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로 물들인 노란 밥
6월이 되면
바깥에 있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러 가는 것이 행복하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는
마당에 서면 달빛을 받아 환하게 웃고 있는 치자꽃 때문이다.
치자꽃의 향기는
우아하면서도 강렬하고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난다.
그래서일까? 치자꽃향기를 맡을 때는 킁킁거리며 맡기보다는
눈을 감고 우아하고 조용히 치자꽃 앞에 코를 내밀고 서 있으면 된다.
치자꽃 향기가 아주 매력적이기에
세계 유명한 향수회사 여러 곳에서 향수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치자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치자 열매가 맺히고
찬서리를 맞기를 반복하면 치자는 주황색으로 물든다.
더 추워져 얼기 전 볕 좋은 날에 치자 열매를 수확한다.
예쁜 꽃이며 가지들을 꺾어서 꽂아 놓기를 좋아하기에
곁에 있던 플라스틱 물조리개를 당겨서 여러 개의 치자가 달린 가지는 가지채 꺾어서 꽂고,
한 개씩 달린 치자는 낱개로 가득 담는다.
치자색이 어쩜 이렇게 고울까?
말린 치자 열매는 쓰임새가 참 다양하다.
치자 열매를 깨끗하게 씻은 후
앞뒤 부분을 정리한 후 반으로 잘라 찬물에서 우려내면 된다.
밥을 지을 때
물 100ml에 치자 열매 1알 정도를 잘라 30분 우려낸 후
밥물로 사용하면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노란 밥이 완성된다.
치자물로 밥을 지으면 밥알에 코팅을 한 것 같이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특별한 냄새나 거부감 없이 맛있다.
진하게 우려낸 치자물로는 스카프 염색을 할 수 있다.
천 가게에서 실크로 만들어 판매하는 스카프 천을 사서 뜨거운 물에 담가 두었다가
말린 후 염색처리를 하면 예쁜 스카프가 완성된다.
개나리가 필 무렵 목에 두르고 다니면 왠지 기분이 밝아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도 치자나무가 있었다.
설이 되면 어머니는 말린 생선을 통째로 전을 부치셨는데
이때 꼭 치자 열매 우린 물로 반죽을 해서 전을 부치셨다.
말려 놓은 생선은 색깔도 그렇고 눈알도 살아있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서
감히 그것들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엄마의 손을 통해 노란 반죽을 입고 거듭 태어난 가자미는 참 맛있었다.
고구마, 오징어 등 튀김에도, 야채 전을 부칠 때도 자주 노란 치자물을
사용해서 식구들의 입맛을 챙기셨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채워나가는 장독대 옆에 자라고 있던 치자나무에
노란 치자가 열릴 쯤이면
가을걷이와 김장으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치자 열매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 말리셨고
그 열매는 일 년 내내 우리들의 입맛을 노랗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