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한 마디의 장벽

계단뿌셔클럽: 계단을 부수는 사람들

by 아무말

너무 당연해서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가게 문을 들어설 때 엄지 한 마디 높이의 문턱. 나는 그것을 한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온갖 정보가 오가는 단톡방 중 하나에서 흥미로운 행사를 발견했다.

계단뿌셔클럽. 뿌셔뿌셔가 생각나는 깜찍한 네이밍에, 계단을 부순다니?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가게나 건물 앞 계단이 있는지 조사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휠체어, 유아차, 노인 등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지 계단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다.


약속장소에 가니 십여 명 정도가 모여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 80대 어르신, 대학생, 직장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계단정복지도> 어플에 정보를 등록하는 방법 설명을 듣고, 2인 1조 팀이 꾸려졌다. 우리 팀 미션 링크에 들어가면 약 1시간 반동안 '정복'해야하는 건물과 가게의 지도와 체크리스트가 있다. 정복이라니. 의지가 활활 불타오른다...!


지도 속 건물을 찾아가 미션 가게를 찾고 어플에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가게 들어가는 길에 계단이 몇 개 있는지, 경사로가 있는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엘리베이터를 타러가는 경로에 계단이 있는지, 어플 안내를 따라 클릭, 클릭, 사진 두어 장을 찍으면 하나 클리어. 그 다음 가게, 그 다음 건물로 하나씩 리스트를 지워나간다. 문턱을 넘는 작은 단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메모로 기록을 남긴다.


stairs.gif


마치 협력게임을 하듯 즐겁다. 나와 나의 짝궁은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치울까, 역할분담을 하고 소통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개인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친밀감이 쌓였다.


다시 방문해보고 싶은, 미디어 아트 감성의 카페를 발견했다. 우와, 감탄하며 둘러보는데 손 반 뼘 정도의 문턱이 있다. 누군가는 이 멋진 곳을 맘 편히 들어오지 못하겠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 휠체어에 탄 상상을 해본다. 몇 개의 문턱을 넘어야 할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아 멀리 돌아야하고, 아파트 단지를 오르는 돌계단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무심히 넘나들었던 인도와 차도 사이 턱도 어림없을 일. 눈 앞에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장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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