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웅 Jan 11. 2023

이집트인의 진정성?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인, 제5화)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진정성 

근무시간의 의미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진정성 

이집트는 영국 등의 보호국으로 오랜 통치를 받았다. 오랫동안, 역사적 부침을 많이 겪는 동안 수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개방성이 강한 이집트 같은 국가는 '생존을 위한' 삶 자체를 그대로 하나의 유산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외세에 지배를 당했던 민족은 그런 식민지 근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걸 시인하고 배상을 위해 '확인서'를 쓰는 대신에, 그저 가볍게 사과하고 끝내려 하거나 태도를 표변하여 부인하려고 하였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심성이 악하다기보다, 잘못을 인정하면 바로 죽음을 당하는 유목 문화 특성상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또, 한동안 서구의 피지배민으로서 ‘뭘 모르고’ 시키는 대로 사인을 했다가 엄청난 고초를 겪은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무언가’에 서명하는 일에는 엄청 민감하고, 무척 조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잘못을 시인하는 말’은 물론, ”모른다”는 말도 무척 인색하다.


관련되는 예화를 소개한다. 

필자는 이집트 '카이로'에 부임할 때, ‘Door-to-Door (화물을 살던 집에서 이사할 집까지 운송)’로 이삿짐을 부쳤다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짐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대사관 영사가, “짐이 집 앞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분실이나 훼손의 우려가 있으니, 컨테이너를 열고 짐을 내려 집 안으로 옮기는 전 과정을 직접 감독하라”며,“어떤 교포는 아파트로 이사할 때, 분실 우려로 각 층 계단마다 사람을 배치하여 올라가는 짐 개수를 일일이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마냥 기다리거나 회사에 맡기지 말고, 빨리 집에 가보라”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이야기에 “설마?”하면서, 대사관 현지 고용원(변호사)을 데리고 집으로 갔었다.


그런데아닌 게 아니라그의 조언을 실감케 하는 일이 곧 벌어졌다짐을 내리던 인부가 가구 박스 하나를 떨어뜨렸는데하필이면 그 안에 든 의자의 다리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현장에 있던필자와 대사관 현지 직원이삿짐 회사의 관리직 직원이 함께 그 광경을 목격했다그러자그 관리직 직원이 갑자기 그 인부에게 다가가 막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보다 못해 필자가 말리니, 사과를 하고는 얼른 현장을 떠나려 하였다. 


필자가 대사관 현지인 직원에게, “당신이 본 대로 이삿짐 파손 확인서를 써 달라고 해라”하니 관리직 직원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도를 확 바꾸며, “인부의 책임이니까, 회사는 모른다”며 확인서 작성을 거부하였다. 지켜보던 대사관 현지 직원이 해결에 나섰다. 둘이서 한창 대화를 하더니, “원 제작사에 보내면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양해해 주면, 회사가 책임지고 수리하여 2주 내로 가져오겠다.”며 간청하였다. 태도를 바꾸고 애걸하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 승낙해 주었다.(현지 변호사라 해결이 되었지, 다른 사람이라면 아주 골탕을 먹는다.)


더 황당한 것은 뭘 물으면 모르는데도 마치, ‘아는 것’처럼 답하고 행동한다. 경험 하나를 더 소개하면, 전임자와 인수인계 기간에 임시 운전수를 고용하였는데, 이 친구는 국방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국방부로 가자”는 지시에 ‘예’하며 무조건 출발하여 급기야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약속된 방문 시간에 늦었다. 필자가 안절부절못하는데도, ‘쏘리...써!’하고 ‘헤~’ 웃을 뿐이었다. 뒤늦게 뭘 모르고 잘못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정말 아는지?”를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근무시간의 의미 

지금 한국은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지려는 목표로 정시 퇴근을 종용하며,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무시간을 단축해 나가는 추세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사합의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근로자들의 업무 집중성, 업무강도의 상관관계일 것이다. 아무리, 노조가 독일의 근로시간 단축을 예로 들면서 그런 모습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 머물며 ‘일하며 보낸 시간'을 순수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근무자세를 바꾸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인에게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곧바로 답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근무시간 중 개인적인 통화나 잡담을 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H 자동차’는 사측과 노조 간에 근무시간 중에 ‘와이파이’ 사용을 허용하는 여부로 뜨거웠다. 사측은 ‘품질 저하’를 우려하며 근무 시간 중에는 ‘사용 불허’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언제든 폰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회사 근무 시간 중에 친구나 가족과 언제든지 카톡을 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겠다는 한국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다.


일본인들은 노트북에 업무용 외는 절대로 개인 파일을 저장해 두지 않아, 노트북을 집에 들고 갈 일도 없고, 아예 휴대폰을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분리해서 2대를 들고 다닌다니, 당연히 퇴근 후에 직장 상사의 카톡도 없을 것이다… 일과 개인의 철저한 분리다. 무조건 ‘카톡’ 하지 말라고 하소연하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분리시키는 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가끔, 관공서 등에 가보면 많은 직원들은 바빠 보이지만, 간혹 인터넷을 하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일부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멀티 태스킹’의 대가(?)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업무를 제쳐 놓고서는 전문적인 업무의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스템의 질은 그물망의 코처럼 촘촘하게 엮인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데서 이루어지는데, 일부 무관심하거나 느슨한 인사들이 있다면 조직의 효율성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반갑게 허그하는 이집트인

해외 파견지에서 근무하는 동안 만난, 이집트나 파키스탄의 공직자들은 대부분 시간을 개인적 일이나, 방문자와 차를 마시는 일에 소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급여가 적으니 하위직 공무원은 투잡을 뛰고, 중간층이상 간부는 가문 사람이나 방문객 맞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집트 정부가 이런 현상을 파악하려 외부기관에 연구 의뢰하였더니, 하루 8시간 일과 중 정작 공무 집행에는 단 72분 정도만 집중하였다고 한다. 매번 하듯이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허그를 하고, 샤이(홍차, 우유를 넣기도 한다)를 마시고, 웃으며 환담하고... 민원인이야 알 바가 아니다. 형제가 우선이니까. 이른바, 몸은 사무실에 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근무시간 도둑질”현상이 만연한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 사람과 근무를 하면, 자신들의 일만 하고, 사담은 별로 없다. 간혹, 커피를 마시며 농담이나 사담을 하더라도, 길지 않고 그저 웃자고 잠시 하는 정도이다. 주식이나 골프 이야기를 할 만도 한데… 이들은 그런 이야기는 아예 하질 않는다. 물론, 전화나, 근무시간 중의 대화도 거의 업무 관련이다. 일본인도 직장에서 공과사의 구별이 엄격하다 하지만, 이들도 개인 생활은 개인적으로 하는 거고, 직장은 업무를 하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직장에서 근무하는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중진국이었으니, 여전히 중진국은 아닐 테고… 일류 선진 국가의 문턱에 와 있는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이 늘었다. 합리적 방식의 직장 윤리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군대는 어땠을까? 과거, 육군 본부 인사참모부에 근무하던 많은 장교들은 밤늦게 퇴근하였다. 최전방 군인들이 어렵게 휴가를 얻어 인사 상담으로 찾아오는 탓이다. 일이 일이다 보니, 대부분 낮시간을 이들과 상담하는데 보내고 나면, 아파트에 가서 저녁식사 하고 와서 지시받은 일 등 부여된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도록 준비해서 다음 날 회의에 참석하면, 어떤 상급자는 회의 마무리를 자기 말만 하거나 골프 등 업무외적인 이야기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였다.


미군은 계급이 대령이든, 장군이든 높을수록 밤낮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본토와 한국 사이에 무슨 화상회의라도 하려면 시차 때문에 꼭두새벽에 나와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 총장 겸 제병협동 사령관’인 ‘밀러’ 중장은 관사 만찬에 초청된 손님들에게, 관사 2층 한편에 있는 별도 집무실을 보여주었다. 그가 비대면 보고서를 일일이 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숙소에 마련된 근무실은 조금 낯설었다. 미국 군인의 보고서는 긴급 시외는 요약식이나 개조식 보고는 거의 없이 모두가 서술식으로 현황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저녁에도 읽어야 한다. 자기 일이니까... 그리고, 상급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급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바로 연락하라”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전쟁에는 밤낮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유교적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일부 공직자는, 비상 시조차 ‘높은 사람 주무시는 것 방해하지 말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비극적 사건 발생 때, 모 전직 대통령 비서진들이 대통령의 수면시간에는 긴급보고를 막았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은 “비상시에 책임지고 일을 잘 처리하라”는 뜻이지, 계급이 높으니 비상시에 더 편하라(?)는 건 아니다. 계급은 차라리 책임의 무게다. 높다고 목에 힘줄 것 없다. 높은 공직자일수록 상시, 비상시 불문하고 자신의 일에 전념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당나귀와 벤츠, 그리고 낙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