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 분노의 공명 그리고 깊어지는 확신

by Trenza Impact

※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업, 기관, 상황은 순전히 가상의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3장. 분노의 공명

"오빠, 진짜 오빠도 구조조정 대상이야?"


수진이는 놀란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응, 갑자기 얘기하더라고. 6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는데..."


진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단순히 회사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였다.


"정부에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결국 위에 있는 사람들 잘못 때문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고생하는 거야."

"그런 면도 있겠지만, 경제라는 게 워낙 복잡한 거 아닐까?"


수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복잡하다고? 결과가 이런데 뭐가 복잡해? 실업률이 올라가고, 구조조정이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이 취업 못하는 게 정책 실패가 아니면 뭐야?"


수진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런 진우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진우는 '현 정부 경제정책 실패', '구조조정 증가 원인'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다. 결과는 진우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우는 그런 기사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분노를 키워갔다.

페이스북에서 진우가 공유한 기사들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우야, 너도 이제 정신 차렸구나. 진짜 이 정부는 답이 없어."

"맞아, 서민들은 죽어가는데 위에서는 자기들끼리 권력 놀음만 하고 있어."


진우는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동창 박민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너 요즘 올리는 글들 보고 있는데, 정말 공감돼.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두 사람은 만나 현재 상황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진짜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민수가 말했다.

"맞아, 정치인들은 자기들 이익만 챙기고, 일반 국민들은 뒷전이야. 주변 사람들은 그냥 체념하고 사는 것 같고."

"그게 더 문제야.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진우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요즘 사회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볼 사람들 있나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모두 현재 상황에 대해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4장.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

첫 모임은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열렸다. 진우를 포함해 7명이 모였다. 모두 30대 직장인들로, 각자 나름의 이유로 현재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회사의 이현정씨는 성과급이 대폭 줄었다고 했고, 공시생 정다혜씨는 취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네요."

진우가 말했다.


"맞아요. 정부 정책이 잘못되니까 경제가 어려워지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한테 온 거죠."


모임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불만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았다.


"온라인에서도 활동해보면 어떨까요?" 다혜가 제안했다.


진우는 '현실직시모임'이라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만들었다. 일주일 만에 30명으로 늘어났다. 그룹에서는 매일 정부와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진우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번 주말에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대요. 우리도 참여해볼까요?" 민수가 제안했다.


집회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 광경에 압도됐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현실직시모임은 계속 성장했다. 한 달 만에 100명을 넘어섰고, 두 달 후에는 300명이 됐다. 진우는 어느새 이 모임의 리더 격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신뢰했고, 그가 올리는 글들에 많은 반응을 보였다.


5장. 깊어지는 확신

"오빠, 요즘 많이 변한 것 같아..."


수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이 만날 때마다 진우는 정치 얘기만 했다. 예전의 다정하고 유머러스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변했다고? 뭐가?"

"예전에는 이런 얘기 안 했잖아. 그리고 좀 더... 부드러웠는데."


진우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그럴 때야? 나라가 이 모양인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렇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극단적? 팩트를 말하는 게 극단적이야?"


진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내게 됐다.


"너도 그냥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거지? 편하게 살고 싶어서."


수진이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말해?"


하지만 진우는 수진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요즘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진우야, 요즘 너무 정치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좀 쉬어라."

아버지의 말에 진우는 반발했다.

"아버지는 왜 관심이 없으세요? 아버지 사업도 경기 때문에 어려워지고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한쪽으로 치우쳤다고요? 그럼 지금 상황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가족들과의 대화도 점점 어려워졌다.

온라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현실직시모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진우의 의견에 동조했다.


"진우님 글 항상 잘 보고 있어요. 정말 정확한 분석이에요."

"이런 글 더 많이 써주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있어요."


이런 반응들을 보며 진우는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현실직시모임은 이제 500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어느 날, 모임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저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건 맞다고 생각하는데, 좀 더 건설적인 대안도 제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새로운 멤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대안?"

민수가 반응했다.


"지금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게 우선이죠."

"그렇긴 하지만, 비판만 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진우가 끼어들었다. "부정적으로 본다고요? 진실을 말하는 게 부정적인가요?"

"그게 아니라,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균형?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데 무슨 균형이 필요해요?"


결국 그 멤버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모임을 탈퇴했다.

비슷한 일들이 몇 번 더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임을 떠났고, 결국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남게 됐다.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애매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진우는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실직시모임의 활동은 점점 더 조직적이 되어갔다. 매주 정기 모임을 열고, 온라인에서는 특정 이슈에 대해 동시에 글을 올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우가 예전에 팔로우하던 페이스북 친구들 중 일부가 그와 정반대되는 의견의 글들을 올리고 있었다. 현 정부를 옹호하고, 진우가 비판하는 정책들을 지지하는 내용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보고 사는 거야?' 진우는 답답해했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글들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공감 댓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우야, 좀 이상하지 않아?"

민수가 말했다.

"우리가 보는 뉴스와 그들이 보는 뉴스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아."

"그러게.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아."


그들이 내린 결론은 언론의 편파성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언론이 국민들을 세뇌하고 있는 거야. 진실을 감추고 왜곡된 정보만 전달하고 있어."


이런 분석은 모임 멤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실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속고 있다고 믿게 됐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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