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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Dec 10. 2022

신고 정신과 정직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미국, 제5화: 미 해군대학원편 - 3) 

고발 정신과 정직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고발 정신과 정직 

미 해대원에서 공부하던 어느 일요일 아침, 집 근처의 조용한 사거리에서 뜻밖의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 녹색 신호로 바뀌어 통과 중인데, 갑자기 좌측에서 달려온 자동차가 앞 측면을 ‘쾅!’ 하고 부딪혀서 차체가 360도 두어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순식간의 일이라 한 순간 멍했지만, 곧 옆의 아내가 어떤지?, 뒷 좌석의 카시트에 앉아있는 우리 아이가 어떤지? 살펴보았다. 아내는 "괜찮다"라고 하고, 아이는 ‘카 시트’에 앉은 채로 매달려 울고 있었지만, 다행히 외상은 없는 듯하여 얼른 차에서 안아 내렸다. 곧이어,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 여럿이 차를 멈추고 달려와 “괜찮으냐?”라고 묻고는, 구급차를 불러 주었다.


몬트레이 다운타운 사거리

그렇게, 3-4분이 지났을까? 경찰차가 급하게 달려와서 멍하니 서있는 필자와 가족들의 부상 여부와 차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바로 가해자 쪽으로 갔는데, 그 순간 젊은 여자 한 명이 뭐라고 계속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사고를 낸 차량에 타고 있던 가해자의 여자 친구였다. 서로 친구지간으로, 경찰의 조사에, 가해자인 "자기 친구가 잡담하다가 사거리의 정지 신호를 미처 못 보고 그대로 달리는 바람에 충돌사고가 났다”라고 큰 소리로 진술하였다. 사고라는 큰 일을 당한 충격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조금도 숨기는 것도 없고, 친구라고 봐주는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바람에 오히려 필자가 약간 어리둥절했다.


이게, 서구인의 고발정신’일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진술로 친구가 손해를 보거나,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친한 친구 앞에서  모든 사실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진술할 수 있을는지? 나와 관계있는 사람을 보호(?)하거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명제에, 우리는 불법이나 비리를 보고도 웬만해서는 ‘고자질’이라며  신고하지 않는다.


남에게 뭔가를 일러바친다는 게 양반의 도리도 아니고, 모른 척한다 해서 비겁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동료의 잘못을 감추고 의리를 지킨다는 것을 당연한 명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군자로서 괜스레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도 없고, 남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거나 원성을 살 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 등 친한 사람의 일이라면 더더욱 신고를 기피하려 한다. 단체로 말을 맞추거나, '모른다'로 잡아떼는 뻔뻔함에 비해, 우정보다 정직을 앞세웠던 어린 미국 여고생의 모습을 보니 미국 사회의 성숙함이 느껴졌다.


이 학생만 그럴까?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회사가 직원을 고용할 때, 세 가지 중점으로 ‘진실성(Integrity)’, ‘지능(Intelligence)’ 그리고 ‘열정(Energy)’을 들면서, 이 중에서도 Integrity(진실성)를 다른 모든 가치를 지탱하는 핵심가치로 들었다.” 이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도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의 특성으로, 이런 인재야말로 어디서건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이처럼, ‘정직’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매우 무겁다. 한국은 부정직해도 우물쭈물하며 덮어 버리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정직이 체질화되어야 산다. 한 때,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과, BMW의 화재사건으로 ‘기술과 신뢰’라는 독일 회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작은 불신이 쌓이면 여지없이 '양치기 소년'의 효과를 가져온다.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거짓의 극단적인 예를 들어본다. 오래전, 힘든 군생활의 대명사로 흔히 표현하던 '인제, 원통'이라는 말이 나온,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천도리'의 어느 대대에서 초급장교였던 필자의 에피소드가 불현듯 떠오른다.

당시에는 하도 군사훈련을 강조하여 심지어, 군단은 물론, 연대가 주관하는 대대 간의 포술 경연대회 성적조차도 모두의 관심사였다. 대회일정이 정해지면 대대원 전원이 대회를 준비하느라, 취침 시간인 밤 10시를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병사들은 주특기와 전투력 분야를, 간부들은 사격과 간부시험을 준비하였다.


경연대회가 다가오자, 각 포대는 ‘분대별 전투 편성표’를 만들어 이를 연대에 제출하였고, 연대는 제출받은 이 편성표를 보고, 각 포(중)대에서 무작위로 1개 분대를 선정하여 그걸로 대대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대대에서는 하필이면 가장 취약한 병사들로 구성된 여러 분대가 선발되어 모두 낙심천만이었다. 하지만, 임무수행에 매우 적극적이고 유별나게 승부욕이 강했던, 당시, 대대 작전장교 G대위는 선발된 병사와 잘하는 병사들의 주민 등록증 사진을 "바꾸어 붙이라”라고 지시했다. ‘주민증 훼손’도 문제였지만 (당시는, 군에서 분실 사유만 입증해 주면, 지역 주민센터에서 쉽게 재발급하여 주었다), G대위의 무모한 지시에, 여러 포(중)대장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며 항의했다. 하지만, 그는 “훈련은 전쟁이다. 전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논리로 응수하며 “지시대로 하라!”라고 윽박질렀다.


한편, 장교에 대한  간부 시험 대상자도 지정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필기시험이라는 것이 그냥 문제만 던져 놓고 하얀 백지에 채우라는 건데... 논술식과는 달리, 암기 능력 테스트 식 시험이었다. 몇 개라면 암기할 수 있지만, 시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공부할 마음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G 대위는 선정된 장교들이 어쩔 줄 몰라하자, 이번에는 “점수 미달자는 각오하라"며… "모두들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라!”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간부시험 대상자 중의 한 명인 K대위는 “내 실력대로 하겠다”며, ‘커닝 페이퍼’를 거부하였다. 사관학교에서 ‘무감독 명예시험’을 치러 온 그로서는 그런 상황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결과 중시론자와, ‘결과에 무관하게 그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과정 중시론자 사이에서, 분위기에 휩쓸린 많은 사람은 결과만을 중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덕적인 군대가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경연대회는 우승하였지만, G대위인들 그 결과에 미소를 지었을까? 모두에게 한동안 앙금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장교로서, 상급자로서 가장 큰 잘못은, ‘젊은 병사들에게 시켜서 안 될 도덕적 잘못’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의 전례를 보더라도 이런 비도덕적인 사례는 빈번하다.


하지만, ‘과정’의 공정성과 공평성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는 참혹하다. 연일 언론에서 터지는 지도자급 인사들의 너무나 뻔뻔스러운 허위나 거짓, 각종 부정직한 언행을 접할 때마다, 정말 분노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G 대위는 얼마 후, 바로 전역하였지만, K 대위는 나중에 육군 대장까지 승진하였다. 군의 승진이 무슨 사회적 도덕성의 잣대가 될까마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해야 하는 Integrity가 그나마 군 시스템에서도 제대로 작동된 듯하여 일견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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