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빛을 밝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영국) <눈먼 소녀(The Blind Girl)>(1854~1856)
신은 내 눈을 멀게 하셨고,
별을 내 가슴에 달아주셨다.
어두운 세상ᆢ
그렇게 길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하셨다.
ㅡ 성신여대 대학원 강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산도 없이 ㅡ
종종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벽을 더듬으며 집 안 복도를 홀로 걸어본다.
아버지는 “너의 증조할머니는 인생의 마지막 몇 해를 시력을 잃은 채 살다 가셨는데, 너에게 유전되었구나”라며 안타까워하셨다. 유전으로 집안의 선천적인 신체적 결함이 전해진 나의 눈동자와 내 인생의 어디 즈음에서는 반드시 할머니처럼 그리되리라는 예감으로 때때로 두려움이 물려온다. 안과의사는 되도록이면 책을 덜 보고, 컴퓨터나 SNS도 하지 말고,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며 잘 먹고 푹 쉬라고 조언한다. 그저 삶을 적당히 접으라는 말로만 들려와 서글픈 마음에 신체의 눈과 영혼의 눈 사이의 상호 작용과 시각과 시력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육신의 시선과 영혼의 안목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단지 외부에 대한 인식일까, 아니면 그 너머의 영역을 향한 탐구일까? 그들은 눈이 멀어 눈 뜬 자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일까? 진정으로 눈이 먼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육신의 눈에서 벗어나 영성의 눈뜸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역사를 통틀어 선지자나 영적 지도자로 여겨지는 인물 중에는 실명을 경험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Tiresias는 여자의 몸으로 변신한 지 7년 만에 새의 언어를 알아듣고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한다. 테이레시아스의 실명은 때때로 은사로 여겨졌는데, 육체적 눈 멈으로 인해 그에게 영적, 신비적 영역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서양 문학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저자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 Hómēros는 장님이었기에 눈먼 음유시인으로 전해진다. 또 형이상학과 변화철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도 눈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주요 선지자로 간주되는 이사야 Isaiah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성한 메시지와 예언을 전달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다. 성경에는 이사야가 눈이 멀었다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일부 해석에 따르면 이사야가 나중에 눈이 멀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산타 루치아(Santa Lucia)라고도 알려진 성 루시아(Saint Lucy)는 4세기 초 기독교 순교자로, 시각 장애인과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받는다. 루치아의 시력은 순교 후 기적적으로 신에 의해 회복되었는데, 이는 성녀가 지닌 영적 깨달음과 통찰력을 상징이기도 하다.
17세기 이란 문화 르네상스를 이끈 물라 사드라 Mulla Sadra (Sadr al-Din Muhammad al-Shirazi라고도 함)는 이슬람 역사에서 사파비 왕조 시대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초월신지학(Hikmat al-Ishraq)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다. 물라 사드라는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었고, 이는 그의 심오한 철학적, 영적 통찰력에 영감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서사시 『실낙원』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청교도 사상가이자 시인인 존 밀턴 John Milton은 말년에 녹내장으로 인해 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밀턴은 계속해서 작품을 썼는데, 그의 실명은 그의 시에서 발견되는 생생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언어를 낳은 요인으로 종종 인용된다. 강력하고 종종 어둡고 성찰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스페인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말년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시력 상실을 포함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선지자는 아닐지라도 암울하고 고립된 시기에 제작된 그의 후기 그림은 예언적 주제를 담고 있으며 내면의 혼란과 성찰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는 유전적 장애로 인해 시력을 점차 잃어가면서 세상에 대한 그의 인식에도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종 환상, 신화, 초현실적인 요소를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질문과 깊이 연관시키는 "마법적 사실주의" 또는 "환상적 사실주의"로 묘사되는 그의 문학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외부 시력 상실과 강화된 내부 시력의 병치를 통해 형성된 그의 독특한 관점은 평범함과 비범함, 현실과 초현실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능력에 기여했다.
진정한 이해는 종종 표면을 초월하며 평범함을 뛰어넘는 인식의 깊이가 필요하다.
이들의 육체적 시력의 상실이 영적 시력의 예리함, 즉 우주와 우주의 상호 연결된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물질적 방해에 얽매이지 않는 영혼의 눈이 유형 세계 너머의 진실을 인식을 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영혼의 눈은 물질세계 너머의 진리를 인식하고 육체의 시각의 한계를 초월한다. 존재의 육체적, 정신적 측면의 이러한 얽힘은 자기 발견, 성찰 및 깨달음의 여정으로 이끈다.
외부 세계에 눈을 감으면 내면의 우주, 즉 영혼의 우주를 향한 눈이 열린다.
육체적인 맹목은 내면에 있는 더 깊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육체의 눈은 경계에 고정되나 영혼의 눈은 전체성을 바라본다. 육체의 눈은 한계를 인식하지만, 영혼의 눈은 무한한 잠재력으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영적 깨달음과 명상은 육체의 눈과 영혼의 눈 사이의 간격을 메워준다. 육체의 눈과 영혼의 눈 사이의 연결은 우리를 영적 깨달음과 명상의 영역으로 이끄는 심오한 묵상이다.
어둠은 별이 더욱 밝게 빛날 수 있는 캔버스가 된다.
슬픔의 지형을 더듬어 고통을 지나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자 한다. 영적인 깨달음은 단순히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묶는 근본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며, 단순한 인식에서 심오한 통찰로의 전환이다. 육체적 시력이 희미해짐에 따라 영혼의 눈은 확장되어 내면 우주의 광대함을 엿볼게 될 것이다. 불안과 상실의 어둠을 통과하고 자기 인식과 상호 연결의 빛으로 스스로를 안내하기를 희망해 본다.
육체적 눈을 감고 의식의 눈을 뜨라.
조용한 공간에서 영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의 별이 당신을 인도하도록 허용해 보라. 육체적 시력의 잠재적인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과 걱정은 지혜와 통찰력의 더 깊은 근원과 연결될 때 부드러워질 것이다.
영적 깨달음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이는 고통의 본질, 감정의 무상함, 모든 경험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지는 자기 발견의 여정이다.
신은 내 눈을 멀게 하셨고,
별을 내 가슴에 달아주셨다.
어두운 세상ᆢ
그렇게 길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