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성 성향의 교사
아침 7시.
익숙한 체로 선율이 집 안 가득 울려 버진다.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브래드의 아침은 항상 바흐의 첼로 선율과 함께 시작된다. 그는 이른 아침 일어나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신다. 커피 향과 체로선율은 브래드의 성공적인 하루 시작을 의미했다. 최근 살이 좀 쪘다는 이유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브래드는 아침을 거르기로 한다.
학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제법 추운 날이었다. 브래드는 윤기 나는 캐시미어 코트를 꺼내 입었다. 유행에 민감한 그는 캐시미어 코트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 정도는 입어 줘야지.' 지난주 백화점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산 비싼 코트를 입자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의 한 달 월급에 가까운 코트였지만 할부로 결제하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코트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에 맞는 옷을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브래드는 윤기 나는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매일 똑같은 패딩, 플리스 재킷을 입고 학교로 출근한느 다른 동료 교사들을 한심한 듯 떠올렸다. 그는 다른 교사들에 비해 자신의 패션 감각과 준수한 자기 관리 능력에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종이 친지 몇 분이 흘렀지만 선생님이 교실에 아직 들어오지 않아 학생들은 삼삼 오오 여기저기 흩어져 떠들고 있었다.
"오늘 브래드 기분은 어때 보였어?"
"방금 교무실에서 봤는데, 오늘은 괜찮아 보이던데..."
"에휴 그래도 몰라. 기분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어제 3반에서도 수업시작하고 20분 동안 화만 냈다는 이야기 들었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 보고 살아야 하나?"
학생들이 서로를 위로하듯 낄낄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너네 도대체 뭐야?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에 자리에 앉아서 수업준비 하고 있으랬지?"
브래드는 앞쪽 자리에 앉아 뒤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 학생의 꿀밤을 톡톡 때리며 들어왔다. 학생들은 약간은 파리해져 자기 자리로 돌아서 앉았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고 있다. 선생님에 대한 예의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수업준비조차 안된 애들도 많다. 기본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브래드는 자신의 수업에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교탁에 기대어 서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한바탕 훈계를 하려고 하는 순간 복도 창문으로 교장선생님이 뒷짐을 지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브래드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장전된 잔소리를 한번 참고 수업을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이 지나가자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브래드에 대해서 눈치가 빠른 한 학생이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말했다.
"선생님 오늘 옷이 너무 멋지세요. 선생님 진짜 배우 같아요."
그 말에 브래드의 기분은 좋아졌다.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칠판에 문제의 답을 휘갈겨 써내려 갔다. 일타 강사를 흉내 내듯 문제 풀이가 완성되고 답이 적히자 분필을 칠판에 '탁'하고 집어던졌다
"오오오~" 학생들이 탄성을 질렀다.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서 브래드는 자신이 수업의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학생들에게 일타강사 같은 교사로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 브래드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학생들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자신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멋지게 수업을 하고 있을 때 교장선생님이 지나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자! 이럴 땐 박수!"
학생들은 서로의 눈을 보며 빨리 박수를 치라는 무언의 말을 서로에게 건넸다. 이럴 때 박수소리가 시원찮으면 브래드 선생님의 기분은 금방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질문 없지?"
조용한 정적이 몇 초간 흘렀다.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갈 줄 알았던 그때, 정적을 깨며 다니엘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도대체 왜?'라는 눈빛을 다니엘에게 보냈다.
"방금 풀우주신 문제가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워요."
한 순간 교실은 얼어붙었다가 학생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옆에 있는 학생은 브래드와 다니엘의 눈치를 번갈아 보고 있다. 브래드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자신이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알려줬건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브래드의 주먹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브래드는 화를 억누르는 어조로 말했다.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교무실에서는 학생을 꾸지는 소리가 들린다. 브래드의 격양된 목소리 때문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 까지 어깨를 움츠린다. 다른 선생님들은 최대한 브래드와 다니엘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을 하는 척했다
"이걸 왜 이해를 못 해?"
"아니 잘 모르겠어요. 어렵습니다. "
"한심한 녀석. 이렇게 기초적인 것도 이해 못 하면 너는 멍청한 거야. 내 수업을 이해 못 하는 학생은 네가 처음이다. 수업을 안 듣고 다시 가르쳐 달라는 태도는..."
옆자리에 있는 수잔 교사의 목과 얼굴을 붉어지고 있다. 수잔은 다니엘이 걱정되지만 쳐다볼 수가 없다.
수잔은 브래드가 부장으로 있는 부서의 신규교사이다. 수잔이 학교에 부임받아 왔을 때, 수잔은 브레다가 좋은 선배교사라고 생각했다. 말투는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깔끔한 스타일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감과 열정이 넘쳐 보여 브래드의 옆에 있으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얼마가지 않아 깨져 버렸다. 자신이 올린 기안에 작은 실수라도 관리자가 수정을 요구하며 지적을 하면 브래드는 수잔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이거 고치라고 했는데, 안 고쳤어요?"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수잔은 브래드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실수와 판단의 잘 못은 수잔에게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수잔은 신규교사였다.
4월 어느 날, 브래드는 교장실에 다녀온 뒤 수잔에게 몇 권의 자료집과 문서서식을 내밀었다. 공모사업 계획서를 적어보라고 했다. 수잔이 신규고 잘 모르니, 계획서만 정리해주만 자신이 보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잔은 거절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수잔의 업무는 늘어나고 수잔을 힘들어했지만 브래드는 늘 활기찬 목소리로 힘내라고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도 말했다. 그리고는 이번 공모사업을 꼭 따내도록 노력하자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수잔은 바쁘고 정신이 없었지만 브래드는 여유로워 보였다.
공모사업은 시작되었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적어도 브래드에게만큼은 말이다. 신규교사 수잔의 고군분투는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수잔의 몫이었다. 브래드는 항상 여유로웠고, 수잔은 몸부림을 쳤다. 수잔은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보람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교무회의 시간, 교장은 성과를 크게 칭찬했다. 그 성과는 모두 브래드의 몫이었다. 브래드는 당연한 듯 그 결과물을 아주 맛있게 섭취했다. 수잔은 밥상을 차리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한 자신을 돌아보았다. 너무 황당하면 화도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브래드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브래드는 수잔이 왠지 모르게 자신을 쌀쌀맞게 대한다고 느꼈다. 자신에게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공모사업 때문인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수잔이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결정을 자신이 했으니, 자신의 성과였다. 오히려 신규교사 주제에 나대는 수잔이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수잔 때문에 마음이 찜찜했다. 수업을 하는 중에 교실을 돌아보니 세네 명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학생들은 브래드가 수업 중에 자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점심을 먹고 찾아온 식곤증을 이길 재간은 없었다.
"자! 다들 일어나라!"
학생들 몇 명이 브래드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려고 무거운 눈을 껌벅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잠에서 이기지 못하는 다니엘은 계속 눈을 감고 있다.
'감히 저 녀석, 내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고?'
브래드는 수업을 계속 진행하며 다니엘의 옆으로 갔다. 다니엘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브래드의 머릿속에 지난번에 질문을 하던 다니엘이 지나갔다. 갑자기 지난번에 혼낸 것 때문에 다니엘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브래드의 안에서 무언가 단단히 걸렸다. 브래드는 눈앞이 핑돌고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의 몸을 뒤집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브래드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움직였다.
교실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서 놀란 눈을 뜨고 브래드와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브래드 또한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을 정당화시켜야 했다. 자신은 당당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학생이 수업 중 수업을 하는 교사를 무시한 것에 대한 결과였으므로 샘샘(Same-same)이었다.
그날 이후 다니엘은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다. 더 이상 질문도 하지 않았다. 조는 학생들이 사라지고 질문이 사라진 교실은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브래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수업은 계획한 대로 흘러갔고, 자신은 수업을 잘 통제하는 교사가 되었다. 수업시간에 아무도 엎드려 자지 않는 것에 대해서 교장선생님은 칭찬을 했다. 그걸로 된 것이었다. 브래드는 복도에서 다니엘을 마주쳤다. 브래드는 교무실에서 수잔과도 마주쳤다. 브래드는 다니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했다. 수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브래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도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브래드는 그렇게 평온을 찾았다.
인정받지 못하면 무너지는 사람
자기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며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쳐 보이며 유능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매우 헌신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향의 핵심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외부의 인정'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자신의 가치를 정한다는 것에 있다. 이들은 스스로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내적 기준이 약하기 대문에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하려 한다. 칭찬과 존중, 성과와 인정은 그들에게 정서적 생존과도 같은 것이 된다.
문제는 이 인정이 조금만 흔들려도 그들이 세계 전체게 위협받는 듯한 감정에 휩쓸린다는 것이다. 타인의 무표정한 얼굴 하나, 집중하지 않는 시선 하나,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뉘앙스 하나에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들은 사소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분노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고,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착취하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철 자존감 혹은 자신감이 높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취약한 자존감과 깊은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종종 성장과정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충분히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받고 인정을 받으며 큰다. 하지만 어릴 때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사랑과 평가가 조건부였던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잘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내면화하기 쉽다. 그 결과 성취와 역할, 지위가 곧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다.
교사라는 직업은 이러한 성향을 강화하기 쉬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교단 위에서의 권위, 학생들의 반응, 관리자의 긍정적인 평가와 칭찬은 자기애적 성향을 지닌 교사에게 강력한 보상체계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은 언제나 늘 불안정하다.
학생들 또한 교사를 평가한다. 그들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 교직은 동료교사들과 끊임없이 비교되기도 하며, 서로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은 자기애성성향을 가진 교사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정당화를 구분하는 일이다. 자기애적 성향이 발현된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의 상처와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나인가'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질문자체가 이미 중요한 출발점이다. 자기애적 성향은 특정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각자 다른 비율로 존재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성향이 강하다면 타인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고 객관적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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