여기저기 곳곳에 널려있는 무수한 쓰레기… 통이었다. 


한강공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이고 쓰레기는 방치 

아이러니한 것은 상황이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디든 유원지에 가면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공간’을 찾기에 바쁘다. 내가 떠날 때, 누군가를 위해 그 자리를 치워주었더라면, 다른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즐기는데…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쓰레기를 불과 몇 미터밖에 안 떨어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그냥 가버렸기에... 생긴 일이다. 모두가 더 깨끗한 곳을 찾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아마도, 그 대학은, 좋은 차 타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선진 국민 행세하며, ‘나’만을 위해 즐기는 자보다, 타인과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격체로, ‘학문적 지식보다, 주변을 위해 언제든 조그마한 쓰레기 하나라도 주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를 뽑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성숙하고 눈높이가 높아서인지, 우리 사회 스스로에게 부정적 평가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요소는 아마도, ‘정치인 불신’과 ‘시민의식' 수준인 것 같다. 정치인 문제야 늘 그렇다지만, ‘시민의식' 수준은 우리들 하기 나름인데...


그런데, 사회 구성원의 '시민의식' 수준이 낮다면, 모두가 염원하는 ‘삶의 질’이 높은 사회를 갖기 어렵다. 알다시피,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이 많다면, 모두가 바라는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가질 수 있을까? 치우는데 인색하고, 항의만 한다면? 정부나 지자체로서는 주민들의 불만 해소를 위해, 별도의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된다. 그냥, 각자가 자기 쓰레기를 되가져 가거나, 잘 버리면 될 일을... 이게 안 되니, 비용을 들이는 거다. 이 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할까? "내가 할까...?" 아니, “예산으로 치우면 되지...”


과거, 한국을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일본의 일부 장관급 인사는 걸핏하면 “한국인의 민도가 낮아...”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우리가 없었으면, 너희가 오늘날 이 정도 되는 나라로 어떻게 성장하였겠느냐?”는 식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화가 나도, 객관적으로 그들이 정직, 청결, 질서 등에서 우리보다 낫다는 국제적 평가는 반박하기 어렵다.


어느 신문사 중국 특파원 칼럼을 보니, 중국에서는 ‘문명(文明)’의 의미가 ‘시민의식’, ‘교양’이란 뜻이란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기회 있을 때마다 ‘문명 강국 건설’을 역설한 탓이라 생각되지만… 오래전, 베이징 '이화원' 호숫가를 걷다가 길에 뱉은 많은 '가래침'에 놀란 적이 있다. 몇 년 뒤, 다시 가보니 정말 많이 개선되었다. 더불어, 우리처럼 화장실 소변기 사용 시 ‘한 걸음만 다가가면 문명이 더 가까워진다’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산책 중인 애완견을 배변을 치우지 않는 모습은 여전했다.


‘안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도 새지 않을까?’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은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 중국 정부가 ‘사회 신용 제도’라는 벌점제도를 시행하여 G2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추겠다고 하니, 국민 개개인에게 점수를 매겨 우대나 제재를 가해서라도 ‘나쁜 문명’이 고쳐졌으면 좋겠다.


과거, 터키에 여행 갔을 때 관광버스 차창에 “littering Fine, 100 Marks (쓰레기 무단투기, 벌금 100마르크)”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독일이 ‘유로’화 이전 ‘마르크’화를 사용할 당시, 터키를 여행했던 많은 독일 관광객들이 휴지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마구 버리는 바람에 붙인 경고판이었다. 준법정신으로 이름난 독일인들이 엄격한 사회에서 해방(?)된 자유를 터키에서 마음껏 구가하였던 것일까?


쓰레기 무단 투척 금지 경고

사람 마음 한가운데는 자신이 동경하고 좋아하는 국가에 여행 가면 자신도 모르게 그 문화의 방식을 배우고 따르지만, 약간이라도 무시하는 국가에 가면 ‘우쭐대는’ 마음으로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관광 수입이 필요하여 독일 관광객을 우대하였던 터키의 느슨한 환경이 독일인의 행동을 바꿔놓았듯이, 우리도 동남아 국가에 가서 함부로 행동하는 모습은 없었을까? 중국이 설령, 벌금 등 강압적인 제도와 단속으로 주변 환경을 청결히 유지하기만 한다면, 문명이 “제도의 옷”을 입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나?


우리나라 식당은 잔반을 그냥 치워준다. 하지만, 자기가 먹고 남은 잔반을 각자가 직접 버리게 하면 어떨까? 가만히 앉아서 먹는 문화라 고객이 치우기 힘들다면, 팁 문화가 좋다는 건 아니지만, 치워주는 ‘봉사료’라도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정부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해 일회용 컵에도 ‘회수 보증금’을 준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런 일조차 잘 안 된다면, 이게 돈의 문제일까? 교육의 문제일까? 아니면, 인성의 문제일까?


우리가 소홀했던 환경보호 마인드는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생활 전역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신문은, 거문도 등 서해안의 많은 섬이 중국인이 마구 버린 플라스틱 등 각종 쓰레기가 해변에 몰려와 아름다운 해변이 몸살을 앓는다며, 그곳에 서식하는 거북 등 많은 바다 동, 식물이 받는 고통을 잘 묘사해 놓았다. 중국인 비난은 물론이지만, 어떤 경우든, 정부가 내놓은 환경 보호조치 강화가 '사후약방문'이 안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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