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합니다. 생각과 마음의 습관이라고.
짧은 경험 하나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취미로 로드 자전거를 탑니다.
속도를 높이는 데서 큰 쾌감을 느끼는 스포츠입니다.
빠른 속도를 내려면 체력을 끝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내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 도전을 즐기며, 속도계로 속력과 파워와 회전력을 보며 집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라이딩 도중 갑자기 부정적인 기억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몸이 신기하게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같은 힘을 쓰는데도 더 힘이 들고, 속도와 회전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생각은 단순한 정신 활동이 아니라, 몸의 결과로 이어지는 힘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인 부정적 생각조차 몸의 에너지를 끌어내립니다.
습(習)은 새 깃털을 뜻하는 羽(우)와 白(백)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아직 흰 솜털을 가진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갯짓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바람만 가를 뿐이지만, 그 반복이 쌓여 어느 순간 하늘로 오르는 힘이 됩니다.
관(慣)은 마음 심(心)과 꿸 관(貫)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관(貫)은 실이 조개를 꿰뚫는 모습에서 왔습니다.
어떤 생각과 행동이 반복되어 마음을 완전히 꿰뚫고 지나가는 상태.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입니다.
두 글자를 합치면,
습관은 수없는 반복을 통해 생각과 몸에 새겨져,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부정적 생각을 습관으로 만듭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을 보고 "걱정도 습관이야"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할 만한 상황이 있어서 걱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걱정이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자동 반응처럼 나올 때가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미래의 불투명함에 염려하고, 걱정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런 날들이 많아지다 보니 어는 순간 걱정과 염려가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염려도, 두려움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면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 됩니다.
혹시 지금,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을 습관처럼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이 100번이 넘게 등장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사야 41:10
왜 그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실까요.
하나님만이 우리의 보호자이시며,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염려할 필요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고 그분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그것도 습관처럼 말입니다.
그오늘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이 습관처럼 올라올 때, 어린아이의 믿음처럼 단순하게 이렇게 외쳐보십시오.
"우리 아버지가 두려워하지 말라 했어."
"우리 아버지가 염려하지 말라 했어."
그 말 한마디가 생각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봅시다.
염려가 올라오면 성령님께 맡기는 습관.
두려움이 올라오면 기도로 넘기는 습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분께 묻는 습관.
결정을 할 때 혼자 결론 내리지 않고 한 번 더 묻는 습관.
이 반복이 쌓이면, 어느 순간 두려움의 습관은 약해지고 믿음의 습관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두려움의 습관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의 습관 위에서 비로소 선명하게 보입니다.
습관은 작아 보이지만, 인생을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오늘 무엇을 반복하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염려를 반복할 것인가, 믿음을 반복할 것인가.
어린 새가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기에 하늘을 날 수 있었듯,
오늘 작은 믿음의 선택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 반복이 쌓여, 여러분의 인생이 전혀 다른 높이로 오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