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아지트

고요하게 책읽기

by 아무말

몇 달 전 인왕산 등산 후 내려오는 길에 어느 아늑한 공간을 발견했다.

산길 옆에 있는듯 없는듯 가만히 놓여 있던 작은 공간. 팻말엔 군 초소를 리모델링한 책방이라 했다.

'다음에 꼭 와봐야지' 하고는 내려와 막걸리에 파전을 먹었다지.


마침 경복궁 근처에서 점심 약속이 있던 날. 이 작은 책방이 떠올랐다.

지도에 검색하려니 이 작은 공간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초소와 책방을 검색해본다.

인왕산 자락에 초소책방이라는 곳이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초소를 개조했다하고, 산 언저리에 있으니 이곳인듯 하다.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아담한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골목을 지나 수성동계곡에 내린다. 서울에 이런 계곡이 있는게 감사할 정도로, 신선놀음이 생각나는 계곡이다. 계곡 옆 길을 따라 숲길을 따라 구비구비 올라간다. 등산하는 아주머니와 반갑게 안부의 말도 나눈다.


지도를 따라 도착한 초소책방. 내 기억 속의 장소가 아니다. 찻길 옆에 있고,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내가 기대하던 고요한 그 곳이 아니다. 지도를 확대해 기억 속의 그 길을 더듬어 본다. 네이버지도에 사진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어떤 장소가 보인다. 숲속 쉼터. 일단 가본다.


등산하듯 작은 산길을 오른다. 크록스 힐을 신었지만, 산림학과 전공자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평일 2시. 작은 책방을 찾으러 아무도 없는 숲길을 오르고 있으니, 어떤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문득 마추픽추 여행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 잉카인들은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 일주일 산길을 올랐다고 한다. 그 트레킹 길을 따라 텐트에서 머물며 마추픽추를 오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무척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언젠가는 꼭 하고 말거다). 왜 그 길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장소를 만나기를 고대하며 산길을 오르는 것이 비슷한 마음이라 생각했을까.


숲속 쉼터. 기억 속의 그 공간이 맞다. 벅찬 마음으로 공간 안에 들어선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통창 가득히 나무와 햇볕이 아른하고, 많지는 않지만 책장엔 책이 꽃혀있다. 한 두 명, 창가의 안락한 의자에 숲을 바라보고 앉아 책을 읽는다.


오늘도 일거리를 이고지고 온 난, 책상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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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숲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집중을 시도한다. 근데 책이 너무 읽고 싶다. 꼭 일이 많을 때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일탈도 괜찮아' 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마치고, 책장에서 가장 재밌어 보이는 책을 하나 집어들어 안락한 의자에 앉아본다.


그렇게 두시간. 오랜만에 책에 푹 빠져버렸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 작은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 간만에 '쉼'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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