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업, 기관, 상황은 순전히 가상의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6장. 분열의 심화
진우의 회사 복도는 이제 전쟁터였다. 희망퇴직 제안을 거부한 후, 동료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대화가 멈췄고, 상사들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진우야, 정말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절친한 동료 상호가 화장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냥 받아들여. 이런 식으로 버티면 너만 손해야."
진우의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왜 내가 나가야 해? 6년 동안 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데!"
"현실이 그렇잖아. 지금 네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한테 부담이야."
그 말에 진우의 혈관에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았다. 부담? 자신이 부담이라고?
그날 밤, 진우는 현실직시모임에 매달렸다. 이곳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전쟁터였다.
"우리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 단순히 불만만 토로하는 건 시간 낭비예요.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해요. 지금 당장!"
정기 모임에서 진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생각하고 계세요?"
현정이 물었다.
"정치적인 행동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진우가 목소리를 낮췄다.
"특정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특정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거죠."
모임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정치적 행동. 그 단어가 공기 중에 맴돌며 모든 사람들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첫 번째 균열을 만들어냈다.
"저는... 현 상황 비판은 동의하지만, 특정 정치세력 지지는 좀..."
한 멤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그냥 여기 앉아서 비판만 하고 있을 건가요?, 변화를 만들려면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해요!"
진우의 목소리가 카페 전체에 울려 퍼졌다.
"행동한다는 건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 멤버는 일주일 후 조용히 모임을 떠났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진우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만 남았어요. 이제 우리는 진짜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완전히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빠, 너 정말 이상해졌다."
여동생 지혜가 거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 얘기도 들었는데, 요즘은 자기 생각만 맞다고 하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하지만 진우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어제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정치라는 게 복잡한 거라서 한쪽 얘기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 말에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면서!"라고 소리쳤던 기억.
"봐, 또 그 표정이네.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고 오빠만 안다는 식으로."
그날 밤 수진이와의 전화에서도 폭발했다.
"수진아, 너는 왜 이해를 못해?"
"무엇을? 나는 정말로 오빠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럼 왜 내 얘기에 동의하지 않아? 내가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틀렸다는 게 아니야.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팩트를 말하는 게 치우친 거야?"
"하아... 오빠, 우리 조금 시간을 가져보자."
전화가 끊어졌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우의 페이스북 피드에는 자신과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글만 나타났다.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이상해."
민수와 이야기하던 중 진우가 말했다.
"수진이 페이스북을 봤는데, 완전히 다른 내용들이 올라와 있더라고. 우리가 보는 것과 정반대야."
"알고리즘의 힘이지.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거야."
하지만 진우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을 아는 사람들끼리 더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진우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눈빛이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더 날카롭고, 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무서운 것도 있었다.
7장. 커뮤니티의 성장과 맹점
현실직시모임은 이제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해 있었다. 온라인 회원 수는 1500명을 돌파했고, 핵심 멤버만도 50명이 넘었다. 진우는 사실상 이 조직의 절대적 리더였다.
"우리가 이제 진짜 힘을 가지게 됐습니다."
서울 시내 대형 카페에서 열린 정기 모임에서 진우가 선언했다.
"이 정도 규모면 실제로 사회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생각하고 계세요?"
민수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총공세를 펼칠 때가 됐어요. 체계적인 온라인 캠페인으로 여론을 장악하고, 오프라인에서도 가시적인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그의 제안으로 모임은 군사조직처럼 체계화됐다. SNS 운영팀, 콘텐츠 제작팀, 여론 분석팀, 오프라인 활동팀. 각 팀마다 리더가 정해졌고, 매일 아침 브리핑이 진행됐다.
SNS 운영팀의 활동은 가공할 만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특정 해시태그를 사용해 동시에 수백 개의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해당 해시태그가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다.
"우리의 메시지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SNS팀 리더가 흥분된 목소리로 보고했다.
"이번 주 총 조회수가 50만을 넘었고, 공유 횟수는 10만을 돌파했습니다!"
진우는 전율을 느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니.
하지만 섬뜩한 변화도 일어나고 있었다. 모임 내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로봇처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말을 했다.
"요즘 우리 모임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현정이 진우를 따로 만나자고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얘기만 해요. 예전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했는데..."
진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양한 관점? 현정씨,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거예요. 진실은 하나뿐인데 무슨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죠?"
"혹시 우리 활동에 의구심을 갖고 계신 건가요?"
진우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에요. 단결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현정은 일주일 후 조용히 모임을 떠났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모임은 점점 더 동질적이 되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뉴스를 보고, 같은 분석을 하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이제 진짜 엘리트 그룹이 됐어요."
진우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어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박수 소리는 왠지 공허했다.
모임 밖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우오빠, 요즘 정말 무서워요." 수진이가 지혜를 급하게 만났다.
"자기 생각만 맞다고 하고, 온라인에서 하는 활동들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어요."
"저도 무서워요. 오빠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해봤어요. 하지만 오빠는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두 사람은 무력감을 느꼈다. 진우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 진우의 회사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어느 날 진우가 팀장실로 들어가 선언했다.
"희망퇴직 할게요. 이 회사에 더 이상 미련은 없어요. 어차피 이런 썩은 사회에서는 성실하게 일해봤자 소용없잖아요."
퇴직 절차를 밟으면서 진우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해방감도 느꼈다. 이제 진짜 중요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자!" 민수가 흥분했다.
두 사람은 현실직시모임을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조직으로 키우기로 결의했다.
8장. 진실의 왜곡
퇴직금으로 생활 걱정이 없어진 진우는 매일 15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의 아파트는 이제 작전본부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우가 접하는 정보들이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갔다. 객관적 분석에서 시작했던 것들이 어느새 추측과 음모론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정부가 언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경제 지표를 조작해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게 처음부터 계획된 음모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현실직시모임에서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2000명에 가까운 멤버들이 모두 같은 얘기를 하니 진우의 의심도 사라져갔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이런 '추측'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계속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였지만, 모임 멤버들은 이를 확실한 팩트로 받아들였다.
"보세요, 제가 예측했던 일들이 정확히 일어나고 있잖아요!"
진우는 자신의 분석력에 도취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현실직시모임의 온라인 활동도 위험한 방향으로 변질되어갔다. 정책 비판을 넘어서서 특정 인물들에 대한 인신공격, 확인되지 않은 스캔들 유포까지 시작됐다.
그런 어느 날, 충격적인 발견을 했다. 현실직시모임과 정반대 성향의 다른 온라인 그룹들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저쪽 그룹들 말이야."
민수가 보여줬다.
"우리랑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어."
진우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자기들만 진실을 안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을 맹목적이라고 비판하고, 음모론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진우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우리 중에 누가 맞는 거야?"
"당연히 우리가 맞지! 저쪽은 가짜뉴스에 속고 있는 거야."
하지만 진우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자신들만 진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중에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진우야! 정말 오랜만이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철민. 대학 때 토론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였다.
진우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하지만 철민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진우야... 너 혹시 자기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너무 확신하고 있는 건 아냐?"
"그게 무슨뜻이야?"
"자기가 보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면서. 이건 누구든지 빠질 수 있는 함정이야."
"그럼 지금 상황이 정상이라는 거야?"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양한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거야."
집에 돌아온 후에도 철민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궁금해진 진우는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확증편향'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 자신의 기존 믿음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
•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 회피
•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이려는 경향
•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에 의존한 판단
•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해
• 자신의 그룹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우월감
모든 항목이 현재 자신과 현실직시모임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진우는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자신이 진실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편향된 시각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그날 밤, 진우는 처음으로 평소에 보지 않던 반대편 성향 뉴스 사이트에 접속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이 있었다. 자신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다른 관점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야?"
진우는 머리를 감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민수의 전화였다.
"야, 진우야. 내일 긴급 회의 있어. 전면전을 준비해야겠어."
진우는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한 걸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일 민수와 만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 의구심도 모두 사라지고, 다시 확신에 차서 '진실을 위한 투쟁'에 매진할 것 같았다.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의 마음속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