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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10. 2023

당나귀와 벤츠, 그리고 낙타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4화)

사람과 함께하는 동물들

당나귀와 벤츠

낙타 이야기  



당나귀와 벤츠

이집트에 가면 당나귀, 낙타, 양 등 동물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양은 평소는 물론, ‘라마단’ 종료 후에 축제용으로 쓰기 위해 사육하는 동물로서 매우 소중하다. 라마단 기간이 종료되면 중동에서는 중동 인구보다 많은 양들이 희생된다. 기독교의 유월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양의 피를 바르는 행사도 있고... 그리고, 당나귀와 낙타는 이들 지역에서 수송용으로 쓰이는 동물들로서 마치 이 나라의 상징물처럼 잘 알려져 있다. 


이집트 서부 리비아 국경 근처의 사하라 사막의 가장자리에 가면 ‘백(화이트) 사막’과 ‘흑(Black) 사막’이라는 유명한 사막 여행지가 있다. 어느 해,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그곳을 여행하러 가는 도중, 조그마한 ‘오아시스’ 마을의 호텔에서 묵었다. 말이 호텔이지만, 조금 깨끗하게 치워놓은 시골 민박집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문득, 흔히 듣는 ‘아잔’ 기도 소리와는 다른, ‘끄엉, 꺼엉’하는 굉장히 구슬픈 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아침에 주인에게 그 소리가 뭔지 물었더니, '당나귀 우는' 소리라고 하였다. “오아시스라도 사막인지라 녹지가 별로 없어 당나귀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하루 종일 죽도록 일만 하니 당나귀가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라고 생각되었다. 


 이집트 당나귀

당나귀는 이집트 빈곤층의 소중한 재산이다. 비록 체구는 조그마하지만, 힘이 좋고 온순하여 주인 말을 잘 따른다. 이들은 ‘시내산’ 같은 관광지에도 마부의 ‘끌~끌’ 거리는 소리에 따라 깜깜한 밤에도 머리를 '꺼덕'거리며 사람을 태우고  높고 가파른 돌산에 오르고, 카이로 시내에서는 화물 수송용으로 무거운 짐 나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카이로'는 웬만한 곳에는 차선이 없는지라, 차들이 제 갈 길을 찾으려고 경적을 마구 울려대어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기가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당나귀는 복잡한 차들의 흐름을 피해 자신의 체구보다 열 배나 큰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잘도 헤집고 다닌다. 


카이로 도심에서, 당나귀와 고물버스, 낡은 택시, 그리고 고급 벤츠가 서로 뒤엉켜 경적 소리를 내며 차선 없는 복잡한 도로를 헤쳐나가는 모습은, 자동차와 동물이 끄는 수레로 현대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런 당나귀를 모는 마부들은 거의 십 대 초반의 어린이여서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하다. 이들은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공부는커녕, 어릴 때부터 당나귀를 키우고 함께 일하며 돈을 버는 생업 전선에 내몰렸다. 


어느 날, 퇴근길에 한 사고를 목격하였다. 아마도 고급 승용차인 벤츠가 짐을 싣고 가던 당나귀 수레를 측면에서 박은 듯, 뒤집힌 수레는 크게 파손되었고, 수레를 끌고 가던 당나귀도 뒤짚혀져 네 발을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쳐서 의식을 잃은 소년에게 지나가는 행인인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에 생수 물만 부어주고 있었고… 다가선 사람들도 그저 허공에 고함이나 지르며 함께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필자에게는 '무엇하나 어쩌지 못하는 군중, 다친 어린 소년과 바닥에 쓰러진 당나귀의 처연한 모습'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있었다.    


낙타 이야기   

낙타가 당나귀에 비해 고생을 좀 덜(?) 해서일까? 이 녀석은 큰 눈에 항상 빙긋이 웃는 모습이다. 사막 기후인 이집트를 여행하다 보면, 먹을 풀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는 사막에서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야생 낙타를 가끔 볼 수 있다. 낙타는 3일 정도 물을 먹지 않아도 되고, 발바닥이 넓어 푹푹 빠지는 사막 위를 걷기에 유리하고, 이마가 넓어 눈 주위도 햇빛이 차단되며, 코나 귀 주위 털이 길어 모래 바람조차 막아 주니, 얘는 아마도 천생이 사막에서 살도록 설계된 동물 같다. 낙타의 젖은 음료로, 고기는 식용으로, 털은 직물용으로 활용되니 사막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가축이다. 아랍인들은 이런 야생 낙타를 사육하여 탈 것으로, 혹은 화물 수송용으로 활용하였다. 이집트에서 특히 당나귀와 낙타는 중요한 화물 운송수단이었다. 


피라미드 앞의 관광객용 낙타

몇 년 전, 한국에서, ‘메르스’라는 전염병 사태가 확산되고 있었다. 사막의 동물인 낙타에게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지나가지만, 인간에게는 심각한 질병으로 다가왔는데, 정부가 예방책으로 내놓은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도 없는 ‘낙타의 우유를 먹지 말라’, ‘낙타의 고기나 젖을 먹지 말라.’ 등등으로 낙타가 유명세를 탔었다.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이 관련 의학 서적의 어떤 부분을 누군가에게 번역시켜 언론에 내놓은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카이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기자’의 피라미드 지역에는 낙타를 타려는 관광객 호객꾼이 많이 있다. 여기도 바가지가 난무하니 흥정이 필요하다. 흥정이 되면 느릿느릿하게 흔들거리는 낙타를 타고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피라미드를 둘러볼 수 있는데 나름 재미(?)도 있다. 다만, 낙타를 타고 내릴 때 이 녀석이 무릎을 꿇는 과정에서 흔들림이 다소 커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몇 년 전, 피라미드 인근에서 한국인 여성 관광객을 태운 낙타가 갑자기 몸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에 60대 관광객이 낙타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최근, 세계 동물보호 단체에서 이집트 여행 시 낙타나 당나귀를 타지 말라고 강력하게 호소한다. 이집트인들이 이들 동물을 마구 때리며, 학대하기 때문이란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들 동물은 중요한 관광자원이지만, 이집트인의 동물에 대한 애정(?) 수준은 세계 기준에 한창 못 미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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