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업, 기관, 상황은 순전히 가상의 것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는 일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1장. 평범한 일상의 균열
김진우는 오늘도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내려 회사로 향했다. 35세, 중견 제조업체 대한산업의 기획팀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그는 아침마다 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하는 스마트폰 뉴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시작하는 하루.
"진우야,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동료 박과장이 말을 걸었다. 진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제 2년 사귄 여자친구 수진이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네, 그런가요?"
"요즘 정치 뉴스 보면 정말 답답하지 않아? 매일 싸우기만 하고."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정치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막연한 불신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치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닐 텐데요. 우리가 보는 게 전부는 아닐 거고."
"아, 나는 진작 포기했어."
점심시간, 진우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동기들과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 다른 회사 친구들이 이직을 준비한다는 소식들이 오갔다.
"우리 회사는 괜찮겠지?" 동기 중 한 명이 물었다.
"글쎄, 올해 실적이 좀 안 좋다고 하던데." 진우가 대답했다.
퇴근 후 진우는 수진이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수진이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진우보다 3살 어렸다.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였다.
"오빠,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때?"
"음, 그냥 그래. 바쁘긴 한데 뭔가 미묘하게 긴장감이 있어."
"설마 구조조정 같은 거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닐 거야. 우리 회사가 그렇게 막 자르는 곳은 아니거든."
진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묘한 불안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최근 몇 달간 새로운 프로젝트가 줄어들고, 상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진우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봤다. 아버지는 작은 자영업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계셨다. 대학생인 여동생 지혜는 취업 준비로 바빴다.
"진우야, 요즘 뉴스 보면 젊은 사람들 취업이 정말 어렵다던데, 너는 안정적이어서 다행이다."
어머니의 말에 진우는 애매하게 웃었다.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던 진우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훑어봤다. 친구들의 일상, 맛집 사진들 사이로 정치 관련 포스팅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친구는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또 다른 친구는 정반대 입장의 글을 공유했다.
진우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예전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정치라는 게 정말 복잡한 것 같아. 각자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진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내일도 평범한 하루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2장. 예상치 못한 충격
"김진우 대리님, 팀장님이 부르십니다."
다음 날 오전 10시, 비서가 전화를 걸어왔다. 진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팀장실로 향했다.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우야, 앉아."
이상했다. 김팀장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뭔가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게..." 김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회사 사정이 좀 어려워져서 말이야. 구조조정을 하게 됐어."
진우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진우한테도 희망퇴직을 제안하게 됐어. 물론 강제는 아니고,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면 돼."
"네...? 갑자기 왜..."
"미안해, 진우야. 사실 위에서 명단을 정했는데, 팀에서는 진우가 포함됐어. 물론 너의 능력이나 성과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김팀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진우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구조조정', '희망퇴직'이라는 단어들만 맴돌았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나요?"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줄 테니까,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해."
진우는 멍한 상태로 자리에 돌아왔다. 동료들이 무언가를 눈치챈 듯 조심스럽게 쳐다봤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식욕이 없어 그냥 카페에서 커피만 마셨다. 스마트폰을 들고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까 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포기했다.
오후에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꾸만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6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진우는 문득 다른 생각을 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진 이유가 뭘까? 회사들이 왜 이렇게 직원을 자르는 걸까?
집에 도착해서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가 뉴스를 보고 있었다.
"요즘 정말 세상이 어수선하다. 경기도 안 좋고, 정치인들은 싸우기만 하고."
아버지의 말에 진우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쳤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날 밤, 진우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실업률', '경제정책'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서 여러 기사들을 읽어봤다.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업들이 어려워지고, 결국 일반 직장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들이 많았다.
'결국 정치의 실패 때문이구나.'
진우는 그런 기사들을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신이 당한 일이 단순히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구조적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