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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11. 2023

'카슈미르' 산악지대(4) - '길깃'과 '훈자'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10화)

유엔군 최북단 '길깃' 정전 감시 기지

'길깃'의 명물 '폴로' 시합

아름다운 산야 '훈자' 계곡

아름다움 속의 안타까움



유엔군 최북단 '길깃' 정전 감시 기지

파키스탄령 북부 '카슈미르'의 중심도시는 '길깃'이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아자드'카슈미르라고 부르지만, 지역민들은 과거 '발티스탄'왕국을 이은 이름으로 '발티스탄 길깃'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차량으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여기서, 북쪽으로 몇 시간을 더 가면 '훈자'를 거쳐 중국 국경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치트랄'지역이다. 

 

'길깃' 호텔에서 바라본 저녁 무렵의 K2(멀리 보이는 흰 산봉우리)

'길깃'의 매력은 K2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이면 이곳의 아침, 저녁 기후는 매우 상쾌하다. 우리 순찰 팀은 유엔군의 최북단 감시 기지가 있는 '길깃'에서 통제선(국경선) 순찰을 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접경에 가까운 '훈자'지역을 둘러보고 돌아온 호텔에서는 저녁노을에 보이는 세계 제2의 고봉인 K2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길깃' 유엔군 기지 표지판 앞에서 요원들과 함께(사진 촬영을 한다 하니 음식을 준비하던 장교도 허둥지둥 나왔다) 

유엔 임무단의 관점에서 볼 때, '길깃'은 인-파 통제선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행정 등 일종의 지역 중심 기지로서 광활한 지역을 커버하는 곳이고,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고산지대에 유일한 비행장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유사시 임무 수행에 중요한 거점 기지로 운용된다. 


사진 우측 끝부분에 보이는 접시형 안테나가 유엔 임무단 업무에 중요한 통신 장비이나 집중호우 시마다 고장을 일으켜 말썽을 피우곤 했다.

 

'길깃'에서 보이는 K2(흰 산)

드디어, 2주간의 '카슈미르' 북부 산악지역에 대한 순찰과 부대 방문이 끝났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배운 점도 많았던 순찰이었다. 다음 날, 우리가 타고 온 순찰차는 파키스탄 운전요원이 본부에 반납할 보급품을 싣고 복귀하고 필자와 의무참모는 비행기로 '이슬라마바드'로 돌아왔다. 그때,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본 K2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해질 녘의 황금 빛 K2 모습

'길깃'의 명물 '폴로' 시합

파키스탄 '카슈미르' 고지대의 최고 인기 스포츠는 말을 타고 공을 치는 '폴로'(영국식 '격구') 시합이다. '폴로'는 기마민족인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되었는데,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 근대스포츠로 정립하였다. 이 스포츠는 가로 250m, 세로 150m의 드넓은 운동장에서 쌍방 6명의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리며 공을 치기 위해 거의 전투 수준의 극한 게임을 벌인다. 다소 지루한 올림픽 승마게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굉장히 박동감이 넘치지만, 그만큼 사람과 말 모두에게 부상 위험이 매우 높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말이야 부상을 당하면 말고기가 되지만, 운동장과 관중을 분리하는 돌벽이 특히 위험하여, 말에 탄 기수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이스하키 게임 수준의 벽면 안전장치가 필요하지만 그 비용 감당이 안된다는 거였다. 


카슈미르 북부 '폴로' 지역 예선전(출처: 동아일보)

이런 외부의 고민과 무관하게, 양 떼를 키우면서 말을 잘 타는 이곳 주민들은 약 800여 년의 전통을 지녔다는 '상드르' 폴로 시합에 열광한다. 매년 7월 초순이면 3,700여 m의 고지대인 '상드르' 고개에서, 고개의 동, 서쪽 '길깃'과 '치트랄' 팀이 우열을 다투는 '결승전'이 벌어진다. '길깃'만 하더라도 수많은 지역별 팀들이 있어, 결승 진출을 위해 예선전을 다툰다. 예컨대, 이름난 '폴로'대회는 아니지만, '낭가파르밧'으로부터 2시간 정도의 고지대인 '라마호수'(해발 2,345m) 일대에서도 '길깃'팀과 '다아마르' 지역팀이 겨루는 예선전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을 소유한다는 것은 중산층 이상의 농장주나 부유층인데, 지역민들이 식전 행사로 영국식 복색을 갖추고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연주를 하면서 영국식 '폴로'를 흉내 내어 즐기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민이 높은 고지대에서 벌어지는 이 승부를 보려고 '길깃'에서 로컬 버스로는 10시간 이상, 지프차로는 4시간 이상 거리를 달려오고, 심지어는, 여름철이라  낮에는 40도 정도지만, 밤에는 영하 10도 정도의 기온인데도 숙소조차 없는 야지에서 2박 3일을 보낸다니.., 얼마나 그들이 '폴로'에 열광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아름다운 산야 '훈자' 계곡

'훈자' 계곡과 '쿤자랍' 고개 이정표

유엔군 순찰의 서쪽 끝이 '스카르두'라면, '훈자'까지가 순찰 북방한계선이다.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인데 배낭여행객들에게 선호하는 여행지가 있다 한다.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다합'과 파키스탄 북부 '카슈미르'의 훈자, 그리고 라오스의 '방비엠'이라고 하는데... 3군데 모두 접근성이 낮아 인간의 때가 덜 묻은 곳이라 사람들이 유순하고 여유롭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집트에 사는 동안 시나이 사막의 끝 부분으로 이스라엘과 국경지대인 '다합'을 통과한 적이 있는데, 너무 더워서인지 그렇게 낭만적인 느낌은 못 가졌다. 하지만, '훈자'는 달랐다.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산야를 바라보면 '무념무상', 그야말로 '멍 때리기'가 이어질만한 곳이다. 


한폭의 그림처럼 산과 강이 어우러진 북부 '카슈미르' '훈자' 계곡

어쨌든, 살구가 만발한 이곳의 정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주민들은 순수하고 친절하였다. 여유롭다고 할까..?  


흥미로운 것은, 순찰 중 지나친 몇몇 주민들의 눈 색갈이 푸른 눈이었다. 멀쩡한 서남 아시아인의 외모인데... 누군가의 말로는 약 2,300여 년 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조를 멸망시킨 '알렉산드로' 대왕이 인도 원정을 이어갈 때, 그 원정군 일부가 이곳까지 진출하여 눌러앉았다는 설이었다. 저들이 그 후손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푸른색 눈을 가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2,000여 년 전에야 시작되었으니, 그 당시의 '마케도니아'인은 푸른 눈의 '게르만'인이라기보다는 황갈색 인종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훈자' 계곡의 최고 높은 곳, '훈자 초크'

아름다움 속의 안타까움

약 2주간에 걸쳐 인디아-파키스탄의 ‘카슈미르’ 고산지대 통제선 일대를 순찰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일대가 황량하기도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결함을 느꼈다. 그리고, K2 등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한없이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반 인프라가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이 막상, '종교'라는 초현실적 제약에 얽매여 '신을 경배한다'며 여러 가지 율법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들 서민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분리되어, 싸우지 않아도 될 전쟁을 하였고, 피를 흘리고서야 정전을 하였다... 이들이 겪고 있는 인디아-파키스탄 간의 정전 상태는 '종교'와 '이념'이라는 차이 이외에, 우리가 독립이래 이어져온 남북 전쟁과 휴전의 모습과 뭐가 다를까?  게다가, 우리와 비교할 때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번 양측이 전쟁으로 치달으면 우리의 안보상황에 못지않게 휘발성이 큰 화약고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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