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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는 꽃/최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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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점순
Apr 8. 2023
아직도 우리는 꽃
초등학교 동창 열아홉 명이 2박 3일 제주도 패키지여행을 했
다. 졸업 후 친구들은 상급 학교나 공장으로 흩어져 소식도 모른
채 살았다. 50년 세월의 강을 넘은 후 몇 년 전 52명이 재회했고 단체여
행을 가기 위해 매달 돈을 저축하고 2년 동안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간절한 친구들의 바람에도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복병을
만나 하늘길 바닷길이 막혀버렸다가 이제 다시 열렸다.
아쉽게도 전원이. 함께 . 여행 가지 못할 각자의 사정이 생계 열 아홉명이. 떠나게 되었다.
고향에 사는 친구가 여행 계획을 세웠고 또 한 친구는 돈 관리
를 하여 항공권 예약과 세심한 준비를 해주었다. 멀리서 사는 친
구를 배려해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추어 갈 수 있도록, 김포에 사
는 친구가, 전날 자기 집에 잘 수 있도록 동창들을 초대해 주었
다. 새벽에 친구의 아들 두 명이 엄마 친구를 위해 승용차로 비행
기 탑승 시간에 맞추어 태워주었다. 김포공항에서 새벽 6시 40분 비행기가 출발했다.
서울 팀이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부산, 대구에서 먼저 온 친구
들이 환영해주었다. 공항 옆에는 45인승 관광버스와 현지 가이
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들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지
만 얼굴은 가을 단풍처럼 고왔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
침 기온이 영하 5도로 내려가고 진눈깨비를 동반한 추위가 우리
를 기다렸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바다의 너울성 파도가 멍석말이
를 하며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춥고 배속은
허했다. 버스가 조식을 먹을 식당에 세워주어 뜨끈한 해장국으로
추위를 녹일 수 있었다.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가이드가 농담처럼 호칭을 언니 오빠
라고 부르며, 해학과 친절한 안내로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제
일 먼저 용두암 바위로 갔다. 바위에 올라서니 푸른 바다가 펼쳐
졌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구름다리를 걸었다. 관광버스는 노
란 귤이 조랑조랑 매달린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귤나무에는 작
년에 달린 귤과 올해 새로 열린 귤이 함께 달려 있었다. 농장 주
인의 거칠고 인자한 모습에서 부모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했다.
코끝을 스치는 세찬 바람이 불면 서로 목도리를 걸어주고 장갑을
벗어주었다. 한라수목원을 구경하고 중식은 한정식을 먹었다. 에
코랜드에서 곶자왈 생태공원으로 가는 궤도 열차를 탔더니 엉덩
이가 널뛰듯 덜컹거렸다. 소나기를 동반한 진눈깨비가 다시 쏟아
져 알록달록한 우산들이 홀라당 뒤집혀 옷이 흠뻑 젖었다. 우산
하나에 두 명씩 들어가 머리만 비를 피하고 팔짱을 끼고 걷는 동
안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
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이 연상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었다. 테마공원을 지나 천년의 숲 깊숙이 들어
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멀리서 온 일행을 반겨주었다. 다양한 숲
의 향기가 어울려 폐부까지 스며들었다. 팻말에 쓰여 있는 나무
의 오래된 나이를 보고 제주도의 얼룩진 슬픈 역사를 떠올렸다.
천 년 동안 묵언 수도자처럼 서 있는 나무를 양팔로 안고, 나무의
단단한 몸피를 손으로 만져보니 지난했던 우리나라의 수난 역사
가 가슴으로 느껴져서 숙연해진다. 인간은 오래 산다고 해도 고
작 백년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서로 아웅다웅 싸우며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산다. 인간이라면 나무보다 잘 살아
야지 않을까.
일행이 가는 곳마다 돌하르방이 반겨주었다. 고구려 광개토대
왕의 무술 공연을 감명 깊게 관람했다. 선조들이 용맹하게 싸워서
유서 깊은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았을까. 제주 여행 첫날
낮에는 동서남북을 관통하며 돌아다녔고, 밤에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가나와 한국’의 축구시합이 있어 함께 시청했다. 친구들
이 한방에 모여앉아 목이 터지라 응원을 했다.
제주 여행 이틀째다. 친절한 버스 기사님과 가이드 센스가 돋
보였다. 눈비 맞고 얼어버린 몸을 녹여줄 점심은 해물전골로 주
문했다. 잠시 휴식 시간에 어릴 적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집
집마다 아이들이 네다섯이 기본이고 칠 남매, 구 남매, 십 남매도
있었다. 한 반에 학생이 75명이었다. 교실 부족으로 오전반 오후
반으로 낡은 책, 걸상에 앉아 이마를 맞대고 6년 수업을 했다. 하
굣길에 검정 팬티 바람으로 물속에 입수해도 흉허물이 없었던 죽
마고우들이다.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면 머슴애들이 면도
칼로 자르고 도망을 쳤다. 6학년 졸업여행은 경주불국사로 다녀
왔다. 모두 세월의 밀물 썰물에 씻어졌는지 칠십 줄에도 해맑아
보인다. 저녁은 닭죽과 냉면을 먹고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무
언의 약속을 했다.
마지막 날, 숙소에서 해장국을 맛있게 먹고 수목원을 향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사이에서 쌍무지개가 환영해 주듯 찬란히
떠올랐다.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제주 성읍민속촌을 방문하니
옛날에 살았던 집과 풍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후손들이 생계
수단으로 조랑말을 키우고 고사리를 끊어 판다고 했다. 일출랜드
섭지코지에 도착하여 초록 물감을 뿌린 듯한 파란 잔디밭에 안겨
보니 흙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친구들이
손도 잡지 못하게 뿌리쳤는데 여행을 통해 돈독하게 정이 들었다.
점심으로 먹은 흑돼지 고사리 불고기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
았다. 제주도 여행 2박 3일로 반평생 만나지 못한 공백을 메꾸기
에는 턱없이 짧았다.
이제 효선
. 친구들은. 옆에 있어도 또 보고 싶은 나만의, 너만의 연연처럼 그리움을 쌓아가며 우정으로 꽃피우리라.
제주 여행을 인솔한 친구는 농번기를 피해 고향 친구들을 수시
로 여행을 시켜주었다. 정이 많은 친구는 제주도 고사리를 잔뜩
사서 나누어 주었고, 또 한 명은 귤 상자를 들고 다니며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었다. 동백나무 군락지에 펼쳐진 꽃길을 소녀 소년처
럼 설레며 걸었다. 거기서 함께 찍은 사진 속 우리는 누가 뭐래도
한 송이 꽃이었다. 아직 우리는 꽃이라고 서로에게 최면을 걸며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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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점순
거미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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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점순의 브런치입니다. 글 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주어진 일상을 글쓰기로 채우고 싶다. 진솔한 삶의 이야를 써서 독자들이 공감 할 수 있도록 많이노력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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