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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Apr 28. 2023

긴 터널을 지난 '테러와의 전쟁'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해와 어울림, 제6화)

잘못된 '홍보'와 '몰이해' 

불필요한 반발만 초래한 '외부의 개혁'

미국의 '아프간' 철수 -'테러와의 전쟁' 종료 



잘못된 홍보와 '몰이해' 

'정교일치'에서 출발한 이슬람은, 종교이면서 정치 그 자체이다 보니, 여느 종교와 달리 정치와 관련이 많다. 한국 정치가 그렇듯이 정치는 어느 사회든 논쟁의 시작이다. 그래서, 서구와 아시아 각국은 무슬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다. 이 점을 직시한, 미국이나 서구의 언론은, 중동이나 서남아, 러시아 등지에서 무슬림과 관련하여 무슨 사건, 사고라도 생기면, 그 소식을 가해자, 피해자보다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아랍계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슬람 종교나 정치를 철저히 옹호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조차 이슬람과 관련이 되면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자료 제공에는 매우 소극적이어서, 제3 자인 우리로서는 이들보다 쉽게 접하는 서구 측 자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몰이해'의 시작이었다.


9.11 테러에 불타는 쌍둥이 빌딩

그 결과, 우리는 이슬람을 9.11 테러와 전쟁, 잔인함, 난민, 자살테러, 아프간 반군 등 서구적 시각에 경도된 부정적인 측면으로 연관 짓는다. 더구나, 서구 언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테러리스트들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 뒤 신이 보시기에 옳은 일이다며, 자신들이 테러를 벌였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에 경악한다. 살인은, 그 동기나 목적이 뭐든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누구든 테러리스트를 무서워하나, 대다수 무슬림이 종교적으로 경건하며 인간적으로 순수하다는 것을 알리려면, 언론이 그 실상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엉뚱한’ 주장을 내세우며, 외골수의 '경건한 삶'을 고집하는 것은, 어찌 보면, 겁먹거나 비겁한 아랍계 언론의 우유부단한 태도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언론은 누구든 당당하게 테러를 비난하고,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다만, 이를 보는 우리도 누가 어디서 무슨 생활을 하든, 무슨 종교를 믿든 존중하고,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차별하고, 자기와 무엇이 다르다며 쓸데없는 논쟁으로 상대를 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특히, 정치와 종교에 대한 비교와 논쟁은 늘 분쟁을 수반하므로, 항상 모두의 말, 종교, 관습, 전통, 인종, 문화, 역사에 대한 무편견, 이해와 관용으로 대하는 게 국제적 관점이다.     


불필요한 반발만 초래한 '외부의 개혁'

이슬람은이미 400여 년 전에 종교전쟁을 끝으로 신성을 탈피하고인성을 찾아 과학기술과 물질적 향유를 누려온 서구와 달리, 1,400여 년 전에 창시된 꾸란의 계시를 여태껏 완벽한 종교를 믿는 자부심으로지금껏 신성을 최고의 가치로 유지하며 거기에 더욱 충실하려 한다”. 

서구는 이교도 및 불신자에 대한 배척과 폭력을 '반문명적 행위'로 간주하고 비화합적인 이슬람 교리를 '국제규범'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나이슬람은 이를 정당화하고 신념화한다”. 

미국과 서구가 이슬람을 개혁한다며숱한 분쟁과 오랜 피지배의 아픔을 간직한 무슬림에게군사적경제적인 압박으로 현실 정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에 대한 거부감은 실로 크다”. 


이라크 전에 참전한 미군 전차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이슬람을 변화시키려던 미국의 ‘대중동정책’이라는 구상은, 위와 같은 3가지의 기본적인 이슬람 정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미국적인 관점에서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허무한 탁상공론이었다. 결국, ‘대 중동정책’은 현지인은 물론, 동맹 세력인 서구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결실을 보기전 반발만 야기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이 사례에서 보듯, 서구와 이슬람 간의 시각 차이는 서로가 이해하며 대화로 그 간격을 좁혀야 하지만, 이들 사이 대화의 여지는 매우 좁아 보인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하지 않은 채, 만약, 외세가 물리력을 이용하여 '힘에 의한 개혁'을 가한다면, 어느 누구든,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30여 년 전 이조말기에, 개혁의 기치아래 내려진 ‘단발령’은 수백 년 간 이어 온 유교문화의 핵심인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持父母)’의 가치관을 버리라는 왕의 지시였다. 급기야 ‘최익현’ 등 유생들은, ‘자신의 목부터 먼저 자르라’고 집단 상소를 하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 두발은 조상님들에겐 목숨을 건 신조였다.


더불어, 구한말 조선에서는 '양복과 넥타이'가 '갓과 곰방대'를 대체하는 데도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것은 우리 조상이 살아온 방식이었고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사상과 이념 때문에 수백만 명이 살상당한 6.25라는 무참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생활 패턴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전, 종교가 사상과 이념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임은 이미 공산주의의 붕괴로 확인된 바 있다. 종교와 사회의 변화는 외부의 물리적인 강요로만 쉽게 바뀌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이슬람이라고 다를까? 7세기 초반 이후 무려 1,400여 년간 이어져 온 종교며, 관습이고 문화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조차, 외세에 의해 관점을 바꾸고 가치기준을 바꾸라”라고 강요하는 일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버리라”라고 강요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은 이런 점을 잘 알지 못하였고 또 별로 고려치 않았다. 종교적 '경건함'에 대한 존중 없이, 군사력 제압과 경제적인 지원만으로 이슬람의 불신자에 대한 적개심을 해소하려는 자본주의적 접근방법은 반발만 초래할 뿐이었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 - '테러와의 전쟁' 종료  

2021년 8월 31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 종료일에 대국민 연설을 하였다. 2001년, 9.11 테러에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포했다. 드디어, 가장 긴 전쟁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연설의 핵심은, 다른 나라에 가서 '국가 건설'을 해온 중대한 군사작전 시대의 종료를 천명한 것이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을 이끌어 온 외교정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분명하고 도달 가능한 목표와 임무그리고 미국의 핵심 국가안보 이익에 명확한 초점을 맞추는 외교를 분명히 했다. 


미군의 아프간 찰수에 합류하러 몰러든 아프간 사람들 

바이든의 생각은, 그가 2021년 8월 8일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아프간에 '국가 건설'을 하러 가지 않았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2002년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평화는 아프간이 안정된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울 때 성취될 것이라며, 아프간을 악(탈레반 지칭)으로부터 자유롭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돕겠다”라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배치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내세운 약속을 뒤집으며 동맹과 아무 상의 없이 철수한 것은 '일방적'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동맹들은 이라크에 이어 다시 한번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 자체는 진화하였다. 그는 세계가 변하고 있다며 적어도, 미국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껏, 미국과 대립 각을 세워 온 이슬람 국가는 물론, 수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환영할만한 선언이었다. 아울러, 새로운 '평화 공존'의 틀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대서양 체제의 패권주의를 지키기 위해,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혹은자유와 평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너무나 많은 각종 국제분쟁에 '현장에 대한 고려 없이' 개입하였다. 결과는 처참하다.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자국의 관점'에서 제3세계에 '횡포'를 부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세계 평화의 청신호가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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