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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10. 2023

이자도 없고 집세도 안 올리는 세상?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이집트, 제3화) 

‘이자’ 없는 금융

'이자'에 민감했던 조선



‘이자’ 없는 금융

중세 유럽은, 기독교 교회가 인간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신성이 우위에 있었기에 사회적으로도 재화는 ‘신의 소유’여서 16세기까지는 금전 거래에서 ‘이자의 개념’이 없었다. 

구약성경(시편 15: 5)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많이 받지 않고라는 구절이 있고, 신약성경(누가복음 6: 35)에도 “…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꾸어주어라(…Lend to them without expecting to get anything back.)는 구절을 보듯, 기독교도 처음부터 이자 개념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중세 도시국가의 부유한 '메디치' 가문에서 태어나 교황이 되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가, 다분히 가문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칙령을 내림으로써 ‘이자의 개념’이 정당화되었다. 


이렇게 개념이 바뀌자, 서양 경제학은 생산의 3대 요소로 자본, 노동(기술), 토지로써 자본을 가장 큰 요소로 꼽는다. 산업화와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어떻게든 영리를 추구하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는 서양 경제학은 ‘물질적인 풍요’에 가치를 두었다. 이는 비용과 효용의 결과물이고 그 중심에는 금리가 있었다. 무형 재산인 금리가 파생상품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고리 대부업'은 물질문명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2022년, 전 세계는 인플레 우려로 금리가 급하게 올라 많은 신흥국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였고, 국내도 연일 오르는 금리로 수많은 기업과 가정을 파산과 도탄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금리의 공격은 너무 가혹하다. 


반면에, 이슬람은 초기 기독교처럼 세상 모든 재화의 최종 소유는 '알라(신)'의 것으로 내세운다. 때문에, 신성을 중시하는 이슬람은 지금까지 ‘이자’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이처럼, ‘이자’의 개념을 부정하는 무슬림은, 서구가 ‘물질 지상주의’ 중심의 천박한 가치관으로 인하여 금리인상에 따라 사회가 우왕죄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며, 매우 경멸스럽게 여긴다. 그래서일까? 서구와 대립각을 세워오던 '튀르키예'의 수상 ‘에르도안’은 물가가 폭등해도 금리를 오히려 더 내렸다. 서구 경제학과 역행하여 모두가 놀랐다.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 받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슬람은 ‘이자(리바)’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꾸란 2:275-278, 3:130, 4: 161). ‘‘이자’를 취하는 자는 불지옥에 떨어진다’(꾸란 2:275)고 강력히 경고하고 이자를 부정한다. 소유욕을 추구하는 자본 증식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리대금업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여건이다. 꾸란이 이토록 ‘이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신의 소유’인데도, 모함마드 당시의 ‘메디나’ 유태인들이 고리대금으로 부를 축적한 데 대한 적개심 때문이다(꾸란 4: 161).


이집트 중앙은행

아랍권 은행은 이자가 없으니 금융이 낙후될 거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은행이 ‘이자’는커녕 오히려 ‘보관료’를 요구하는데도 웬만한 상점은 모두 현금거래로 돈을 버니. 안전하게 돈을 보관할 곳이 없는 부자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려 돈이 한가득 담긴 커다란 포대를 들고 40~50분씩 줄을 서서 입금을 기다린다. 영업이 끝나면, 그날 매출액을 은행에 보관하려는 거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주로 대리인들이라, 혹, 외국인 고객이 나타나면 별도의 서비스 라인을 내어준다. 이건, 그 뒤에 살았던 파키스탄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88년, 이집트 이슬람 원리주의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 교리범위 내에서 부를 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이슬람의 ‘국부금융’인 ‘샤리아 금융’을 고안하였다. 이는 이슬람 율법과 경제에 정통한 이집트 ‘알 아자르’ 대학 출신 주요 위원들로 구성된 ‘샤리아 위원회’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금융이다. 이슬람 각국은 각자 법체제가 있지만, ‘샤리아’ 율법과 세속법 조문 간 충돌이 생기면, ‘샤리아 위원회’가 율법을 해석한다. 

이처럼, 일부 아랍국가의 ‘샤리아’ 금융은 ‘이자’ 개념을 ‘수수료’로 변형하는 것이다. 즉, 채권을 발행하여 그 돈으로 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하고, ‘이자’ 대신 수익금을 배당금으로 주는, 일종의 ‘담보부 증권’이다. 


이집트 '무르시' 대통령 하야 시위

과거,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은, 유동성 확보차 이자가 싼 이슬람의 자금 유치를 위해 이러한 ‘수쿠크(시장)’ 채권에 면세 혜택을 주려고 한 적이 있었다. 금융조건은 좋았지만, 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가까운 ‘무슬림 형제단’ 소속이라, 자칫 ‘샤리아 위원회’에 의한 금융 ‘지하드’ 가능성을 고려하여 포기하였다.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들어낸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은 ‘아랍의 봄’으로 '무르시' 대통령을 배출하며 잠시 득세하였다가,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몰락하였다.


이슬람권에서는 집세 또한, ‘이자’의 개념의 연장 선상으로 보기 때문에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따라서, 수십여 년이 지나도 한 가족이 세대를 이어 살기만 하면 집주인이 집세를 못 올린다. 그런 경우, 집주인은 집수리에 당연히 소홀해진다. 이게 인플레가 없던 과거에는 통했으나, 지금 같은 경제 구조에서 수십 년 누적되면 도시 전체가 슬럼화된다.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종교 논리에 따른 탓이다. 한국도 과거 정부의 전세금 인상 억제 등 여러 가지 강력한 부동산 억제책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종교나 정책보다 시장원리가 답이다. 


'카이로'에 있던 폴란드 무관 숙소 만찬에 초청되어 갔었다. 숙소는 꽤 큰 저택으로, 월세가 상당할 것 같은데, 월 집세로 불과 몇백 달러 지불한다다. 이유를 물었더니, ‘1930년대 초에 폴란드 정부가 현지인과 맺은 임대차 계약이 유지되고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현지화의 인플레로 달러 대비 현지화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한 탓이다’라고 한다. 이제는 집이 많이 낡았지만, 집주인이 무심하니 그 값에도 계속 살려는 입주자가 어쩔 수 없이 많은 수리비를 들여 자기 집처럼 고쳐서 살고 있었다. 필자도 후임 무관에게 살던 집 계약을 승계하였으니, 그에게 집세 인상은 없었을 터이다.


'이자'에 민감했던 조선

절대자 '신'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동양은, 서구보다도 먼저 일찌감치 ‘자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임차물에 대한 일정률의 이익 보장인 ‘이자’를 지급했다. 더 나아가, 상인 간 거래는, 거래처와 인간관계가 비즈니스의 기본으로 장부 없이 외상거래를 하였다. 여기에는 유교가 말하는 인간의 도리로 오상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신(信)의 개념이 깔려있다. ‘신(信)’은 믿음이다. 그런데, 한자어 ‘신(信)’은 믿음에 이어 ‘중심’의 뜻도 있다. 종로에는 제야의 종을 타종하는 ‘보신각(普信閣)’이라는 종루가 있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중심거리였지만, ‘중심’은 중국의 것이라, 중국에 굴종하던 조선은 비록 도심의 ‘중심’이라도 ‘중심’을 의미하는 신(信)을 쓰지 못했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독립된 1895년에 비로소 종각에 ‘중심’을 의미하는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내려 주었다. 그만큼 ‘신’은 인간만사와 도리의 ‘중심’이었다. 신뢰와 믿음이 '인간의 중심'이라는 거다.


보신각

장사치에게 신용은 생명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 조선 시대에 ‘빚’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또, 굳이 ‘고리대’를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 옛말에 ‘해묵은 빚’이라는 표현도 있다. 영농 사회인 조선에선 가을에 수확이 되어야 ‘빚 갈음’을 한다. 그러니, ‘해를 넘기는 빚은 없다’는 말은, 년 말까지 갚지 못하면 채권 시효가 소멸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연말이 지날 때까지 버티면빚이 없어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남의 돈을 떼어먹고 어떻게 장사치 노릇을 할 수 있을까? ‘해묵은 빚’은 자식에게 대물림되었다. 그러다 보니, 해를 넘기기 전에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식에게 빚을 물리지 말라”라고 호소하며 채권자 집 앞에서 자결하는 이도 있었다 한다. 오늘날 법에도 여전히 못다 갚은 채무를 자식은 물론, 심지어 조카, 사촌에게까지 물린다 하니… 시간이 흘러도 빚이 갖는 무서움은 진행형이다. 다수의 유명 연예인이 부모의 빚에 연루되어 ‘빚투’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 우리나라는 신용불량자에게 빚 탕감을 받게 해 주는데..., 선조들과 달리 도덕적 해이를 떠나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어디에도 없다는 평가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는 빚 관련 사기꾼이 참 많다. 하지만, 신용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는 금융 부정행위자는 “Dishonorable(신용불량자)”로 낙인찍어, 정신병자인 ‘금치산자(禁治産者)’나 ‘한정치산자’ 급으로 취급한다. 신용사회에서는 재기불능의 사형선고다. 금융이 발달할수록 신용을 잃은 인간에게 남는 게 없게 만든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인구 1,000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이집트 외교관 신분의 필자가 미국계 은행을 찾아 신용카드를 발급해 달라하니, 카드발급을 고마워하기보다, 현지 직원은 쓸데없이 수수료만 나간다며 오히려, 발급을 만류하였다. 한국에서는 포인트 제공 등 카드 사용을 적극 장려하였는데... 실제, 금융이 낙후된 아랍권은, 카드는 발급도 어렵지만, 발급 후 수수료도 높은 데다, 물가와 환율이 수시로 변해 외국인 상대 가게도 현금을 선호하여 신용카드 사용이 매우 불편하다. 신용카드는 일부 고급호텔만 받아주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처럼, 아랍권에서 신용카드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은행도 신용카드 발급에 많은 제한을 두는 것은, 인간의 도리인 ‘신(信)’이 약했다기보다, 신용제도에 대한 관점이 다른 탓이다. 대부분 가게가 카드를 잘 받지 않는 것은, 현금이나 외상거래로 잘되니, 굳이 신용카드를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신용카드 천국인 한국에서도 카드를 내면 할인은커녕, 은근슬쩍 부가세 10% 핑계를 대며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탈세도 탈세지만, 금융을 과거로 되돌리는 건데... 예전에 현금으로 거래할 때는 가격표에 관계없이, 주인 마음대로 결정되는 ‘에누리’가 있어서, 카드보다 현금이 상인과 고객 사이에 정겨움과 훈훈함을 준다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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