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학교에 또라이가 산다.

by 초코파이
누구든 5명이 모인 곳에 가서 거기에 '또라이'가 없으면 자신을 의심하라


누구든 5명이 모인 곳에 가서 거기에 '또라이'가 없으면 자신을 의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웃으면서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 우리 주변 20% 정도는 우리가 생각할 때 이해하기 힘든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둘째, 누구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런 면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나는 19년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상담한 상담교사이다. 19년이나 상담을 했으니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직업병이 생길 법도 하지만, 사실 사람들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과 많은 사람을 유심히 보아야 하는 일을 밥먹듯이 해왔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단 하루도 다녀보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대부분 학교라는 곳을 다녔고,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배웠다. 학교에서 사회를 배운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사회에 나가지 못하고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다. 사회에 나가지 못한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학교는 안전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학생들에게는 사회생활을 배워나가는 곳이기에 약간의 완충 역할을 해주는 요소들이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잘되지 않으면 선생님들이나 규칙 등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정 기간 같은 구성원들과 함께 일정한 장소에서 지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급격하게 성장해 나가는 시기라 학교에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학생들은 배워서 학교를 나가게 되지만, 선생님들은 그 연습의 장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노하우도 생기고 전문성도 자동으로 생기게 된다. 처음이 어렵지, 계속 반복되다 보면 전문성이 생기고 쉽게 하게 된다. 이런 전문성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작년과 같은 일을 하면 되기 때문에 교사에게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게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꼰대력'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으면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내가 20년 가까이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부모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내가 학부모들과 나이가 비슷해지면서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 때는 학교에서 진짜 많이 맞았다. 여중, 여고를 나온 나도 많이 맞았는데, 남고를 다닌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생님들께 맞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나도 학교에서 억울하게 맞은 날은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이게 맞을 일인가 싶기도 하고, 교사에 대한 불신과 반발심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학창 시절 일들이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그런 이유로 학교에 대한 트라우마와 불신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분들은 '학교는 배울 것이 없는 곳', '학교를 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 '교사가 내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또라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또라이'들을 이해하고 싶다. 결국 우리도 그런 '또라이'가 될 수도 있고, 이미 '또라이'일 수도 있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말처럼, '또라이'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학교에서 만난 이 소중하고 특이한 존재들, 학교 안에서 복작거리면 살고 있는 이 존재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브런치 맞춤법 검사에서 '또라이'를 자꾸 '미친놈'으로 바꾸라고 한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28일 오후 09_38_39.png

본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