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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25. 2023

이집트의 기후와 의식주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16화)

낯선 기후 조건 

끈질긴 모세’ 파리

이집트의 의식주

열악한 교통/의료 인프라



낯선 기후 조건 

이집트는 북위 23.5까지인 적도권보다 다소 북쪽에 위치하고, '사하라' 사막의 영향권으로 연중 50미리도 안 되는 강수량으로 햇살이 쨍쨍한 무덥고 건조한 날씨가 연중 지속되는 사막성 기후가 전국토의 대부분이다. 

모래바람 부는 모습

이집트에는 '깜신'이라는 황색 모랫바람이 50여 일 동안 불어온다. '깜씬'은 50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미세 먼지로 이 때는 도시 전체가 텁텁하다. 그런데, 깜신이 불어오면 이렇게 꽁꽁 싸맨 집 창문 문틀에도 노란 모래가루가 끼어있다. 차고 속의 차도 온통 먼지로 뒤집어씌고... 그나마, 이건 약과다. 혹시라도 사막 지역을 차로 여행할 경우, 이 '캄씬' 바람을 만나면 대형 버스도 흔들거린다. 또 아스팔트 도로 곳곳에도 모래더미가 쌓여 운전에 제한을 받는다. 일종의 '사막의 모래 폭풍'이다. 이게 불면, 얼른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필자는 요르단 여행 중에 이런 경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북위 30도로 비교적 북부에 위치하고 나일강 수계상에 접한 카이로의 기후도 예외는 아니다. 에어컨이 필수인데, 차에서 내리면 훅하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안경에 김이 서린다. 이들이 더운 날씨에도 몸을 감싸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크지만, 차라리 햇살을 차단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소나기로 물에 잠긴 카이로 시내(출처: 인터넷)

그리고, 이렇게 비가 안 내리는 사막지역이라 이들의 도로에는 배수구 개념이 없다. 그러다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도시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다. 이처럼 굉장히 건조하고 무더운 국가지만 겨울철이 되면 섭씨 8도 정도로 온도가 내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온도에 가끔씩, 얼어 죽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적인 체감 온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아이고, 추워라!"라는 자기 최면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의 온도에서 얼어 죽는 다니... 이집트의 기후 조건은 굉장히 낯설었다.


끈질긴 모세’ 파리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파리'이야기다. 많은 여행객은 룩소르나 아스완 등으로 여행하는 동안, 덥고 건조한 날씨도 날씨지만 계속 달라드는 파리 때문에 고생한다. 덥고 건조하면 각종 음식물 등이 금방 말라버려 파리가 별로 할 일이 없는데.., 주요 여행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불청객이 왜 그리 설치는지!? 이곳 파리는 작은 몸매에 매우 날쌔다. 이놈은 인간의 땀이나 각종 분비물을 빨아먹고 사는데, 한번 얼굴에 붙으면 아무리 손을 휘저으며 위협해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더운 기후에 이런 벌레가 얼굴에 달려들면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간다. 이 파리는 흔히,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을 후원해 달라는 각종 자선단체가 홍보용으로 내보내는 영상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힘없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붙어 괴롭히는 놈들의 모습인데... 


그런데, 교포들은 이를 ‘모세 파리’라고 부른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는 건 사실 여부를 떠나,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완악한 ‘파라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재앙을 내려졌는데... 그 와중에 이처럼 끈질기게 달라드는 파리 떼가 유래했다는 전언이다. 필자는, 혹시라도 이 끈질긴 파리가 수많은 한국 여행객이나 수출입 물자 등의 이동에 따라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이집트 관광지마다, 파리처럼 끈덕지게 외국인 관광객 주변을 맴돌며, 원 달라(One Dollar)! 원 달라(One Dollar)!”를 외치며 돈을 달라고 조르거나 조잡한 물건을 사라고 채근하는(인디아 등도 비슷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한눈에 보아도 열 살 전후의 나이라 "지금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생활 전선에 내몰리다니..?"라는 측은한 마음에 그 아이를 동정하여 1달러라도 주면 순식간에 20-30여 명의 비슷한 어린이들 속에 갇혀버린다. 아이들은 나이답지 않게 굉장한 프로들이다. 절대(?)로 돈을 주면 안 된다.


이집트의 식, 주, 의 문화

우리는 생활에서 의식주의 순서이지만, 무슬림은 우리와 달리, 'Food (음식), Shelter (집), Clothing (옷)' 순으로 ‘음식’이 가장 먼저다. ‘금강산도 식후경’일까? 제대로 잘 먹는 게 경제활동이니, 정치 경제가 모두 이 속에 있다. 잘 먹으면 더 여유 있고, 기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잘 먹는 사람들은 먹는데 여유가 있지만, 음식이 모자란 식탁에는 먹는데 쫓기는 공포와 긴장이 감돈다. 이처럼, 먹는 일은 단순히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영역이다. 식감은 물론, 누구와 함께 먹는지와 먹는 곳의 공간, 인테리어와 분위기도 중요하다.  


무슬림은 남을 대접하기 좋아하고 음식을 많이 차린다. 이들은 가족 간 식사 시 통상 큰 그릇을 가운데 놓고 음식을 각자의 그릇에 들어서 먹는다. 그런데, 아랍과 동남아, 서남아 등 무슬림은 식사도구 없이(일부 사용) 오른손으로 음식을 버무려 먹는다. 예컨대, 이집트인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코샤리’라는 비빔밥이 있는데, 쌀밥과 병아리콩 등을 섞은 밥에 토마토소스를 부어, 각자의 방식으로 뜨거운 밥과 반찬을 오른손으로 버무려서 먹는다. 왼손은 화장실 전용이니 모든 생활에서, '절대 불가촉'이다. 오른손이, 우리의 숟가락, 젓가락인데, 우리는 이 둘을 한 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서구인은 나이프와 포크를 오른손과 왼손으로 사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 간에 자연스럽게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전통이 강한 지역에는 여성은 반드시 별도로 식사한다. 이 모습은 과거, 우리나라 대가족 제도하에서, 음식을 어른 -> 아이 -> 여자로 대물림하는 관습과도 유사하다. 우리 음식 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먹는 '비빔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대물림된 남은 음식을 모아 한꺼번에 넣어 비벼 먹는 음식이었다. 


이집트인의 주식 '에이쉬'빵

유목 생활이 기반인 이들이 먹는 빵은 밀가루 반죽에 우유를 첨가하여 얇게 2중으로 눌러서 만든 원형 빵이다. 인디아나 파키스탄에서는 '난'이라 부르고, 이집트 등에서는 '에이쉬'라는 건데, 얇은 빵 양면 사이에 야채나 고기를 넣어서 먹는다. '에이쉬'는 납작하게 붙은 '난'과 달리, 화덕에 구우면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아올라 교포들은 '공갈빵'이라 부르는데, 맛은 괜찮은 편이다. 이처럼, 빵이 주식이니, 이들 국가에서는 독재는 참을 수 있으나빵값이 폭등하면 바로 폭동이 일어난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가 친미정권의 유지 기반이다.


무슬림이 먹는 고기는 통상 ‘할랄(허용된 것)’ 식품으로 부른다. ‘할랄’은 ‘음식과 생활에서 허용된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이자’, 음주, 도박, 음란물, 마약 등 알라(신)가 금지한 걸 제외하고 허용되는 모든 생활 지침이나, 좁은 의미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동물고기이다. 특히, 소, 양, 닭, 생선(비늘 없는 것) 등 율법에 허락된 이들 육축이나 생선을 죽일 때 ‘메카’ 방향으로 머리를 바라보게 한 뒤, 율법에 따라 3번이나 ‘알라(신)의 이름으로’(비스밀라)라며 목을 자른다. 이는 고기를 도축할 때, 이슬람 율법을 거친 생명존중 방식이며, 이 과정에서 신께 고하고 도축하며, 더운 지역에서 신선도 유지 등에 주의를 기울인다. 때문에, 소, 양 등의 도축한 고기가 청결하다고 알려져서 서구에서도 인기가 많다. 


알다시피,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절대로 먹지 않는다. 이슬람이 더운 지방이라 돼지고기가 쉽게 상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구약성경 (신명기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되새김질을 못해 너희에게 부정하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반면에, 이집트인은 비둘기를 길러서 잡아먹는다. 이집트 농촌 지역을 지나다 보면 농부들이 만들어 놓은 아메리칸 인디언 천막처럼 생긴 '비둘기 집'을 많이 볼 수 있다. 필자는 비둘기를 잡아봐야 깃털 빼고 나면 먹을 게 뭐가 있다고?” 궁금하여 음식점에서 ‘하맘 피르타겐’이라는 비둘기 몸체에 쌀밥을 넣은 음식을 호기심으로 먹어보았는데... 아니다 다를까 맛도 먹을 것도 별로였다. 


우리나라 식탁은 종이냅킨으로 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식사 중에도 식탁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식탁의 품격이다. 그래서인지, 이집트의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면 약간 '특이한' 순간에 직면한다. 상술이겠지만, 웨이터가 한쪽 뒤 켠에 서 있다가 고객이 식사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음식 그릇을 치워도 되느냐?”라고 묻는다. 식사 도중에 한, 두 번 묻는 게 아니고.., 매니저를 불러 물어보니, “외국인 손님이 음식을 먹고 난 접시가 식탁 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싫어해서 얼른 치우려 한다는 답이었다. 나름, 위생 관념과 고객 배려 차원이라지만, 호텔에서 고객 노릇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종업원이 '그 시점을 너무 빨리 잡는 게' 문제였다. 이집트나 중동지역을 방문하면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슬람은 술을 금기시한다. 모함마드는 인간을 취하게 만드는 와인을 혐오하며, 종교적 경건함은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데 술에 취한 몽롱한 정신은 혼란의 시작이다라며 금주령을 내렸고, 꾸란은 술과 도박에 대하여 ‘죄악이 이익보다 크다’(꾸란 2: 219)고 기술하며, 율법상 술은 ‘사탄의 소행’(꾸란 5:90)으로 죄악시한다. 

음주 행위는 국가별로 다르지만, 무슬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철저히 금지되며 종교경찰에 적발 시 바로 감옥행이다. 만약, 이슬람이 음주를 허용한다면, 사회적인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특히, 율법에 충실한 사우디는 영공을 항행 중인 모든 국내, 외 민간 항공사의 비행기 기내에도 술을 금지한다. 


무슬림은 술 대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커피'를 선호했다. 그들은 커피를 '가브리엘' 대천사가 '모함마드'에게 전해 준 기호식품으로 믿는다. 그러나, 커피가 아랍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AD 900년 경이고,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 퍼진 것은 15세기 중반이니, 그들의 신앙적 믿음과 실제와는 다소 시차가 있다. 


시샤 증기가 대단하다 사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외국인 관광객

후식으로, 우리는 과일을 선호하지만, 대부분 무슬림은 커피나 영국식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탄, ‘샤이’라고 부르는 ‘차(Tea)’를 마시며, 식후에도 비교적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다. 담배는 일반적으로 어른은 물론, 일부 여자도 서구식 권련 담배 대신 ‘시샤’라는 물담배를 즐겨 피우는데, 연기를 들이마시면 박하향 등 향도 섞여 있어 매우 순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니코틴 함양은 높은 편이다. 물과 연결된 기다란 줄의‘시샤’를 뻑뻑 피우는 모습을 보면, 우리 선조의 곰방대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집트 무슬림의 의복은 어떨까? 굳이, 공식행사에서 사우디나 걸프만 왕족들의 입은 금실로 장식한 전통의상을 언급하지 않아도... 신분 높고 돈 많은 남자들은 각종 행사에서 옷에 한껏 멋을 내며, 각종 격식에 목을 맨다. 이집트에도 ‘꾸프탄’이라는 고급 옷으로, 각종 공공 행사장 구색 또한, 서구 여느 행사에 못지않다. 


앞부분 흰 옷이 이집트인 전통의상 '갈라비야' 

하지만, 대부분 이집트 서민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헐렁한 '내리닫이' 옷인 ‘갈라비야’를 입는다. 눈치 빠른 독자는 '내리닫이'의 의미를 알고 미소를 지을 건데... 아마도, 이 옷은 남성복 중에서 배변을 가장 용이하게 보도록 고안된 옷 같다. 여기에도 무늬를 넣거나 백색, 회색, 검은색 등 색깔과 재질에 따라 값이 다르다. '갈라비야'와 달리, 무슬림 여자는 ‘니캅’이나 ’ 히잡’ 등 전통 의상을 차려입으면 멋을 냇 공간이 없어 보인다. 눈만 내놓고 모든 부분을 가리니까... 하지만, 전통의상 안에 받쳐 입는 속내의나 비단 스카프, 장신구 등등, 무슬림 여인의 사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때, 우리나라 '대구 공단'에서 생산된 '비단 스카프'는 무슬림 여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휘감았다.      


사막 지역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오래된 도시답게 도심의 건물은 낡고, 대부분 건물의 시멘트 외벽에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아, 희끄무레한 색깔로 다소 칙칙한 느낌으로 도시 미관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대부분 이집트 집은 시멘트 벽돌로 짓는데, 더위를 피해 창과 문이 작고 햇볕이 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필자가 살았던 '카이로' 집은 ‘마디’라는 지역에 외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고층아파트였다. 더운 날씨와 소음, 그리고 심한 스모그 탓에 이 아파트는 외부의 영향을 피하려고 창마다 커튼을 몇 겹으로 둘러 대낮에도 늘 깜깜하였고, 또 서늘함을 추구할 목적으로 온통 대리석이나 돌로 넓게 지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짓다가 중단된 카이로 주택들(철근이 삐죽이 나와있다)

'카이로' 시내에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있다. 이 길을 달리며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은, 고가도로 주변에 건축 중인 건물이 유별나게 많다는 것이다. 돈이 모자라 짓다가 중단했는지 녹슨 철근만 위로 올라온 채, 언제 준공될지 기약 없어 보인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철근 노출이 많은 이유는, 건설 중인 주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으니, 많은 시민이 '지금도 여전히 짓고 있는 중'이라며 세금 면제를 받으려 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집에 층별로 3대가 함께 기거한다.



열악한 교통/의료 인프라

카이로 시내의 낮 시간은 온갖 종류의 소음과 차량 매연 등 스모그로 하늘이 희뿌였고, 어딜 가나 엄청난 인파로 매우 혼란스럽다. 짧은 구간 지하철도 있지만 매우 혼잡하다. 다만, 카이로에서 피라미드로 유명한 '기자'(Giza)까지 도시 고가 도로는 이집트인들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카이로 시내 웬만한 도로는 차선이 거의 없다. 그냥 알아서 달려야 한다. 그런데도 잘들 피해서 달린다. 다만, 잘 달리는 비결은 계속 경적을 빵빵 거리는 것이다. '나 여기 있으니, 너 빨리 피하라!'라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차들이 에어컨은커녕 백미러마저 없는데, 교통법규 준수 의식이 부족하여 가끔씩 역방향으로 질주하는 경우도 있고, 차에 대한 무지 탓으로 야간인데도 배터리를 아낀답시고(?)고 헤드라이트를 끄고 달리는 차들도 많아서 아찔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노후 차량이 많고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가 운전자들의 수준도 낮아서 당연히, 교통사고가 많다. 하지만, 정부는 교통사고 통계조차 없으니 현황을 알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차들이 거의 무보험이다. 차선도 없으니 접촉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경찰은 잘, 잘못을 떠나 보험에 가입된 차 - 특히, 외국인이 운전하는 차량이나 외교관 차량에게 거의 뒤집어 씌운다. 아랍어를 모르는 데다가 무보험자가 사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 ‘능력 있는 자’가 책임지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자국민을 편드는 거다.


재미있는 것은, 노후 차라도 한 대 가지고 있으면 으쓱한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처럼 ‘마이크로’ 버스가 각 마을과 시내를 잇는 주요 교통수단인데, 이 14인승 ‘마이크로’ 버스의 요금은 정해져 있지만, 상황에 따라 요금이 바꿘다. 예컨대, 라마단(단식) 기간 중에는 모두가 낮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했으니 절절한(?) 심정으로 저녁 식사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사는 바쁠 것 없이 느긋하다. 이럴 때, 기사가 좌석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다급한 승객들이 요금을 조금씩 더 내는 것으로 기사와 합의하여 출발하는 식이다.


의료분야는 시설이나 장비가 매우 열악하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여서 병원비와 약값은 엄청 저렴하다. 다만, 약품은 상대적으로 항생제 강도가 강하고(서구의 100배?), 국립병원에서는 만족할 만한 의료지원을 받기 힘들다는 게 대사관 직원의 중평이었다. 군부 독재국가여서 군 병원이 의료진이나 시설이 훌륭하여 주요 인사들은 군 병원을 이용하지만,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가끔씩 국립병원의 일부 저명한 의사들은 외국인이 진료를 받으러 가면 사(私) 보험 가입여부를 물어보고, 자신의 집에서 하는 사(私) 병원 이용을 권유한다. 실력 있는 의사는 돈 많이 주는 해외로 가버렸지만, 남아있는 의사들에게 서구식 의료 영리 행위가 허용된 탓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수술이나 응급상황의 경우에는 꽤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어느 날 우리 대사관 직원 한 명이 교통사고로 급하게 뇌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어려운 수술이라 가족들이 망설이는 사이, 직원들의 견해가 엇갈렸다. 한국으로 후송하자는 의견과 시간이 촉박하니 그냥 현지 의료진에 맡기자는 의견으로… 결국 국립병원 현지 의사가 수술을 하였고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급여 수준은 낮았으나 의료 기술은 높은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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