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용서해야 하는 진짜이유,
용서(容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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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담화를 하는 직장 동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속이는 사람.

사사건건 의도적으로 내 의견에 반대하는 친구.


이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현명한 대처입니다.

그런데 현명한 방법을 찾기도 전에 먼저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입니다.

그리고 그 미움과 분노는 현명한 길로 가는 발걸음을 자꾸 붙잡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현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먼저 용서하라"고.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하는 거지? 잘못한 건 저쪽인데.


용서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용(容)은 집 면(宀)과 빈 공간을 뜻하는 얼굴 용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지붕 아래 비어 있는 공간. 가득 채운 감정과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를 들일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용(容)은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상대방을 나와 같은 존재로 바라보려는 마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같은 연약함을 가진 인간으로 다시 보는 시선입니다.


두 글자를 합치면,

용서란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어 공간을 내어 주고,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는 선택입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 생겼을 때, 즉시 판단하고 반응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그 일을 다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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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내 마음의 한 켠을 비워 두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에 휩쓸린 실수를 피하고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분노와 미움을 계속 붙들고 있는 한, 가장 힘든 사람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용서는 우리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진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용서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고통을 친히 짊어지시고,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해서가 아니라,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용서는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용서받은 존재인지를 알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간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통해 용서를 알고, 그분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볼 때,

용서는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태도가 됩니다.


먼저 용서하라는 말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분노의 감옥에서 꺼내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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