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리 꽃비 속에서 깨어나는 깨달음
"생이란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
죽음 또한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
ᆢ지금 이 자리, '그 전부'로
나는 아름울뿐이다!
ㅡ꽃비 내리는 태안반도 끝 신두리에서ㅡ
삶과 죽음은 종종 정반대의 상황으로 이해된다. 과연 그럴까?
존재의 춤이 베일을 벗는 곳, 바로 태안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은 신두리.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반도의 조용한 구석에서는 필멸의 사색이 불가피해진다. 해안에 부딪히는 끊임없는 파도는 모든 것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땅이 바다와 만나고 삶이 죽음과 수렴되는 고요함 속에 심오한 계시의 영역이 놓여 있다.
낯선 바닷가 작은 정원에 핀 노란 수선화.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개 숙인 꽃은 생명의 맥박을 속삭이듯 담고 있다. 수선화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이 본 아름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죽음에 이른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시선의 외모에 대한 허영심이라는 표면을 걷어낸다면,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나르키소스의 고대 이야기를 연상시키며 명상과 영성의 영역을 탐험하도록 이끌며, 하늘에서 천상의 눈물처럼 내리는 꽃비를 배경으로 외부 세계와 자아의 깊이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삶은 현재 순간의 보물을 드러낸다. 하지만 삶의 아름다움은 화창한 날뿐만 아니라 몰아치는 폭풍우에도 있다. 왜냐하면 그 폭풍 속에서 영혼의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에 새겨진 상처, 취약함, 알 수 없는 여정이 인도하는 아름다움은 세상에, 더 중요하게는 스스로에게 드러나는 순수한 진실에서 비롯된다. 삶은 빛과 그림자를 모두 아우르는 경험, 감정, 순간의 교향곡이다.
삶과 죽음 모두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독특한 방식을 가진다.
드러냄은 바로 이 진정성에 관한 영역이다. 자신의 결점과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허용할 때, 우리는 가식의 짐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이러한 드러냄은 일종의 해방으로 다른 존재, 자연, 우주 자체와 연결로 이어진다. 비가 땅 위의 모든 표면에 차별 없이 떨어지듯이, 진정성 역시 경계를 초월하여 깊은 일체감으로 연결된다. 낯선 바닷가 작은 정원에 떨어지는 빗방울방울은 탄생과 재생의 영원한 순환을 반영하듯 내리며, 현재 순간이 존재의 전체가 되는 명상 상태로 끌어들이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의 시선이 그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도록 이끌었던 것처럼, 신두리에서 만난 수선화는 성찰을 위한 거울이 된다. 빗방울은 삶의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구체화하며, 꽃잎 하나하나는 순간의 덧없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이 덧없는 아름다움의 중심에서 자아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알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삶에 주어진 신성한 임무다. 삶과 죽음을 넘어 자신의 존재 전체 드러내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낯선 바닷가 작은 정원에 영혼의 거울인양
노란 수선화는 전 존재로 지고 있다.
낯선 바닷가 작은 정원에 영혼의 거울인양
노란 수선화는 전 존재로 피고 있다.
지금 이 자리, '그 전부'로
나는 아름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