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
아빠는 취미로 닭을 키우신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신기한 기계를 사들이시더니 그 기계로 철에 따라 병아리는 30마리 60마리씩 부화시켰다. 그리고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아빠는 항상 그랬듯 그 신기한 기계를 원래 창고 방으로 쓰였던 지금은 내가 쓰고 있는 자칭 내 방에 가져다 둔다. 병아리가 깰 시기가 오면 ‘삐약’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아침이 되면 아빠는 항상 나에게 물어보셨다.
“딸, 병아리 ‘삐약’ 해?”
“아직!!”
중동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내가 계속 방에 있으니, 아빠는 나에게 미션을 줬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면 약 2시간 정도 있다가 털이 뽀송뽀송해질 때, 거실에 둔 간이숙소에 옮겨 놓으라는 것이었다.
‘으아~~~ 귀찮아! 나랑 상관도 없는 저 병아리 자식들!’
하지만 부모님이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세상에 내놨다 하더라도, 월세도 밥값도 안 내면서 이것도 안 하면 너무 양심없는 자식 아닌가? 라는 생각에 아빠가 집에 없는 동안 귀찮은 손길로 내 임무를 수행했다.
참 신기했다. 막 알에서 깨고 나오면 정말 몇 가닥 있는 건가 할 정도로 빈약한 털들이 축축한 채로 몸에 딱 붙어 얼마나 처량해 보이는지. 때에 맞지 않은 감상이었지만 그 모습이 짠하다 싶은 게 30이 훌쩍 넘어 지금 까지 쌓아온 걸 다 버리고 돌아온 나 같기도 했다. 순간 중동에서 겪었던 몇몇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식사를 준비하다 대걸레로 머리를 얻어맞은 사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잔뜩 악에 바친 훈계를 들었던 일, 한 순간에 사라지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시간들. 이제 막 부화한 병아리 들은 몇 시간 후엔 뽀송뽀송해서 정말 예쁜 병아리가 됬다.
게중에는 알을 깨고 나오다 결국 못 나오고 그대로 굳어 죽는 병아리들도 있다. 핏기를 머금은 채로 군데군데 깨진 껍데기 속에 웅크려진 몸. 자기 딴에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쳤을텐데 결국은 못 나오고 죽어버렸다. 이런 것을 보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마땅한 직장도 없이 지나간 힘든 시간에 대해 보상을 받겠다는 이상한 심리아래 집에서 놀고먹고 하는 나를 보니 나도 꼭 저런 모습이 되기 십상이겠다 싶었다.
이대로는 부화가 안 되겠다 싶어 아빠가 도움을 줘서 알을 깨고 나온 몇몇은 시들시들하다고 죽기도 했다. 태어날 땐 정말 못생긴 녀석들이었는데 임시 숙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뽈뽈뽈, 총총총 돌아다니는 뽀송뽀송한 털 뭉치들을 보니 참 신기했다.
이른 아침 어마닭들이 기껏 낳아놓은 계란들을 수거해 왔다. 계란 후라이를 해 먹으려고 계란을 깨뜨리며 생각했다. ‘이 계란이 병아리가 된다고?’ 노른자 흰자만 있는 줄 알았던 계란이 살아 총총총 거리는 병아리가 된다. 그리고 닭이 되어, 또 알을 낳는다. 알고 있는 지식이지만 새삼 너무 신기했다. 지글지글 탱탱한 노른자가 흰자의 중앙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이 생각났다. 남들이 다 꿈을 꾸고 노력하라고 할 때 따끈한 밥상에 납작하게 누운 나른한 후라이가 되고 싶다는. 내가 지금 딱 후라이인데? 하지만 나는 후라이는 되고 싶지 않은걸? 나는 병아리가 될래. 나는 지금까지 알을 깨고 나와야 해서 힘들었던 거야. 이제 내가 살던 세상을 깨고 나온 거로 생각하자. 아직은 축축하고 연약하지만, 나중엔 황금알을 낳는 암탉이 되자.
나는 28살 쌀쌀한 가을이 마무리 될 때 즈음 한국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늦은 행정 처리로 인해 NGO 활동이 인정되지 않아 불법체류자로 경찰서에 연행되어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33살 여름이 시작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동 땅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하던 일을 내려 놨다는 것은 같았지만 이유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니 이후에 하는 선택도 달라야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